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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인물설교 - 여호와께서 형통케 하신 사람 요셉

맑은샘77 2015. 3. 23. 23:49

여호와께서 형통케 하신 사람 요셉

(창세기 39:1-6)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께 하심을 보았더라.


  흔히 사람들은 요셉을 꿈꾸는 사람, 혹은 꿈쟁이 요셉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비웃으며 한 말이지만(37:19) 정말 요셉은 평생 꿈을 붙잡고 살았으며 꿈 때문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꿈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꿈이 없이 살고 있으며 헛된 꿈에 빠져 사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꿈을 확신하며 그 꿈의 성취를 맛본 사람이 요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나 요셉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요셉이 이처럼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사셨고,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난 뒤 주변의 모든 환경은 꿈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으니 부모 형제가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이 실현되려면 부모 형제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하는데 먼 외국으로 팔려갑니다.  게다가 종으로 팔려가고, 노예에서 죄수로 내려갑니다.  이렇게 꿈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내려간다 해도 역사를 뒤집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십수 년 전, 치안본부 안에 교회가 처음 세워지면서 우리 목사님은 설교를 하시고 여전도회에서 떡과 음식을 장만하여 가서 찬양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여전도회원들은 찬양을 연습하면서 젊고 예쁜 사람이 앞줄에 서고 나이 많고 노래도 못하는 사람은 뒤로 서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치안본부 교회는 의자가 없이 맨바닥이었습니다. 예배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성가대 찬양이 있겠습니다” 하더니 “성가대원 일어서” 그리고 “뒤로 돌아” 하더군요.  강단 쪽을 향해 서서 찬양할 줄 알았는데 뒤로 돌아 회중석을 향해 서서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젊고 노래 잘하는 분은 뒤로 서고 나이 많고 노래도 못하는 분들이 맨 앞에 서서 찬양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꿈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뒤로 돌아” 하시면 역사는 희비가 서로 바뀌고 마는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오.  자신의 꿈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었지만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뒤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언제, 어디서나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가니 여호와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요셉이 오해를 받아 옥에 집어넣으니 하나님은 옥에 있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전옥은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겼고, 요셉에게 맡긴 것은 무엇이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감옥이 천국으로 변했습니다.  흉악한 죄수들이 하나 둘, 그의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가 옥에서 풀려나 애굽 나라의 총리가 되니 이번에는 애굽 온 땅이 복을 받았습니다.  7년의 계속되는 흉년에도 넉넉히 먹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애굽 왕은 외국에 식량을 팔아 돈을 벌고 애굽 온 땅의 주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애굽의 바로 왕은 본토인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힉소스 왕조였습니다. 본토인을 축출하고 왕좌에 앉았지만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을 때 요셉이 도와주므로 전 국토를 소유하고 백성들의 신임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형통케 하십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불경기를 모르는 것은 사업의 수완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형통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과 함께 하실까요?  아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살아야 할까요?


  첫째,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기를 원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주인 보디발이 잘해 주는데 어찌 배신할 수 있느냐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옆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신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 큰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어쩌면 요셉에게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도움을 받으면 노예에서 해방될 수도 있고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총리가 되어 식량을 관장할 때도 그렇습니다.  왕은 요셉을 절대 신임하여 인장 반지(요즘 인감도장 같은)를 아예 요셉의 손에 끼워 주었습니다.  식량을 사고 파는 모든 문제를 전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얼마에 사 두었다가 얼마씩 파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14년 동안 식량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엄청난 돈을 빌 수 있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말하기를 떡을 만지다 보면 떡고물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정말 시루떡을 나누어 주다 보면 떡고물이 몇 그릇은 남습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일을 수행하면서 심심찮게 재산을 모으는 공직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소위 떡고물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모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거나 득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형들에게 식량을 팔고 돈을 받지 않은 죄(?)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15:3)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정직하게 삽니다.

  둘째,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므로 언젠가 꿈이 이루어 질 것을 믿었기에 인간적인 지혜나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혀 있었지만 누구에게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억울함을 알고 왕에게 말씀드리겠다고 했지만 2년 동안이나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때를 기다렸습니다.  잊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만약 그 때 신하가 잊지 않고 왕에게 말씀을 드렸다면 옥에서는 나오겠으나 노예의 신분은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니 옥에서 나올 뿐 아니라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시37:7).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셋째, 감사할 수 있습니다.


  훗날 요셉이 그의 형제들과 만났을 때 그는 원수들 잘 만났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45:5) 했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45:8) 하였습니다.  모든 선한 결과를 하나님께 돌리고 감사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곁에 계시고 언제나 함께 하심을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형통케 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출처 : 꿈돌이 동산
글쓴이 : 어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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