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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인물설교 - 예수를 섬기는 종으로 소개한 사람 마가

맑은샘77 2015. 3. 23. 23:46

예수를 섬기는 종으로 소개한 사람  마가

(마가복음 10:42-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는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그리고 베드로 서신 등 비록 단편적이지만 성경 곳곳에서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가 혹은 마가 요한, 요한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요, 마가는 헬라식 이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는 로마, 문화는 헬라 문화를, 그리고 종교는 히브리 종교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도들의 제자요 수종자로서 한평생을 바쳤는데 그가 마가복음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스승인 사도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첫째, 마가는 경건한 신앙 가정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가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그의 이름이 맨 처음 등장한 곳은 사도행전 12:12입니다.  그것도 마가 때문이 아니라 그의 집 때문입니다.  헤롯 왕이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인 뒤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베드로도 죽이려고 잡아 가두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자기 집을 기도 처소로 내놓은 것을 보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상당한 신앙이 있던 사람이요 또 넓은 집을 소유한(예루살렘에)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옥에서 풀려난 베드로가 곧장 그 집으로 찾아온 것을 보면 이 집은 이미 기도처로 알려진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행1:13의 ‘저희 유하는 다락’이 아니겠는가 하여 흔히 마가 다락방에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였다고 하나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또한 마가에게 신앙적 영향을 준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마가의 삼촌이 되는 사람으로 구브로 출신입니다. 그도 자신의 가지고 있던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자져와 서로 나누어 쓰게 한 믿음의 사람입니다(행4:36,37).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나바(권위자)라고 붙였을 만큼 경건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이처럼 마가 요한은 어릴 때는 경건한 신앙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그리고 장성한 후에는 믿음 좋은 삼촌 밑에서 신앙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가 나중에 훌륭한 주님의 일꾼이 된 것은 이 두 사람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람은 그 성장 환경이 인격을 만듭니다.  세상이 이상하게 되어 어릴 때는 못되게 자랐다가 예수 믿고 180도 변화된 사람들이 인기가 있고 자랑스럽게 간증을 합니다만 내가 한평생 신앙의 스승이요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올바른 신앙 지도를 받고 성장해온 사람이 좋습니다.  인격에 손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둘째, 마가는 사도들의 수종자였습니다.


  집에서 신앙 좋은 어머니의 지도를 받던 마가가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 시작한 것은 사도행전 13:5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수종자로 데리고 떠납니다.  수종자라 했으니 여행할 때는 짐을 지고 가고 식사도 챙기고 하는 심부름꾼 즉 조수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마가)은 넉넉히 사는 어머니(아버지 이름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과부인 것 같고 동생의 이름도 없다)의 외아들로 고생을 모르던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대단히 호기심을 가지고 출발했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밤빌리아의 버거에 도착했을 때 그만 예루살렘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행13:13).

  바울과 바나바가 얼마나 상심했을까요.  그것은 몇 년 후 바울과 바나바가 다시 제2차 전도여행 길에 오를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가 요한이 다시 따라나선 것입니다.  성격이 강직한 바울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성격이 너그러우며 또 상대가 조카인지라 데리고 가자고 합니다. 둘은 이 문제로 옥신각신 심하게 다투다가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지방으로 떠나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다른 지역 즉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이 일로 인해 마가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더 멀어졌을 것입니다.

  그 후, 바울 서신에서 마가가 등장한 것은 20년이 지난 후인 로마 감옥에 있을 때입니다.  그 동안 마가 요한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애굽(알렉산드리아에 복음이 전해졌다)에서 사역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한다”(골4:10-11)고 하였습니다.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 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하였습니다.  이 때 마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옥중에 있었고 하나님 나를 위해 함께 역사 하는 자요 바울의 위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도 “나의 동역자 마가”(몬1:24)란 말을 썼으며 특히 수년이 지난 후 마머틴 지하 감옥에서 죽기를 기다리던 노인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하였습니다. 전에는 무익했으나 지금은 유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이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마가 요한이 변한 것입니다.  그가 장성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어리고 나이가 어릴 때는 목사님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속썩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먹고 신앙이 자란 뒤에는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눈을 감을 때 꼭 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새 신자 때는 순종하고 충성하던 사람이 신앙이 자라고 집사, 권사, 장로가 되어 목사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교회를 분열시킨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가는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 사람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마가는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도가 아니란 말입니다.  뒤늦게 사도들을 통해 신앙이 성숙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 가는 제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복음서를 기록할 때 마태와는 다른 주님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내려오신 하나님의 종’ 이것이 마가가 보여 주려 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이방 집권자들은 권세를 가지고 맘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고 권세를 부리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크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출생이나 어릴 때 이야기가 생각되었습니다.  종은 족보나 어릴 때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이라고(막1:1) 하였습니다. 종은 말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강조한 산상수훈이 생략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다 이루었다” 했지만 여기는 사역이 끝났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섬기시고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막1:1)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시는 장면을 목격한 백부장도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하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종으로 오신 예수님, 대접받기보다 대접하시고 섬김 받기보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 그 분의 뒤를 따라갈 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출처 : 꿈돌이 동산
글쓴이 : 어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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