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주기/중년

중년을 말한다 2

맑은샘77 2006. 10. 24. 13:28

[중년을 말한다]

4050, 그들은 누구인가

No. 205611 | Hit 269 | Date 2006-06-29
글쓴이 황호택(동아일보 논설위원(영문 75))

전쟁터에서 제대 군인들이 돌아오면 베이비 붐 세대가 탄생한다.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인 ‘단카이(塊)’ 세대는 2차 대전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이 돌아온 1947~1949년에 태어났다. 미국에서도 2차 대전 후에 출산율이 급상승해 1947~1961년에 베이비 부머가 탄생했다. 한국전쟁 이후 1955~1963년 9년 동안 출산율이 가장 높았다. 이 기간에 태어난 인구집단(42~50세)이 810만 명에 이른다.    

한국전쟁 후의 베이비 부머, 4050 세대

한국의 중년, 즉 4050 세대는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남자들이 고향에 돌아와 뿌린 평화의 씨앗이다. 형제들은 5, 6남매가 보통이다. 단산을 하고 싶어도 50년대에는 피임 수단이 없었다. 이들 세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대한민국 정부는 인구폭발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50년대는 아직 산업화와 이농현상이 시작되기 전이라 이들 세대의 대부분이 농촌에서 살았다. 곤궁한 삶이었다. 초근목피를 하는 집은 없었지만 점심은 고구마로 때우거나, 아침에서 저녁으로 바로 건너뛰는 집들이 많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났다. 우리는 어른들을 통해 ‘검은 색안경을 쓴 까무잡잡한 얼굴의 육군 소장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정권을 차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시절 우리는 한 학급에 60명이 넘는 콩나물 교실에서 초중고교 시절을 보냈고 중고등학교 때는 국민교육헌장을 열심히 외웠다.

1975년 대학에 입학해 ‘미팅’을 두 번쯤 하고 300페이지짜리 교과서 진도가 50페이지쯤 나갔을 무렵, 고려대학교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큰 데모가 터졌다. 처음 해보는 데모가 두렵고 신기했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는 정의감이 치솟아 올랐다. ‘박정희 물러가라’ ‘유신독재 철폐하라.’ 4월 8일 교문 앞에서 2천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이날 오후 5시 긴급조치 7호가 고려대학교라는 한 학교를 대상으로 내려졌다. 학교는 언제 개강할지 알 수 없는 휴교에 들어갔다. 

우리 세대는 유신치하에서 머리도 제대로 길러보지 못했다. 장발을 하고 종로에 나가면 경찰이 파출소에 잡아놓고 강제로 머리를 깎았다. 여학생의 스커트 길이도 쟀다. 대통령이나 정치권력에 대해 말을 잘못하다 잡혀가면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았다.

우리의 대학생활을 빼앗아간 박정희 씨는 내가 제대를 넉 달 남겨 놓고 있을 무렵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18년 동안 우리 세대의 정치의식을 지배했던 박 대통령의 사망은 그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1980년 2월 나는 3년 군복무를 마치고 아직 채 기르지 못한 머리로 복학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민주주의가 꽃필 줄 알았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안개가 자욱했다. 4월부터 다시 데모가 시작됐다. 유신치하에서는 공포에 질려서 데모를 했지만 이젠 어디서든 아무 때나 데모를 해도 잡아가지 않았다.

5월 전국에 계엄이 확대되고 다시 교문 앞에 공수부대와 탱크가 섰다. 그해 5월 광주에서 흉흉한 소문이 올라왔다. 80년 5월 이후 우리 세대는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육하고 집권한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증오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중년, 더 이상 ‘이름 없는 세대’가 아니다

50대, 특히 70년대 학번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든 꽃’이다. 사회에서 뭐 좀 해볼 만한 나이에 80년대 학번인 386들이 치고 올라와 다 차지해 버렸다.  

조기 퇴직의 영향으로 3~10년이면 한국의 40, 50대들은 대부분 퇴직하리라는 예상이다. 우리를 향해 온갖 패배적이고 자조적인 별명이 따라다닌다. ‘사오정’, ‘낀 세대’, ‘쉰 세대’…. 우리는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구조조정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고실업 사회’에 처음으로 노출된 세대다. 자녀양육 및 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생애주기 단계에서 맞은 실업은 거의 숨통을 끊어놓을 만큼 치명적이었다.   

노후도 막막하다. 일본과 미국의 중년들은 연금제도가 잘 돼 있어 걱정이 없지만 우리는 노후 소득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영양과 의료가 좋아져 평균수명은 길어졌는데 일자리와 돈이 없다.

우리 세대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부양해줄 것 같지도 않다. 아내와 자녀를 미국에 보내놓고 오피스텔에서 밥을 끓여먹는 기러기 아빠들도 우리 세대에 생겨났다. 하지만 자녀는 투자에 비해 돌려받는 것이 빈약한 부실 보험일 뿐이다. 한국의 중년들은 과다한 자녀교육비 지출로 소비여력이 외국의 중년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칫하다간 허허벌판에 발가벗겨져 던져진 ‘고령화 시대’의 1세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4050 세대가 눈물만 흘리고 산 것은 아니다. 우리가 청장년일 때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렀다. 우리가 중년이 되면서 GNP 1만 달러를 달성했다. 우리가 직장을 잡아 돈을 좀 모았을 무렵에 마이카 시대가 열리고 강남이 생겼다.

우리는 아날로그 세대의 막내고 디지털 세대의 맏형이다. 우리 세대가 4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으로 경제활동의 주류를 이룰 때 PC, 인터넷, 휴대폰이 생활화됐다. 우리는 직장에서 컴퓨터를 처음 배웠다. 인구 1,000명 당 PC 보급 대수를 보면 1992년의 91만1,000대에서 2000년에는 460만2,000대로 인구 1,000명 당 97.9대의 PC 보유율을 보이고 있다.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되면 한국의 세대 간 정보격차는 거의 모두 해소되리라는 전망이다.

베이비 붐 세대의 소비행태를 질적인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매우 적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는 “교육 수준이 높은 층을 중심으로 상대적 비교에 익숙하면서도 합리적 선택을 하는 세대”라고 진단한다. ‘브랜드 파워’에 덜 민감하며, 저축에 보다 큰 가치를 두면서도 수준 높은 소비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맥주에 양주를 섞어 폭탄주를 마시고 주말에는 컨트리클럽에서 굿샷을 날리는 호사를 부려본 세대다. 최근 통기타 그룹의 콘서트나 독서시장의 주된 소비층이 4050 세대라고 한다. 한국의 4050 세대도 최근에는 수적 다수집단으로서의 잠재력을 스스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중년, 4050은 더 이상 ‘이름 없는 세대’, ‘의식되지 않은 집단’이 아니다. 이들 세대의 생존방식에 대한 탐구가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쟁터에서 귀향한 남자들이 뿌린 평화의 씨앗은 노령화 시대의 주역이 되어가고 있다. 수적 다수집단인 4050이 만들 새로운 사회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 될 것이다. 

황호택_ 동아일보 논설위원(영문 75)

 

2005 고대today 겨울 - 제 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