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료/설교학

구약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케네스 J. 하웰

맑은샘77 2013. 7. 6. 16:15

구약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케네스 J. 하웰

 

"구약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어느 날 아침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와 나는 그날 아침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배운 것이 있는지 아니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로 좀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는지 서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둘의 대답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날의 설교는 예수께서 나사렛에 오셨을 때, 예수의 고향 사람들이 요셉의 아들이신 그 분이 이사야 61:1,2에 나오는 메시아 예언의 성취라는 예수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고 하는 누가복음 4: 13-30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그 본문을 읽으면서, 구약 예언의 성취가 예수의 사역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예수의 선포가 본문의 중심 내용으로서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나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으로 귀한 교훈을 받을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목사님은 얼마나 자주 인간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폐해가 발생하는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극복해야함을 강조하셨다. 본문 중에 그 중요성에 있어서 이차적인 이야기가 설교의 주된 초점이 된 것에 대해 나는 의아해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약 10년 전 주일 아침에 우리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경험을 많은 신자들이 반복해 겪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라는 관점에서 구약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크리스천들은 빈번히 구약을 읽으면서도 그 속에서 어떤 영적인 유익을 얻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구약을 읽을 때 참고할 만한 안내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많은 목회자들이 어떻게 해야 구약의 본문에 충실하면서도 회중들에게 은혜로운 설교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여기서 구약을 보는 우리의 영적인 시각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중요한 관점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소위 말하는 도덕주의자의 관점에서 구약을 읽는다고 말해도 아마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독서법은 구약에 나오는 사건들이 기본적으로는 이솝우화와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교훈을 얘기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책을 읽는 것이다. 따라서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우리도 그와 유사한 유혹에 직면했을 때 유혹을 물리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은 도덕적 용기의 상징이며 우리는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도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두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성경은 우리가 구약을 이런 식으로 읽으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종종 로마서 15:4과 고린도 전서 10:6, 11 말씀이 구약을 이런 식으로 읽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 구절들에서 사도 바울은 구약에 기록된 사건들은 우리에게 삶의 도덕적인 측면들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바울의 말이 구약을 도덕주의자의 관점으로 읽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둘째, 도덕주의자의 관점에서 구약을 읽는 것이 오늘날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인가? 나는 그런 식으로 구약을 보는 것에 반대하며, 대안적인 독서법으로서, 나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계시로서 본문을 읽고 도덕적인 교훈은 거기에 부수적으로 담겨있는 것으로서 보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구약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하신 역사적인 사실이 구약의 중심내용이며 모든 구약이 여기에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속사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이스라엘이 항상 회상하며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에게 베푸신 큰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구원사건이 이스라엘 민족과 오늘날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 어떤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일까? 신명기를 보면 거기에 대한 답이 있다.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의 구원과 인간의 도덕적인 삶이라는 두 측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너무나 분명히 알 수 있다. 구약의 어느 부분을 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명기만큼 언급이 잘된 곳이 없다. 신명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도덕적 의무를 요약해 놓은 십계명이 반복하여 기록되어져 있으며(5장), 도덕적 생활에 대한 보다 자세한 규범이 예배(12, 13장)와 이스라엘 동족에 대한 처리문제(21-25장)를 중심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받는 복과 불순종할 때 받는 저주에 대해 말하고 있는 신명기 부분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27, 28장). 구약 성경 중에 이보다 더 윤리적인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덕적 계명들도 신명기의 또 다른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데, 그 주제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다시 말해 신명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푸신 크고 위대한 구원사역을 인식함으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사랑의 반응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윤리적으로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유일한 신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알기 때문이다(6:4). 이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우리의 존재 전부를 바쳐 하나님을 끊임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신명기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말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하여 언약의 땅을 얻은 것이 결코 자신들의 힘이나 지혜로 된 것이 아님을 알리고 계신다(7:1-10). 이스라엘이 구원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끊임없이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랑을 오래 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에게 먼저 보이셨고 구원사역을 통하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증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구원하심을 깊이 깨달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여 현재 그들이 위치한 모압평야까지 가는 동안 되풀이되는 일정한 역사적 사건들이다. 신명기를 읽고 사람들은 신명기가 분명히 윤리를 강조하는 책 같은데 그 속에 역사에 대한 언급이 있는 사실을 알고 놀라워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우리 인간의 영적인 성장이 갖고 있는 관련성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통해 깨닫게 하셨다. 신명기 8:1-5에 그 예가 잘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공급하신 이유는 그들의 생명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여부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사건은 은혜와 순종 가운데 그들이 계속적으로 영적인 성장을 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이다.


신명기를 이런 식으로 볼 때,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권능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데 단순히 부수적으로 연관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알지 못하면 그 만큼 영적인 성장이 침체될 수밖에 없으며 사탄의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통하여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경험을 할 것이며 그분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을 깊이 깨달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구약이 가르치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구약은 그리스도를 지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성경 전체에 있는 구원사건을 풀어 설명해 주셨는데, 성경 전체라고 할 때는 모세 5경과 선지서들 그리고 시편을 말하는 것이다(눅 24:44-48). 예수께서 구약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신 것은 아마도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르신 것 같다. 이러한 예수의 말씀은 자신의 구원사역이 구약의 특정한 일부분에만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를 통해 나타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메시아이신 나사렛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구약 전체에 걸쳐 나타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메시아와 관련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주로 예언서)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 구약을 취급하신 방법에는 구약의 모든 부분이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 연관되어 있음이 암시되어져 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가 구약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민수기 17장에 나오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얘기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12 종족으로부터 지팡이를 하나씩 취하게 하여 그것들을 증거궤 앞의 장막 안에 두게 하셨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거역하는 백성들에 대한 표징으로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종족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적하여 불평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멈추게 하시기 위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영원한 표징으로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것이다(10절). 민수기 12-17에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론의 싹 난 지팡이에 대한 얘기는 그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싹 난 지팡이는 하나의 확증이다. 하나님은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확증하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이야기가 그리스도를 지시한다고 볼 수 있는가? 그 이야기는 예언과는 전혀 상관없다.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예수)을 확증하시는 그분의 구속사역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확증 앞에 순복하며 경배했듯이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확증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에게 경배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구약에서 메시아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부분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예를 볼 때, 우리는 구약을 읽고 해석함에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내가 읽고 있는 본문이 말하고 있는 구원 원리들은 무엇인가? 둘째, 그 원리들이 구약시대 성도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었는가? 셋째, 그 원리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재림을 통해 어떻게 충만히 실현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구약이 가르치고 있는 구원 진리에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반응해야하며 또 어떻게 거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을까?


이미 내가 언급했듯이, 로마서 15:4과 고린도 전서 10:6, 11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과 관련된 구약의 본문에서 윤리적인 교훈만을 따로 떼내어 도덕주의적으로 읽을 것을 권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다. 이제 왜 그런 것인가 살펴보도록 하자. 고린도 전서 10:6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결국 광야에서 멸망 받은 구약시대 신자들처럼 반역과 배교하지 말 것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구약시대 신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결국 멸망된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일종의 타산지석으로 삼는다. 그런데 구약시대 사람들이 대적한 것은 추상적인 도덕원리가 아니라 자신들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할 것을 요구하셨는데, 그들은 제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세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와 비슷한 요구를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심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말씀은 우리가 구약을 도덕주의자적인 관점으로 읽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로서 윤리적인 계명들을 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구약 안의 모든 책이나 구절이 동일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구약 전체에 있어서 시편은 아가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는 시편을 읽음으로써 구약의 다른 책들을 보는 통찰력을 얻을 수가 있다. 시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책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신명기이며 나는 당신에게 신명기부터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신명기를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문제의식을 가지고서 구약의 나머지 책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관을 가지고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구약이 다루고 있는 사건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좋은 성경사전을 참고하길 권하는 바이다. 기독교 서점에 가면 참고할 만한 좋은 성경 보조 교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 보조 교재들 중에는 객관성이 떨어지는 방법론과 신학적 관점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교묘히 감추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아는 목사님에게 문의해 보고 사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당신이 의지해야 할 것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셋째, 신약에서 어떻게 구약이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공부를 하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부는 구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얻는데 매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때 두 가지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런 공부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빨리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않아야 하며, 신약 저자가 구약을 적절히 인용 또는 언급하고 있는지 판단하려 하지 말고, 구약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내가 신약 안에서 구약이 사용된 방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구약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구약을 우리에게 주신 주된 목적 중의 하나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인도하시기 위함이라고 볼 때(딤후 3:16), 우리는 구약의 매 페이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더욱더 깊이 깨달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듯 우리의 영적인 생활이 의 가운데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