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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목사(副牧師)사모의 고통

맑은샘77 2013. 7. 6. 13:35

부목사(副牧師)사모의 고통


부목사는 자신이 목회는 하지만 소신 것 할 수가 없고 당회의 정책과 당회장의 계획에 따라 있는 힘을 다하여 협력하며 교회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는데 어느 교회에서는 팀(team)목회라고도 하고 분할(分轄)목회라 하여 서로 전공분야에 맞도록 일을 분담하여 그 일에는 타종을 불허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각자가 맡은 일을 하면서 당회장 목사나 부(副) 목사의 거리감과 차별 없이 즐겁게 목회 하는 일들도 있지만 그와 같은 경우는 흔하지는 않고 대부분 당회장 목사의 지시를 받아서 일하는 제한된 권한 안에서 일하는 것이다.


부(副)목사의 할 일에 대하여 헌법에 명시하기를 "부목사는 위임목사를 보좌하는 임시 목사니 당회의 결의로 청빙하되 계속 시무 하게 하려면 당회장이 노회에 청원하여 승낙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 정치 4조 4항).
이렇게 그 권한을 법적으로 명시해놓았으니 그 이상 더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 없고 목회를 하면서도 목회인지 목사가 목사의 보좌인(補佐人)인지 때로는 자신도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 어서 속히 교회를 담임하여 소신껏 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없다고 하면 이는 양심을 속이는 거짓말 일 것이다.


부목사의 위치가 그렇다보니까 사모님도 처신하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얼마나 어려운지 매사를 삼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 아니하고는 그 위치에서 마음 편하게 견디기가 어려운 것은 이런 저런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목사 사모는 당회장목사 사모와 같이 입이 있어도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없고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나서 대화도 하기가 쉽지 아니한 것은 누가 무엇이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혹시라도 실수하여 자신의 남편인 부목사가 곤란한 처지에 이르지나 아니할까 항상 마음 조아리는 생활은 연속이고 긴장을 풀 수 없어 사람들의 눈치보는데 급급하여 숨도 크게 쉴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이 생각하고 지낸다.

당회장 목사님의 사모가 인격적으로 훌륭하신 분이면 긴장이 풀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분이면 성도들과의 대화도 아예 생각도 말아야 하고 혹시 성도들이 무엇이라도 관심을 보이는가 싶으면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모습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무슨 내용을 담고 쳐다 보는 것만 같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불안한지 자신도 알 수 없는 불안한 감이 드는 것은 혹시라도 남편에게 누를 끼칠까 두려운 마음에서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회장 목사님과 관계가 원만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더욱 숨도 크게 쉴 수 없고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매우 난처할 때가 있는데 목사님들과의 문제인데 왜 사모가 불안하여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지 이유는 간단하다.
또 안정된 목회를 하지 못하고 자리를 옮겨야하는가 아이들도 학교에서 학우들과 겨우 정이 들어 이제 학교 가기를 즐겨하고 나름대로 친구도 사귀어 학교생활에 적응하여 안정을 찾는가하였더니 또 그 안정이 깨지지나 아니할까 걱정스럽고 불안하기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모님을 만나서 어떻게 말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목사님들의 일이라서 아녀자가 나설 수도 없고 정말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데 남편인 부목사는 투덜대며 정말 속상해서 못하겠네 그 한 마디가 아내인 사모에게는 큰 걱정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남편이 알아 줄 리가 없지만 정말 불안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인간이고 인간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로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문제가 간단할 수도 있고 복잡해 질 수도 있는데 당회장 목사님은 교회 전체적인 책임을 맡아서 일을 하다보니 부목사님의 도움이 절대적이고 부목사님은 당회장 목사님의 배려와 격려가 절대적인 이해가 맞물리는 미묘한 관계라 당회장 목사님은 나도 과거에 부목생활을 해보았으니 하고 이해하면 되고 부목은 나도 언제인가 당회장이 될 때를 생각하고 이해하면 아무 것도 아닌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교회가 근심하도록 문제가 확대되기도 하는 때도 있으니 고통스럽지 않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당회장 목사님으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을 때는 심적 고통이 커서 많은 눈물을 흘리는 때가 더러 있는데 특히 큰 잘못도 없이 필요 이상으로 당할 때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들을 때의 고통은 그 중량이 무거워 견디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특히 임지는 없는데 은근히 떠날 것을 바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속으로 저런 분이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가하는 생각도 해보면서 마음이 많이 상해도 말도 못하고 약간이라도 표시를 한다면 목회 앞길에도 큰 지장을 초래하게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는 그 심정은 누구도 이해 못할 고통이다.


물론 부목사님들로 인하여 당회장 목사님께서 심적 고통을 당하는 일도 보통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데 몇 분들의 잘못 때문에 모든 부목들이 한결같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아니하고 분통이 터질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되는 것도 있는데 어찌하여 부목이 원목을 괴롭게 할 수 있으며 원목의 목회에 지장을 주느냐하는 점에서는 그와 같은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오죽하면 부목사를 모시지 않겠다고 하고 정치적으로 원목이 나가면 부목들도 모두 나가는 것으로 제도를 만들겠느냐 하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부목들이 알지 못하는 원목들의 고충이 있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선입견에서 모든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보면 파랗게 보이듯이 같은 맥락에서 원목이 부목을 보면 협력자가 아니고 모두 해롭게 하는 자들로 보이기 마련이니 깊은 사랑을 주지 아니하고 사무적으로 대하며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아니하며 부목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을 주시하여 보는 불편한 모습을 보고 살게되는 것이 바로 부목들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심할 때는 어떤 부목은 목회자체를 그만두는 일까지 생기고 있으니 이래서는 주의 일을 하는 주의 종들로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할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는데 피차가 자기의 위치를 지켜서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여 교회가 부흥되도록 함이 옳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행정권도 없는 부목은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서러울 때가 많아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소리 없이 우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는 사모로서 정말 괴롭기 짝이 없다.
그리고 당회장 목사님의 사모는 당회장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부목사 사모에게 대할 때는 같은 여자로서 또한 같은 사모로서 선배와 연령이 많다는 점에서는 존경하고 섬길 마음이 있지만 부목사의 부인으로 대하며 하대(下待)하는 것을 볼 때는 속이 상하는데 아무리 후배라고 해도 인격적인 면에서 대해주면 존경할 마음이 생기지만 당회장 목사님의 사모니까 그렇게 대한다는 것은 도무지 인해가 가지 아니하는 부분이다.
군대가면 같은 장교인데도 계급이 좀 더 높다고 해서 계급이 낮은 자의 부인은 상관의 부인에게 상관을 모시듯 하는 것이 맞지 아니한다는 것은 남편이 상관이지 그의 아내도 상관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내도 상관과 같은 행세를 하며 계급이 낮은 장교의 부인을 부리는 것은 올바른 처사라고 할 수 없다.
그래도 하급장교의 부인이 그렇게 하는데는 계급도 계급이지만 남편의 진급에 영향을 줄까하여 그 수모를 참아가며 종이 주인을 모시듯 하지만 마음에서 울어나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어 억지로 하는 것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군대와 교회는 엄연하게 다른 면이 있는데 그것은 군에는 계급사회이기에 그렇다고 치더라도 교회는 사랑의 단체이고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기에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하였다(요13:13-17 마20:28).
여하간 인격적으로 수양이 덜 된 분들을 당회장으로 모시는 부목들과 사모들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는데 이는 당해보지 아니한 사람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