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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 바보의사(안수현)| ··─········· 서평좋은책

맑은샘77 2011. 5. 28. 02:08

그 청년 바보의사(안수현)| ·
자료바구니  2010.05.12. 22:49





저 자: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
출판사: 아름다운사람들


‘안수현’, 저는 그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에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대한민국 땅에 태어났고, 같은 91학번을 가지고 대학 생활을 했던 동기입니다(안수현 형제와 저는 90학번이 되어야 맞지만 그는 재수를 했고, 저는 호적을 1년 늦게 올려서 모두 91학번이 되었습니다.) 고대 의대 91학번, 내과전문의였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예흔’이란 헬퍼십 공동체를 만들었고, 위성방송에서 ‘안수현의 CCM 여행’을 진행할 만큼 찬양에 대해 해박했고 관심이 많았던 청년입니다.

글쎄요, 여기까지는 신앙생활 하며 열심히 공부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는 장경철 목사님의 ‘축복을 유통하는 삶’을 읽은 후 자신이 ‘유통업자’가 되기를 꿈꾸며 헌신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유통하다가 그 은혜에 물들어가는 삶입니다.” 또한 의대 본과 시절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네가 날 위해 시간과 마음을 포기한다면 내가 정말로 기쁘게 그 예배를 받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성적이든, 이성교제든, 사람들과의 관계든 무엇에선가 분명히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도 내게 그 부분을 주겠니?” 고민을 하던 그는 책상 앞에 이러한 글씨를 써서 붙입니다. “CORAM DEO”, 라틴어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기준이 선배나 어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크고 높으신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안수현은 연애도 성적(재수와 의대생활 1년 연장)도 재산도 포기하며 철저히 나누어주고 사랑하는 삶을 삽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친절하지 않아 불쾌한 경험을 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2년 전 두 주간 입원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너무나 바쁜 그들이 친절함까지 갖는다는 것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의사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사 안수현은 피곤함과 분주함으로 인해 친절한 성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한 번은 할아버지가 진료실로 들어오셨습니다. 옷차림으로 보아 형편이 그다지 넉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검사는 고사하고,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족 교포인 할아버지는 두 달째 월급이 밀려있었고, 보험도 없이 겨우 3만원을 만들어 무작정 병원 문을 두드렸던 것입니다. ‘돈이 없으니 다음에 보자고 하고 그냥 보내야 하나? 대충 약을 지어드릴 수도 없고…’ 이런 고민도 잠시, 청년의사의 손은 이미 지갑을 만지고 있었고 결국 신용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자신도 녹록치 않은 주머니 사정이지만, 해결되지 않은 고통 속에 지낼 환자를 생각하면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늘 마음 속으로 떠올리는 한 문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는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님의 조언을 마음에 두고 있었답니다.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의 최고 표현은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살기 위해, 안수현은 바로 지금 그 순간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난하고 마음 아픈 이웃을 사랑하며 산 것입니다.

그에게 어려웠던 고비도 있었습니다. 2000년 여름,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전국의 의사들이 파업을 결정했던 때였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던 일. 동네 병원들은 문을 닫았고, 대학병원의 인턴, 레지던트, 전공의, 교수들도 가운을 벗고 모두 병원을 떠났습니다. 의사들과 정부가 격렬하게 대치하는 사이에 환자들의 신음소리는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여러 논리에 밀려 위로 받지 못하고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합니다. 누구보다도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 병원에서 도움이 될 길과 하나님 앞에서 자유 할 수 있는 길을 위해 기도하면서 병원에 남는 길을 택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겼던 글입니다. 홀로 병원에 남은 청년의사. 하루 한두 시간 겨우 눈을 붙이고, 끼니를 걸러 가며 환자 곁을 지켰습니다. 엄격한 위계질서의 의사 사회에서 자칫 앞날에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자기 소명에 충실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소명’(Vocation)이 무엇일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저는 안수현 형제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손해 보는 것을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삽니다.

이 청년의사의 관심과 위로는 환자에게만 제한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환자의 가족들, 병원의 동료들과 일하는 분들, 그가 섬기는 교회와 자신이 인도하던 성경공부의 멤버들까지…. 자기 자신도 추스르기 힘든 의대생 시절부터 어두운 얼굴로 고개 숙이고 지나가는 단 한사람도 절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늘 메고 다니는 검은 가방 속에는 신앙서적과 찬양테이프가 준비되어 있어, 이것들이 필요한 사람이다 싶으면 누구에게나 지체하지 않고 선물하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평생 처음 의사로부터 받아보는 선물에 환자들은 감격했습니다. 책, 음반, 슬리퍼, 나무 십자가, 액자, 작은 케이크 등. 그가 나눈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도 모르게 한 헌혈이 30회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필요하다면 자기 시간도 기꺼이 내주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의 사랑에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님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고열과 감기증세를 호소하며 안수현 대위는 쓰러집니다. 심상치 않은 질병으로 판단되어 군대 밖으로 후송되었습니다. 며칠 전, 사격훈련지원을 나간 그는 보통 군의관들과는 달리 앰뷸런스에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와 일반 병사들과 함께 어울리며 풀밭에서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눴습니다. ‘유행성출혈열’은 그때 감염된 것 같습니다. 고대 응급실로 후송된 청년의사의 소식을 듣고 그를 사랑하는 선배, 후배 의사들이 중환자실로 모여들었습니다. 호전되는 듯했던 그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선배, 후배, 교수님까지 모두 달라붙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자 한 사람씩 지쳐서 중환자실 바닥에 너부러졌습니다. 의사들의 손과 흰색 가운, 병실 바닥은 그가 토해내는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며칠 밤을 새며 그의 침상을 지키던 3년차인 한 레지던트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선배 형의 사망선고를 내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2006년 1월 5일 밤, 그의 나이 만 33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나이였습니다.

그의 장례식장은 물밀듯 밀려오는 조문객들로 들어설 곳이 없었습니다. 동료들, 선후배들 뿐 아니라, 병원 청소하시는 분, 식당 아줌마, 침대 미는 도우미, 매점 앞에서 구두 닦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 한 분 한 분에게는 그 청년의사가 은밀하게 베푼 사랑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구두 닦는 분은 자신에게 항상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하는 의사는 평생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 거절했던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그 청년의사가 내게 남겨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흔치 않은 예수님 닮은 사랑과 나눔. 그래서 그가 남긴 삶의 흔적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가 봅니다.

이 책을 엮은 분은, 죽으면서까지 에콰도르의 미개한 민족에게 복음을 전한 ‘짐 엘리엇’의 글을 통해 고 안수현 형제를 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마른 막대기 같은 제 삶에 불을 붙이사 주님을 위해 온전히 소멸하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제 삶은 주의 것이오니 다 태워주소서.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주 예수님처럼 꽉 찬 삶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