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꿈-해석

[스크랩] 분석심리 Jung

맑은샘77 2007. 9. 12. 15:42
 

융의 분석심리학 ...............

                                          강사: 허정

1. 칼 융의 삶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의 보덴 호반 케스빌에서 태어납니다.

어릴적 밤이 무서웠다. 아버지가 목사였기 때문에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이 죽고, 남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질리도록 봤다. 그리고 집밖에서 어제 죽은 사람이 걸어 들어오려고 했다.

그는 대단히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우리가 기억의 그물로 건져낼 수 있는 최초의 경험들은 몇 살부터의 경험들인가? 융 은 놀랍게도! 자신이 유모차에 누워서 푸른 하늘과 황금의 햇빛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두 세 살의 기억 을 떠올린다. 그것도 팔십 세가 넘은 나이에 말이다. 아무래도 그는 망각의 기능을 상실한 운명을 지닌 사람이었나보다. 그는 역마살과 같은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이유 때문에, 소년시절에 많은 발작증세를 앓았다. 실로, 마음은 감수성의 크기만큼 세계에 민감하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느낌은 오히려 자기만의 내면의 세계로 발걸음을 인도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융에게 있어서 세계에 대한 고독은 내면에 대한 탐구로 전이되었다.


<정신분석의 탄생> 

 누구나 무의식이라는 말을 지금 너무 당연한 듯 사용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19세기에 이르러 피에르 자네와 프로이트의 등장으로 비로소 밝혀진, 근대의 산물이다.

정신분석은 심리학의 하나이지만 신경증과 정신병을 치료, 연구하는 정신의학에서 생겨난 학문으로, 정신이상이나 병적 상태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학문적인 심리학과는 구별된다.

정신분석의 원조는 프로이트이다. 하지만 그 뿌리를 것르러 올라가 보면 메스메르라는 것이 의학사의 통설이다. “이성의 세기”라 일컬어진 18세기에 태어난 메스메르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던 정신병과 치료를 종교에서 해방시켰다.

그의 이같은 사고는 제자 퓨이 제규르에게 계승되었고, 자기 요법은 최면술 치료로 바뀌었다. 이것은 19세기 정신병 치료법으로 크게 융성되어, 후에 “정신분석”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게기가 되었다. 이렇게 정신분석은 최면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 최면술 치료의 대가로 유명했던 샤르코의 제자,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최면술을 통해 인간의 마음에는 자신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로 ‘무의식’의 발견이다.

프로이트는 최면술이 아닌 질문과 대화를 통해, 증상이 호전되어 가는 것을 발견하고 점차 독자적인 치료법을 구축해 나갔다. 이것이 현대 정신분석학의 탄생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 자아, 리비도, 콤플렉스, 에로스와 타나토스 등을 가정, 신경증의 원인을 정신적 외상에서 찾았다. 환자가 이를 인식하면 증상이 사라진다는 “정신분석”을 창시한 다.

이러한 프로이트 분파와 프로이트에서 일찍이 분열해 나간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그리고 융의 분석심리학을 총칭하여 심층심리학이라고 부른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달리, 신경증의 원인은 정신적 외상이 아닌 환자 마음속의 권력 지향욕에 있다고 봤다.

또한, 융은 신경증의 원인은 성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이 발달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봤다.

프로이트의 자아연구가 계승, 발전된 것이 프로이트의 딸 A.프로이트와 헬트먼, 에릭슨에 의한 자아심리학으로, 이는 미국 정신분석의 주류가 되었다.

이와 대립되는 입장의 네오 프로이트파에는 설리번, 호나이 프롬 등이 있다. 한편, 영국에서는 대상 관계론이 발달하여 크라인, 갠트립, 페어벤 등이 나왔다.

융의 분석심리학은 야코비, 노이먼, 클라크 등에 의한 발달파와 볼프, 싱거, 해너, 야페등에 의한 고전파, 밀러, 힐먼 등에 의한 원형파 등 이 있다.

이같이 정신분석은 여러 가지 입장에 따라 분파가 나뉘어 있는 이제 본격적인 연구를 하는 초기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의 분파가 현대인의 마음을 완전히 분석할 수 는 없다. 융이든지 아들러든지 프로이트든지 그들 모두를 포함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겠다.

융은 일생동안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나를 평생 연구하였다. 그리고 동,서양적 요소를 그의 분석 심리학에서 볼 수 있어 우리에게는 더욱 친근하다. 그래서 본 강의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중심으로 전개하려고 한다.

특히나 융의 분석심리학은 인간의 꿈을 분석을 통하여 그 진수를 말하고 있기에 본 강의는 융의 꿈 분석에서 꿈의 의미를 통해서 융이 말하는 인간의 심리기재를 소개하는 방법으로 하고자 한다.


    꿈은 잠자는 동안에 인간 내부의 세계 즉 무의식이거나 혹은 잠재의식이 갖고 있는 정보를 우리들의 현실세계에 전달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일어나는 자연발생적인 상징 경험으로서 인간이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일련의 영상, 행동, 생각, 말, 그리고 감정으로 이루어진다.1)

    인간이 하룻밤에 꾸는 꿈은 네 번 내지 다섯 번 가량 꾼다는 사실을 가필드(Patricia Garfield)의 연구 결과를 통하여 알 수 있다.2) 이렇게 꾸게 되는 꿈의 시간은 일분도 안 되는 짧은 것으로부터 한 시간이 넘도록 지속되는 것도 있다. 이렇게 하루 동안에 꾸어지는 꿈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서로 다르게 각색되지만 대게 한 가지 의미의 정보를 전달하고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바로 꿈은 그냥 상상 속의 세계가 아니다.3) 이런 점에서 융은 꿈에 관하여 두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분명히시하고 있다. 첫째로 꿈은 하나의 사실로서 취급되어야하고, 꿈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이외에 어떠한 전제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로 꿈은 무의식의 일종의 고유한 표현이라는 점이다.4) 그렇다 융은 꿈이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했다.5)

    이런 점에 관해서는 프로이트 역시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꿈은 인간의 의식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보다는 깊은 무의식적인 욕망과 관계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꿈꾼 사람이 낮 동안 똑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밤에는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래서 꿈이란 전적으로 인간의 무의식적인 요구충족(wish-fulfilment)이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한다.6)

    인류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가 무의식의 발견으로서 인간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로 세상을 파악하고 행동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휠씬 더 많은 무의식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무의식에 대하여서는 결코 정확히 정의되거나 완전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벨기에의 분석심리학자 제프 드힝(J. Dehing)은 무의식은 손이나 발처럼 하나의 기관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어라 정의할 수 없으며 아직까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정신적 요소라 했다. 그러나 취리히를 무대로 활동한 융은 비록 무의식이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워도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7) 이와 같이 꿈을 분석하는 심리학자들은 하나같이 무의식과 꿈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꿈은8) 무의식에 관한 기본적 이해가 전재 될 때에 어느 정도 이해된다고 할 수 있다.9)

    무의식은 글자 그대로 의식이 아닌 것, 즉 의식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의식이 인간의 자아가 외부 환경과 접촉하면서 정신적 내용을 형성해 환경에 적응하거나 대처하는 능력이라면 무의식은 인간심연에 존재는 하지만 아직 의식화되지 않은 정신적 요소들과 한번 의식되었던 것이 어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의식의 세계에서부터 축출되거나 의식의 세계로부터 억압되어서 심연속으로 가라앉은 정신적 요소들이다.10)

    이런 내용 가운데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에 속한 것을 융은 개인무의식(personal unconscious)이라고 말했다. 반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인류가 원시 시대부터 경험해 왔으며 계속하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라고 분리하였다.11) 융은 집단무의식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꿈 해석에 있어 개인적 무의식보다도 집단무이식을 중요시함으로써 프로이트 보다도 다양한 방법으로 꿈을 해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융은 집단무이식의 내용들을 태고유형 즉 원형이라 하였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하였다.

◈ 마음의 구조

 심리학자에 따라 마음의 구조를 파악하는 방식도 다르다. 프로이트는 마음을 자아와 에스(초기에는 의식과 무의식)로 나누어 생각했지만, 융은 자아와 자기라는 사고 방식으로 말했다. 또, 무의식에 대해서도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융이 생각하는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함한 전체다. 마음에는 의식된 부분뿐 아니라, 의식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의식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프로이트지만, 융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개인적 무의식에 덧붙여, 보다 깊은 수준에 집단 무의식이 있다고 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융 심리학의 특징이다.

리는 통상, 자기 자신을 나라든지 자신이라고 인식한다. 여기서 나와 자신은 곧 자아이며,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줄곧 같은 인간이로 생각할 수 있는 자기동일성을 갖추고 있다. 인간이 보통 희로애락을 느끼고 사고하는 부분은 의식의 영역으로 자아는 이 의식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자아는 마음 전체의 중심은 아니다.

융은 이 같은 자아에 반해,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마음 전체의 중심 기능을 자기라고 한다. 자기는 마음의 중핵으로 우리들 마음 전체를 포괄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 이외의 또 한 사람의 자신이라 할 수 있는 넘버2의 존재다. 여러 가지 이론이 있겠지만 넘버1이 자아이고 넘버2가 자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융에 있어 자기란 자아를 초월한 것이다. 자기는 인간 마음의 기초 이며, 신화적 요소로 성립된 거대한 가능성으로 충만해 있다. 그가 환자의 정신분석을 통해, 마음의 기저에 있는 신화적 세계를 중요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융은 자아와 자기의 상호작용이 인격 발달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무의식이라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기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되물음으로써 평생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융은 스스로 평생을 통해 자기와 관계해 가면서 의식-자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

 



◈ 개인적 무의식과 컴플렉스

  컴플렉스란 용어도 심리학자에 따라 그 용법과 의미가 다르다. 우리들은 컴플렉스를 때때로 열등감이란 의미로 사용하지만, 융은 이것을 무의식 속에 강렬한 감정을 동반하는 이미지로 파악했다. 여기에서 무의식은 개인적 무의식이며, 그 사람의 경험과 체험에 관련된다.


융은 언어 연상 검사에서 감정가를 가진 컴플렉스를 발견했다. 이 검사는 정해진 백 개의 간단한 단어를 사용해, 검사자는 피험자에게 "지금부터 말하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단어를 가능한 한 빨리 말해 주십시오" 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피험자가 대답한 단어와 시간을 기록하고 이것을 두 번 실시한다.

실험을 반복하는 동안, 피험자는 몇 가지 단어에서 대답이 이상하게 더디고 기묘한 반응이 반복되거나 집착을 보이게 된다. 이들 단어를 조사해 보면, 단어 간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어 피험자의 단어 연상 배후에는 어떤 한 가지 감정의 응어리가 배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융은 이렇게 해서 떠오른 것, 즉 인간의 마음에 잠재하며 무의식 하에 갇혀 있는 것을 컴플렉스라고 불렀다. 이는 곧, 동일 감정에 의해 뒷받침된, 무의식 하의 심적 내용으로서의 감정과 이미지의 복합체다.

누구의 마음에나 무의식 속에는 어떤 종류의 감정적 응어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 의식의 통일을 깨버리거나 의식을 혼란케 하는 자립성을 가진다. 컴플렉스는 의식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상처나 싫은 기억의 반영이므로 흔히 나타나진 않지만, 우리들의 행동과 감정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컴플렉스에 지배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컴플렉스를 전혀 자각하지 않는 마음은 능동적으로 변화해 갈 수 없다.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인정함으로써, 심적 에너지는 오히려 창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싫고 괴로운 측면에서만 컴플렉스를 생각할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컴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1. 페르소나(persona)

    융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에 따르는 태도를 페르소나(persona:가면)라 했다. 페르소나는 원래 배우들이 공연할 때 쓰는 가면이나 탈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이 사회생활을 할 때 사회에서 그에게 어떻게 하기를 기대나 역할을 의미한다. 즉 방범을 돌며, 치안질서를 위하여 노력하고, 집 잃은 아이들에게 집을 찾아 주며, 교통사고 등 과 같은 경찰의 페르소나는 모두 그의 직업에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한 개인의 본성에 따른 것이 아니고 사회의 타협이기 때문에 페르소나와 과도한 동일시는 사람을  위축시키고 형식적인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페르소나와 그리 깊은 정도로 동일시하지 않는다. 건강하지 못한 동일시가 일어날 때에는 보통 꿈속에서 대립물이 출현한다. 이 꿈에 나타난 침입자는 바로 꿈꾼 자 자신이다.12) 이는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 중 자아와 외부세계의 접촉을 중재해주는 것이 페르소나이기 때문이다.13)


     2. 아니마(anima)와 아니므스(animus)

    페르소나가 자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해주는 것이라면 반대로 자아와 인간의 내면의 접촉점을 중재해주는 정신적 요소로 아니마 아니무스가 있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의 성격이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접들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남성들의 무의식을 분석해보면 여성적인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꿈에서 여성의 인물이나 이미지로 인격화된다. 즉 남성속에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anima)’라 한다. 또 이와는 반대로 여성의 무의식 속의 남성적 요소를 ‘아니므스(animus)’라 하며 이것도 꿈속에서 남성으로 인격화된다. 이와 같은 남성과 여성에게 있는 아니마 아니므스 가 각각 상대의 이성에 투사되면 첫눈에 반하게 된다.14)


     3. 쉐도우(shadow)

    사람의 무의식 속에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융은 그림자라 하고 하였다. 이것은 자신도 모르게 사신이 실수를 하게 해서 의식적 자아가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순된 행동을 하게 하는데 이 모순을 나중에서야 인식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로 전혀 자기가 모순을 감행하는지를 모르고 항상 믿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일고 있는 ‘자신’만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런 자신만을 내세우면 그 밑바닥에 있는 나의 어두운 부분을 모르게 된다. 그림자는 이처럼 ‘자신’의 어두운 일면으로 무의식적인 측면에 있는 ‘나’인 것이다.15)

    꿈을 분석해 보면 종종 꿈꾼 사람과 같은 성(性)을 지닌 미지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꿈에서 등장하는 미지의 인물은 꿈꾼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악하고 환영하지 않는 인물이다. 사실 자기 인격의 이런 부분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그 인물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부분은 실제로 드러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그의 불쾌한 행동방식을 탓하며 그를 비난한다. 그는 부당한 오해를 받는다는 생각에서 화를 내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다. 꿈속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극으로 꾸며진다. 꿈에서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본성의 한 측면을 보면서도 그 꿈이 자신과 관계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16)

    융은 그림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 중 첫째는 인생초기부터 살지 않았거나 아주 조금만 살았던 개인의 심리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개인그림자’라 했고, 둘째로는 ‘집단그림자’로서 이것은 집단무의식 속에서 다른 것들과 함께 들어 있는데 이는 나이 많은 현대인 또는 자아의 어두운 면에 해당한다.

    그림자가 개인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가 아니면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림자가 자아의 성격에 들어 있을 때와 집단무의식의 영역에 들어 있을 때에 따라서 각각 달라진다. 결국 자아와 그림자는 쌍둥이 형제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면에서 볼 때 그림자는 우리의 의식에 의해 거절되고 억압되어 온 심리의 심리적 내용을 ‘개인적인 어두운 면’으로 의인화시켜 나타낸다. 한편 집단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림자는 모두 사람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어둡고 취약한 면을 드러내게 된다.17)

    우리가 잘 아는 "지킬 박사와 하이든"이라는 책에서 보면 그림자를 매우 적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지킬 박사와 하이든’이다. 지킬 박사는 의사로서 모든 사람이 다 알아주는 선하고 모법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이 사람이 밤만 되면 지킬 박사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 ‘하이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온갖 못된 짓을 골라한다. 얼마나 포악하고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온 지역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살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사람 안에 완전히 이중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문학작품이지만 이 작품에서 인간의 의식적 인격과 무의식적 인격의 이중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으며 ‘하이든’을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융은 그림자는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림자는 우리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고 아름답게 하는, 유치하면서도 원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는 종종 파괴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심리적 발전을 중단시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림자의 현실을 자기 성격의 하나로 인식하고 이 사실을 항상 생각하면서 그림자를 구별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심리의 다른 상대물 들과 성공적으로 만날 수가 있다.18)

    인간이 자신의 표면적인 악 또는 열등한 면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것을 무의식의 세계로 몰아넣는 것이며, 꿈은 그림자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의식적인 태도를 보상한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행동하지만 꿈은 인간이 표현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다른 견지에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꿈은 그 자체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꿈에 나타나는 상징들은 본래 합리적이다. 꿈의 형태는 꿈꾸는 사람의 그림자와 같다고 말할 수이다. 그림자는 치명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꿈꾸는 자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궁극적인 잠재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꿈은 이러한 그림자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이므로 꿈 해석을 통하여 인간의 내외적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 방편이 제공되고 있다.19)

    그림자와의 만남에 대한 다른 상징들에는 회심의 주제가 들어 있다. 신약성서에서 ‘회개’로 번역되는 희랍어는 문자적으로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해서, 이것은 개성화의 제 1단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당신은 정반대의 방향-외부대신 내부-를 보기 시작하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당신은 새로운 차원을 개발하게 되고 그것을 표명하게 된다. 새로운 능력이 당신에게 작용하고, 당신은 ‘삶에 신기함’을 경험한다. 예수님은 너희는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더욱 풍성케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융은 이것을 개성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세례 의식과 많은 홍수 신화들은 개성화의 제 1단계에 대한 상징일수 있다 일반적으로 물은 무의식에 대한 상징이다. 세례에서 물 속에 잠겼던 사람이 그 물속에서 올라올 때, 그는 ‘다시태어 난다’고 한다. 이것은 의식이 무의식 속으로 내려가는 것과 그 결과로서 생겨나는 새롭고 더욱 충만한 삶을 상징한다.

    또한 물이 지표면에 있는 것들을 완전히 파괴하고 물러감으로써 한 사람, 유대-기독교 전통에서는 노아; 힌두교 전통에서는 마르칸데야(markandeya)만 남게 되는 대홍수 이야기들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개성화에 대한 한 상징으로 생각한다면, 홍수(무의식)에 의해서 파괴되는 것은 페르소나이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성인생활을 시작하는 데 쓰여 지는 일시적인 자기얼굴이다. 이 부분적인 자기는 (노아나 마르칸데야에 의해서 나타나는 온전한 자기가 나타날 때, 스스로를  해체하여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

    어떤 문화들에는 바다 밑으로 들어가 보물을 건져내는 잠수부의 신화들이 있다. 물은 다시금 무의식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보물은 새로운 자기로 볼 수 있다. 이 새로운 자기는 전에 묻어 두었던 자원들이 의식적인 삶에 적절히 표현되는 때에 발견된다.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는 개구리가 3일 동안 밤마다 방문한 처녀에 대하여 말한다. 그녀는 첫 번째 밤과 두 번째 밤에는 두려워 떨었다. 그러나 세 번째 밤에는 그 개구리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개구리를 자기의 침대 속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녀가 개구리에게 입 맞추는 순간 그 개구리는 잘생긴 왕자로 변했다.

    프로이트 추종자이자 그의 전기 작가인 어네트-존슨(Emest jones)에게 있어서, 그 이야기는 성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한 처녀에 대한 우의적인 설명이다. 융의 추종자인 조셉 캠벨(joseph campdell)에게 있어서, 개구리는 단지 신화에서 보물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용들과 다른 무서운 괴물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용들이나 무서운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개구리는 어둡고 무서운 그림자를 나타낸다. 보물은 진정한 자기이다. 키스는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림자를 자신의 진정한 자기됨의 운반자로서 받아들이고, 따라서 자신의 진정한 성격을 표명하게 되는 것이다.20)


        b) 열등기능과 그림자

    내향적인 사람에서 외향성은 열등하게 나타나며, 사고형에게서 감정은 열등기능이다. 이와 같은 열등기능은 의식에서 축출되어 그림자 영역에 들어가서 삶의 과정에 만은 문제를 일으킨다. 융은 열등기능은 발달되지 못하여 원시적이며, 유아적 특성을 가진다고 했다. 열등기능은 무의식속에 내재해 그 행사가 보상적이고, 강박적이고, 완전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열등기능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자기감정을 표현 못하다가 나중에 혼자 있을 때에 ‘아- 그때 좀더 확실히 표현할 걸’ 한다.

    이러한 열등기능은 술이나 약물에 취했을 때에 나타나고 꿈속에서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자기 등과 관련되어 인격화되기도 한다.21) 열등기능은 동물적 본능과 관계가 있어 삶에서 동물적 수준이 투어 나오기도 한다.


     4. 콤플렉스(complex)


    융을 연구하면서 콤플렉스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융의 사상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콤플렉스이기 때문이다. 콤플렉스라는 용어 자체는 프로이트가 심층심리학에서 제일먼저 사용하였지만 “외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현상과 같이 연구하는데 지나지 않은 반면 융은 무의식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는 생각에서 콤플렉스 자체를 연구하였다. 또한 프로이트가 의식을 바탕으로 연구한 반면 융은 의식의 작용을 능가하는 무엇이 있다는 가정 하에 연구하여 처음에는 감정을 띤 콤플렉스(feeling-toned complex)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가서 그냥 콤플렉스라고 하게 된 것이다. 융의 이러한 연구결과는 콤플렉스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다가 후일 분석심리학으로 지칭 될 정도로 융의 사상체계에서 그야말로 제일 중요한 핵심요소가 되었다.22)

    그러면 융이 말하는 콤플렉스의 존재는 무엇인가? 융은 환자들에게 언어연상 실험을 연구하던 중, 환자들이 어떤 특정한 단어 앞에서 그 단어와 연결되는 말을 하지 못하여 시간이 걸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피험자들을 통해서 융은 피험자들의 무의식적 정서가 반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런 현상은  개인무의식 속의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의 여러 내용들이 뭉치고 떼를 지어 한 그룹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이런 현상을 콤플렉스라 불렀다.23)

    이러한 콤플렉스는 인간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꿈속에서 흔히 출현하게 된다. 특히 꿈속에서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없는 인물이 자주 반복해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 인물은 바로 콤플렉스가 인격화한 것이라고 융은 보고 있다. 이렇게 콤플렉스가 인격화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혹은 없는 경우가 있는데, 되는 경우 즉 꿈이 꾸어지는 것은 억압하고 있는 의식이 다소 누그러질 때 의식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경험과 그리고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의식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험은 개인무의식에 저장되었다가 언제든지 의식으로 접근하는데 이때 꿈으로 꾸어진다고 했다.24)


     5. 원형(archetype)


    융은 꿈은 “꿈을 꾼 자의 도움에 의하여 해석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꿈속에는 꿈을 꾼 사람의 개인적인 것이 아니거나 혹은 꿈을 꾼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끌어낼 수 없는 요소가 자주 생긴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프로이트는 이런 것을 “고대의 잔재”라고 했다. 인간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고대로부터 유전적으로 전승되어진 유전적 마음의 형태가 있는데 이것을 원형이라든가 원시적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이런 점들은 신화의 심리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항상 비판을 받아왔다. 원형이라는 용어는 종종 어떤 명확한 신화적인 이미지라든가 모티브를 나타내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그래서 융은 이러한 오해를 만회하기 위하여 “원형이란 사실상 본능적인 경향으로서, 둥우리를 짓는 새의 충동이라든가 조직화된 집단을 형성하는 개미의 충동과 마찬가지로 두르러진 것이다.” 라고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였다.25)

        a) 집단적 무의식과 원형

    원형은 집단무의식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서 “원형”이란 그자체로서는 비어있고 형식적인 요소란 뜻이다. 집단적 무의식은 사람의 유전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먼 옛날부터 체험들이 침체되어 생긴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되어 모든 사람에게 존재한다. 이 유전은 본능처럼 인간에게 틀만 전수된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고난을 당할 때 구세주를 떠올리는데 그 것은 구주께서 인간을 고난에서 구원해 주었다는 커다란 틀이 기독교인들의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때 구세주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융은 틀인 원형(I archetype)과 내용물인 원형상(I imaged archetype)을 엄격히 구분했다. 즉 원형은 집단무의식에 속한 것이고, 원형상은 시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집단무의식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현대 기독교인들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님의 이미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정신적 어려움을 가져 올 것이다.26)

        b) 정신 및 물질의 원형

    개별화과정의 두 번째 단계는 “영혼-심상(soul-image)과 만나는 것이다. 융은 남성의 영혼-심상을 아니마라고 하고, 여성의 영혼-심상을 아니무스라 했다.27) 영혼심상과 만나는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어지면, 그때는 새로운 여러 가지 원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남성 속에는 정신의 원리와 여성 속에는 물질의 원리와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다소 무리하게 말하면 남성은 물질화된 정신이고, 여성은 물질이 정신 속에 가라앉은 모습이다. 그러므로 남성의 본질적인 요소는 정신이고, 여성에게는 물질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이, 잠재되어 있는 모습들을 의식 위로 끌어올리려고 한다. 즉 가장 거칠고 원형적인 심상을 가장 높고 다양하며 완전한 상징으로 보이려고 한다. 

    융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원형을 “마나-퍼스낼리티(mana-porsonality)”즉 지배적인 인격, 이라 불렀다. “마나”는 특별한 힘을 뜻하는 것으로 이것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다는 뜻이다. 또한 이것은 오만하고 허영에 들뜰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 지배적인 인격의 내용을 의식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자는 아버지, 여자는 어머니로부터 제2의 해방을 뜻하며, 이 해방을 통하여 개성화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28)

        c)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의 원형

    고대의 역사나 현대의 미개사회의 의식은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계시, 비결 전수)의 신화나 의식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 의식에 의해 젊은 남녀가 부모의 곁을 떠나 강제로 그 일족이나 종족의 멤버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이의 세계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원래의 부모의 원형은 상처를 입을 것이고, 이 상처는 집단생활에의 동화라고 하는 치료과정을 통해 치유되어야 하는데 이때에 집단과 개인과의 동화는 토템 신앙의 동물로서 자주 상징화된다.

    이렇게 제2의 부모를 위해 젊은이는 처음에는 상징적으로 희생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새로운 인생으로 출발하기 위해서 이다. 이러한 의식에서 원초적인 원형의 힘이 영웅 대용의 싸움으로 상징되는 방법으로는 아무래도 영원히 극복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게 된다. 즉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반드시 무의식의 풍부한 힘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다. 부족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이니에이션의 의식이다.29)

    종교적 의미에서의 이니시에이션의 원형적 패턴은 탄생이나 결혼 혹은 사망시에 특별한 예배의 방식을 요구하는 모든 교회의 의식 속에 내포되어 있다. 이니시에이션의 의식을 성공으로 이끄는 기본적인 태도라고 간주되는 복종의 테마는, 소녀나 부인들의 경우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녀들의 통과의식은 기본적인 수동성이라는 것을 먼저 강조한다.30)


     6. 자기(the Self)


분석심리학에서는 자아실현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아는 '알고 있는 정신세계', 즉 의식계의 주인이므로 '실현'이라는 말은 온당치 않다. 때문에 실현하는 것은 자아(ego)가 아니고 자기(self)가 된다. 자아는 의식의 중심이지만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은 전체정신(전체인격)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실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융은 인간이 인격의 성숙을 위해 자기실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개인의 삶이 그것을 요구할 뿐이며, 엄숙한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고 군자나 초인이 되라는 요구도 아니라고 한다. 바로 개인의 평범한 행복을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 자기와 자아(The Ego)기는 분명히 구분하여야 한다.

자아는 의식적인 마음이다. 이것은 의식적 지각, 기억, 사고 및 감정으로 되어 있다 자아는 인간에게 동일성과 연속성의 감정을 가져오며 인간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의식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융은 퍼스낼리티의 조직원리를 “자기”라고 하고 동시에 태고유형이라 했다. 즉 자기는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이듯이 자기의 중심은 집단무의식 속의 중심적인 태고유형이다. 자기는 질서, 조직, 통일의 태고유형이다. 어떤 사람이 그는 자기 자신 및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느낀다고 말하는 경우, 그것은 자기의 태고형이 그 구실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활기가 없고 불만족하며 심각한 갈등에 휘말려 산산조각이 날 것 같다고 느끼면, 그것은 자기가 그 일을 잘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자기(Self)”의 목표는 자기실현을 달성하는 것이다.31)

    좀더 부연하여 설명하면 융 심리학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무의식의 원형 가운데 하나인 자기(the Self)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데, 융은 인간의 정신의 자율성이 의식에서 분리될 수 있는 무의식적 내용들을 의식에 통합시키고, 정신적인 통합을 이루게 하는 초월적인 정신 요소가 있는데 융은 그 것을 자기라고 했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스스로를 가르칠 때 말하는 “자기”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자기”는 우리 정신의 중심이고, 정신을 통합시키는 내적인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는 출생 시로부터 더 큰 차원으로 통합하려고 자아는 페르소나와 동일시에서 벗어나 정신에 있는 그림자를 통합하며, 아니마/아니므스에 있는 부정적 요소들을 분화시켜 우리에게 있는 고유한 개성을 개발하여 드러내는 것이 목표라고 주장한다.32) 원형의 심상으로서의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에 있으면서 양극을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두 개의 심리조직으로 합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융은 자기인식으로는 개별화의 마지막과정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적인 현실과 외면적인 현실을 이루는 두 가지 영역과의 관계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때에 중간 영역을 찾아내고 모두를 종합할 때에 인간은 원만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자기를 알게 된다는 것은 의식적인 퍼스낼리티를 위하여 자기심리 속에서 중심을 옮긴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결과 적으로는 인생에 대해 완전히 다른 태도와 입장을 갖게 된다. 우리들이 자기인식과 그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에 대한 인식을 많이 해갈수록 집단무의식의 위에 깔려 있는 개인무의식은 더욱 줄어든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좁으며, 지나치게 민감한 자아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보다 넓은 객관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의식을 만들어 낸다.33) 이렇게 해서 생긴 자아는 객관성을 더욱 넓힌 자아가 된다. 자기란 의식 무의식을 포함하여 중심이며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자기란 의식적인 마음이며, 또한 그 모든 것의 중심이다. 융은 인격의 통합의 주체로서의 자기를 말했다. 사람의 정신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이들은 어느 정도 통합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큰 어려움이 없고 정신적인 문제가 없으면 이는 정신이 통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중년기의 위기는 정신적인 통합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상보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 반대되는 정신적 요소가 통합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정신이, 인생의 전반기에 사회에 적응하느라 균형이 깨어진 것에 대해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신호이다. 이때 무의식이 의식을 앞서 이제 살날보다 죽음을 준비해야 할 날이 다가옴을 알려준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신의 통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의 통합되지 않는 한 우리는 삶에서 결코 떠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은 중년의 위기를 전일성(wholeness)에의 부름이며,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34)

    인격을 통합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이 통합을 위하여서는 정신 내면에 지도 요인(inner guiding factor)이 있다. 융은 이 요소를 자기(the Self)라고 불렀다. 융은 자기는 집단 무의식 속에 있는 전일상(全一像)으로서 정신의 모든 요소들을 통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에게 정신 에너지를 집중시켜 자기가 작용 할 때 자기는 정신의 대극 구조를 점차 통합시켜야 한다.

    자기가 작용하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자신의 정신 전체를 자신 속에 있는 많은 정신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와 동일시해서 우리 정신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신 에너지를 자기원형에 집중시켜야 한다. 자기는 본래 그 속에 정신의 모든 요소가 통합되어 있는 원형상이다. 따라서 자기는 언제나 정신 에너지를 통합하려 한다. 이로서 자기가 스스로를 실현시켜 정신의 모든 요소가 통합된다. 그래서 융은 개성화라는 용어를 쓰기 전에 자기실현(Self realization)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스스로를 실현시킬 때 개성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우리는 정신 에너지가 우리 밖에서 있는 다른 어떤 대상을 추구하느라고 흩어지게 하거나 정신의 어느 한 요소에 사로잡히게 하는 대신 모든 정신 에너지를 자기에게 집중시켜야 한다.35)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생의 후반기에는 자아 중심적인(ego-centered) 태도를 버리고 자기중심적인(Self-centered)태도로 살고, 세상 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내면 중심적인 태도로 살고, 정취중심태도를 버리고 의미 중심적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전반기에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지라도 인생의 후반기에는 우리인생의 진정한 목적인 자아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36) 자아 통합을 이루지 못하면 개성화를 달성할 수 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는 그 어떤 내외면적 인간의 기재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융은 자기(Self)의 종교적인 성격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했다. 이는 사람의 개성화 과정에서 내적 지도 요인의 자기(Self)는 인간 정신의 중심(centre)이고 , 전체성(wholeness)을 나타내며, 초월적 요소다. Self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Self는 인간의 정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상이다. 그래서 융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어떻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이미지(image of God)를 自己의 투사라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잘못하면 오해하기 쉬운데 하나님이 자기 투사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미지가 자기의 투사라는 것이다. 융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너무 초월적인 존재라서 완전히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미지를 그리면서 예배드리는데, 그 이미지가 자기의 투사상이 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는 집단적 무의식 안에 있는 정신 요소이기 때문에 융에 의하면 자기는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God-within-us)이 되도 이는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37)

    자기는 인간의 정신적 요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구체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정신적인 요소들처럼 꿈, 환상, 신화, 설화에서 가장 전체적이고 중심적이며, 모든 것을 통합하고 치유하는 상징적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다.38)


     7. 만다라(mandalas)

    만다라는 구석기 시대부터 내려온 동양의 오래된 종교적 상징으로 마법의 원이라 불리는 것으로 심리적 통합에 대한 종합적인 입장을 가장 잘 나타내며 상징하고 있다. 만나다의 상징 의미는 전체를 상징하는 원 혹은 정방형이다. 원칙적으로 만다라는 전체적 개별화과정이 일어날 때만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자기 조절과 그것을 위한 심리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의식 속의 혼란을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할 때 항상 나타난다. 따라서 만다라의 목적은 혼란을 조화로 뒤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질서를 나타 낼뿐 아니라 만들어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다라는 서양인에게는 개인적인 현실과 외면적 현실을 통합하기 위한, 보다 완벽한 퍼스낼리티의 실현을 위한 노력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고 동양인은 “태극”이라 한다. 이렇게 만다라의 상징은 항상 자발적으로 심층심리로부터 나타난다.39)

    융은 의식에 사용되는 만다라는 대단히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타우트릭 요가에서 만다라 그림은 명상의 도구로 사용된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구의 중세 및 르네상스에서도 수많은 만다라가 보여 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서양의 만다라는 원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고, 네 지점에서 네 사람의 복음전도자나 이들을 나타내는 상징이 중심을 둘러싸고 있다. 융에 의하면 갖가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만다라에 대한 관심은 개개의 만다라가 갖는 상징의 의미와 서로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히 만다라의 상징적 의미는 독특한 “형이상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만다라 특징의 특징적인 점은 어디에서나 동일한 법칙과 규칙적인 배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근본이 되는 형태는 전체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원 혹은 정방형이다. 따라서 모든 만다라에서는 중심에 대한 관계가 강조된다.40) 융은 동양은 만다라의 발달과 그의 활용으로 인간 내면을 살필 수 있는 문화가 발전한 반면 서양은 만다라의 문화가 동양보다는 부족하기 때문에 내면적 경험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을 향한 이러한 통합의 개념은 물론 이름조차 붙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융의 심리학에서 태극의 개념은 대개 “자아의 원 속에서 돌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41)

    만다라(mandalas)들은 대칭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보통 사각형이나 원형이고 중심을 가진다. 어떤 만다라들은 순전히 기하학적이지만, 기독교  교회들의 원화창(圓化窓, rose  winsow)이나 인도 전통에서의 연꽃과 같은 만다라들은 그렇지 않다.  심리학적으로, 그 만다라들은 자기(自己)의 상징들로 기능할 수 있다. 즉, 완전하고 온전한 자기; 인간의 충만; 정신의 근본적인 질서; 대극적인 정신의 특질들이나 힘들의 통합에 대한 상징들로 기능할 수 있다.

    첫째로, 꿈에 나타난 만다라는 이미 정신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질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혼란을 일으키는 요소들을‘제거하거라’, 즉, 그것들을 정신의 다른 부분들과 조화시키라. 그러면 질서는 회복될 것이다. 둘째로, 꿈에 혼란스러운 만다라가 나타난다면, 이것은 정신의 무의식적인 부분이 가진  치유-온전하게 하는-의 능력이 일시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죄와 그로 말미암은 분노, 또는  열등감 등의 어떤 파괴적인 태도는 자연적인 치유능력의 흐름을 차단하고 있다. 그리고 만자 십자상(swastika)도 있는데 이 만자 십자상은 보통 생명, 또는 생명을 주는 창조적인 능력에 대한 상징이다. 종교 전통들에서 때때로 시계바늘 방향으로 도는 파괴적인 십자가상, 시계 바늘 반대 방향으로 도는 파괴적인 십자가상 사이의 구별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만자 십자상은 히틀러 및 나찌즘과의 연관성 때문에, 시계바늘 방향으로 움직이는 형태에서조차 악을 상징하기도 한다.42)


C. 개성화

     1. 개성화와 치유

    꿈 해석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최고의 치유는 “개성화”로 나가게 함이다. 융은 그래서 심리적인 발달 개념은 최종적으로 “개성화”로 보았다. 융은 개성화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원초적인 통일성을 회복하는 것이라 했다. 마치 “겨자씨가 겨자나무가 되고 말 망아지가 훌륭한 경주마가 되는 것처럼” 본래적인 전일성을 회복하는 것, 즉 각각의 체계가 다른 모든 체계들에서 분화되어 간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체계는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발달하여 간다. 이를테면 어린아이가 단순한 자장가나 놀이로 만족하지만 개성화된 어른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종교 문화 예술 등과 같이 복잡한 상징체계를 필요로 삼는다. 그러므로 인간이 개성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는 마치 나비가 허물을 벗지 못한 뻔데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융이 말하는 개성화를 이루지 않고는 결코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개성화 즉 꿈 해석을 통하여 통합을 이루면 참된 삶의 길을 얻고 본인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행복을 주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2. 개성화의 과정

    심리요법은 첫째로 개성화의 과정이다. 융은 환자의 꿈속에서 표현된 개성화의 과정(the process of individuation)을 추구하고 있다. 융은 개성화라는 과정을 도입하여 인간이 심리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개인(in-dividual) 즉 독자적인 통일체 혹은 전체가 되는 과정을 개성화 과정이라 불렀다. 이와 같이 개성화는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내적 세계를 통합하는 과정이다. 통합을 향한 행동과 반응은 성장과 발전 단계에 내재해 있는데 이것이 곧 개성화 과정의 이다.

    개성화되려면 자아는 자기를 만서 자기의 이끌림에 따라 자기가 지시하는 대로 인격의 통일을 이루고, 그 자신만의 독특성을 지닌 인격을 완성시켜야 한다. 개성화 과정에서 자아는 제일먼저 페르소나와의 동일시를 철회하고 페르소나와 자아를 분화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그의 그림자를 분화시켜야 한다. “그림자는 사람이 인식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해 버린 인격의 요소들 모두가 인격화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열등한 특성으로 또는 그의 인격과 공존할 수 없는 성향으로서 그 자신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고 융은 정의했다. 그림자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니다. 그림자는 그것이 악하게 된 것은 우리들이 그것을 좀더 세련되게 발전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억압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하고 우리 인격의 일부로 받아들려 통합해야 한다. 아니마 아니무스도 인식하지 못하면 원시적인 형태를 띠게 되어 외부에 투사되어 사람을 잡게 된다. 43) 

    개성화 과정은 한 개인이 타고난 자신의 본성을 되찾아 다시 실현시키는 과정을 의미하나 결코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아니라 한 개인의 독특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융은 말했다.


     3. 개성화 과정의 특성

    융은 개성화 과정의 특성은 첫째로, 개성화는 여러 가지 정신 요소들을 통합하는 과정이다. 둘째는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정신적인 요구에 대해서 각성할 수 있다. 셋째 개성화 과정은 개인의 인격을 변화시킨다. 넷째 개성화 과정은 어떤 종착점이 있을 수 없고 계속적인 인격발달 과정이다. 특히 용은 인간은 전체성을 가진 존재로서 통합을 강조하였다. “대극의 통일은 개성화 과정의 주제이자 목표이다.”44)

    이러한 개성화 과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무의식적 요소들을 의식적 요소와 통합하고 자기와 그림자를 통합하고, 페르소나와 균형을 이루며, 아니마/아니무스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이 둘을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열등기능을 전체적인 인격에 통합하고, 한 개인의 삶을 사회 전체와 통합시켜야 한다.45)

   꿈은  개성화 과정으로 나가도록 돕는다.

    콤플렉스, 그림자와 아니마/아니무스 이외에 꿈속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이미지다. 그런데 융이 말하는 자기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자기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self)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의식과 무의식 전체를 통틀 전체(totality)이다. 사람들의 자아(ego)가 의식의 중심이라면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 전체를 통튼 정신 전체의 중심인 것이다.

    융은 자기가 스스로를 실현시켜서 자신의 모든 정신적인 요소를 통합하는 과정을 개성화 과정(process fo individuation)이라 불렀다. 즉 인간 내면의 무의식적 요소를 인식하고 분화시켜 더 이상 분열되지 않는 온전한 사람으로 자신을 실현함이 개성화 과정이라는 것이다. 꿈의 궁극적 목적 역시 정신 통합한다.46) 꿈꾸는 자는 꿈을 통해 자신의 작용을 알고, 통합하여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인 온전성을 이루기 위해 꿈이 꾸어지기에 꿈꾼 사람은 중요하다. 즉 목회상담자는 이것을 이해하고 꿈꾼 자가 이런 통합을 이루도록 도와서 개성화의 과정으로 나가도록 꿈 분석을 통하여 온전한 치유를 이루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꿈 해석을 통해 성화로 나가도록 돕는다.

    융은 꿈의 해석에 있어서 무엇보다 꿈꾼 이의 연상이 중요하다 했다. 그래서 융은 꿈꾼 이의 개인적인 연상을 하라고 주장한다.47) 목회상담자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여 적극 꿈 해석 과정에 참여시켜 치유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꿈일기 작성하기가 있다. 꿈은 각성시에 곧 바로 기록하지 않으면 거의 모든 꿈속의 정보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즉시 기록하도록 해야 한다. 꿈일기는 꿈만 기록할 수 있는 노트를 만들어 일시와 장소 내용을 기록하고 해석 결과 함께 기록하도록 한다. 특히 건강, 감정, 정신, 등의 변화까지 기록하여 일종의 삶의 여행기처럼 하면 더욱 좋다. 융의 말처럼 연상법을 통하여 숨겨둔 소원이나 그림, 같은 것을 연상하여 기록하고, 꿈에 나타난 인물이나 사물들에 대한 감정을 적는다.

    그리고 해석의 단계에서는 “주요인물들과 대화하기”, “상징확장법”, “그림그리기” 등을 사용하면, 꿈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게 되어 내적치유를 이룰 수 있다.48) 특히 꿈 일기를 꾸준히 쓰다보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열린다. 꿈은 우리를 완전한 성화로 나가는데 도움이 됨을 알게 된다. 꿈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자신의 장점과 단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재능과 결점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보다 온전한 성화의 길로 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49)


출처 : 미션의 세상속으로
글쓴이 : 미가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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