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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더욱 넘치는 은혜 - 로마서 5:12~21

맑은샘77 2015. 1. 28. 14:02

18. 더욱 넘치는 은혜 - 로마서 5:12~21

Lesson 18

더욱 넘치는 은혜

로마서 5:12~21

 

 

[아담과 그리스도]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쉬운 성경 ]

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를 통해 사망이 들어온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13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지만,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사망은 아담 시대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아담이 지은 죄와 똑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마저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입니다. 15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아담이 지은 죄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죽었다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 넘쳤습니다. 16 또한 하나님의 선물과 아담의 죄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심판이 오게 되고 모든 사람을 정죄에 이르게 했으나,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많은 범죄 때문에 오게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의롭다 함을 받게 하였습니다. 17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의롭다고 여기시는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생명 안에서 더더욱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지만, 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낳게 하는 의로움이 발생했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 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21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하였듯이, 은혜는 의를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왕노릇 할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배웠다. 아담은 전 인류의 머리요, 대표가 된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하나님 백성의 머리요, 대표가 되신다. 우리는 불순종한 아담 안에서 함께 죄를 짓고 죽었다. 그러나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안에서 우리는 의인으로 인정받고 살아났다. 이 위대한 복음을 깨닫는 자마다 어찌 그 가슴에 감격이 넘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단순히 일대일이라는 대칭 관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아담을 평행선상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아담한테서 찾을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15-16절에서 “같지 아니하니”라는 말의 내용은 무엇인가?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같지 않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비교할 수 없다’인데, 아담의 범죄가 예수님의 순종과 같지 않기 때문에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한 결과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담의 범죄와 그 형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 은혜을 대비하면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지만, 예수님은 아담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2 오늘 본문에서 ‘은혜’와 ‘은사’, ‘선물’은 동일한 의미를 가진 단어로 보아도 좋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데 이것이 은혜요, 은사인 것이다. 그리고 은혜 안에 들어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12-21절 사이에서 은혜와 은사, 선물이라는 말이 몇 번 사용되는지 살펴보라.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10번 나온다.

1. 은혜는 하나님의 속성이다(벧전 5:10; 약 4:6).

2.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임한다(요 1:14, 17).

3. 은혜의 영은 성령을 통하여 임하며 은혜의 영에 대한 약속은 이미 있었다(슥 12:10).

4. 은혜는 행동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다(요 3:16).

5.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롬 3:24; 엡 1:7).

6.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하다(고후 12:9).

 

 

 

3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만족시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서 넘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이 사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참고/ 요 1:14, 16; 엡 1:7, 2:7, 3:20)

 

- 15절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대속의 은혜는 겨우 몇 사람이나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인을 구원하신다. 보혈의 은혜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는데 조금도 모자라지 않고, 넘치는 풍성한 은혜이시다.

 

 

-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구원받고, 성화의 길을 가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은혜를 받은 것을 말한다.

 

 

- 20절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율법의 목적은 죄를 죄라고 알게 해주고 죄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율법을 모르던 때에는 죄인 줄 모르고 행했는데, 이제 우리는 죄의식에 빠지게 하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정죄하는 율법으로 범죄만 더 행하여 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철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더욱 넘치는 은혜가 임한다.

 

 

(참고/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에서 사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은 오직 아버지의 독생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광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충만하더라’는 말은 서술적 형용사인 ‘플레레스’라는 말로 은혜와 진리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은혜와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차고 넘치게 흘러나와 성도들에게 임하여 역사하고 있다.

 

 

(참고/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그분의 충만하신 것에서 우리 모두는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번 받은 은혜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은혜를 받게 된다는 말로, 공동번역에서는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넘쳐흐르는 충만함으로 인하여 우리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은혜임을 말한다.

 

 

(참고/ 엡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의 보혈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죄사함도 받았습니다.

 

은혜의 풍성함이란 고갈을 모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사죄를 가능케 하며, 신자의 은혜로운 삶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식을 줄 모르고, 줄어들지 않고, 그칠 줄 모르는 그 풍성한 은혜로 구원받고,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참고/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또한 앞으로 오는 모든 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보여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자비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여주시는 구원의 자비하심과 은혜의 광대하심을 나타내고 있다.

 

 

(참고/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한 것보다도 더 좋은 것으로 모자람이 없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4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표현을 풀어 보면 ‘측량할 수 없게 남아돈다’. ‘집어삼킨다’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이런 풍부함을 느끼는가?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와 같이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죄인 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의인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제2의 아담이시다.

 

 

 

5 은혜는 사망이 왕 노릇 하는 데서 더욱 넘친다. 왕 노릇 한다는 말은 굉장히 큰 권세를 휘두른다는 의미이다. 17절에서 사망의 왕 노릇과 은혜의 왕 노릇을 비교해 보고, 당신이 깨달은 것을 말해보라(참고/ 시90:3-5; 고전 15:55-57).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의롭다고 여기시는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생명 안에서 더더욱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시90:3-5)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주께서 사람들을 흙으로 되돌아가게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흙으로 돌아가거라.” 주가 보시기에는 천 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긴 세월도 밤중의 한 시간과 같습니다. 주께서 죽음의 잠으로 휩쓸어 가시면 사람은 아침에 돋아나는 풀과 같습니다.

 

(참고/ 고전 15:55-57)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찌르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이 찌르는 것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말에는 사망이 주격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인하여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자들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할 때에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자들이 주격이 된다. 예수님을 믿기 전의 우리는 사망의 노예였지만, 이제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죄를 다스리는 왕노릇하게 되었다.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게 된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아담이 끌어들인 사망의 권세보다 월등히 강하여 결국은 사망을 짓밟고 멸망시킨다. 다음의 구절을 찾아보라.

 

- 고린도전서 15장 54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을 입게 되면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고 기록된 말씀이 사실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도 사망을 이기고 승리의 부활에 참여하는데 그 때에는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을 입으며 사망을 비웃는 노래를 부를 것이다.

 

 

- 요한계시록 20장 13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바다와 죽음과 지옥도 그 안에 죽어 있던 자들을 다 토해 냈으며, 그들 역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정복하셨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죽은 자들이 육신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자들,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바다가 그 몸을 보존하고 있다가 부활의 때에 그 몸을 내어준다.

 

 

- 요한계시록 20장 14절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죽음과 지옥이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승리하셨으며, 주의 나라에는 더 이상 사망이 존재하지 않기에 영원히 격리하기 위하여 사망과 음부를 불못에 던져버리신다.

 

 

 

7 사망보다 은혜가 더 넘친다는 것을 믿는가? 이 믿음은 실제로 당신의 생각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사망을 이겼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은혜가 있다. 우리 주님을 선택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예수님으로 인하여 이루어질 모든 축복에 참여하게 되었다.

15절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8 다음으로 은혜는 죄가 더한 곳에 더욱 넘친다. 20절을 읽어 보라.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다음의 글을 참조하여 깨달은 바를 정리해 보라.

 

율법은 더러운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에게 간수가 들고 있는 등불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등불이 없을 때는 캄캄해서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곳에 살고 있는지, 자기 몸에 오물이 묻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간수가 등불을 들고 오면 비로소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지 얼마나 더러운 곳에 있는지 알게 된다. 율법은 이와 같다. 율법은 하나님의 완전하고 거룩한 표준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 됨을 여실히 들춰내 보여 준다. 그러나 그 등불은 볼 수 있을 뿐 그것으로 얼굴을 깨끗이 닦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율법 그 자체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 등불에 비추어 보고 자신이 더럽다는 것을 알면 몸을 씻으려고 세면대로 달려간다. 이처럼 율법을 통해 자기가 얼마나 악한가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십자가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악한가를 비춰보지 않으면 은혜도 약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율법 앞에서 자기의 악함을 늘 비춰보는 자는 그만큼 더 하나님께 나아가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된다. 자신의 죄악을 씻기 위해 그만큼 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더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기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더 많이 받는다.

 

20절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나의 행위가 죄악인지 알게 하고, 우리의 힘으로는 그것들을 지킬 수 없음을 알아 자포자기해서 죄에 빠져 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고 성령께서 죄 짓지 않게 도우신다.

 

 

 

9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말씀은 은혜를 받기 위해서 죄를 지어도 된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다음의 설명을 읽고 정리해 보라(참고 / 롬 6:1-2; 고전 15:10).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21절). 당신은 혹시 죄의 반대가 의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죄가 왕 노릇 한다면 반대로 의가 왕 노릇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말씀에서는 의라는 말 대신에 은혜가 왕 노릇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죄를 상대할 적수는 우리 안에 있는 의로운 무엇이 아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죄를 대신 처리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가 죄를 이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가 죄를 범하고도 절망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다면 그것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죄는 항상 우리를 낙담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인색함이 없고 주고 또 주신다. 관대함과 아량은 은혜의 본질이다. 죄는 적을수록 좋고, 재물은 적당할수록 좋고, 은혜는 많을수록 좋다. 이와 같이 풍성한 은혜가 임하는 곳에서는 “죄를 더 짓자”보다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결단이 생긴다.

 

(참고/ 롬 6:1`2)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1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2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서 살 수 있겠습니까?

 

(참고/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었습니다.

 

죄는 적을수록 좋고, 재물은 적당할수록 좋고, 은혜는 많을수록 좋다는 말을 기억해야겠다.

어떤 대가를 치르시고 예수께서 날 구원하셨는지 알게 되면, 그 은혜에 감사하며 새로운 신분에 맞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사모하며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우리는 이미 죄를 이기는 은혜, 죽음을 이기는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이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출 처 :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