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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간병살인·간병자살·간병독신… 日 사회문제로

맑은샘77 2012. 11. 2. 15:26

[오늘의 세상] 간병살인·간병자살·간병독신… 日 사회문제로

  • 도쿄=차학봉 특파원
  • 입력 : 2012.05.17 03:10

    [긴 병이 낳은 또 하나의 고통]
    간병살인, 年40~50건 - "너무 괴로워"… 가족 살해
    간병자살, 年300건 넘어 - 간병가족 4명중 1명 우울증
    간병독신, 수십만명 달해 - 결혼·취직못해 빈곤층 생활

    오랜 간병 생활의 피로에 지쳐 부모나 배우자를 살해하는 이른바 '간병 살인'이 일본에서 연간 40~50여건에 이른다. 하지만 법원은 대부분의 경우 간병의 고통을 이유로, 집행유예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법원은 94세의 어머니를 살해한 장남(66)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0년 이상 헌신적으로 간병한 것이 인정되며, 부모에 대한 애정이 살해로 이어졌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장남은 법원에서 "회복될 기약도 없는 어머니가 더 이상 병상에서 고통받는 것이 싫었다"고 진술했다.

    간병 살인을 한 경우, 대부분 경찰에 자수하거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지난 9일 도쿄에서 10년째 몸져누워 있던 부인(64)을 목 졸라 숨지게 한 남편(64)이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경찰에서 "간병을 하다 너무 지쳤다. 모든 것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간병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간병 자살'도 연간 300건이 넘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으로 인해 우울증 등을 앓다가 자살하는 것이다. 유명인도 예외가 없다. 가수 겸 배우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던 시미즈 유키코(淸水由貴子·49)씨가 2009년 아버지의 묘지 앞에서 자살해 충격을 줬다. 시신 옆에는 휠체어를 탄 그녀의 어머니가 실신한 채 발견됐다. 시미즈는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사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2006년 은퇴할 정도로 효녀였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간병 생활을 견디기는 어려웠다. 일본에서 최근 간병자 8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명 중 1명이 우울증 상태였으며 65세 이상의 30%는 자살하고 싶다고 답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부모 간병으로 인해 결혼을 포기한 채 독신으로 사는 '간병 독신자'도 급증하고 있다. 간병 독신자들은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기 어려워 아르바이트 등으로 힘들게 돈을 벌면서 간병을 한다. 여유시간을 낼 수 없으니 이성을 만날 기회도 없다. 간병 독신자들은 빈곤과 간병, 고독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다 '간병 자살'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2000년 4월 노인 간병 등을 돕기 위한 간병(개호)보험을 도입, 재택(在宅)간병, 시설 입원 간병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시설 입원 대기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간병문제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막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일정 비용만 내면 횟수와 시간에 제한 없이 간병인을 부를 수 있는 '24시간 간병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간병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재원마련도 쉽지 않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