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달윤목사의 목회철학 "본질은 수호하고 비본질은 양보한다."
이글은 아멘넷에 올려진 글인데 본문과 댓글을 같이 읽으며 생가하여 보기로한다.
장 목사는 1977년 무궁교회 부임하여 2007년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있다. 저서로 <성공적 목회를 위한 목사 처신법>, <초임 목사와 부목사의 성공 비법>.<부목사 처신법과 목회 상식>,<성공적 목회를 위한 사모학>등이 있다. 다음은 장 목사가 아멘넷 자유게시판에 올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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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은 “나의 철학은 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간단하면서도 에디슨의 위대한 업적을 압축시킨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초등학교 3년 수학밖에 못하였지만 1,300개의 특허를 내었고 3,400권의 노트를 남겼다.
나의 목회철학을 말한다면 종으로서 섬기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목회철학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도 가서 이같이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시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목회철학인 동시에 나의 목회철학이다. 모든 목회자들이 공감하는 철학이다.
1. 본질은 수호하고 비 본질은 양보한다.
나는 섬기는 것이 나의 목회철학이다. 섬기는 목회철학을 더 구체적으로 논한다면, 본질(교리=사도신경)은 수호하고 비 본질(교리 외에 전부)은 설득해서 안 되면 전부 양보한다. 그러면 상대는 기분 좋아진다.
1) 본질과 나의 자세
본질은 생명을 걸고 수호해야 한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비 본질은 설득해서 안 되면 불만스러워도, 신경질이 나도, 상대가 미워도, 상대의 차선을 전부 수용한다. 그러면 목회는 평탄하고 물과같이 흐른다.
2) 교회싸움 원인의 99.9%
목사들이 장로들과 갈등하고 싸움을 벌이는데 정확히 따져보면 99.9%가 非 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시비하고 갈등한다. 나의 최선을 설득해서 아니 되면 고집 부리지 말고 상대의 차선을 순리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다. 그러면 갈등할 일도 싸울 일도 별로 없다.
고집 부리고 싸운다고 교회가 더 발전 하고 더 빨리 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다. 싸우고 갈등하면 더 후퇴하고 흩어지며, 목회자는 스트레스에 걸려 지치고 병에 걸려 쓰러진다. 나는 노자의 물 철학을 좋아한다. 목회도 한 평생 물처럼 하였다. 물은 언제나 자기 모양이 없고, 부딪치지 않고, 돌아가고, 밑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목회는 승리한다.
3) 목회자의 생활자세
일반적인 생활 자세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언제나 높여 주는 것. 내가 먼저 식대 지불하고 대접하는 것,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인내하는 것, 욕심을 버리는 것, 정직과 진실로 강단에서 말한대로 강단아래서 사는 삶을 보이는 것,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를 존경하고 칭찬을 많이하는 것(칭찬은 돈 안드는 수표이며 괴력을 낳는 능력이 있다. 머슴을 칭찬하면 정월 초하루 날도 나무하러 간다고),
모든 성도들에게 평등한 인정과 관심을 갖는 것, U메세지(상대를 책망)가 아니고 i메세지를(자신의 잘못과 부족을 고백)하는 메세지, 나를 괴롭히는 자를 내색 않고 품어 안고 끝까지 끌고 가는 것, 목회는 고쳐서 가는 것이 아니고 천국 문앞까지 끌고가는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고쳐서 끌고가려다 자빠지고 부러지고 피투성이가 된다.
본능적 욕심은 있지만 돈에 대하여 초연한 자세를 가지면 존경을 받는다. 목회자들이 돈 때문에 추하게 보인다. 돈때문에 추하게 보이면 존경받지 못한다. 요즈음 은퇴시에도 돈때문에 평생목회를 추하게 종지부를 찍는 자가 가끔 있다. 대소 교회를 막논하고 돈에대하여 (사심)초연하면 존경을 받는다. 돈에 대하여 지저분 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4) 나의 목회철학에 나를 복속 시킨다.
안병욱 교수는 인간은 좋은 인생관을 가지면 좋은 인생을 살고 나쁜 인생관을 가지면 불행한 나쁜 인생을 산다고 하였다. 나의 인생관은 나의 인생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것이다. 목회자도 어떤 목회철학을 갖는가가 중요하다. 목회철학은 그의 목회 그릇이요, 목회 양식이요, 목회 건축의 설계도 이다. 건축은 설계도에 의하여 설계도 대로 지어진다.
호주에 상징인 음악관과 마찬가지로 목회도, 그 목회자의 목회철학대로 목회하고 그의 목회철학 그릇 크기만큼 목회를 한다. 나는 나의 목회철학과 설계도에 나를 복속시킨다. 나의 목회철학은 낮아지고 섬기라는 예수님의 목회 철학이다. 예수님 목회철학에 나를 복속시킨다. 나는 나의 권위는 없다. 그러나 권위가 있다면 교인들이 세워주는 권위뿐이다. 말 한마디 하면 전 교회가 움직이는 권위이다.
장로들의 신발을 돌려준다. 연배의 장로 평신도 앞에서 내 앞에 먼저 오는 밥과 국을 그의 앞에 먼저 놓게 한다. 나보다 20세 이상 성도들에게 세배한다. 이것이 우리의 예절이다. 개업하는 성도 집에 가서 그냥 주는 물건(선물)을 반드시 다른성도와 같이 값을 지불하고 가져 온다. 그냥 준다고 값을 지불 않고 가져 오는 것은 상식적으로 무례한 행위이며 상대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5) 나는 하나님의 종이요, 머슴이다.
루터는 말하기를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머슴이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언제나 설교를 하던 심방을 하던 당회를 하던 교회 주격을 만나든 하나님의 머슴이란 의식을 갖는다.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당회원들에게, 같이 심방하는 대원들에게, 여러분은 나에게 월급주는 사장이고 나는 월급 받고 일하는 머슴이라고 말하면서 한바탕 웃기도 한다.
강단에 올라가면 하나님의 머슴으로, 강단에 내려오면 장로들과 교인들의 머슴으로 생각하고 처신 하는 것이 일상 나의 목회 철학이요 삶이었다. 그렇게 처신할수록 교인들은 나를 더 높은 상전으로 대접한다. 그것이 성경적이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라".
예수께서 어린아이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도 아닌 어른을 내 아래 사람(下人) 취급 심리는 목회자의 본질을 이탈한 것이다. 아래사람으로 취급할때 돈 내고 예수믿는 상대는 얼마나 기분 나쁠까! 목회자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생각하여 보라.
최상자리(당회장 권위) 지키기는 힘들고 불안한 자리이다. 그러나 최하 자리에 내려앉아 지키는 데는 힘들 것 아무것도 없다. 그 이하는 내려 갈 곳도 더 멸시받을 것도 없으니까.
종은 상전이 시킨 대로 하면 상전은 좋아하고 기뻐한다. 바울의 목회철학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고전10:33.나와 같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하여-구원을 얻게하라.) 위로는 하나님을 기쁘게하고 아래로는 사람을 기쁘게 하여야 목회는 된다. 담임목사가 교인들이 기쁘게 하지 못하면 교회 왔다가도 교회를 떠나간다. 부교역자들이 전도를 아무리 해와도 담임이 기쁘게 하지 못 하면 떠난다. 그러면 닥달 받는 부 교역자들이 지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 목회자는 바울처럼 교인을 기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위로는 하나님이 상전이고 아래로는 장로들이 상전이다. 전 교인들은 엑스트라이고. 목회자는 주연(主演)배우이다. 영화나 연극에 승패는 주연배우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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