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와 신사참배 어디까지 개입하셨을까? 일제는 1938년 이후 교회 입구에 ‘종교보국’과 ‘황도선양’을 부착하게 했다. 전쟁이 점차 확대되어 감에 따라 조선은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兵站基地)로 편입되어 갔고 당시 식민 지배에 냉담한 태도로 일관하던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합니다.1) ‘국체에 적합한 야소교’를 만듦으로써 기독교의 변질을 강요하여 그들의 침략 정책 수행에 이용하고자 했던 일제는 1939년 9월 신의주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8회 총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을 결성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조선 야소교장로회 총회 제28회 회록>에 수록된 ‘국민정신총동원 장로회 연맹’의 결성식 순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 결성식’(19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