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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담 안에서 죽었고 예수 안에서 살았다 - 로마서 5:12~21

맑은샘77 2015. 1. 28. 14:02

17. 아담 안에서 죽었고 예수 안에서 살았다 - 로마서 5:12~21

Lesson 17

아담 안에서 죽었고 예수 안에서 살았다

로마서 5:12~21

 

[아담과 그리스도]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 쉬운 성경 ]

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를 통해 사망이 들어온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습니다. 13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지만,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사망은 아담 시대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아담이 지은 죄와 똑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마저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입니다. 15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아담이 지은 죄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죽었다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 넘쳤습니다. 16 또한 하나님의 선물과 아담의 죄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심판이 오게 되고 모든 사람을 정죄에 이르게 했으나,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많은 범죄 때문에 오게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의롭다 함을 받게 하였습니다. 17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의롭다고 여기시는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생명 안에서 더더욱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지만, 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낳게 하는 의로움이 발생했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 20 율법은 범죄를 증가시키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 21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하였듯이, 은혜는 의를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 왕노릇 할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흔히 이 세상을 가리켜 고통의 바다라고 말한다. 70~80년이란 짧은 생을 살면서 허다한 문제를 안고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을 논하는 지혜자들이 많은 연구를 거듭해 왔지만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 “인간은 왜 죄를 짓는가? 죽음은 어디서 왔는가? 구원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런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오직 한 분만이 이 문제에 명확한 답변을 주신다.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을 통해 시원한 해답을 얻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12절의 ‘한 사람’은 아담을 가리킨다. 본문의 내용은 아담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요, 범죄한 인간의 대표자로, 우리를 대표한다.

아담과 우리를 똑같이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모든 사람에게 죄와 형벌을 물려주었다.

 

 

 

2 아담이 죄를 범하고 나서 받은 형벌은 무엇인가?(창 2:17, 3:19)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마라. 만약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너는 먹기 위하여 얼굴에 땀을 흘리고, 열심히 일하다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네가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죽음과 죽을 때까지 땀 흘려 일해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3 12절에서 ‘이와 같이’라는 말을 주의해 보라. ‘이와 같이’란 ‘이런 식으로’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했다는 것이다. 아담과 우리를 똑같이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다. 어떻게 ‘이와 같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가? 왜 아담에게 내린 형벌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내려져야 한다는 말인가? 이 같은 일방적인 말씀에 대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담이 범죄 함으로 부패한 인간 본성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다는 원죄설을 설명하고 있다. 아담이 범죄 하여 죽은 까닭에 모든 사람도 아담 안에서 범죄 하여 죽게 되었다는 뜻이다.

 

 

 

4 ‘모든 사람’은 전 인류를 가리킨다. 그리고 ‘죄를 지었다’는 말씀은 단순 과거 동사로 씌어 있다. 이는 현재 짓고 있는 죄나 장차 범할 어떤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꼭 한 번 범죄 한 사건을 가리킨다. 두말할 것 없이 그 범죄는 아담의 불순종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아담이 죄짓는 자리에 우리도 함께 있었고, 공범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12절과 19절을 비교하면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와 같이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죄인 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의인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제2의 아담이시다.

 

 

 

5 다음의 글은 원죄에 대한 설명이다. 당신은 원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히 중생을 받기 전과 이후에 얼마나 달라졌는가?

 

성경에서 인간을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악을 행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다. 그것은 행동 이전의 문제이며 숙명적으로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신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기보다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자들이다. 왜 그런가? 우리 조상인 아담이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그가 죄를 지을 때에 우리도 함께 그 자리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원죄’라고 한다. 원죄는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몹시 꺼려지는 교리다.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이런 현대인의 심리를 정확히 갈파한다. “원죄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이성으로는 이것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성에 위배되는 것이며 이성은 자신의 방법으로 그것을 생각해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원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부정하게 된다.

 

 

 

6 원죄는 우리가 이해를 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부인할 수 없는 것임을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는가?

 

- 14절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또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격(자유의지)을 가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셨다. 하나님은 다만 죄를 허용하셨다. 뱀이 하와를 꾀었을 때에 하와는 죄를 범할 수도 있었고, 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였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꼬임에 빠져 범죄하였다. 원죄의 결과는 인간이 생명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 정욕에 따라 사는 존재방식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영적인 사망이다.

 

- 15절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아담이 죄의 원천으로 온 인류에게 죄를 미치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의의 원천으로 온 인류에게 의를 미치게 한다.

 

-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한 사람 아담 - 범죄 - 사망이 왕 노릇 /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 순종(은혜와 의) - 생명이 왕 노릇

 

 

7 여기에서 말하는 ‘사망’은 육적 죽음과 영적 죽음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육신의 죽음은 영적 죽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말이 옳다. “죽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우리 것이라 부를 것이 없다.” 우리에게 참 분명한 소유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육신의 죽음 뒤에 가려져 있는 영적 죽음, 즉 영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원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눅 12:5; 히 9:27)

 

(눅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알려 주겠다. 죽인 후에 지옥으로 던질 권세를 가진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들은 모두 한 번은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하나님과의 단절된 상태에 이르러 육의 죽음 후에 영이 심판 후에 지옥에 가는 것이다.

 

 

 

8 아담 한 사람이 인류의 대표자로 지명 받았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복과 저주는 인류 모두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님 역시 아담과 동일한 입장에 계신다. 이 사실을 14절 끝부분에서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참고/ 고전 15:22)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사망은 아담 시대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아담이 지은 죄와 똑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마저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입니다.

 

(참고/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을 입고 우리의 대속물로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

 

 

 

9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순종하셨다고 한다. 주님의 순종은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순종이었으며 우리를 위해 대신한 순종이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이 은혜를 다음 구절에서 확인해 보자(19절, 참고/ 갈 4:4; 마 26:3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

 

(참고/ 갈 4:4)

그러나 정한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은 여자에게서 났고, 율법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참고/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리고 나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제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길 원합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다음의 글을 읽어 보라. 그리고 이 내용에 비추어 당신은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 보라.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아담은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둘을 놓고 어느 한 쪽이라도 의심하면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아담의 대표성을 의심하여 부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논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표가 되고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우리의 관계를 의심하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담의 범죄가 후손인 우리에게 정죄와 죽음이라는 확실한 결과를 가져왔듯이 그리스도의 순종은 믿음의 자녀 된 우리에게 칭의와 영생이라는 확실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아담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사실인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모든 것이 사실인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공식과 같다. 아담 안에서 죽었는가? 예수 안에서 살았는가? 한 쪽이 확실하면 다른 한 쪽도 확실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출 처 :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