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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브라함은 이렇게 믿었다 - 로마서 4:17~25

맑은샘77 2015. 1. 28. 13:59

13. 아브라함은 이렇게 믿었다 - 로마서 4:17~25

 

Lesson 13

아브라함은 이렇게 믿었다

로마서 4:17~25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로 말미암은 언약]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쉬운 성경]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도 살리시며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믿고 소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나 되어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약속을 굳게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될 우리를 위해서도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믿음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구원받는 믿음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네가 구원받기를 원하느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져라”고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설교자들이 믿음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로 드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도대체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이렇게 인정받은 것일까?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최근 2, 3년 동안 구원받는 믿음의 문제를 놓고 복음주의 진영 내 성경학자들 사이에서는 열띤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의 글을 읽고 당신의 견해를 말해 보라(참고/ 눅 23:42, 43; 딤후 4:10).

 

 

 

우선 제인 핫지스(Zane C. Hadges)라는 댈러스 신학교 교수는 요한복음 6장 47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단순한 믿음을 강조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그는 이 말씀 중에 나오는 ‘믿는다’는 말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식자 무식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믿음을 가리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누구나 믿기만 하면 되는, 이 단순한 믿음을 도리어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 진리를 혼탁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 주장에 대해 맥아더(John F. MacAther) 목사는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인용하면서 반박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는 이 말씀대로 구원받는 참 믿음에는 반드시 회개와 순종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 눅 23:42, 43)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예수님, 주께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참고/ 딤후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마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떠나고, 디도도 달마디아로 가 버렸습니다.

 

눅 23장 42-43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기에게 깊은 신뢰감과 믿음을 가지고 고백하는 한 강도에게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된다고 약속하신다. 살인 죄수가 지금 사형당하면서 무슨 변화나 순종이나 새로운 삶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다만 단순한 믿음만 보시고 구원하신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의 데마는 초기에 바울의 동역자였다. (골4:14, 몬24) 그러나 후에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복음전파와 바울을 버린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하여 주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함과 전능함을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신 것이다. 행위를 보신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 것이다. 그러나 구원하시는 믿음과 구원받은 자의 믿음은 차이가 있다. 구원을 받을 때는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중심을 보시고 구원하셨지만 그에 합당하게 구원받은 우리의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회개와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하고, 순종하는 삶, 위탁하는 삶이 따라와야 한다.

구원은 단순한 믿음만 보신다. 그러나 이 단순함을 강조하려다 보면 참 믿음에 따라오는 자연스런 변화와 열매도 필요 없는 것으로 부인하면 안 된다. 나무는 열매를 보고야 그 나무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다. 구원받은 믿음이란 단순하지만, 위대한 능력이 있어 그리스도의 참된 형상에 까지 자라게 하는 믿음이다.

 

 

 

2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런 믿음을 고집한 근거는 무엇인가?(17, 18절)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도 살리시며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믿고 소망하였습니다.

 

믿음이란 불가능한 상태에서 가능함을 바라보는데 있다. 이러한 믿음은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시금 찾아와 주시고, 하늘의 수많은 별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그 약속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믿었다.

 

 

 

3 18~19절의 배경을 검토해 보면 두 개의 이야기가 같은 시대에 있었던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절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반면에 18절은 그보다 약 2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이 80세 전후일 때 있었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세월이 흐를수록 그의 믿음이 약해져야 옳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참고/창세기 15장)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은 백 살이나 되어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약속을 굳게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참고/창세기 15장)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이 일들이 있은 후에 여호와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이다. 내가 너에게 큰 상을 줄 것이다.” 그러자 아브람이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마스커스 사람인 제 종 엘리에셀이 제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또 말했습니다. “주께서 저에게 아들을 주지 않으셨으니, 제 집에서 태어난 종이 저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는 네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이 아니다. 네 몸에서 태어나는 자가 네 재산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아라. 셀 수 있으면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 자손들도 저 별들처럼 많아지게 될 것이다.”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런즉 여호와께서는 이런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이다. 내가 너를 이끌어 낸 것은 이 땅을 너에게 주기 위해서이다.” 아브람이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제가 이 땅을 얻게 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를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도 가지고 오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주께 가지고 왔습니다. 아브람은 그 동물들을 죽인 다음에 그 몸통을 반으로 갈라 서로 마주 보게 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새들은 반으로 쪼개지 않았습니다. 솔개가 죽은 동물들을 먹으려고 내려왔습니다. 아브람이 새들을 쫓아 버렸습니다. 해가 지자, 아브람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브람이 잠든 사이에 어두움이 몰려왔으므로, 아브람은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알아 두어라. 네 자손은 나그네가 되어 낯선 땅에서 떠돌게 될 것이다. 그 땅의 사람들이 네 자손을 종으로 삼고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네 자손을 종으로 삼은 그 나라에 내가 벌을 주리니, 네 자손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그 나라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아브람아, 너는 오래 살다가 평안히 네 조상에게 돌아갈 것이다. 네 자손은 손자의 손자 때가 되어서야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텐데, 이것은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아직은 벌을 받을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해가 져서 매우 어두운데, 갑자기 연기 나는 화로와 타오르는 횃불이 나타나서 반으로 쪼개 놓은 동물들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그 날,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줄 것이다. 내가 네 자손에게 이집트의 강과 저 큰 강 유프라테스 사이의 땅을 주리니, 이 땅은 겐 사람과 그니스 사람과 갓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르바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때의 75세 때부터, 수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주시는 약속을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4 아브라함의 믿음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었다. 어떻게 보면 초자연적인 믿음으로 보이기도 한다. 19~21절을 세밀히 검토하면서 이 사실을 확인해 보라. 당신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해서 무엇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은 소망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믿고 소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나 되어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하나님은 관념 속에 존재하시는 그런 비인격적이고 무능한 신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그 분이 기뻐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분 앞에서는 늙은 육체가 걸림돌이 아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었다.

나의 믿음은 도마와 같다. 부활의 예수님을 보았다는 제자들의 말에 당당하게 만져봐야 믿을 수 있다고 외친 도마! 나도 아버지께 자꾸 증거를 보여 달라고 조른다. 내가 기도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 지금 당장에 이루어져야 하고, 물질적이고, 나를 알아달라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뿐이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고, 얻을 수 없어 포기해야 할 때에도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5 다음 글을 읽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당신이 배워야할 진리는 무엇인지 말해보라.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신실하시다.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이 약속이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얼마나 놀랍게 성취되었는지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무색할 만큼 아브라함의 후손이 번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받은 유대 민족만 해도 지난 4천 년 동안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태어났는가? 지금 이스라엘 민족은 약 1,500만 내지 2,000만 명이 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그의 영적 자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숫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세기만 해도 15, 16억이나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계 도처에 퍼져 있울 정도의 숫자가 아닌가! 20세기만 해도 15~16억이나 되는 그리스도인이 세계 도처에 퍼져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엄청난 사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것은 틀림없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하늘의 별을 가리키면서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고 하신 약속은 절대 거짓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제 성경에서 남은 약속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말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

 

 

6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은혜는 아브라함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23~24절)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될 우리를 위해서도 기록되었습니다.

 

 

 

7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의로 받아 주시는 근거는 무엇인가?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8 예수를 믿는 믿음은 그것이 크든 작든 엄청난 기적이다. 이 기적을 일컬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아브라함의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비록 우리의 믿음이 나약할지라도 그 믿음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참 믿음이라면 그것은 최대의 기적이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이 사실을 인정하는가?

 

인정한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9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게 하나 있다. 믿음이 성장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주의 깊게 읽어 보라.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질 때가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창 15:2`3, 16:1~2, 17:17~18, 18:12). 그럼에도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믿음이 없어 의심치 아니하였고 나중에는 반드시 된다고 확신하는 자리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아브라함에게 오랜 기다림의 과정이란 흔들리고 의심하는 시험과 자주 싸워야 하는 긴장의 나날이었지만 동시에 강한 믿음,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을 만들어 가는 성숙을 향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의심과 절망으로 말미암아 시험 받은 경험이 있는가? 그 시험으로 인해 당신의 믿음은 어떤 유익을 얻었는가?

 

 

 

 

삶의 열매를 거두며

 

 

다음 글을 읽고 느낀 바를 말해 보라.

 

일반적으로 믿음이 좋으면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의심하는 것 때문에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잘못이다 이런 생각은 모두가 마귀의 속삭임이요, 꾐이다. 의심하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믿음은 의심에서 반드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로이드 존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의심을 극복하고 그 의심에 대해 대답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말했다. 정말 공감 가는 말이다. 똑같은 햇살을 받더라도 진흙은 굳어지지만 왁스는 녹아내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가 가지 시련을 당하는 과정에서 진짜 믿음은 점점 더 강해지지만 거짓 믿음은 왁스처럼 녹아 없어지고 만다. 참 믿음이란 아브라함처럼 믿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는 시련을 극복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은 견고하고 확신에 찬 믿음으로 성장한다.

 

 

 

 

 

출 처 :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