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주기/중년

중년을 말한다 3

맑은샘77 2006. 10. 24. 13:29
[중년을 말한다] 위기의 중년 No. 205610 | Hit 261 | Date 2006-06-29

글쓴이 최영희(메타인지행동치료연구소장, 의학77)

‘중년’은 ‘마흔 살 안팎의 나이’라고 정의된다. 한자로 ‘가운데 中’자를 쓰는데, 원래 한자권에서는 이 시기를 ‘장년(壯年)’이라 불렀다. 요즘에는 평균 수명이 연장되어 점차 올려 잡는 추세이기에 인생의 중년기는 보통 45~65세로 잡는다. 스스로 인생의 중간에 와 있다고 보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정년퇴직하기 전까지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며 어쨌든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사람이 나이 40세에 이르면 뜻한바 아닌 다른 것에 혹하지 않으며(不惑), 50세가 되면 자기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知天命)”고 하였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중년기의 과제로서 ‘생산성(Generativity)’을 강조했는데, 이 시기는 인생이 안정되고 성숙한 시기로서 자기와 자기 세대만을 위한 삶을 넘어서서 차세대를 키우고 가르치며, 정신적이고 지적인 면에서 후계자를 만들어 내는 시기라고 하였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한자로 ‘무거울 重’자를 쓰고 싶다. 중년의 사람들은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률 높고 성인병에 가장 취약한 중년기

자신의 뜻대로 일이 잘 풀린 사람들에게는 중년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 분야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고, 남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자신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된다. 전체를 조망할 줄 알게 되고,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며, 어른스럽게 후배들을 이끌어 줄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매사에 자신을 증명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이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업적의 총화로 평가를 받는다. 중년기 중반의 주부들도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자녀 양육과 교육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사회와 사교에 눈을 돌리며, 이제는 경제적인 씀씀이도 자유로워져서 어딜 가나 최고의 고객으로 대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인생의 황금기를 만끽하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남성들은 상당수가 구조조정의 칼부림에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 아직은 일할 힘도 있고 의욕도 있는데 실업자로 지내기에는 아쉽고 억울하다. 뒤늦게 변화를 모색해 보지만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의 두려움에 압도되어 살아가게 된다. 때론 차라리 홀가분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자신보다는 남의 이목 때문에 더욱 힘들다. 

중년기 부부는 자녀들 대학입시 뒤치다꺼리가 큰 부담이 되고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중년 남녀는 머리가 빠지고, 주름살이 생기고, 배가 나오고, 전반적인 체력 감퇴 및 성적인 퇴보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률도 높고, 성인병에 가장 취약한 나이이기도 하다. 친구나 동료들의 죽음이 새삼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실감하게 되며, 자주 자신의 죽음과 남게 될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종신보험이나 질병보험 등에 관심을 보인다.

부부는 서로 상대방에게 육체적 매력을 덜 느끼지만 성생활은 오히려 느긋해져서 횟수는 줄어도 젊을 때보다 더 농도 짙게 즐기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지는 청춘이 아깝다며 늦바람이 나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남성들 못지않게 여성들에서도 이런 경향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중년기 이혼도 증가하는 추세이며, 심지어 ‘황혼 이혼’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연로한 부모 모시기도 중년들의 몫인데, 중년은 노쇠한 부모와 젊은 자녀 사이에 끼어 양쪽에서 오는 정반대의 요구를 놓고 갈등을 겪는다.

중년의 여성들은 대부분 폐경기를 맞아서 불면증, 열감, 심계항진, 성기감염, 골다공증 등과 함께 허무감, 우울, 자살 충동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은 모두 대학, 직장, 결혼 등으로 집을 떠나버려 텅 빈 집에 홀로 남아 허전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한 ‘빈 둥지 증후군’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이 시기의 여자들이 동창회, 계, 집회활동 등을 열심히 찾는 현상은 이해할만하다. 남성들도 갱년기 증상들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은퇴를 한두 해 앞두면 초조하고 우울해지며 노여움도 쉽게 탄다.

중년기 후반에 이르면, 자식들은 떨어져 나가는 대신에 손주들을 얻게 된다. 은근히 손주들에게서 자신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손주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물려주고 싶은 욕구가 일기도 한다.    

변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K씨는 50대 후반의 은행가로 요직을 고루 거치며 승승장구하여 오늘날 은행의 2인자가 되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심한 두통과 어깨의 결림, 어지럼증으로 고통을 받아 내과적 검사를 다 받아 보았다. 검사 결과 혈압이 약간 높지만 굳이 약물치료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 외에는 검사에서 이상 소견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막히고 질식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응급실로 실려 갔다. 검사를 해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별 다른 처치 없이 증상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후로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 그런 증상이 찾아온다면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자리 잡게 되었고 점차 매사에 자신감을 잃고 우울해졌다.

정신과적으로 이런 경우에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리게 된다. 정신과적 치료가 진행되면서 그는 이제까지 자신을 돌아볼 여유 없이 스스로를 혹사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결정은 자신이 내려야만 하고, 경쟁에서 져서는 안 되고, 살벌한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동하는 적자생존의 시대 속을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공황은 일종의 경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경고 신호를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비단 공황만이 경고 신호가 아니다. 경고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만성적인 우울이나 막연한 불안의 감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두통이나 불면증 또는 만성적 피로감이나 성적 욕구 저하 등의 생리적 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당뇨나 고혈압 또는 암으로 강력한 경고를 주기도 한다.

이런 경고를 받게 되면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를 돌아보며 나의 어떤 점이 이런 경고를 주게 만들었는지 찾아서 변화를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보다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남을 바꾸려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자신의 믿음과 해석들을 찾아 변화시키거나 수용하는 작업을 할 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른다. 중년기의 위기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수용하는 노력을 통하여 지혜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최영희_ 메타인지행동치료연구소장(의학 77)

 

 

2005 고대today 겨울 - 제 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