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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성령의 사람은 성령으로 행한다 - 로마서 8:12~17

맑은샘77 2015. 1. 28. 14:05

24. 성령의 사람은 성령으로 행한다 - 로마서 8:12~17

 

24. 성령의 사람은 성령으로 행한다

로마서 8:12~17

 

 

[생명의 성령의 법]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쉬운성경 ]

12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죄의 본성을 따라 살아야 하는 죄의 본성에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13 죄의 본성에 따라 산다면, 여러분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몸의 악한 일을 죽인다면, 여러분은 살 것입니다. 14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노예로 만드는 영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을 의지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16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합니다. 17 자녀라면 또한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그분이 겪으신 고난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서론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으로 얼마만큼 기뻐해 보았습니까? 다시 말씀 드리면 ‘내 안에 성령이 계시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너무 좋아서 춤이라도 출 것 같은 행복감에 젖어 본 일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민수기 11장을 읽으면서 그런 비슷한 느낌을 맛보았습니다. 나에게 성령 주신 하나님이 어쩌면 그렇게 감사한지 성령이 내 안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의 꿈은 모든 백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 받는 것이었습니다(민 11:29). 놀랍게도 그의 꿈은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주셨습니다. 남종과 여종을 가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기만 하면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모신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고기 달라며 원망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모신 사람은 육신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 사실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참고 ]

민 11:29의 내용은 백성의 70인 장로 중에 성막에 나오지 않은 두 사람 엘닷과 메닷이라는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호수아는 성막에서 나오지 않은 사람이 예언하는 것을 못하게 말려야 한다고 했지만, 모세의 소원은 모든 백성이 성령을 받아 다 선지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약시대에는 특별한 몇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였다가 그를 통하여 하시려는 일이 끝나면 성령은 곧 떠나가셨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님이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 받은 사람이요, 곧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토의내용

 

1.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그러므로’가 12절에 다시 나옵니다. 이 안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9-11절을 가지고 간단히 요약해 보십시오.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죄의 본성을 따라 살아야 하는 죄의 본성에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9-11절 /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반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존재이지만, 여러분의 영은 의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 안에 계신 그분의 영으로써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데, 지금까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말하다가 ‘그러므로’라는 말로 한 결론을 내려주고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주인이 되시고, 주관하신다면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그러므로 육신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령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이제는 성령이 주인이 되었고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르게 하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으로 역사하여 최후에 우리의 죽을 몸도 살려주시고,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게 하신다.

 

 

 

2. 성령의 사람은 누구한테 빚을 질 수 없습니까? 그리고 ‘빚진다’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참고 / 4-5절)

 

(참고 / 4-5절)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4 이렇게 하여 죄의 본성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에 따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이 완벽히 이루어졌습니다. 5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죄의 본성이 바라는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성령이 바라시는 일을 생각합니다.

 

빚을 졌다는 말은 사명적인 의무감을 말한다. 우리를 예수께서 구원해 주셨으니 성령님에게는 빚지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함께 죽었지만,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 범죄의 유혹에 빠지며 영육의 싸움은 계속된다. 우리의 연약한 육신이 죄에 노출되어 있고, 죄의 유혹이 따르지만,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을 좇으며,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 믿기 이전에는 육신이 끄는 대로 끌려 다니는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이 주인이 되고 보니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따르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성령의 빚진 사람이 되었으니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한다.

 

 

 

3. 하나님의 자녀가 육신대로 살면 죽는다고 합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참고/ 고전 6:9-10)

 

․ 13절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죄의 본성에 따라 산다면, 여러분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몸의 악한 일을 죽인다면, 여러분은 살 것입니다.

 

(참고/ 고전 6:9-10)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9 여러분은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십니까? 속지 마십시오. 음행하는 사람이나,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나, 간음하는 사람이나, 남자로서 몸을 파는 사람이나, 동성 연애를 하는 사람이나, 10 도적질하는 사람이나,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나, 술에 젖어 사는 사람이나, 모함하는 사람이나 약탈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이 악해서 육신의 소욕은 선한 것도 의로운 것도 없다.

바울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으로 살지 아니하면 그는 육신에 거하게 되고, 인간 본성의 욕망과 행동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므로, 멸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영의 인도함을 받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4. 성령으로 사는 자는 날마다 행동으로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은 항상 우리를 분명한 행동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헬라어로 ‘아고나이’라는 말입니다. 강제로 끌고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령의 끄는 힘은 굉장히 강합니다. 육신에 대해서는 항상 ‘아니오’하고 대답하게 만듭니다. 성령에 대해서는 항상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게 만듭니다. 당신에게 이와 같은 ‘아고나이’가 있습니까? 당신은 그러한 순간마다 어떻게 반응합니까?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있다. 그러나 항상 육신에 대해서 ‘아니오’로 대답하고, 영에 대해서 ‘예’라고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점차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한다.

 

[ 참고 ]

14절의 ‘인도함을 받는다’의 원어는 “아곤타이”인데, 뜻은 ‘인도하다’, ‘데리고 오다’, ‘이끌다’이다. 본문에서는 수동태로 사용되어 그 뜻은 ‘지배를 받는’, ‘…에 의하여 감독을 받는’으로 성령님에게 순종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나의 지혜와 감정과 의지의 전인격을 성령님에게 위탁하고 위임하여야 한다. 이럴때에 성령은 나로 하여금 주님을 닮아가게 한다.

 

 

 

5.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죽이다’는 말은 ‘꼼짝 못하게 하다’ ‘끊어 버리다’의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행동을 가리키는 현재 동사입니다. 당신은 그대로 하고 있습니까?

 

․ 13절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죄의 본성에 따라 산다면, 여러분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몸의 악한 일을 죽인다면, 여러분은 살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성도들은 성령 안에 거하는 자들이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몸의 행실과 육신의 욕망을 이겨내기 위하여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영적인 싸움을 벌여야 한다. 몸의 행실을 죽여 육신의 욕구를 이기고 정복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다. 바울은 고전 15:31(하)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하고 있다.

 

 

 

6.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다음의 글을 읽고 자신에게 적용하십시오.

 

성령이 내 안에 계심을 꼭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이 우리 몸의 행실을 죽이는 제1단계 작업입니다. 성령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내 마음에 계신다.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고 믿는 그 믿음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죄악에 끌려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성령의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은 그가 하실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 만큼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안 믿으면 안 믿는 것만큼 성령은 우리를 돕지 못하십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지 않은 채, 어떤 유혹 앞에서 그것을 이겨 보려고 몸부림을 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압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너희가’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하지 않는 것을 주의하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합니다. 몸의 행실은 성령이 죽이시는 것이지 우리가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일하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을 믿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을 믿으면, 성령은 그가 하실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 만큼 우리를 도우신다.

 

 

 

7. 몸의 행실을 죽이는 두 번째 방법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참고 / 요일 3:2-3).

 

․ 14~16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4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노예로 만드는 영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을 의지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16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합니다.

 

(참고/ 요일 3:2-3)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2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아직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는 우리의 모습이 그와 같을 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깨끗하신 분이십니다. 적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8. 세 번째의 방법은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는 것입니다. 다음 글을 읽고 당신은 자신의 언동을 매듭 있게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십시오(참고/ 욥 31:1, 잠 4:25).

 

성령께서 직접 우리를 대신해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돕는 분입니다. 우리가 행동하도록 힘을 주시고 격려 하시는 분이지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게”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지 아니하면 성령도 속수무책입니다. 그럴 경우에 그는 혼자 탄식하신다고 합니다. 근심하신다고 합니다. 자기가 대신 해주실 일이면 탄식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오면 우리 스스로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누가 대신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정원을 깨끗하게 가꾸고자 하는 사람은 잡초를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말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거룩한 전으로 깨끗이 가꾸기를 원하면 마음속에 잡초가 보일 때마다 쏙쏙 뽑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아직 잘 안 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당신을 도우시는 성령에게 의지하기 바랍니다.

 

(참고/ 욥 31: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내가 내 눈과 약속했는데 어찌 처녀를 주목하겠나?

 

(참고/ 잠 4: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앞만 바라보고 네 앞에 놓여져 있는 것에 시선을 두어라.

 

항상 눈이 문제인 것 같다. 선악과를 따먹을 때도 창세기 3장 6절에서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로 죄악이 시작되고, 안목의 정욕이란 말도 있다. 하여간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듯이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보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저 천성을 향해 걸어가자.

 

 

 

9. 또 한 가지 방법은 이것입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개가 이 방법대로 살지 않다가 넘어집니다.

 

․ 에베소서 6:17(시편 119:9, 11)/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칼을 쥐십시오.

(시편 119:9, 11)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젊은이가 어떻게 그의 길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따라 살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두었습니다. 내가 주께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위해 간구하십시오. 언제나 준비된 마음으로 좌절하지 말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10. 지금까지 우리는 영으로 육신을 죽이는 네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이 가운데서 당신이 가장 잘 안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당장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11.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성령의 사람한테는 기막힌 행복이 따라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 15절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노예로 만드는 영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을 의지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12. 다음의 글을 읽고 당신에게 똑같은 행복이 있는지를 이야기해 봅시다.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시던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순진한 아기가 아버지를 향해 부르는 이름입니다. 여기에는 품위나 체면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마냥 좋아서 떨어지지 않는 어린 아이한테만 통하는 말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감정이 넘치는 말입니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해 터지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뜨거운 감정을 담고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끈질기게 재촉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좋아서 부르는 소리요, 반가워서 터지는 소리요, 급해서 찾는 소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바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은 기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요, 행복해서 부르는 이름이요,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그 마음이 늘 평안하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생기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향해 ‘아빠’하고 부를 수 있는 나이의 아이를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크고 자랑스러워 보이는 분이 아버지일 것입니다. 아빠는 무엇이나 자기를 위해서 다 해줄 수 있는 하나님 같은 존재로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기만 사랑한다고 하는 사랑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색함도 없습니다. ‘아바 아버지’ 얼마나 행복한 부름인지 모릅니다.

 

 

 

 

 

 

출 처 :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4 - 로마서2(6장~1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