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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의 종 - 로마서 1:1~7

맑은샘77 2015. 1. 28. 13:52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 로마서 1:1~7

Lesson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로마서 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쉬운 성경 ]

1 나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특별히 선택되었습니다. 2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예언자들을 통해 성경에 약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소식입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인간의 족보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4 그러나 성결하게 하는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그분을 통해 우리는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이방인들을 불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과 함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성도로 부름을 받게 된 로마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평강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로마서를 일컬어 교회 갱신의 성경이라고 부른다. 어거스틴에서 시작하여 루터, 웨슬리 등 역사상 교회를 새롭게 재건하는 일에 쓰임 받았던 영적 거목들은 로마서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지금도 교회가 새로워지고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 번 거듭나기 위해서는 로마서 안에 담긴 우레와 같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이다. 놀랍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는 복음을 들어야 할 자들이 매우 많다. 복음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들, 구원의 감격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자들, 들어도 감각이 없는 자들, 심지어 잘못된 복음에 익숙해진 자들이 어디 한두 명인가?

로마서 첫 장을 펼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는 매우 충격적인 표현으로 말씀이 시작된다. 바울은 자신을 노예로 소개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신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제3차 전도여행을 하던 바울은 고린도에 잠깐 머물며 겨울을 보냈다. 그는 여기서 로마서를 썼다. 때는 주후 58~59년경이었고, 장년에 접어든 나이로 시력이 좋지 않았던 바울은 비서인 더디오에게 구술하고 받아쓰게 했다. 그리고 이 서신을 여집사 뵈뵈의 손에 들려 로마 교회에 전했다. 이상의 사실을 다음 구절을 보면서 확인해 보라.

 

- 로마서 16장 22절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이 편지를 받아 쓰는 나 더디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 로마서 16장 1-2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1 우리의 자매 뵈뵈를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여자 집사입니다. 2 뵈뵈를 주님 안에서 성도로서 영접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뵈뵈는 나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이므로, 그 자매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 사도행전 19장 21절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그후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갈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도 꼭 가봐야겠습니다라고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기록된 서신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이방교회에서 거둔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고린도에 머무는 겨울 동안에 기록되었다.

 

 

2 바울은 로마서 서두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 부름으로 이 서신의 수신자도 자기와 같은 위치에 두고 있다.

 

 

 

3 ‘종’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고, 종에 대해 아는 대로 써 보라.

[ 참고 ]

종3 [명사] - 참고어휘 노예

1. 남의 집에서 대대로 천한 일을 하던 사람. ≒복례2(僕隷), 여대3(與), 예복2(隸僕), 예어2(隸御), 예인3(隸人), 장획2(臧獲), 하례1(下隷).

종을 부리다

음전이란 승지의 정부인 윤 씨가 데리고 있는 몸종이다. 따로 종 문서가 있는 것은 아니나….≪이무영, 농민≫

2. 남에게 얽매이어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종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둘로스”라는 말로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강조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잘 나타내는 말이 “구속-아폴뤼트로시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속전을 지불하다. “아폴뤼트로시스”라는 말은 당시에 시장에 가서 무엇을 사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특별히 노예를 살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 속전을 주고 사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자요, 그의 명령에만 살고 죽는다는 오직 충성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종이란 주인에게 속한 소유물로 생명까지도 내어바친 노예(slave)를 말한다. 노예는 자기의 삶이 없는 자이다. 자기의 의지도 없고, 자기의 주장도 없다.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주인에게 양도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항상 주인의 주인 됨을 인정하고 자기를 죽일 때에 종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있었는데, 심판하시지 않고, 주의 사랑으로 구원해주시고, 그를 받아주시고, 온전히 회복시켜주시는 것을 생각하여 예수님의 노예로 살아가기를 소원하였다.

 

 

 

4 당시 노예는 귀족인 주인을 위해 일하는, 공장의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생산 수단이었다. 그래서 “노예와 당나귀는 똑같은데, 노예는 말을 할 줄 알고 당나귀는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예수님께 자신을 종으로 드리는 것은 절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바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2-4절의 내용을 가지고,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해 보라(참고 / 갈 1:17-18).

 

2-4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예언자들을 통해 성경에 약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은 인간의 족보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성결하게 하는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참고 / 갈 1:17-18)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커스로 되돌아갔습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바울은 구약성서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기를 부르신 것과 사도들의 전하여 준 복음을 토대로 하여 확신에 넘치는 순수한 복음, 복음주의 기독교를 세울 수 있었다.

 

 

 

5 오래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심에 대한 의식이나 나의 종 됨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여 종종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에 대해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예수님을 잘 모름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6 어떤 사람은 “바울이 예수의 종 된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바울처럼 특별히 소명을 받은 선교사에게나 예수의 종이 되는 문제가 중요하지, 자신 같은 평신도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인간적인 생각이다. 6절에서 바울은 로마 교인들을 누구라고 말하고 있는가?(참고/ 고전 6:19-20; 롬 14:7-8)

 

6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여러분도 그들과 함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고/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며,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성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산 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참고/ 롬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 중에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자기 자신만을 위해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산다면 그것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고, 죽는다면 주님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7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불린다. 예수 믿는 사람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것은 안디옥 교회에서다(행 11:26). 이 말은 헬라어로 ‘크리스티아노스’(christianos)인데, 그리스도의 추종자(follow)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belonging to)라는 뜻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과 같다. 당신은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피 값으로 사신 주인의 은혜를 자꾸 잊어버리고 내가 주인인양 살아간다.

 

 

 

8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한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한다. 무슨 대가를 기대해선 안 된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은 이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당신이 예수의 종이라면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한다. 지금 당신은 이런 종의 자세로 살고 있는가?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너희 가운데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일을 맡은 종이 있는데, 그가 밭에서 돌아오면 ‘어서 이리 와서 앉아 먹어라’ 하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오히려 종에게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들다가 그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고맙다고 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하고 나서 ‘우리는 가치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종은 아무 생각이 없어야 한다.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생각하시고 판단하시게 해야 한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주인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지 않고 내 의지대로 결정해 따른다.

 

 

 

9 율법에 따르면 유대 나라에서는 자원해서 종이 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주인이 귀에 구멍을 뚫고 주인 이름이 새겨진 귀걸이를 걸어 주었다(참고/ 출 21:2-6). 귀걸이를 하고 있는 종은 다른 종들과 달랐다. 주인을 무척 사랑해서 무엇이나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고, 자신의 종살이를 즐거워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진 귀걸이를 단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귀걸이는 장식용이 아니다. 삶을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증거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예수의 종이 되면 자유를 빼앗기고 부담스럽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은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의 신앙생활은 어떤가? 예수 믿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주인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셔서 그분 안에 있으면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고, 죽어서도 영원히 살 수 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다음 예화를 읽은 후 각자 느낀 점을 정리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

 

가만히 살펴보면 교회를 다니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자신을 예수의 종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목사가 길을 가다가 대문에 교패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벨을 눌렀다고 한다. 젊은 새댁이 미소 띤 얼굴을 내밀었다. 목사가 “안녕하세요? 이 댁에 주님이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젊은 새댁은 깜짝 놀라며 목사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새댁은 머뭇거리다 자신은 모 교회를 다닌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사가 다시 한 번 그 댁에 주님이 계시는지 물었다. 어리둥절한 새댁은 아무 말 않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사실 그 새댁은 목사의 딸이요 남편은 장로의 아들이었고, 둘 다 교회에서는 집사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이런 그들에게 던진 목사의 질문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주님이 계시느냐는 물음은 예수님이 그 가정의 주인으로 대접받고 계시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 가정이 예수의 종으로 충성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목사는 교패를 버젓이 붙여 놓고 사는 집이니 그 정도의 인사를 해도 실례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자신이 예수의 종임을 잘 모르고 교회 다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출 처: 옥한흠 다락방 시리즈 13[개정판] - 로마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