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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하는 설교 부터 비평받기하자~

맑은샘77 2008. 4. 12. 23:10

“설교비평, 거슬려도 신앙에 도움 될 것”


▲ 설교비평집 ‘속 빈 설교, 꽉찬 설교’ 의 저자 정용섭 목사 ©구굿닷컴
목회자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국 교회 풍토에서 목회자의 설교를 대놓고 비평하는 일은 드물었다.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들, 설교 잘하기로 소문난 ‘인기’ 목회자들의 설교를 비평하는 일은 거의 금기시돼 왔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 설교자들의 설교에 대한 비평을 사석이나 개인적 충고 차원이 아닌, 공적 매체를 통해 5년째 해오고 있는 인물이 있다.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이자 경북 경산에서 샘터교회를 이끌고 있는 정용섭 목사(53)가 그 주인공이다.

정 목사는 지난 2003년부터 월간 ‘기독교사상’에 연재했던 설교비평 중,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등 내로라 하는 한국교회의 대표적 목회자 14인에 대한 것을 모아 최근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속 빈 설교, 꽉찬 설교’(대한기독교서회)라는 제목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경향, 동아, 문화, 한겨레 등의 일반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반면 교계 언론들로부터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독교 잡지에 이미 실린 글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일 수도 있고, 교계를 대표하는 분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애써 외면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 목사는 곧 이어 대전중문침례교회 장경동 목사,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할렐루야교회 김상복 목사,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 등의 설교를 비평한 두 번째 설교비평서를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국내 명망있는 목회자들의 설교에 대해 ‘성서 읽기의 아마추어리즘’이 두드러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다보니 신앙의 본질과 거리가 먼 기복주의나 성속(聖俗) 이원론, 신앙의 도구화 등이 설교에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책에서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설교는 ‘종교 강연’, 김진홍 목사(두레교회)의 설교는 ‘무협지’,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의 설교는 ‘시국 강연문’과 같다고 평했다.

뿐만 아니라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의 설교는 ‘사이비’, 이단 여부로 문제가 있는 김기동 목사(서울성락교회)의 설교는 ‘무당의 그것’, 박옥수 목사(기쁜소식강남교회)의 설교는 ‘타락한 구원론’ 등과 같이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해 비평했다.

반면 교회력과 해석학을 기반으로 성서 텍스트를 다각적ㆍ중층적으로 접근하는 박종화 목사(경동교회)나 김기석 목사(청파교회), 임영수 목사(모새골공동체) 등은 ‘꽉 찬 설교’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직설적인 내용 탓에 이 책이 발간되자 (기 발표된 설교비평 모음집이라는 사실을 알든 모르든) 독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 ‘비평하는 기준이 무엇이냐’, ‘그분들의 설교를 얼마나 들었다고 비평이냐’, ‘자기는 얼마나 설교를 잘하기에’, ‘설교학자도 아닌 사람이 웬 설교비평이냐’는 등의 격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 책에서는 아니지만, 지난해 1월호 ‘기독교사상’ 설교비평의 당사자인 방인근 목사(수유리교회)는 월간 ‘활천’ 2007년 1월호에서 ‘정 목사가 독일에서 공부한 탓에 미국식 설교의 영향을 받은 목사들의 설교가 (정 목사의 입맛에) 잘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정 목사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세 명의 목사 중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은 박종화 목사뿐이다.)

이에 기자는 정 목사와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의 독자들뿐 아니라,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한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궁금증에 대해 그의 설명을 들어보았다.

▲ 월간 ‘기독교사상’에 연재했던 설교비평 중 14편을 모아 발간된 정용섭 목사의 책 표지. ©구굿닷컴
- ‘설교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서로 입장이 다르긴 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설교도 역시 비평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가 사이비 이단이라고 부르는 분들의 설교를 비평하는 이유는 그들의 가르침으로 많은 영혼이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자칭 정통에 속하는 설교자들의 설교라고 해서 잘못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실 구약의 예언자들도 서로를 향해서 거짓 예언자라고 비평하기도 했고, 신약의 바울도 베드로와 바나바를 공개적으로 책망했습니다.

- 설교학자들은 설교비평을 하지 않는데, ‘무식이 용감하다’는 표현처럼 설교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설교비평에 나서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설교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건 설교학자들의 몫입니다. 다만 조직신학을 전공한 저는 그들의 설교 내용이 기독교의 근본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 있는지를 말할 뿐입니다. 제 생각에 오늘의 설교학은 지나치게 방법론에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설교자가 기독교의 근본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다면, 방법론을 잘 알면 알수록 그 피해는 훨씬 더 심각해지는 게 아닐까요? 저는 설교 전반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설교의 내용에 대해서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 평가가 잘못됐다면 다른 학자들이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설교비평의 대상인 설교자 또는 청중(해당 교회 교인 또는 매니아)들로부터의 직접적인 반응들은 없었는지요

▲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기 전에 <기독교 사상>에 이 글을 연재했었습니다. 지금도 물론 연재하고 있고요. 대상이 되었던 분들 중에서 최근에 두 분이 연락해 오셨습니다. 그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대다수의 목사님들이 제 글을 접하지 못하셨든지, 아니면 반응을 보일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셨겠지요. 연락을 주신 두 분에게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인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저에게 말씀하신 분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두 세 분 정도 됩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자신들이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비평했으니,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이게 바로 설교비평에 나선 저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신앙생활하는 평신도들에게 공연히 마음의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는 그런 분들의 마음이 아플지 모르겠으나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본다면 결국 신앙의 심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또한 그걸 기대합니다.

- 설교비평은 어떤 기준에 따라 하시는지요

▲ 핵심적으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 설교가 성서 텍스트에 충실한가’입니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많은 설교가 성서 텍스트보다는 설교자의 주관적인 신앙경험에 머물고 있습니다.

둘째, ‘설교자가 성서를 해석하고 있는가’입니다. 대개의 설교자들은 성서를 언급하더라도 그것을 신앙 정보의 차원에서만 다룰 뿐이지 해석하지 않습니다. 해석의 문제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대목인데, 간단히 말해서 설교자가 성서 텍스트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기준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설교학자들도 동의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동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설교’란 무엇인지요

▲ 설교는 성서 텍스트에 근거해서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경험하게 돕는 행위입니다. 위의 언급에는 세 가지 핵심 주제가 있습니다. △성서 텍스트, △청중,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그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 강단은 성서 텍스트와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소홀하게 취급되고, 오직 청중들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교회 강단의 특징이 바로 ‘포퓰리즘’(populism)입니다.

- ‘거짓말이다’, ‘사이비다’, ‘무협지같다’, ‘종교강연이다’… 등 비평에 사용된 용어들이 거칠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런 표현들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글 쓸 당시의 격한 감정 때문인지요

▲ 의도성은 없습니다. 다만 글을 쓸 당시의 감정이 거친 언어로 표출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제 눈에 그렇게 보인 걸 그대로 묘사한 것뿐입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제 언어를 상당히 순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만약 잘못 본 부분을 누가 지적해 주시면, 달게 받겠고, 제 잘못을 인정하겠습니다.

- 설교 본문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설교를 통해 나타난 설교자의 신학 내지 설교자 개인에 대한 비평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설교 본문과 설교자의 신학 내지 신앙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덱거의 말처럼 설교자의 설교 본문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대상에 따라서 사람에게 무게를 두거나 또는 본문에 무게를 더 두는 경우가 없지 않았겠지만 설교본문과 설교자의 신학을 구별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문제점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박옥수, 김기동 목사의 설교를 함께 평함으로써 이단 또는 이단 판정에 휘말린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나름대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단, 사이비에 대한 선입견 없이 단지 그들의 설교만을 평가했습니다. 나머지 판단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 월 1회 기고하는 설교비평 작성을 위해 얼마만한 노력을 기울이시는지요. 보통 몇 편의 설교(문)를 들(읽)으시는지요

▲ 대상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평균 두 주일 정도 이 일에 매달립니다. 살펴보는 설교 편수는 최소한 50편에서 200편 정도 됩니다.

- 목사님의 설교비평을 보면 설교자는 조직신학과 성서해석학에 뛰어나야 할 것 같은데, 반대로 조직신학자나 성경해석학자가 탁월한 설교자가 못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탁월한 설교자의 기준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아마도 대중성을 말씀하겠지요. 대중성 확보는 진리 여부와 상관없습니다. 대중을 선동할 줄 알면 대중성은 가능합니다. 기독교는 대중성이 아니라 진리에 천착해야 합니다.

- 통상 설교학에서는 설교를 케리그마, 곧 하나님 말씀의 선포이므로 설교자가 강단에서 강하게 선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이 문제는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말씀드릴 수가 없겠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의 구원은 설교자가 하는 게 아니라 성령이 하십니다. 설교자가 자신의 신앙경험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내세우면 결국 성령의 활동 영역이 줄어드는 게 아닐런지요. 설교자가 죽어야 성령이 산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이 조금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군요. 성령의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서 설교자는 소극적인 선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 제 설교비평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신 분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진리의 영이신 성령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결국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이 차츰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기독교의 진리는 무조건 감싸 안는다고 지켜지는 게 아니라 논쟁의 장으로 올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특히 우리는 중세시대의 로마가톨릭과 진리 논쟁에 적극적으로 나선 종교개혁자의 후예라는 사실도 아울러 기억했으면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이병왕기자,wanglee@googood.com(구굿닷컴)
[뉴스미션] 01-11 06:18

출처 : H순
글쓴이 : 순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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