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5.17 03:10
[오바마 행정부 "2025년까지 치료법 찾아내겠다"]
로슈 자회사서 개발한 신약, 뇌에 독성 단백질 쌓이기 전 미리 제거해 치매 발병 막아
美 1600만달러 우선 투입
알츠하이머(Alzheimer) 치매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사상 최초의 임상시험을 미국 정부가 시작한다. 일종의 치매 예방약 프로젝트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2025년까지 알츠하이머의 진행을 멈추게 하거나 치료할 방법을 찾아내겠다"며 국가 차원의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15일 공개했다.
나이가 들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뇌 속에 독성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많이 침착되면 알츠하이머, 즉 노인성 치매가 발생한다. 아직 확실한 예방법과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번에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알츠하이머 예방약은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의 미국 자회사인 지넨테크가 개발한 '크레네주마브(crenezumab)'라는 약품이다. 이 신약은 치매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에 달라붙어 그것이 뇌에 쌓이지 못하도록 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아밀로이드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항체(抗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임상시험 대상은 남미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지역의 치매 유전자 보유 가계(家系) 구성원 5000명 중 선발된 300명이다. 이 가계 구성원들은 치매 유전자가 있어 45세를 전후해 치매가 발병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치매 환자의 약 5%는 치매 유전자 때문에 발생한다. 치매 발생이 확실히 예상되는 그룹에게 치매 발생 전에 약물을 투여하여 아밀로이드 침착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그 결과로 치매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더 나아가 여기서 나오는 성과를 토대로, 일반인 치매에도 아주 초기 상태에 항체를 투여하면 치매에 대한 근본 예방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이 임상시험에 1600만달러(약 190억원)를 투입한다. 캐슬린 시벨리우스 미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번 계획이 알츠하이머병과 싸우려는 역사적 노력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밀로이드에 달라붙어 없애는 각종 항체는 20여종 개발돼 있다. 이를 갖고 전 세계적으로 임상시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삼성서울병원·건국대병원 등 6개 대학병원에서 아밀로이드 제거 항체 투여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기존에 침착된 아밀로이드를 제거해도 치매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발견됐다. 치매가 진행된 상태에서 항체를 투여하면 늦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치매 조기 감지, 조기 항체 투여, 치매 차단 쪽으로 연구 방향이 잡힌 것이다.
일반인에게 이 같은 치매 예방 치료법이 적용되려면 치매가 시작되려는 초기 상태를 잡아내는 진단 기술이 있어야 한다. 현재 특수 뇌 사진 촬영(PET)을 하면 아밀로이드가 어느 정도 침착됐는지 알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대한치매학회 한설희(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 명예회장은 "앞으로는 건강검진 받듯이 뇌 사진을 찍으면 아밀로이드가 이제 막 침착되려는 시점을 알아낼 수 있고, 그때 항체 치료를 시작하면 치매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3년 후면 이런 임상시험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
기억력 감퇴와 일상생활이 곤란할 정도의 심각한 지적 기능 상실을 일으키는 치매의 한 종류. 뇌에 독성 단백질(베타아밀로이드)이 쌓여 뇌 세포가 파괴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뇌졸중·고혈압·당뇨 등으로 뇌혈관이 손상돼 나타나는 '혈관성 치매'와 달리 뚜렷한 예방법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체 치매 환자의 60%가 알츠하이머에 해당한다. 병명은 1906년 이 병을 처음 언급한 독일인 의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