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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께 경건하지 못한 죄 - 로마서 1:19~25

맑은샘77 2015. 1. 28. 13:54

5. 하나님께 경건하지 못한 죄 - 로마서 1:19~25

 

Lesson 5

하나님께 경건하지 못한 죄

로마서 1:19~25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 쉬운 성경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으므로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성품인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은 그가 만드신 만물을 보고서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헛된 것을 생각했으며,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리석습니다. 또 사람들은 불멸의 하나님의 영광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나 새나 짐승 또는 뱀과 같은 모양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죄악된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가지각색의 더러운 죄를 지어 자기들끼리 부끄러운 짓을 행하여 몸을 더럽혔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습니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보다 지음받은 피조물들을 더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입니다. 아멘.

 

 

 

 

마음의 문을 열며

 

로마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 깊게 읽다 보면 그 내용이 매우 논리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벌거벗기신다. 두 번째는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신다. 그 다음으로 우리를 성령의 사람으로 만드신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그분의 제단 위에 올릴 거룩한 산 제물이 되게 하신다. 로마서의 내용이 이처럼 네 단계로 발전한다는 것을 알면 로마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시간 우리가 배울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이 왜 인간에게 이토록 진노하실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를 벌거벗기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부터 우리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정직한 마음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가 인간 본래의 모습을 직시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입버릇처럼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안 짓는 것으로 죄인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원죄).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날에 죄와 짝하고, 죄를 먹고 마시듯이 짓고 있다(자범죄).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끝 죄만 죄인 것이 아니라 타인을 미워하고 욕심을 부리고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 하나님의 말씀(거룩한 거울)에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더럽고 추한 죄인이다.

 

 

 

2 오늘 본문은 경건치 못한 죄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한다. 경건은 원래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뜻한다. 따라서 경건하지 못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불경건을 영어로 ‘Godlessness’라고 한다. 하나님이라는 ‘God’에, 없다는 의미의 ‘less’와 명사형 접미사인 ‘ness’를 붙여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단어를 글자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시편 53편 1절을 통해 경건치 못한 죄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라.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썩었으며 그들의 행위는 더럽습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리석은 자” 히브리어로 “나발”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외면적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고 의로운 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분명한 가치관이 없이 행하는 자를 말한다.

 

 

 

3 경건치 못한 죄를 범하는 자는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헛된 것을 생각했으며,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4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을 아는 본능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19절 말씀과 다음 칼뱅의 말을 참조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고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보자.

 

“하나님에 대한 이 지식을 늘 새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신선한 물방울을 우리 마음에 떨어뜨려 주신다.” - 칼뱅

 

“하나님의 계심을 아는 의식은 인간의 골수까지 깊이 박혀 있어서 그것을 지워 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차라리 천성을 바꾸는 편이 더 쉬울지 모른다.” - 칼뱅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으므로 사람들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神지식)이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신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대신학에서는 형상을 관계성으로 이해한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응답할 수 있는 그런 영적 존재로 지으신 것을 말한다.

“순천 자는 흥하고 역천 자는 망한다.” 하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잘 되나,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속담이다.

 

 

 

5 하나님은 먼저 무엇으로 자신을 알게 하셨는가? (20절, 참고/ 시 104:24-27)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성품인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은 그가 만드신 만물을 보고서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참고/ 시 104:24-27) 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5 거기에는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생물 곧 크고 작은 동물들이 무수하니이다 26 그 곳에는 배들이 다니며 주께서 지으신 리워야단이 그 속에서 노나이다 27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주는 지혜로 이 모든 것들을 만드셨습니다. 이 땅에 주가 지으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다를 보니 얼마나 크고 넓은지요! 그 속에 크고 작은 생물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바다 위로 배들이 이리저리 오갑니다. 주가 만드신 악어가 그 속에서 놉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이를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자연계시는 자연에 나타난 신성을 말하는데 만물을 보고서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다

 

 

 

6 사람은 왜 하나님이 계신 줄 알면서도 고의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음으로써 불경죄를 범하는가? 21-22절을 가지고 그 이유를 두 가지만 지적해 보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헛된 것을 생각했으며,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리석습니다.

 

첫째는 그 생각이 허망하여진 때문으로, 인간의 마음은 죄로 인하여 어두워졌다. 욕망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만 그 분을 영화롭게 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

둘째는 인간 스스로 지혜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참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것인데, 범죄한 인간은 자신의 지혜를 믿고 과신하여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착각한다.

 

 

 

7 당신도 예수 믿기 전에는 똑같이 어리석은 자였다고 생각지 않는가? 지금의 느낌이 어떤가?

지금도 어리석을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8 하나님을 싫어하면 결국은 무엇을 섬기게 되는가?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보다 우상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23~25절)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또 사람들은 불멸의 하나님의 영광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나 새나 짐승 또는 뱀과 같은 모양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죄악된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가지각색의 더러운 죄를 지어 자기들끼리 부끄러운 짓을 행하여 몸을 더럽혔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습니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보다 지음받은 피조물들을 더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입니다. 아멘.

 

우상숭배란 자기가 섬기기에 편리한 신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사람들에게 진정한 예배와 헌신과 순종을 요구하지만, 우상은 그 어떤 헌신도 요구하지 않고, 우상을 잘 달래서 해를 면하면 되고 복을 빌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9 어떤 책을 보니 비참한 인생을 사는 비결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자신에 관해서만 생각하라, 내 자신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라, 가능한 한 나라는 말만 사용하라, 칭찬받기를 기대하라, 지나치도록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 다음 글을 읽고 당신에게도 이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남아 있는지 솔직하게 나눠 보라.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는 운동이 있다. 그것은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인데, 우리말로 직역하면 새로운 세대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기독교 문명이 쇠퇴해 가면서 주로 동양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의 주도로 시작된 운동이다. 힌두교를 위시해서 불교, 도교, 유교 등 모든 동양 종교가 혼합된 것이다. 뉴 에이지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범신론이다. “사람은 신이요, 신은 곧 사람이다. 그리고 우주 만물 역시 신이다”라는 사상이다. 따라서 우주 만물 안에 편재해 있는 신의 숫자가 무려 3,300만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은 무엇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간을 신으로 생각한다. 인간을 신으로 보기 때문에, 관심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인간을 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히 자신도 신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이 잠재력만 개발하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진다. 그래서 이 뉴 에이지 운동에는 자기를 신으로 착각하게 만들려고 고안해 낸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예를 든다면 최면술이나 마인드컨트롤, 강령술, 예언, 점성술, 요가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신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요즘 이 운동이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다. 소위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예외 없이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바울은 25절 끝부분에서 우상 숭배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앞에 놓고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만 계실 뿐이다. 다 같이 손들고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겠는가?

 

 

 

 

 

 

출 처 :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