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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인물설교 -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사람 요나단

맑은샘77 2015. 3. 23. 23:49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사람 - 요나단

(사무엘상 20:35-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성경에 나타난 가장 아름다운 우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과 요나단 사이의 우정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다윗은 감히 요나단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왕자였으나 다윗은 평민 혹은 신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사울왕 앞에서 승전보고를 할 때(삼상18:1)입니다.  사울왕의 곁에 앉았던 왕자 요나단은 다윗을 보는 순간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연락되었다는 말은 단순한 우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생명이 결합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서로의 사랑과 헌신을 주고받는 공동 운명적인 결합을 말합니다.

  이 때,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게 됩니다.  이들은 세 번에 걸쳐 서로 언약을 맺고 우정을 굳게 맹세합니다.  18:3의 언약은 ‘친구언약’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이 언약을 친구언약 이라기보다는 군신언약(君臣言約) 즉 임금과 신하가 서로 언약하는 성격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언약은 20:42에 나오는 평화언약입니다.  다윗과 요나단, 두 사이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맹세한 것입니다.  둘뿐 아니라 두 자손 사이에도 영원하기를 맹세하였는데 두 사이의 영원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세 번째 언약은 23:18에 나오는 왕권언약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인 자신이 왕이 될 것이 아니라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확신하면서 자신은 다윗 왕국에서 다윗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겠다는 것을 언약하는 것입니다.

  이 세 언약은 모두 요나단이 맹세하고 다윗은 그 맹세에 동조하는 형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왕권이 요나단에게서 다윗에게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런 친구를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친구를 위해서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사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친구임을 알아야 합니다(요15:13,14).


  첫째,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과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왕자가 무명의 신하를 생명 같이 사랑한 것입니다.  생명 같이 사랑했다는 말은 나의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친구를 위해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요15:13)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런 사랑을 누가 하겠습니까?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생명까지 버리셨으니 우리도 이웃에게 이런 생명을 나누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니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줍니다.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고, 군복과 칼과 활과 띠를 다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아무리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해도 즐겁기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시간을 드리고 재능을 바칩니다.  물질을 바치고 헌신하고 봉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돈을 목숨같이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일조를 드리고 건축 헌금을 드릴 수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말을 좋게 합니다.  요나단은 한 번도 다윗을 섭섭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도 다윗을 위해 말해 주고 다윗의 편이 되어 줍니다(19:4,5).  이처럼 언제든지 사라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좋은 말만 전해 줍니다.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헐뜯고 비방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교회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모인 공동체입니다.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  특히 제직이나 앞장선 분들은 서로 덕이 되고 유익한 말만 해야 합니다.


  둘째, 요나단은 다윗과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였습니다.


  아버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이 굳어진 것을 확인한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위해 떠나 보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울면서 작별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굳게 맹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이 우정이 영원할 뿐 아니라 자손에게 이르도록 영원하자고 맹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도 이런 우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쁨으로 만났으니 이 만남 신앙 안에서의 우정이 영원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이사를 가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로 헤어질 수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이렇게 함께 있는 동안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도와 주어야 하겠습니다.   또 서로 육신이 헤어지게 된다 해도 서로 등돌리고 원수가 되어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사랑은 영원해야 하겠습니다.  어려울 때 함께 기도하고 즐거울 때 함께 기뻐하던 성도들이 조그만 일로 서로 등돌리고 원수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의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우정은 영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천국에 가서 만난다 해도 반가울 것이 아닙니까?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울면서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후에 왕이 된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상기하고 수소문하여 요나단의 혈육을 찾아냅니다.  두 발이 다 절뚝발이가 된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낸 다윗은 친구 요나단의 아들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왕궁으로 데려와 왕의 상에서 함께 먹도록 합니다.  죽음이 갈라 놓았지만 그들의 우정, 그들의 언약은 변치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셋째, 요나단은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격려했습니다.


  다윗은 점점 용기를 잃고 있었습니다.  국내건 국외건 갈 곳이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다윗을 도와 주는 사람은 사울왕이 죽입니다.  이웃 나라 블레셋으로 망명을 시도해 보았지만 옛날 골리앗과의 싸움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 때, 요나단은 다윗이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도와 줍니다(23:16). 󰡒�두려워 말라. 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네가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이라󰡓�라고 격려합니다.  이것은 요나단의 진심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목사나, 집사나 항상 성령 충만하고 은혜 안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용기를 잃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주위 사람들의 격려는 큰 힘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친구들입니다.  더욱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서로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줍시다.  다윗과 요나단처럼 변함없는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 꿈돌이 동산
글쓴이 : 어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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