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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맑은샘77 2015. 2. 24. 13:30

죽음의 수용소에서 | 040.사랑기쁨감사애환 피안의 새 |

 


빅터 프랑클의 저서 - 『죽음의 수용소에서 』



아침 면도를 하다가 문득 발병 초기에 읽었던 빅터 프랑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 생각났다. 

벌써 일년이 넘었으니 기억 속에서 멀어진 책인데 책장 어딘가에 깊이 꽂혀 있을 것 같아

면도를 마치고 책장을 뒤져서 이 책을 찾아냈다. 


사실 이 책 제목을 처음 접하고는 게오르규 신부님이 쓰신 『25시』 비슷한 아우슈비츠 체험글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과연 신문에 나온 서평대로 아우슈비츠 생활의 기록은 몇 퍼센트 되지 않고 대부분  수용소 생활에서 어떻게 왜 살아남게 되었는지 

당시 빅터 프랑클 자신의 행동 심리에 대해 자세히 논문 쓰듯이 적어놓은 글이었다. 


어찌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의 참혹함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저자는 그런 참혹한 생활의 단면은 다른 저자들이 적어놓은 글이 많으므로 

다른 각도로 자신의 생활을 해부하여 보여준 또다른 시각의 표현을 한 셈이다. 



그런데 왜 나는 면도만 하다보면 이 『죽음의 수옹소애서』라는 책이 연상되어지는 걸까? 

면도 - 거울 - 면도기 - 생활 - 죽음 - 아우슈비츠 - 빅터 프랑클 -  삶의 의지 

함축 요약하면 

면도 ------------------------------------> 삶의 의지 

이렇게 결론 지어지는 것일까? 


면도 ----------------------------> 죽음의 의지 (자살)

이건 아니겠지... 하긴 당장 사형장으로 사형 당하러 가는 사람도 감기약 먹고 간다고 하더니만... 

그렇게 하자면 삶도 죽음도 다 포함한 면도라는 행위에 대해 어떤 공통된 의미를 부여하여 

삶과 죽음을 내포한 인간의 어떤 세정(洗淨)의 행위라고 규정 짓고 글을 이어가보자. 




아우슈비츠 정문 - 노동은 자유를 준다는 황당한 사기글...




수용소에 끌려들어간 빅터 프랑클은 독가스실로 끌려 들어간 사람과 끌려들어가지 않고 사역을 하러 나가는 수감자의 

두 부류에 대해 유심히 살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두 부류를 나누는 독일 경비병들의 구분 기준은 단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수용소에 끌려 들어온 유대인들을 구분 짓는 조건은 바로 건강 상태.... 

바로 그 한 가지 조건이었다. 

이제 막 잡혀 들어온 유대인과 오랜 수용소 생활로 피골이 상접한 유대인과는 엄연히 시각적으로 구분이 되었고 

말라 비틀어진 오래된 수감자 가운데서도 용모가 단정하고 허리가 반듯하여 온갖 사역을 다 할 수 있는지 가름하여 가스실과 사역실로 

나눠서 걸어들어가게 한 것이다. 


일단 허리가 반듯하고 똑바로 걸으며 

얼굴의 용모가 단정하고 건강해 뵈면 가스실로 보내는 것은 당연히 보류되는 그런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서 프랑클은 선택을 한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둘 중에 당연히 프랑클은 사는 것을 선택했기에 

살기 위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했던 것이다. 

러시안 룰렛 게임같긴 했지만 그 것마저도 빈 공포탄으로 만들어버린 프랑클의 선택... 


언제 가스실로 끌려들어갈 지 모르는 그 참혹한 상황에서

독일 장교의 선택이 아닌 바로 자신의 선택으로 죽지 않게 되는 능동적인 진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차피 수용소 인원 모두가 죽는게 아니라면 

살아남는 그 누군가는 스스로 자기 삶의 진로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여기서 삶과 죽음의 진로를 스스로 만든다는 자유의지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한 프랑클은

살아남은 이후 장수하여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냈고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연구를 지속하며 

자신의 이론을 대학에서 가르쳤다. 


우선 프랑클은 살아남기 위해서 건강하게 보여야만 했다. 

아우슈비츠의 참담한 생활은 나중에 연합군이 진군하여 찍은 수용소 사진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전 수용소 인원이 그런 지경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건강하게 보이는 방법은 바로 면도였다. 


깨진 유리 조각을 감춰 거울을 만들고 깨진 사금파리를 마당에서 주워 면도를 했다. 

또한 걸음걸이도 언제나 똑바로 걷도록 이를 악물고 신체를 지탱했고 

침을 발라 머리를 가즈런하게 빗었고 찢어진 옷도 양말실을 뽑아서 단정하게 꿰메입고 다녔다. 


그렇게 버틴 덕분에 프랑클은 언제나 가스실로 끌려들어가는 행렬에서 제외 되었고

마지막 독일의 항복 순간까지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프랑클이 수용소 모든 인원이 예외없이 죽는다는 생각을 하였다면 

면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과연 자신의 생각대로 예외 없이 자기 자신도 가스실로 끌려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클은 살기를 선택했기에 살아 남을 방법을 강구한 것이고

도피할 길 없는 죽음의 손길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삶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명제도 바로 인간 자신이 선택하기에 따라서 

- 바로 자유의지 - 에 따라서 삶도 죽음도 결정된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암보다도 더 무서운 나치의 죽음의 손길조차도 

내 자유의지로 얼마든지 피하고 지나칠 수 있다는 것...  


내  자신이 어떤 것을 선택하냐에 따라서 

내 자유의지에 따라서 내 자신의 삶도 죽음도 결정되어진다는 것은 

극도로 평범하면서도 극도로 무서운 사실이다.  


그러니까 비참하게 삶도 죽음도 선택할 권리도 없이 숙명적으로 

죽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냐에 따라서 

내 인생도 달라진다는 아주 극히 평범하면서도 깊은 자유로운 의지...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의 노예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구분짓고 선택할 권리를 가진 인간의 자유의지...

이 얼마나 숭고한 선택인가. 


우리들은 어떠한가? 


처음 암 선고를 받고 친절한 병원 의사로부터 엄숙하게 여명 선고까지 부여받으면 

우리들은 병원 침대에 누워서 생각한다. 


『암에 걸렸으니 너나 없이 다 죽을거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10퍼센트도 안된다는데 

내가 그 10퍼센트에 들어갈 수가 있을까? 

이제 인생 종착역에 도달했으니 인생 마무리나 잘하고 정리하고 가야지...

내가 아는 대부분 환자들이 다 죽어가잖아... 희망이 없어... 그렇게 단단한 사람이  죽다니... 

나도 필시 죽고말거야... 어쩌면 좋아...  자신 없어... 온몸에 암이 퍼졌으니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밤새 생각해 본 결과 사람들은 이렇게 너나 없이 죽을 준비에 들어간다.  

바로 여기서 빅터 프랑클의 생각대로 따라가보자. 


내가 죽음이라는 몽둥이에 맞아죽는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죽음을 걷어차 버리고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나의 자유로운 마음과 생각을 저지하고 방해할 사람은 없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나 자신만의 선택을 누가 말릴 것인가. 


『비록 치명적인 암에 걸렸지만 난 안죽을거야... 죽을 수가 없지 암... 그렇고 말고... 

내가 누군데... 난 살기로 마음 먹었어. 죽을 생각이 없거든... 난 절대로 죽지 않아... 

그렇지만 여기서 어떤 방법으로 살아날 것인가?  살아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구체적으로 찾아보자...』


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 절대로...

옳바른 방법을 찾아 목표를 정하고 걸음을 옮기자. 

살 길을 더듬어 한걸음씩 방향을 잡아 가다보면 살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면도를 하다 프랑클의 깨진 유리조각과 사금파리를 연상한다. 


프랑클이 선택한 삶의 의지... 

내가 선택해도 될까요? 


암 선고를 받았지만 죽을 생각이 없기에 살 길을 찾는다. 

살 길을 찾아야 살 길이 열린다.  

아주 평범한 상식일 뿐이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가슴 가득히 차올라 꿈틀대기 시작하면 

활기차고 요란한 심장 박동소리가 이명으로 울리면서 외칠 것이다. 


『 그래... 네 삶은 바로 너의 것이야... 』


라고...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이 암에서부터 벗어날 것인가 궁리하면서 일상을 계획하고 실천하다보면 

서서히 그 계단 높이 올라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연히 신문 서평을 읽다가 만난 빅터 프랑클...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빅터 프랑클이 한없이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아직도 이 책을 안읽은 사람들은 꼭 한번 읽었으면~ 하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피안의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