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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목사와 신사참배

맑은샘77 2021. 8. 10. 17:09

한경직 목사와 신사참배

어디까지 개입하셨을까?

 

 

 

 

 

일제는 1938년 이후 교회 입구에 종교보국 황도선양을 부착하게 했다.

 

전쟁이 점차 확대되어 감에 따라 조선은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兵站基地)로 편입되어 갔고 당시 식민 지배에 냉담한 태도로 일관하던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합니다.1)

 

 

 

국체에 적합한 야소교를 만듦으로써 기독교의 변질을 강요하여 그들의 침략 정책 수행에 이용하고자 했던 일제는 1939 9월 신의주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8회 총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을 결성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조선 야소교장로회 총회 제28회 회록>에 수록된

 국민정신총동원 장로회 연맹의 결성식 순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 결성식’(1939.9.11)은 궁성요배, 국가봉창, 황국신민서사 제창으로 시작되어 홍종섭의 인도로 찬송가 32장을 불렀고 다음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제27회 총회의 총회장이었던 홍택기 목사가 기도를 신의주 제2교회의 담임목사이자 의산노회의 총대로 참여한 한경직 목사가 성경봉독( 13: 1-7)절을 맡았습니다.2)

 

이어진 선언식에서 27회 총회 부총회장이었던 김길창 목사는 우리들은 더욱 단결을 공고히 하여 국민정신을 총동원하고 내선일체 전 능력을 발취하여 국책의 수행에 협력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3)

 

 

 

장로교가 헌금해 만들어진 일본 전투기 조선 장로호

 

총회 직후, 각 노회들은 경쟁하듯 지역별 노회지맹을 결성하여 국민정신총동원 장로회 연맹의 지시사항을 수행하기 시작하였는데, 교회의 모든 조직을 국민정신총동원 운동의 추진을 위한 조직으로 탈바꿈시킵니다.4)

 

 

 

 

 

총회 이후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애국주일을 정하여 주일헌금을 전쟁 수행에 필요한 위문대를 제작하기 위해 노회로 올렸고 5) 교회를 통해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예배시간을 알리기 위해 사용하는 교회 종 뿐 아니라 각 가정에 있는 놋그릇[鍮器]을 교회를 통해 헌납하도록 했으며6) 교회가 일제의 병원으로 징발되거나, 주일에도 국민개로 산업확충운동에 동원되어 예배 시간에 제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 설립 임원 및 교구장들(45.5.7)

 

일본과 타협하거나 무릎 꿇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결국 한국교회의 민족주의적 색채를 배제하고 순 일본적 기독교로 바꾸기 위한 일본의 궁극적 목적에 따라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를 해산 당하고 1943 5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을 출범시키게 되었는데 개교회의 당회가 폐지당하는가 하면 일본의 기독교단에의 지시에 의해 주일학교와 주일저녁 수요일 저녁 예배를 폐지 당하기도 했습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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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8 3월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기독교에 대한 지도대책을 마련했고 1939 1 종교단체법을 공포하였는데, 이는 기독교를 일본 종교화 또는 신도화하기 위한 법적 조치였습니다.

 

2) 28회 총회는 한경직 목사가 맡고 있었던 신의주 제2교회에서 열렸고 신의주 제 1 교회 담임 윤하영 목사는 총회장으로 선출되면서 동시에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의 이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3) ‘동양의 평화를 확보하고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정신을 세계에 선양함은 황국부동(皇國不動)의 국시(國是)이다. 아등(我等)은 이에 더욱 더 단결을 공고히 하여 국민정신을 총동원하고 내선 일체(內鮮一體)의 전 능력을 발휘해서 국책 수행에 협력하고 또 복음 선전 사업을 통하여 장기 건설의 목적을 관철할 것을 기함 이라는 결의문과 함께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신사참배, 궁성요배, 황국신민서사 제창 외에도 한국교회의 민족주의적 색채를 배제하고 순정 일본적 기독교를 지향한다는 구체적 실천방안까지 제시된다.

 

4)한경직 목사가 소속된 의산노회는 1940 2 21일 윤하영 목사가 있었던 신의주 제1교회에서 의산노회지맹을 결성하였는데, 여기에서 윤하영 목사는 이사, 한경직 목사는 평의원이 되었다.

 

5) 1940 3 국민총력 경북노회 연맹에서는  매월 초 1일에 신사 참배할 것  매월 첫 주일은 애국 예배로 지킬 것  국가적 행사의 여행(勵行)  특별 집회에는 반드시 국가 의식을 행할 것 … ⑺ 시국 표어 황도 실천(皇道實踐),전도 보국(傳道報國)‘를 예배당 정면에 붙일 것을 각 교회에 지시한 것으로 보아 이것은 총회의 결의와 노회의 독려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6) 1942 5월 경북 노회에서 각 교회에 보낸 공문을 보면, ‘오노회(吾老會)에서는 관내 수백여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 및 철제 종각, 기타 철물을 일제히 헌납하기로 결의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7) 찬송가를 부를 때 믿는 사람들은 군병같으니’(389),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371), ‘십자가 군병들아’(390), ‘만왕의 왕 내 주께서’(138) 등은 일절 부르지 못하게 하였고, 어떤 찬송가는 일부 구절을 부르지 못하게 먹으로 지우기도 했습니다.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 라는 구절이 이른바 일제 신도(神道)의 창조 설화에 위배되고,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구절도 일본 왕의 영존 사상과 위배된다는 이유로 금지 당했습니다. 예배 시작 5분 전에는 일본 왕의 사진에 절하거나 동방 요배(東方遙拜)’를 하도록 강요했으며, ‘전몰 용사를 위한 묵념과 출전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의식을 갖도록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