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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당신은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가 - 로마서 5:1~11

맑은샘77 2015. 1. 28. 14:01

16. 당신은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가 - 로마서 5:1~11

Lesson 16

당신은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가

로마서 5:1~11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쉬운 성경 ]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또 믿음으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시의 적절할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간혹 선한 사람을 위해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시다. 그분이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오늘 우리가 펴 놓은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항상 기뻐하는 모습으로 살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자기 자녀가 원망과 탄식으로 사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러나 가엾게도 하나님 앞에서 의인 대우를 받으며 사는 성도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기쁨을 모르는 자들이 많다. 세상의 하찮은 것들에는 마냥 웃고 떠들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얼마나 큰 잘못인가? 이 시간 성령이 말씀으로 참된 기쁨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우리가 읽은 말씀 가운데 2절 끝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 보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씀을 이렇게 다시 읽어 보라. “나는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해야 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보라. 당신은 이런 기쁨을 가지고 있는가?

 

어제 기도회 시간이 회개하고 위로 받고 회복되는 시간이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스바냐 3:17) 너무도 간단한 이 사실을 잠깐 잊고 있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는 말씀의 의미는 영광 중에 계시는 우리 주님을 만나 뵙고 그와 함께 영광 누리기를 소망한다는 말이다. 주님의 영광이 무엇이며, 이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 구절을 살펴보라.

 

- 누가복음 22장 69절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그러나 이제부터 인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게 될 것이다.”

 

- 사도행전 7장 55~56절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오른편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전권을 행사하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역사하는 자리인 오른 편에 앉게 되셨다.

 

 

- 로마서 8장 17~18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자녀라면 또한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그분이 겪으신 고난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요한복음 17장 24절 천국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 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제가 있는 곳에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이 사람들이 저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저를 사랑하셔서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그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가 누리시던 영광을 아들에게 주어 누리게 하셨는데, 이제 아들 안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영광을 바라보게 하셨다. 존 스토트 목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천국’이란 말과 동의어로 해석하고 있는데, 예수의 보혈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 누릴 영광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 어떠한 어려운 역경도 인내하면서 즐거워하고, 감격스럽게 그 나라를 사모해야 한다.

 

 

 

3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인간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우리가 범죄 한 다음부터 흙으로 빚은 우리 육체도 영혼과 함께 부패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부패의 씨앗을 가진 우리 육체가 하나님을 만나 뵙는 순간 그분처럼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을 다시 회복시키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다시 뵙게 되는 그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몸이 영광스러운 새 몸을 입게 될 것이다. 요한 1서 3장 2절에서 이 사실을 확인해 보자. 당신은 새 몸을 입고 주님과 함께 누릴 영광을 바라고 소망하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아직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는 우리의 모습이 그와 같을 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활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을 말한다. 신령한 몸이란 영의 몸이다. 우리가 부활하는데, 영으로만 부활한다면 그것은 영혼불멸설에 불과하며, 신령한 몸,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데, 그 몸은 우리 주님과 같은 몸이며 하늘나라에서 살아갈 영광스러운 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영광이 우리 안에 들어오며, 죽음과 함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으로 덧입으며,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영광스러운 몸이 완성된다.

 

 

 

4 2~11절을 읽으며 ‘즐거워하다’라는 단어에 표를 해보자. ‘즐거워하다’는 매우 강도가 높은 말이다. 이 말은 ‘기뻐 날뛰다’, ‘으스대며 자랑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쁨의 정도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이렇게 강한 표현을 썼겠는가? 변화산에서 세 제자들이 주님의 영광을 접하는 순간에 보인 반응을 보면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그들이 흥분하며 무엇이라고 말했는가?(마 17:4)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참고 /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여기에 천막 세 개를 세우겠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위해, 또 하나는 모세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말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고 모세는 율법을 대표한다. 예수님께서 바로 선지자 중의 선지자요 율법을 완성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 참고 ]

- 변화산 = 타보르 산(Mt. Tabor), 또는 다볼산

이스라엘 골짜기에 위치한 해발 588m의 종 모양을 한 산이다. 타보르 산 정상에는 1921년에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서기 4세기 비잔틴 시대의 교회 터에 세운 예수님의 변화(마태복음 17장의) 기념교회가 있으며, 또한 그리스 정교회의 엘리아 기념교회도 위치하고 있다. 또한 주위에는 십자군 시대의 성벽과 건물의 유적이 있다. 특히 개신교인들은 이 산을 변화산이라고 통칭해 부르기도 한다.

 

- 변화산 사건

마태복음 17장 1~13절에 나타난 사건으로 예수님이 요한과 야고보 베드로를 데리고 산으로 오르셨는데,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처럼 희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임하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린다.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고 모세는 율법을 대표한다. 예수님께서 바로 선지자 중의 선지자요 율법을 완성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사건이다.

 

 

 

5 3절의 “이뿐 아니라”는 그 기쁨의 정도가 보통 이상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어느 정도인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아주 큰 기쁨이요, 능력임을 말해주고 있다. 환난 중에도 기뻐하고 인내할 수 있을 만한 기쁨

 

 

 

6 환난은 누구도 환영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사람은 비록 환난을 당하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주의 자녀가 당하는 환난에는 프리미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부가가치가 대단히 크다는 말이다. 주의 자녀가 환난을 당하면 인내하게 되고, 인내하다 보면 연단을 받게 되고, 연단을 받다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이 더욱 커진다. 환난을 모르고 지내던 평소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보인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더 밝아져서 환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맛볼 수 없는 독특한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환난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프리미엄이다. 이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가? 당신이 겪은 환난을 통해 이 사실이 진리임을 체험한 적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자.

 

한 번씩 일을 겪고 나면 하나님 안에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깨달게 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하신다.

 

 

 

7 당신은 다음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확신할 수 있는가?

 

루마니아가 공산치하에서 한참 어려움을 당할 때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는 14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죄수가 독방에서 혼자 견딘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범브란트 목사는 14년이나 버텼으니 이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범브란트 목사는 출옥한 뒤에 그 비결을 그의 책에 아름답게 고백했다. “감옥에서 보낸 햇수가 제게 길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홀로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믿음이나 사랑을 넘어선 어떤 기쁨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이란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아주 깊고도 특이한 황홀경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마치 수십 리에 뻗쳐 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골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정에서 갑자기 평지로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고백은 그가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서 지낸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게 지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가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환난을 통해 그 누구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단을 통해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눈이 열렸기 때문이다. 범브란트 목사의 고백은 환난 중에서 연단을 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일대일 대화였을까? 어떤 식으로 느꼈는지 궁금하다.

나에게도 내가 너를 기뻐하며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8 5절을 보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자신의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다는 말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셨다는 의미다. 우리는 예수 믿고 나서 이 사랑을 알게 된다. 성령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풍성하게 체험하게 하셨는가? (8절, 참고/요 16:13-14)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참고 / 요 16:13-1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가 들은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될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진리의 성령은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려 주심으로써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신데, 그는 사랑의 성령이시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우릴 위해 친히 간구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 우리 주님의 사랑을 전해주시고 있다.

 

 

 

9 넘치도록 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기뻐해도, 심지어는 환난 중에 죽어가면서 기뻐해도 부끄럽지 않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웃던 원수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이 사실을 5절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도 이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다음의 글을 읽고 이제부터 의도적으로라도 기뻐하며 세상을 사는 사람이 되자. 그래도 기쁨이 없으면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자. 지금 그런 각오가 되어 있는가?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기쁨은 대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삶이다. 또한 진정으로 신뢰할 만한 기독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흔들어 놓는 기독교는 그 중심에 기쁨이 있다.”라고 말했다. 왜 성도에게 기쁨이 대문자로 표시되는가? 대문자는 주목하게 할 때, 강조하고 싶을 때, 중요성을 나타내고 싶을 때 사용한다. 예수 믿는 우리가 이 세상 앞에 특별히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쁨이어야 한다. 세상 것으로 좋아하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출 처 :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