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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당신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 - 로마서 5:1~11

맑은샘77 2015. 1. 28. 13:59

14. 당신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 - 로마서 5:1~11

Lesson 14

당신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

로마서 5:1~11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의 삶]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쉬운 성경 ]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또 믿음으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당하더라도 즐거워합니다. 그것은 환난이 인내를 낳고, 또 인내는 연단된 인품을 낳고, 연단된 인품은 소망을 낳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시의 적절할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해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간혹 선한 사람을 위해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오늘 본문은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 중의 하나다. 그만큼 그만큼 의미가 깊고, 그 맛은 꿀 송이처럼 달다. 우선 처음 두 절을 마음으로 음미하면서 소리 내어 읽어 보라. 그러면 이 말이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얼마나 따뜻하고 감미로운 말씀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는 즉시, 날마다 맛보며 즐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성경학자들은 오늘 본문을 ‘이신칭의의 결과’, ‘이신칭의의 열매’, ‘이신칭의의 확신’이라고 부른다. 우선 1`~2절 말씀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받아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은혜가 무엇인지 말해보라.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또 믿음으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린다.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 참고 ]

- 이신칭의 :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기독교 구원의 진리는 이신칭의에 있다.

- 사람이 구원 받는다고 할 때에 인간의 공로나 자랑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구원해주신다. 인간의 자랑이 없다는 말은 어떤 특권층도 없다는 말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지만,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새로운 신분으로 율법과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율법을 이루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답게 살게 하신다. 구원받은 자는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하며 살게 되었다.

- ‘이신칭의의 열매’ 혹은 ‘이신칭의의 확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왜 열매 혹은 확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이신칭의라는 나무를 심고 보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원수지간이 아니라,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화평(평화) 열매를 맺게 되었다. 칭의가 뿌리라고 하면 화평은 열매이다. 열매는 나무에만 열리고, 뿌리로부터 양분을 공급을 받아 열리게 된다.

 

 

 

2 3~11절 말씀은 이 세 가지 은혜를 누리게 된 근거에 대해 설명한다. 먼저 하나님의 화평에 대해 살펴보라. 왜 인간은 하나님과 반드시 화해해야 하는가? 6, 8, 10절에서 적절한 대답을 찾아보라.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시의 적절할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10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6절에서 연약할 때 - 인간의 죄성을 약함으로 표현하였다. 악을 대항하기에 무력하고, 선을 행하기에 힘이 없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으로 예수님의 통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8절에서 죄인 되었을 때 -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씻음 받고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10절 원수 되었을 때 -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무서운 심판의 주로 만들어 하나님과 원수지간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

 

 

3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맺으려면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아 주셔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든 죄를 씻음 받아야 한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1절, 참고 / 롬 3:22)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참고/ 롬 3:2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옵니다. 이 의는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가 없다면, 우리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다.

 

 

 

4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그 마음에 천국의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왜 그런가? (9~10절, 참고 / 롬 4:25)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참고 /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5 1절의 우리말 번역에는 “화평을 누리자”로 되어 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번역이 가능한데 ‘누리자’혹은, ‘누리고 있다’로 번역할 수 있다. 두 가지 다 상관없겠지만 굳이 택하라면 ‘화평을 누리고 있다’를 택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마음에 자연적으로 평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화평을 누리자 하면 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마치 우리가 화평을 거절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하나님과 누리는 화평은 원한다고 찾아오는 은혜가 아니다. 이것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의롭다 함을 받으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요, 당연한 권리다. 당신은 이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요 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또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6 솔직히 말해서 우리 주변을 보면 입으로는 하나님과 화목하다고 고백하지만 막상 그 평안을 누리느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때는 평 안을 느끼지만 쉽게 그 평안이 깨어져 버린다고 실토한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성경 읽고, 애 써 보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불안, 공포 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는 형제도 있다. 당신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가?

 

 

 

7 만일 자신의 심령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평안이 별로 없다면 죄책감이 남아 괴롭히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죄책감이란 과거에 범한 죄로 말미암아 양심적으로 당하는 고통과 불안을 말한다. 회개를 수십 번 했고, 그 죄를 다시 반복하고 있지 않더라도 자주 불안이나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자신에게 있는지 조용히 살펴보라. (참고 / 롬 7:23~24; 갈 5:1)

 

(참고 / 롬 7:23~24)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나의 몸의 여러 부분들에서는 다른 법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몸에서 작용하고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 내겠습니까?

(참고 /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셔서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율법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8 하나님과의 화평을 해치는 두 번째 요인으로 완벽주의를 들 수 있다. 완벽주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하는 자기 안에서 자주 노출되는, 옛 자아의 추태를 못 봐주는 버릇을 말한다. 원하는 만큼 거룩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데서 오는 갈등은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 간다. 믿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서 별로 구별되지 않는 생각이나 말, 행동을 하는 자신을 볼 때 구역질이 나는 것이다. 또한 습관적으로 자주 범하는 사소한 죄를 끊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자기 혐오증에 빠진다. 이것은 자기와의 씨름이다. 당신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는가?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있다. 우리에게 있는 죄책감이나 완벽주의 때로 성숙한 자리로 이끌어주는 유익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고 해도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가 누릴 행복을 빼앗아간다고 하면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9 우리의 영적 평안을 빼앗아가는 죄책과 완벽주의는 예수의 의를 믿기보다 나의 무엇을 더 믿으려는 불신앙의 잔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가 깨끗해서 의롭다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하기 때문에 의인으로 취급하시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하시고, 동시에 우리를 의로운 자요, 완전한 자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과거의 죄에 매여 고통을 받는가? 왜 현재의 자기 모습을 혐오하며 고통을 받는가? 다음의 글을 읽고 각자 느낀 점을 말해 보라.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는 이미 그의 저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분이다. 그는 목회와 저술 활동을 하는 동안 편두통으로 심하게 고생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편두통이 발작되면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졸도까지 했다.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편두통 때문에 기절해 병원으로 옮겨진 일도 세 번이나 있었다. 그래서 남미나 유럽, 미국 등 유명하다는 정신과 의사와 신경과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좋은 약을 먹고, 심지어 신유 은사를 받은 분들에게 기도를 받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로새서 2장 13절 말씀을 읽다가 마음에 번쩍 은혜의 빛이 비치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는 말씀 중에서 ‘모든’이라는 말에 갑자기 그의 마음이 얼어붙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질문을 했다. ‘주님, 이 말씀의 의미는 제가 아직 짓지도 않은 죄까지 다 용서해 주셨다는 뜻입니까? 그러면 주님은 이대로의 저 자신을 받아 주신다는 말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대답이 들려왔다. “너는 설교자가 아니냐? 아직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었느냐? 이 어리석은 자야.” 그때까지 그는 예수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을 뿐 그 마음에까지 닿지는 못했던 것이다. 유명한 설교자요, 신학 교수였지만 그때까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므로 얻는 기쁨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르티즈 목사는 때때로 자신의 언행심사가 마음에 안 들어 괴로워했다고 한다. ‘왜 나는 이럴까?’ 라고 자책하는 날이 많았다. 성격도 형편없고, 과거의 죄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현재의 허물을 생각하면 도무지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의 날마다 자기 자신과 씨름하고 혈투를 벌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말씀 앞에서 그의 마음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문제가 무엇인지 아느냐? 너는 지금 내가 용서하고 받아들인 너를 네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내 아들 예수의 피가 나에게는 충분하고 만족스러운 것인데 그것이 네게는 불만족스럽다는 것이지. 내가 만족스러워하는 예수의 피가 너에게 불만족스럽다니 너는 대체 누구냐? 너는 나보다 더 거룩하냐?”

드디어 그는 자기를 용서하는 것이 행위와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예수의 피로 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더 이상 죄책감으로 갈등하지 않기로 했다. 더는 완벽주의로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바라보기로 했다. 이 진리에 눈을 뜨자 그의 마음에 놀라운 평안이 찾아왔다. 그는 신비스러운 행복감에 흠뻑 젖었다. 그리고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나는 나 자신을 껴안아 주었다.” 드디어 자기와의 싸움이 끝난 것이다. 3주 후 그의 편두통도 깨끗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 편두통으로 다시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때문에 당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당신의 마음에, 가정에, 대인 관계에, 인생관 등에 일어난 변화를 말해 보라.

 

 

 

 

 

 

 

출 처 :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