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行의 톨게이트’ 담배·술… 위해환경 쉽게 노출
서울 A중학교 2학년 김모(14)양은 외동딸이다. 무엇이든 독차지였다. 외로움에 민감하긴 했지만, 곱게 자랐다. 적어도 4년 전까지는….
김양이 담배를 처음 입에 문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빠·엄마의 다툼이 잦아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맞벌이를 하는 김양의 부모는 퇴근하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싸웠다. 아빠 엄마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던 시간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애써 잠드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김양은 언제나 외톨이였다. 그러다 어느새부턴가 아빠가 피우던 담배를 하나씩 꺼내 물었다.
6학년 겨울방학부턴 담배 피우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중학생이 되자 화장을 하고 PC방에 갔다. 아무도 김양을 어린 학생으로 보지 않았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건 너무나 쉬웠다.
"지난봄 어느 날, 집에 늦게 들어갔더니 아빠가 고주망태가 돼 있었어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시끄러운 소음만 들렸어요. 또 춤추러 나이트클럽에 간 모양이었어요."
그 직후 김양은 집을 나왔다. 담배를 피우며 어울렸던 친구와 함께 1주일가량 PC방, 찜찔방을 돌아다니며 지냈다. 여비가 떨어져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나 담배를 끊지는 않았다. 집안 분위기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김양은 자신을 비난하고 다니는 학교 후배를 폭행했다. 김양은 1주일간 한 대안교육기관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다.
교육 기간 내내 담임 교사나 학생부 교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대안교육기관 측은 "김양은 (대안학교)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를 하면서 달려와 품에 안기는 아이"라며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여서 곁에서 누군가 잡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B중학교 3학년 조모(15)군은 학교 '짱'이다. 조군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다른 '구역' 친구들을 만나니까 피우길래 저도 피웠어요." 조직폭력배들이 쓰는 단어가 배어 있는 듯했다.
처음엔 담배를 얻어 피웠지만 중학교 1학년 초부터 사서 피운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위치를 즐기는 듯했다. 성인에게 돈을 주면서 부탁하기도 하고, 청소년으로 보여도 담배를 쉽게 파는 곳을 찾아다니며 담배를 샀다. 2학년 때는 하루 1갑반을 피웠다. 웬만한 성인보다 흡연량이 많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여러 차례 흡연으로 적발됐지만 여전히 끊지 못하고 있다.
조군이 자주 가는 곳은 PC방, 노래방, 당구장, 인근 초등학교 체육관 뒤편, 골목길 등. 담배 피우기 좋은 곳만 골라다니는 것이다. 담배를 같이 피우는 친구들 9명이 함께 끊자고 약속한 적도 있으나 PC방 한 번 다녀온 뒤로 깨졌다.
조군은 "휴대전화가 없으면 답답한 것처럼 담배가 없으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담뱃값이 필요했던 조군은 지난 5월 학교 후배들의 돈을 빼앗았다가 1주일간 사회봉사교육을 받았다.
김양의 가출, 폭행과 조군의 금품 갈취에서 드러나듯 흡연은 다른 비행으로 연결되는 출발점이란 점에서 조기 제어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서울시교육청 대안교육 위탁기관인 청소년희망재단에서 지난해 교육 받은 학생 210명 중 187명(89%)이 흡연자들이었다. 올해 상반기에 이곳을 다녀간 학생 148명 중 127명(86%)이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었다. 청소년희망재단 고성혜 사무총장은 "폭력, 금품 갈취, 무단결석 등 어떤 문제로 대안교육기관에 오건 10명 중 9명꼴로 흡연자들"이라며 "흡연하면 폐쇄 공간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고, 그만큼 다른 문제 행동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흡연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가족부 아동·청소년백서에 따르면 중학교 입학 전 흡연 경험률은 2007년 기준 9%, 흡연 시작 평균 연령은 12.9세로 나타났다. 매일 흡연하기 시작하는 연령은 평균 14.3세였다. 서울 한 중학교 김모(50) 교사는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에 담배를 피워 보고, 중학생이 되면서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끼리 모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흡연이 습관화 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흡연을 시작한 학생도 있다. 엄마가 대학 교수인 C중학교 2학년 이모(14)군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아빠가 두고 간 담배를 몰래 피우기 시작했다. 낮엔 집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거리낄 게 없었다. 학교는 보건소에 금연교육을 의뢰했지만 이군은 "혓바늘이 돋았다" "가슴 통증이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보건소에 가지 않았다. 보건소는 이군의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었다며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고, 학교 측도 보건소에 확인하지 않았다. 흡연 학생 관리가 방치된 경우다.
고 사무총장은 "담배는 시작하면 끊기 힘든 만큼 흡연 자체를 차단하려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병석 기자 bs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