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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허병섭 목사 의식불명 3개월째

맑은샘77 2009. 6. 8. 23:48

‘꼬방동네 성자’ 일으켜 세워주세요

  
ㆍ소설 속 빈민목사 실제모델 허병섭 목사 의식불명 3개월째
ㆍ부인 간병중 쓰러져…‘스스로…’ 복간 맞춰 치료비 모금운동


‘도시빈민의 대부’ ‘어둠의 자식들의 아버지’ ‘달동네 성자’ 등으로 불렸던 허병섭 목사(68)가 갑자기 쓰러져 3개월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동철(본명 이철용·전 국회의원)의 소설 <어둠의 자식들>과 <꼬방동네 사람들>에 빈민운동가로 등장하는 공병두 목사의 실제 모델이다.

허 목사는 지난 1월 1주일 먼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부인 이정진씨(61)씨를 간병하다 변을 당했다고 한다. 부부가 모두 ‘상세불명 뇌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현재 허 목사는 서울 연희동 애린실버 요양원에, 이씨는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에 누워있다.

무주 진도리에 귀농해 자연을 중심으로 생태·생명운동을 펼쳤던 허병섭·이정진씨 부부. 허 목사는 지난 1월 뇌손상 증세로 쓰러져 투병 중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허 목사 부부의 쾌유를 위한 기도 모임이 조직됐다. 모임에는 박형규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김상근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등 종교·시민단체·정치·문화계 인사 8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허 목사가 1988년 출간한 책 <스스로 말하게 하라>의 복간을 계기로 16일 오후 6시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치료비 모금을 위한 출판기념회를 열기로 했다.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echocouple)도 개설돼 있다.

허 목사만큼 시대의 풍상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도 흔치 않다. 그는 지난 74년 ‘수도권 특수지역 선교위원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청계천 등 서울의 ‘꼬방동네’(판자촌)를 찾아다니며 도시 빈민들의 벗으로 형제로 부모로 살았다. 그는 가난과 절망에 빠져있던 도시빈민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무자비한 철거에는 몸으로 맞서 싸웠다. 유신 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20여 차례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고, 도피생활을 했다.

지난해 3월 생명의 강 살리기 순례기도회에 참가했던 허병섭 목사.


허 목사는 76년 서울 하월곡동 달동네로 들어가 동월교회를 세웠다. 이 ‘민중교회’에서 판소리로 설교하고, 국악 찬송가를 부르고, 심지어 굿을 하면서 예배를 보기도 했다. 80년대 초에는 교회에 국내 최초의 탁아방이라고 할 수 있는 ‘똘배의 집’을 세웠다. 똘배의 집은 탁아소 입법화의 계기가 됐다. 그 시절 펴낸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최초의 한국적 민중교육이론서로 평가받는다. 그는 책에서 “민중은 자신의 생각을 마음 놓고 이야기하는 조건만 주어지면 사회변혁의 주체가 된다”고 했다.

88년에는 ‘더 낮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목사 신분조차 벗어버렸다. 그는 비로소 목사가 아닌 도시 빈민 노동자가 됐다. 넝마주이 생활을 하기도 하면서 막노동판에 뛰어들어 담배와 술까지 배웠다. 미장일을 익히며 노동자들과 함께 ‘건축일꾼 두레’라는 ‘노가다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냈던 그는 94년 이정진씨와 재혼하면서 또 한차례 변화를 맞는다. 이씨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해직교사 후원회, 참교육 학부모회 자원활동에 이어 참교육시민모임 사무처장으로 활동했다. 부부는 96년 돌연 시골행을 택한다. 전북 무주 진도리에 정착한 부부는 농부로 새삶을 시작했다. 허 목사는 2001년 부부가 함께 펴낸 <넘치는 생명세상 이야기>에서 “결국 도시 사람은 상업화와 산업화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밀알노동을 이어가기 위해 생태적 자리인 농촌에 내려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관심은 자연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공동체로 확장된다. 허 목사 부부는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생태·생명운동을 전개하며 골프장 등 무주 지역 개발에 맞서 주민과 함께 싸웠다. 또 생태주의에 근거한 교육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대안학교인 ‘푸른꿈고등학교’를 세웠다. 2003년에는 폐교를 고쳐 최초의 대안대학인 녹색대학(녹색온배움터)을 열었다. 그는 현재 녹색온배움터의 공동 대표이면서 푸른꿈고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부부 명의의 전재산인 임야 6만3000㎡(1만9000여평)를 자연환경국민신탁에 기증했다.

허 목사 부부를 위한 기도 모임의 실무담당자인 김성훈 목사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민중, 자연과 함께 하는 생태적 삶을 실천하면서 청빈한 삶을 살아온 허 목사 부부가 갑자기 병상에 누워 안타깝다”며 “공생의 가치를 위해 살아온 두 분의 치유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석종 경향신문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출처 : 어느 떠중이의 낙서
글쓴이 : 단속중斷俗衆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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