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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물설교 -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맑은샘77 2015. 3. 23. 23:53

인물설교 -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 이사야 41장 8-16절

 

지렁이는 동물들 에서도 아주 보잘 것없는 하등 연체 동물입니다. 더러운 땅에서 살며 흙과 찌꺼기를 먹고 삽니다. 지렁이의 용도는 그저 물고기의 미끼 정도로 사용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지렁이를 야곱의 이름과 함께 사용하여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교훈과 언약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님의 택한 선민이요 기름부음 받은 나라로서 한때는 막강한 국력으로 맹위를 떨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패역함 때문에 이민족의 압박과 고통에 시달리며 죄악의 수렁에서 헤매는 지렁이 같은 처지의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만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처럼 보잘 것없은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에게 훗날의 영광스러운 회복을 기약하고 계십니다.

1.성도의 궁극적 승리를 보장하신 언약입니다. 1)하나님의 백성이 종말론적으로 승리할 것 을 약속한 내용입니다.

이사야 41장은 전체는 이사야의 중재 없는 하나님의 직접적 말씀 선포로서, 그 대상에 따라 네 부분, 즉 이방 열국과 유다와 각종 우상들에 대하여 그리고 또 다시 마지막으로는 유다를 향한 말씀으로 분류됩니다.

한편 이사야 40장이 주로 바벨론 세력으로부터의, 유다의 구원이라는 수동적 측면을 다루고 있다면 본문이 포함된 41장은 이제 역으로 유다가 모든 나라를 완전하게 정복하리라는 구원의 저극적인 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이는 일차적으 로 메시야의 초림으로 새로운 복음 시대가 열렸을 때의 영적 승리를 의미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의 종말론적 승리를 노래한 이중적 예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예언이 궁극적으로,
우리 신약 시대 성도의 신앙 승리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본문의 교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2)종말론적 신앙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담대한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 죄악과 결탁하여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 중에 교인도 적지 않게 끼어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현대의 성도들이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사는 것은 종말론적인 승리에 대한 관심과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부패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도들은 긍극적으로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본문의 말씀처럼,

메시아를 통한 궁극적인 승리가 우리에게 안겨져 있음을 상기하면서 날마다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2.악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어 주시는 은혜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1)지렁이 같은 야곱이 타작 기계로 변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지렁이 같은 야곱을 타작 기계로 삼을 것임을 말씀하고 게십니다. 여기서 야곱은 이스라엘에 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 죄악과 부패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매맞고 볼품없는 지렁이처럼 되어버린 이스라엘 족속으로 하여금 미래에는 이방을 타작하는 날카로운 타작 기게로 세우실 것임을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타작 기계란 무엇입니까?

곡물을 수확할 때 쓰는 도구입니다. 추수할 때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해 내는 도구입니다. 지렁이처럼 보잘 것없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말적 추수 심판의 집행 도구로 쓰인다는 약속입니다.

이는 그 옛날 요셉이 종의 신분에서 국무총리가 된 은총 이상의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세상에서 비록 지금은 보잘 것없는 모습으로 살아가며 무시당하고 손해보는 처지에 있을지라도 훗날 예수님과 같이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고 왕 노릇할 자들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우리의 연약함을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어떤 성도들은 야곱 족속과 같이

지금은 볼품없고 연약한 한마리의 지렁이에 불과한 존재일지 모릅니다. 재력도 없고 권력도 없으며 아무런 가능성과 소망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지니고 있다면, 장래에 세상을 추스릴 강력한 탈곡 기계들로 세움받게 될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의 강함보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가난한 성도들은 그 가난 때문에 돈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며, 명예가 없는 성도는 그 처지 때문에 주님 주신 성도라는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고, 건강치 못한 성도는 오직 주님의 은혜만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의한 사자보다도 차라리 주님 날의 지렁이로 사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3.자기 변화에 대한 수고를 요청하는 언약입니다. 1)야곱의 신분은 쉽게 변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비천한 지렁이와 같은 야곱에게 훗날 메시야로 말미암아 강한 타작 기계가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비천한 상태는 금방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계속적인 이민족의 압박과 시련에 고통스런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16절)고 말씀하십니다. 이 같은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귀한 진리를 교훈해 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금시 모든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환경과 처지가 바뀌는 것을 기대한다면 어리석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그 신분이 바뀌어지기까지 많은 시련과 연단을 겪었습니다.

성도들도 야곱처럼 진리와 성령으로 연단받은 후, 신앙이 합당하게 성장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권세도 물질도 명예도 맡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지렁이 같은 처지를 탈피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하셨을 때 이 언약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 우상 숭배와 불의에 빠져 생활을 하다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게 됩니다.

오직 신앙의 남은 자 들만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회개하고 소망을 갖고 살았습니다. 지렁이란 결국 불신앙과 불의한 속성을 지닌 옛 사람의 상징입니다.

그 지렁이 같은 예사람의 속성을 하나님의 진리와 언약 안에서 벗어버리는 성도만이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는 오명을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렁이 같은 야곱 족속이 훗날에는 타작 기계와 같이 강력한 권세와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지렁이 같이 볼품없는 존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믿고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과 본문에 힘쓰는 성도는 타작 기계 같은 권세와 영광을 얻게될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통해 영광을 얻게 된다는 소망을 잊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야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야곱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12부족의,
조상들이 바로 야곱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렁이로 묘사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래 그들은 강력한 민족이었으나, 하나님을 저버림으로 징계를 받아 이제는 이방 민족의 억압에 시달리며 사는 보잘 것없는 족속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위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지금은 비록 약소국에 불과하며,

보잘 것없는 존재이지만, 훗날 메시야를 통하여 강력한 권세를 얻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얻게 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은 비록 야곱과 같이 비천한 모습으로 살지라도, 훗날에 메시야를 통하여 큰 기쁨과 영광을 얻게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도(聖徒)는 궁극적(窮極的)으로 최후(最後) 심판(審判)에서 구원(救援)얻는 축복(祝福)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딤후4: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습니다.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끝까지 인내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명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꿈돌이 동산
글쓴이 : 어전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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