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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 6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본문, 성구)

맑은샘77 2015. 1. 28. 13:37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 6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본문, 성구)

6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우리는 기독교 복음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공부하려고 한다.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나 비참한 사건이었지만, 영원한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인간에게는 다시없는 기쁜 소식이었다.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그 대신 우리가 살게 되었다는 소식이니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장 진지하고, 가장 겸허하게, 그리고 가장 감격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 사건을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삭 왓츠의 찬송가 가사를 기억하는가?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늘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감격이 솟아나는 샘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죄를 씻는 보혈의 샘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삭 왓츠의 찬송은 항상 부르는 것이지만, 실제로 십자가 은혜에 감격하여 자기를 헌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 예수님의 죽음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임을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마태복음 27장 32~38절을 여러 번 읽은 다음 그 현장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정리해 보라.

32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쓸개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 35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거기 앉아 지키더라 37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2군인들이 나가다가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군인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33그들은 골고다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골고다는 ‘해골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34군인들은 예수님께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맛을 보시고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35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36그리고 거기 앉아서, 예수님을 계속 지켜 보았습니다. 37그들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 예수다”라고 쓴 죄패를 걸어 놓았습니다. 38그 때, 두 강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쪽에, 다른 한 사람은 왼쪽에 매달렸습니다.

 

 

 

2. 십자가가 얼마나 처절하고 저주스러운 사형 방법인지에 대해 여러 자료를 가지고 조사해 보라.

 

 

3.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이 우리에게 씌운 저주를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무에 달린 사람은 다 저주를 받은 것이다.”

 

 

 

4. 마태복음 27장 46절에서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절규하셨는가? 그리고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신 것을 가장 괴로워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참고, 요한복음 8:29)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오후 3시쯤에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입니다.

 

 

‧ 요한복음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언제나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하므로, 그분은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5. 평소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예수님이 지금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라. (참고, 마태복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리고 나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제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길 원합니다.”

 

 

 

6.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외치신 말씀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렇게 선언하셨을까?

‧ 요한복음 19:30 (참고, 요한복음 17:4; 사도행전 13:29; 로마서 3:24, 25)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고개를 아래로 떨구시고 운명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되게 하였고, 아버지께서 제게 하라고 주신 일을 완전히 행하였습니다.

 

 

‧ 사도행전 13: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그들은 예수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대로 예수님께 행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두었습니다.

 

 

‧ 로마서 3:24, 2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셨습니다.

 

 

 

7. 우리의 구원을 위해 왜 피 흘림이 절대로 필요하였는가를 다음 성구를 가지고 말해 보라.

‧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몸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제단 위에서 너희의 죄를 씻는 데 쓰라고 피를 주었다. 피가 곧 생명이기 때문에 피로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이다.

 

 

‧ 히브리서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율법은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해지며 피흘림이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다고 말합니다.

 

 

‧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다음 날, 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8. 예수님의 죽음이 어느 정도 완전한 효력을 가진 것이었는가를 히브리서 10장은 너무나 확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1) 구약 시대의 제사는 어떤 점에서 불완전하였는가? (1, 4, 11절)

1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4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11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절 율법은 앞으로 오게 될 좋은 것들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참된 것의 완전한 모양이 아닙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해마다 똑같은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제사를 가지고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완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4절 그것은 황소나 염소의 피로는 죄를 깨끗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1절 제사장들은 매일 제단 앞에 서서 맡은 일을 행합니다. 그러나 그 제사들은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2) 예수님이 자기 피로 드린 제사는 어느 정도 완전한 것인가? 다음 구절들을 정리하고 그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라.

‧ 10절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몸을 드리신 제사를 통해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 12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위해 단 한 번의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14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한 번의 제사로 그는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 18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런 죄와 악한 행동을 용서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위한 제사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요약

 

 

9.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가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모든 죄가 다 용서받았다는 의미요, 그 용서가 영원토록 유효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아무 죄를 찾을 수 없도록 하신다는 말이다. 이 엄청난 은혜가 정말로 믿어지는가?

 

 

10.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가장 최종적인 사랑의 표현이었다. 이것을 로마서 5장 8절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11. 당신이 십자가상의 예수님 앞에서 가슴이 메도록 감격한 일이 있는가? 그때의 일을 회상하여 보라. 그리고 요즘에도 그 감격이 지속되고 있는가?

 

 

12.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이 바뀌고 생활도 달라지는 것이 정상이다. 어찌 예수님의 은혜를 모르던 때와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십자가의 사랑이 당신의 삶에서 일으킨 변화가 무엇인가?

 

 

 

 

교리 요약

 

‧ 예수님은 죄 없는 몸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저주를 받으셨다.

‧ 그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었다.

‧ 그의 죽음은 율법이 정한 모든 저주의 형벌을 다 담당한 죽음이었다.

‧ 그의 희생은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어서 다시는 죄를 위해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

‧ 그의 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 그의 죽음으로 그를 믿는 자는 모든 죄의 형벌을 면제받는다.

‧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인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이유로 유대 민족을 비판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실제로 유대인을 비방하고 박해하기 위한 정당한 근거로(과거에 이런 적이 있었다), 혹은 반유대주의의 정당한 근거로 이것이 사용되는 것은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반유대주의적 편견을 피하는 길은, 다른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음을 덧붙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도들이 그 상황을 바라본 방식이었다. 사도들은 헤롯과 빌라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예수를 거스려 모의했다고 말했다(사도행전 4:27).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바로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 역시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등을 돌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기 때문이다(히브리서 6:6). 우리 역시 유다처럼 탐욕으로 인하여, 대제사장들처럼 시기로 인하여, 빌라도처럼 우리의 야망을 위하여 예수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라고 오래된 흑인 영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렇다.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고 대답해야 한다. 단순히 구경꾼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음모를 품고 계획을 세우고 배반하고 흥정하고 넘겨주어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모든 일에 참여한 유죄의 가담자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빌라도처럼 손을 씻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빌라도의 시도가 헛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시도도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우리를 위한 어떤 것으로 (우리를 신앙과 경배로 이끄는) 보는 것에 앞서, 우리는 십자가를 우리에 의하여 벌어진 일로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는) 보아야만 한다.

 

- 존 스토트 -

 

 

출처: 제자훈련Ⅱ -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