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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인물설교 -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 시몬

맑은샘77 2015. 3. 23. 23:48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  시몬

(누가복음 23:26)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원해서 스스로 하는 일이 있고,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찾아 보니 시몬 이라는 사람이 열 명이나 나옵니다.  흔히 알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베드로의 본명이 시몬입니다(마4:18), 예수님의 형제 중에 시몬이 있고(마13:55), 베다니에 살고 있던 문둥이 시몬(마26:6), 가룟 유다의 부친도 시몬입니다(요6:71), 마술사 시몬(행8:9,24)이 있는가 하면 베드로가 머물렀던 욥바의 피장도 시몬(행10:6)입니다.  열심당 시몬(눅6:15), 바리새인 시몬(눅7:40) 그리고 여기 구레네 사람 시몬(눅23:26)이 있는데 구약 성경에도 유다 지파에 시몬(대상4:20)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 구레네 사람 시몬은 성경에 같은 사건으로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사람인데 마태복음 27:32, 마가복음 15:21, 그리고 누가복음 23:26에 각각 기록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한 구절밖에 기록이 없지만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시몬의 십자가는 억지로 진 십자가였습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동북부, 지금의 리비아에 있는 항구도시 트리폴리를 말합니다.  구레네와 알렉산드리아 등에는 흩어진 유대인들(디아스포라)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이 왜 예루살렘에 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왔다는 말을 보면 무역하러온 장사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행을 왔는지(유월절이니) 일자리를 구하러 왔는지 아무튼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보기 드문 광경을 보았습니다.  죄수의 처형행렬입니다.  많은 구경꾼 틈에 그도 끼어 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라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쳐 쓰러지자 군인들이 시몬을 잡아들여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한 것입니다. 대개 십자가는 두 개의 막대기로 되어 있는데 스테이페스(stipes)라 불려지는 세로막대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 두고 파이테부름(patibulum)이라 불리는 가로막대기는 죄인이 지고 갔습니다. 이것은 범죄자는 이렇게 된다는 경종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신 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치고 쓰러진 예수님께서 도저히 지고 갈 수 없게 되자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메워 준 것입니다. 건장해 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속으로 ‘참 재수 없다. 왜 하필 이런걸 내가 메어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인을 저주하고 욕할 때마다 ‘내가 아니다. 죄인은 저 사람이다’ 하고 중얼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인이 무서워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우리도 선택의 여지없이 십자가를 억지로 질 때가 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 질병의 십자가, 핍박의 십자가, 죽음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워 주신 십자가는 좋아서 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메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멍에를 만들어 목에 얹고 다니자 이를 못마땅히 여긴 선지자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어 버렸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하나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렘28:13).  하나님께서 지워 준 십자가가 무겁다고 벗어 버리면 더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워 주실 것입니다.

  둘째, 시몬의 십자가는 예기치 않은 십자가였습니다.


  우리는 시몬이 무슨 일로 예루살렘에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실 것을 알고 대신 지고 가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을 보고 준비하여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십자가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예상하는 시련은 거의 없습니다.  건강이 염려되어 정기적으로 검진 받는 사람은 거의 큰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고 있을 때 갑자기 쓰러지고 불치의 병이라는 판결을 받게 됩니다.  도둑이 들어올까 봐 안전장치를 해 놓고 있을 때는 아무런 일이 없다가도 방심하고 있을 때 도둑이 들어오고 집에 화재가 나고 합니다.

  시몬에게 이 십자가는 예기치 않는 십자가였으나 또한 피할 수 없는 십자가였습니다.  예기치는 않았으나 미리 예견된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잔을 피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는 예기치 않은 뜻밖의 사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미리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셋째, 시몬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였습니다.


  마가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가족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15:21).  만약 이 사람이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고 만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의 아버지라고 구태여 이름을 밝힐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 보다도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뒤 창피하고 기분 나쁘다고 총총히 사라졌다면 그의 이름과 가족 상황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마가의 이 기록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시몬과 그의 아들들을 모두 잘 알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해 주는 성경 한 절이 있습니다.  로마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 끝부분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16:13).  성경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루포가 마가복음 15:21의 루포 즉 시몬의 아들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즉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시몬과 아내 그리고 아들들까지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창피하고 기분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 사람이 얼마나 몹쓸 죄를 진 사람인가 하는 호기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멀리서나마 예수님의 운명하시는 모습을 보고, 또한 주의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이 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운명하시던 모습을 지켜 보았던 사형 집행관인 백부장도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 이었도다”(막15:39)하고 고백하였으니까요.

  바울은 말하기를 루포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사람(‘선택’이라는 뜻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봉사와 충성이 뛰어난 자’)라고 했고 그의 어머니 즉 시몬의 아내는 ‘내 어머니’ 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신앙의 어머니란 뜻입니다.  그러니 시몬이 지고 간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베드로는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2:19)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어도 자신과 가족들이 이렇게 복을 받았다면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간다 사람은 무슨 은혜를 받고 무슨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우리에게 맡겨 주신 십자가가 아무리 예기치 못한 십자가라 해도 불평하지 맙시다.  주님은 십자가 지고 가셨으니 우리는 편히 뒤따라 가리라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 각자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출처 : 꿈돌이 동산
글쓴이 : 어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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