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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로마서 3:9~18

맑은샘77 2015. 1. 28. 13:57

9.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로마서 3:9~18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로마서 3:9~18

 

 

[다 죄 아래에 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 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쉬운 성경 ]

9.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15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16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마음의 문을 열며

 

로마서 1장 17절을 시작으로 여러 시간을 통해 분명히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자존심에 상처 주지 않으려고 듣기 좋은 말씀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를 고무시키거나 칭찬하는 말씀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만 하셨다. 마치 우리의 기분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냉정하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우리를 사정없이 벌거벗겨 놓고 악한 것, 부끄러운 것만 지적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의 처지는 좋은 말을 듣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병원을 갔는데 의사가 씩 웃으면서 “별거 아니네요. 이 약을 일주일만 드세요”라는 기분 좋은 말을 듣고 돌아올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제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의사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병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역시 듣기 싫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라. 얼마나 답답하면 그렇게 하셨겠는가?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우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구원의 길이 열린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유대인, 헬라인 혹은 신자, 불신자 가릴 것 없이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이다. 이 사실을 9절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 유대 사람에게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같이 죄 아래에 있음을 우리가 이미 지적하였습니다.

 

 

 

2 “죄 아래 있다”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다. 여기서 죄는 단수다. 죄들이 아니고 죄라고 말한다. 로마서에는 죄라고 하는 단수를 사용할 때와 죄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할 때의 의미가 다르다. 죄를 복수로 사용할 때는 우리가 흔히 범하는 여러 가지 악한 행위를 말한다. 한편 죄를 단수로 사용할 때는 보이지 않는 죄의 세력, 즉 죄의 실체를 가리킨다. 다음 구절에서 죄의 실체와 죄 아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자.

 

- 에베소서 2장 2절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 때에 여러분은 범죄와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 디모데전서 6장 1절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은, 자기 주인을 아주 존경할 이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이름과 우리의 가르침에 욕이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죄의 실체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 즉 악한 영(사단)이다. 죄의 배후에 강력한 세력이 있어 인간을 죄 아래로 가두어놓고 있다. 죄 아래 있다는 말은 죄의 지배하에 있으며 죄의 종이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이 마음을 나쁘게 먹어서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배후에 자기를 조종하는 강한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3 죄의 세력을 없애지 못한다면 결코 사회적 범죄도 사라질 수 없다. 아무리 경찰 수를 늘리고 최첨단 장비를 들여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해도 안 된다. 이것은 열이 나서 두통이 심한 사람의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얹는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얼음주머니가 병 그 자체를 고치지 못한다. 범죄를 없애려면 죄의 세력을 꺾어야 한다. 이것을 증명하는 좋은 예가 있으면 말해보라(참고 / 롬 7:23).

 

(참고 /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내 지체 속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고,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다 나를 사로잡는 것을 봅니다.

 

죄의 실체를 결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주인이 되셔야만 죄를 권세를 물리칠 수 있다.

 

 

 

4 10~18절은 구약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연결해 놓은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무능함이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11~12절, 참고/ 시 14:1, 3, 5)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참고/ 시 14:1, 3, 5)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1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모두가 하나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3 모두들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5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행악자가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한다.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전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5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12절)라는 말은 우유가 상해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상한 우유처럼 우리의 영과 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12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표준에 일치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자가 없다는 뜻이다. 어둠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빛으로 나올 능력이 없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하나님을 찾을 능력이 없다. 마치 날개가 꺾인 새와 같다. 날개가 꺾인 새는 날 자유는 있지만 날지는 못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무능해진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에 이 같은 영적 무능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전도를 하면 자주 하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한번 기억해 보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더 나쁜 사람이 많다.”, “나는 죄를 너무나 지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천국에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지옥에 가겠다.”, “너나 잘 믿고 천국가라.”, “천국이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6 두 번째로 인간의 부패에 대해 지적한다. 인간이 어느 정도로 부패했다고 성경은 말하는가?(13~15절, 참고/ 시 10:7, 140:3; 사 59:7~8; 렘 17:9; 마 12:34)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14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15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참고/ 시 10: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그들의 입은 저주와 기만과 폭언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혀 밑에는 욕설과 악담이 가득합니다.

 

(참고/ 시 140: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셀라)

뱀처럼 날카롭게 혀를 벼린 그들은,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을 품고 있습니다. (셀라)

 

(참고/ 사 59:7~8)

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7 그들의 발은 나쁜 일을 하는 데 빠르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신속하다. 그들의 생각이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황폐와 파멸이 있을 뿐이다. 8 그들은 안전한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가는 길에는 공평이 없다. 스스로 길을 굽게 만드니, 그 길을 걷는 모든 사람에게 안전이 없다.

 

(참고/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

 

(참고/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인간의 어느 한 부분도 깨끗한 것이 없이 부패하고 타락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인간의 마음은 악취가 진동하는 열린 무덤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게 되어 있는데, 속사람이 악하고, 사탄에 사로잡혀 있으니, 우리의 하는 말과 행동은 독사의 독이 품어져 나오고 있다.

 

 

 

7 부패한 마음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더럽게 만든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15절). 이것이 꼭 살인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웃을 향해서 해를 끼치는 모든 언동을 가리킨다. 너와 나의 관계가 살벌해졌다는 말이다. 그 결과 사람은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서로 사랑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라는 말은 죄로 부패한 인간의 행동 성향이요,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이 같은 인간의 부패성을 시인하는가? 언제부터 이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는가? 그 이전에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

 

 

 

8 세 번째로 인간의 절망에 대해 지적한다. 인간이 얼마나 절망적이라고 말하고 있는가?(16~18절, 참고/ 히 9:27)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6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17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참고/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 앞에 절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을 것이고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교만과 거짓에 사로잡혀 있다.

 

 

 

9 우리가 예수를 바로 믿고 올바른 믿음을 갖기 원한다면 첫 번째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다. 칼뱅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로 알면 자기 자신을 믿지 않게 된다”고 했다. 자기를 포기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것, 이것이 예수 앞으로 나오는 데 필수 요건이요, 믿음을 바로 갖기 위한 절대 요건이요, 우리가 믿음 생활하기 위한 불가분의 요소다. 세상에는 두 가지 죄인이 있는데,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죄인이요, 둘째는 내가 의인이라고 하는 죄인이다. 교회에서 보면 자기 자신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들이 많지 않다. 입으로는 죄인이라고 하지만 내용은 비어 빈 종교적인 상투어에 지나지 않는다. 왜 이런 사람이 많은가? 당신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라 생각하는 교만함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알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실상을 드러내놓고 우리가 철저한 죄인이며, 선을 행하는데 무능함을 알고 고백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구원의 길을 열리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다음 글을 읽고 당신은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절망을 하는 자인지, 그리고 절망을 할 때 따르는 은혜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당신도 이런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절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절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우리 영혼을 향해 임한다.

70년대 이종용이라는 인기 가수가 있었다. 그는 ‘너’, ‘겨울 아이’, ‘바보처럼 살았군요’ 등의 히트곡을 불렀다. 그가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 3개월가량 징역을 사는 동안에 어느 사형수로부터 전도를 받았다. 그는 사형수의 진지한 전도에 감동받아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때 사형수가 “당신은 곧 나가게 되겠지요. 나가면 내가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못다 한 몫까지 다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종용 씨는 대마초 사건으로 감방에 들어갈 때만 해도 자신은 아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형수 앞에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들으면서 비로소 자기가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가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 절망하게 되서야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모든 악과 고통에서 건져내셨다. 대마초에서 해방된 것이다. 출감 후 그는 신학을 공부하였고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왜 사형수가 판사보다 구원받기 쉬운지 알고 있는가? 사형수는 자신에 대해 절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감방 밖에 있을 때보다 그 안에서 예수 믿기가 더 쉬운지 알고 있는가? 감방 안에 들어가면 자신에게 절망할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지기 때문이다.

 

 

 

 

 

출 처: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