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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죄에 거할 수 없는 이유 - 로마서 6:1~11

맑은샘77 2015. 1. 28. 14:03

19. 죄에 거할 수 없는 이유 - 로마서 6:1~11

19. 죄에 거할 수 없는 이유

로마서 6:1~11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산다]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쉬운 성경 ]

1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2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살 수 있겠습니까? 3 여러분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았을 때에, 그분의 죽음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 가운데서 살기 위함입니다. 5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죽음에 참여하였다면, 그분과 연합하여 그분의 부활에도 참여할 것이 확실합니다. 6 우리는,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무력하게 되었으므로, 우리가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7 그것은 죽은 사람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8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 9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기에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그분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10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해서 단번에 죽으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나신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으로,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십시오.

 

 

 

 

서론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심오한 진리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편중된 시각으로 이 말씀을 보면 ‘이제부터 죄짓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어.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고 했잖아. 은혜를 많이 받기 위해 죄짓는 거라면 나쁜 것이 아니야’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져 볼 때는 충분히 그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은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느 한 말씀에 너무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균형을 잃기 쉽습니다. 성경에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라고 준엄하게 경고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5장 20절에서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오해의 소지를 막기 위해 6장을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기 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 본문의 핵심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죄에 거할 수 없다.”

 

죄와 사망이 크고 무서운 세력을 지니고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그 은혜는 그 모든 세력을 무너뜨리고 구원을 주신다.

 

 

 

 

토의내용

 

1. 1절에서 이야기하는 ‘죄에 거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참고/ 요일 3:9, 5:18)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참고/ 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그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삶의 씨가 그의 안에 머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계속하여 죄를 짓고 살 수 없습니다.

 

(참고/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를 지켜 주시므로 악한 자도 그를 해칠 수 없습니다.

 

‘거한다’ : ‘에피메노’, 머무르다, 남아 있다. (~안에) 존속하다. 계속하다. 산다

앞에서 죄라는 단수는 죄의 세력에 대해 말한다고 배웠다. 그러므로 죄에 거한다는 것은 죄 안에 있어 계속 죄를 짓는 것을 말한다.

 

 

 

2. 왜 죄에 거할 수 없습니까?(참고/ 갈 2:20, 5:24)

․ 2절/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살 수 있겠습니까?

 

(참고/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내 몸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하시려고 자기 몸을 바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참고/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자기 육체를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요, 이제는 우리 안에 주님이 살고 계시기 때문에 죄에 거할 수 없다.

 

 

3.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 3-4절/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았을 때에, 그분의 죽음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 가운데서 살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사는 중생의 교리를 설명하면서 세례를 가지고, 주종관계로(6:16), 혼인관계(7:2)로 말한다. 당시 초대교회에서의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새생활의 상징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우리 역시 함께 죽었으며, 장사되었고, 이제 주님의 부활하심과 같이 새새명 가운데 살게 하셨다.

 

 

 

4. 다음의 설명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연합하다’ ‘합하여 세례 받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리하십시오.

 

3-4절을 보십시오. ‘합하여 세례 받았다’고 했는데 5절에는 ‘본받아 연합했다’라는 말로 나옵니다. ‘본받아 연합했다’는 말은 ‘합하여 세례 받았다’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석해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합하다’는 접붙임을 받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가지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또 6절에는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고, 그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례는 일차적으로 물세례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머리에 물을 뿌리는 세례보다는 온몸을 물속에 푹 담그는 침례가 훨씬 더 실감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물세례라고 하는 형식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사실을 공인하는 후속 절차에 지나지 않습니다. 좋은 예로 사도행전 10장을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물세례를 받기 전에 이미 베드로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동시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믿음과 성령 세례가 먼저였고 그 다음이 물세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는 연합은 물세례라는 의식 절차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무릎을 꿇는 순간에 그 영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참고 ] 세례 (밥티조)

- 원칙적으로 “잠근다”는 뜻이 있으며, “씻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우리 교회는 구약의 제사에서 피를 뿌리는 것이나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린 것으로 관수례를 주장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고, 예수님의 구속하시는 피로 죄 씻음 받은 것을 확신하며, 그리스도와 일치와 연합을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칼뱅은 “세례는 하나님에 의하여 그의 자녀로 삼으신 거룩한 인침이며,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접붙임으로써 새로운 출발이다.”라고 하였다.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고, 부활과 연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연합(쉼퓌토스)”이란 말은 “함께 심겨졌다.”는 말이다. 이 말은 한 자리에서 떠날 수 없는 필연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우리 주님과 함께 심겨진 자리이다. 내가 있는 자리는 우리 주님이 함께 있는 자리요, 내가 가는 곳은 우리 주님이 함께 가시는 곳이다.

예수님도 세례를 귀히 여기시고 세례요한에게 나아가서 세례를 받으셨으니, 세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물로 주는 세례가 도식적으로 곧 구원은 아니라고 하여도 세례를 무시하고 구원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5. 예수의 죽으심이 우리 자신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 6-7절/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6 우리는,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무력하게 되었으므로, 우리가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7 그것은 죽은 사람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1-6절의 말씀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을 말하고, 7-11절의 말씀은 주님의 부활에 연합하므로 주와 함께 사는 도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은 자는 죄와는 이제 상관이 없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자가 되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인식을 가져야 죄에서 자유롭고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6.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음으로써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했다는 진리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죽음이라는 것은 대단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죽음이 오면 인간관계는 완전히 끊어집니다. 법적 관계나 생존 관계도 중단되어 버립니다. 만약 남편이 죽으면 그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사랑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빚쟁이도 채무자가 죽어 버리면 손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법관도 죽은 자에게는 형을 선고하지 못합니다. 죽은 자는 완전히 자유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을 때, 우리는 죄와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죄의 힘이 통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자유했습니다.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이 놀라운 진리를 믿습니까? 이 진리를 믿을 때 죄를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인간의 신체가 견딜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이며,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다는 것은 가장 잔인하며 처절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을 새기면서 나의 약한 육체와 악한 죄성이 다 죽고, 부패한 본성이 못질을 당하고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도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정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죄와 싸우고, 악한 본성의 지배를 거부하고,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도록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죽음은 무엇을 행할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게 된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죄의 유혹과 죄의 사슬과 노예로부터 벗어났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었다는 말이다. 죄로부터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런 확신과 믿음만이 죄를 물리치고 새 생명을 누릴 수 있다.

 

 

 

7.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이 사실이면 그와 함께 산 것은 물을 필요도 없는 기정사실입니다. 4절과 9절을 가지고 이 사실을 확인합시다.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 가운데서 살기 위함입니다.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기에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그분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8. 당신이 예수의 부활과 함께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사람임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실제 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증거로 이야기해 봅시다(참고/갈 2:20).

 

(참고/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내 몸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하시려고 자기 몸을 바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행여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양심이라는 것이 그러지 못하게 한다. 양심이라 느끼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이라 믿는다.

 

 

 

9. 11절의 말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쉬운 말로 풀어서 다시 적어 봅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으로,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십시오.

 

 

 

10. ‘여길지어다’(11절)라는 말은 명령문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여겨라’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믿으라는 말보다 더 강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닫든지 못 깨닫든지 체험과 상관없이 이미 일어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나는 아직도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 있는데 어떻게 옛사람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나?”하고 스스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똑똑히 알아 두십시오. 자기 자신을 보면 실족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습니까?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죽었습니까?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죄에 대해 죽으신 것이 사실이면 내 옛사람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해 사신 것이 사실이면 나도 새사람으로 살아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설혹 우리가 죄를 짓고 있더라도 그것을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죄 용서함을 받은 느낌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여기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은 이 점에 대해 걱정 안 해도 될까요?

 

여기서 “여길지어다”라는 말은 ‘로기제스데’라는 말인데, 간주하다, 결론짓다, 결정하다는 말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죄악에 대하여 죽은 사람이다. 때때로 죄책감이라는 것이 나를 괴롭게 하기도 하지만 이내 그것이 사탄의 음성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성령 안에서 평안하려 애쓴다.

 

 

 

11.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았다는 연합 관계를 우리가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이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큰 유익을 얻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 유익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대로 전부 적어 보십시오.

 

 

 

12. 우리는 예수와 함께 다시 산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죄 속에 거하지 않습니다. 죄를 범해도 즉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크나큰 축복입니다. 이토록 큰 축복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요 10:28-29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28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29 양들을 내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더 큰 분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내 양들을 빼앗을 수 없다.

 

 

 

 

 

출 처 :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