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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난주간]십자가가 길이다.*

맑은샘77 2015. 3. 13. 18:45

예수가좋다오

십자가가 길이다.*

고전 1;18. /강문호 목사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바울은 십자가는 도(道)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길중에 가장 확실한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가장 안전한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이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가장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것이 가장 바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쌍둥이 형제가 있었습니다. 성장하였습니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였습니다. 형 동생이 모두 직장에 출근하였습니다. 결혼한 아내가 직장에서 남편이 돌아 올 시간에 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쫓아가서 품에 안기며 말했습니다. "온 종일 보고싶어서 기다렸어요." 상대방이 말했습니다. "제수씨. 저 형입니다."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기다렸습니다. 자기 남편이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반가워하며 가서 품에 안기며 말했습니다. "얼굴이 똑같아서 형품에 안겼었어요." 상대방이 말했습니다. "아직도 나는 형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 바른 길 같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바른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말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6;3)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느니라"(사 53;6)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양입니다. 양은 갈 길을 잘 가지 못 합니다. 시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이 바른 길을 가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릇된 길로 갑니다. 바로 가려면 십자가의 도,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야 안전하고 생명의 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어떤 길인가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이 말씀속에서 반복되는 언어가 있습니다. <그가>와 <우리>입니다. 그는 예수님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1. 십자가의 도는 바로 나를 위한 길입니다.

 

2천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이 바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가요? 그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될 때에 나와 주님과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는 것은 역사책이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십자가요 나를 위한 길임을 알아야 나와 주님과 관계가 형성이 됩니다.

 

가수 윤복회는 이 말씀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윤 복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윤 복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윤 복회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윤 복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은 바로 나의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에는 <빙점>이 화제의 소설이었습니다. 일본 미후라 아야꼬 삼포능자가 쓴 소설입니다. 주인공 여자는 첩의 자녀였습니다. 너무나 무시를 당하며 사는 것이 아파서 자살을 결심하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눈이 많이 내린 날 그는 혼자서 죽으로 산으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살 직전에 자기가 올라온 길을 봅니다. 자기는 똑바로 걸어 온 것같았는 데 발자국이 삐뚤삐뚤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기 발자국을 보며 외칩니다. “아! 내 판단이 옳은 것이 아니구나!”: 그는 되돌이켜 내려오면서 외칩니다. 마지막 장면입니다. 마지막 인상깊은 절규로 소설을 마칩니다. "나는 나를 울리려는 환경앞에서 울지 않고 웃겠다. 나를 울리려는 환경앞에서 우는 것은 실패요, 나를 울리려는 환경앞에서 웃는 것은 승리다>" 내가 가는 길이 올바른 것같지만 결국은 틀린 길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만이 참된 길입니다.

 

진젠돌프가 박물관을 돌아 보고 있을 때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꿇어지게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저 분이 바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 순간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영적 지성이 되었습니다. 빌리그래햄 대집회때마다 찬양을 하던 가수중에 빌 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대집회에서 찬양을 하고 대시실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두 여인이 들어 왔습니다. 한 여인은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 하고, 보지도 못 하는 삼중고의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를 데리고 온 여인과 함께 빌만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불렀던 찬양을 다시 한번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빌만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듣지도 보지도 못 하잖아요?" "이 분은 손으로 떨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말을 듣고 감동이 되어 빌만은 장애인의 두 손을 자기 볼에 대고 찬양을 하였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 가? 그 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 가? 그 때에. 거기 너 있었는 가? 그 때에. 주님 그 나무위에 달릴 때 때로 그 일로 주께 영광 영광 영광 거기 너 있었는 가? 그 때에." 이 찬송을 부를 때 장애인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 때 거기 나 있었어요. 주님을 못 박을 때 그 망치 소리를 들었어요. 주님의 절구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 분이 바로 헬렌 켈러입니다. 같이 온 분이 선생님 설리반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내 죄때문입니다. 심프손이 마취제를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빼서 하와를 만드셨다는 창세기 기록을 보면서 그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렇다. 틀림없이 아프지 않고 수술하게 하는 마취제가 이 땅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빼낼 때 아담은 잠든 채 있었다. 통증을 몰랐다. 그 약을 찾자." 드디어 그 약을 찾아 냈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심프손이 마취제를 찾아낸 사건은 내가 그를 몰라도 나를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수술을 받으면서 그 분에게 감사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분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천년전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바로나를 위한 사건입니다. 안 중근이 이등박문을 할빈에서 암살하였습니다. 나와 관계가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였기에 우리 나라가 독립을 하게 되었고 그랬기에 우리는 해방된 나라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바로 나를 위한 고난입니다. 나와 연결된 십자가만이 참 십자가입니다.

 

2. 십자가의 도는 바로 너를 위한 길입니다.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나입니다. 그리고 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바로 나와 너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너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습니다.

 

3. 십자가의 도는 바로 우리를 위한 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그리고 너를 위하여 그리고 모두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모두를 위하여 도가 되셨습니다. 길이 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도는 모두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지구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천국이 필요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옥이 필요한 사람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구원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절기를 맞아 온 세상에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는 천주교 불교 다음입니다. 성장속도가 둔화되었습니다. 오히려 천주교 불교 성장 속도가 기독교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뼈를 깍는 아픔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 교리와 조금만 달라도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기독교와 전혀 다릅니다.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천주교가 기독교와 다른 확실히 다른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1. 교황 무오설입니다. 교황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에 무오하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교황도 사람입니다.

2. 마리아 구원설 오직 예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통하여 구원받는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마리아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어느 누구도 성자를 통하지 않고는 성부께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성부 하나님께 나갈 수 없다.” 이것이 천주교 선포입니다. 전혀 아닙니다.

3. 성인숭배입니다. 죽은 성인의 뼈, 해골, 손톱 그리고 머리카락이나 유물을 기념 성전을 지어 놓고 준비하여 둡니다. 그것을 만지거나 그 곳 앞에서 기도하면 기적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의 위인 성자들을 통하여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4. 고해 성사입니다. 고해성사는 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 수도사들의 귀에 대하고 죄를 고백하던 참회 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기가 직접 하나님께 회개할 수 없고 중보자 신부에게 고해성사하여야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비밀 회개가 가능합니다.

5. 연옥설입니다. 우리는 66권 외에 더하거나 빼면 이단입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연옥설을 합리화시키려고 토비서, 유딧서, 마카비서, 집회서, 벤 사라의 지혜서, 시락서, 바룩서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서를 성경에 더 넣었습니다. 이 책에 성경과 똑같은 권위를 부여하였습니다. 전 세계에 4,055,979 성당 10억 2500만 성도가 있기는 하지만 성경과 기독교와 너무나 다릅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오직 예수의 기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석가모니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전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천주교, 불교가 기독교보다 앞선다는 것은 우리의 큰 잘못입니다. 종교 개혁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바른 기독교를 온 민족에 심어야 할 책임이 먼저 믿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과거 기독교가 타락할 때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성직자가 많아지고 타락하면 기독교가 몰락하였습니다. 루터 종교 개혁시대에 인기있는 직업이 둘 있었습니다. 법관 아니면 성직자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루터도 법관이 되려다가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도 성직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담임하지 않은 목사가 수 천명입니다. 전 세계 신학생들 수를 합한 것보다 한국 신학생들 합한 수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물질적으로, 성적으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2. 성도들은 모이기를 폐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국 성도들의 반 이상이 주일 낮예배 한번 드리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 나가는 성도가 5백만명 정도라고 보도되었습니다. 개혁이 필요한 때입니다. 성직자의 개혁뿐 아니라 성도들의 개혁도 필요합니다.

 

3. 이단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교회 영권이 약한 틈을 타서 사탄은 이단으로 교회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성경에서 벗어나 이단 사상을 매력을 느끼고 이단으로 몰려드는 현상이 생깁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이단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25% 교회가 이단으로부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이제 우리는 오직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나온 복음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길을 걸어 가야 한다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종교 개혁도 필요하지만 개인적인 종교 개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인들은 세 가지만 안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 2. 자기, 3. 돈 이 세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한국 교인들이라고 외국인들이 평하고 있습니다.

 

네델란드 신학자가 한국에 와서 한국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예배를 많이 드리고 있는 데 놀랐습니다. 그런데 예배드리며 기도드리는 것이 모두 자기 만족을 위하여 드리고 있음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길이 바른 길입니다. 주님이 주신 길이 바른 길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나 그리고 너 그리고 우리를 생각하며 가는 길입니다.

 

여러 해 동안 늙고 병들어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오랫 동안 그 여인을 정성껏 돌봐준 간호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호하던 여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재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고 먼 친척뿐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 여인은 자기 재산을 먼 친척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간호원에게는 커다란 십자가 하나만 주었습니다. 간호원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간호원은 실망해서 그 십자가를 안 보이는 병원 한 구석에 치워놓았습니다.

 

그것은 별로 귀한 나무로 된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무 데도 쓸데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간호원은 십자가를 집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과거 돌보던 여인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작은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반짝이는 그 무엇을 보았습니다. 이상하여 파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 아주 비싼 각종 보석들이 수없이 들어 있었습니다. 십자가속에 보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이 무엇입니까?

 

성경적으로 대답하려고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한 남자가 이른 아침부터 술에 잔뜩 취한 채 비틀거리면서 교회로 들어 왔습니다. 그는 교회의 문을 요란스럽게 흔들어대며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던 사찰 집사 가 뛰어와서 물었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이 아침에 이 모양으로 누구를 만나려고 이렇게 일찍 왔습니까?" 그가 술취한 목소리로 거나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나 말이요, 하나님이란 분을 만나러 왔소." 이 사내는 다시 교회 문을 흔들며 들어가려고 하였습니다. 사찰 집사는 급하게 막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분은 없소!"

 

하나님이 없는 교회,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참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참길을 찿으시길 축복합니다.-ⓗ

예수가좋다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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