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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과 오상

맑은샘77 2007. 10. 31. 01:09
사단칠정과 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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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글 | 2007/10/29 (월)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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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과 오상

    사단치리정(四端七情)
    인성(人性)을 설명하는 성리학의 주요개념.
    맹자 성선설의 근거가 되는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는데,
    각각 인·의·예·지의 실마리가 된다.
    칠정은 〈예기 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 등 사람이 가진 7가지 감정을 말한다.
    사단과 칠정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중요하게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송대에 성리학이 성립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까지 유교에서는 인간의 심성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교를 심성 수양의 도리로까지 확대하고 또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세계관을 수립하려 했던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심성 문제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성리학에서는 마음이 사물에 감촉되지 않은 상태, 즉 심의 미발(未發)을 성이라 하고, 마음이 사물에 이미 감촉된 상태 즉 심의 이발(已發)을 정이라 한다. 결국 미발의 성이 발한 것이 정이며, 사단과 칠정 모두 정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주희는 사단을 '이지발'(理之發)로, 칠정은 '기지발'(氣之發)로 설명하여 양자를 구분하기도 했으나, 사단과 칠정의 이기 분속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 도입된 초기부터 16세기까지 사단과 칠정을 이기론으로 설명할 때 각각을 이(理)와 기(氣)에 분속시켜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단칠정논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정지운(鄭之雲 : 1509~61)의 〈천명도 天命圖〉에서도 사단의 발은 순리이며 칠정의 발은 기가 겸한 것이라고 했다. 이황(李滉 : 1501~70)도 역시 이 〈천명도〉를 수정하면서, 사단은 이에서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 것, 혹은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 하여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에 분속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1559년(명종 14)에 기대승
    (奇大升 : 1527~72)이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이황이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면서 8년에 걸친 사단칠정논쟁이 이루어졌다. 사단칠정의 이기 분속 문제가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커다란 철학적 문제로 대두하게 된 배경에는 이 시기 조선 성리학에 이제까지의 이기이원론과는 다른 이기일원의 이기론이 성립하기 시작했다는 사정이 있었다.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이기이원론은 이를 기의 존재 근거로까지 인정하는 견해를 가리키며 이기일원론은 이를 기의 조리(條理)로만 인정하는 견해를 가리킨다. 이러한 차이가 사단칠정론에서는 기발과 함께 이발을 인정하는 견해와 기발만을 인정하는 견해로 나타난다. 이황은 이기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에 분속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기대승은 이기일원론적인 견해에 바탕을 두고 사단과 칠정을 설명함으로써 사단과 칠정을 명확하게 이와 기에 분속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에 대해 이황은 이기의 관계가 비록 밀접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理發氣隨之)이고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氣發理乘之)이라 해도, 사단은 그것이 유래하는 바가 마음 속에 있는 본연지성이요, 칠정은 그 유래하는 바가 기질지성이며, 또 사단은 기가 따르는 것이지만 주로 하여 말하는 것(所主而言)이 이에 있고 칠정은 그것이 기에 있기 때문에 각각을 '이지발'과 '기지발'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사단칠정 문제에 대한 이황의 이러한 견해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이라 불린다.
    이기호발설에 대해 기대승과 그후의 이이(李珥 : 1536~84)는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질지성 속에 갖추어 있는 이가 기를 타고 발한다는 점에서 그 유래하는 바가 같으며, 다만 발해서 순선한 것만을 가리켜 사단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들은 이황의 견해 가운데에서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만을 인정하고 그것으로 사단과 칠정이 유래하는 바를 모두 설명했으며, 칠정 이외에 따로 사단의 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칠정 가운데 사단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했다. 기대승과 이이의 이러한 견해는 이기겸발설(理氣兼發設)로 불려진다. 1572년(선조 5)에 성혼(成渾 : 1535~98)은 사람의 마음을 형기(刑氣)의 사사로움에서 생기는 인심(人心)과 성명(性命)의 정리에 근원하는 도심(道心)으로 구분할 수 있듯이 성이 발한 정도 사단과 칠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사단은 이에서 발한 것으로 칠정은 기에서 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성혼과 이이 사이에 다시 사단칠정논쟁이 벌어졌다. 성혼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이이는 인심·도심의 구분과 사단칠정의 구분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사단칠정을 각각 이기에 분속하는 이황과 성혼의 견해를 비판했다. 16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호발설과 겸발설로 정리된 사단칠정의 이기론적 해석은 그후에도 우리나라 성리학의 중요한 이론적 탐구 대상으로 남아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고, 성리학 이해에 깊이를 더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가운데 이황의 호발설을 지지하는 견해를 주리론(主理論)이라 하고, 이이의 겸발설을 지지하는 견해를 주기론(主氣論)이라 하여, 우리나라 성리학의 양대 흐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 사단 (인의 예지)
    1. 인(仁)
     유교철학에서 극히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도덕범주.
    자애로움·친근함·인정(人情)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공자 이전 시기에 인(仁)은 군주가 그의 백성에게 보이는 친애의 뜻으로 이해되었다. 이후 의미가 점차 확대되어 군주에게만 한정되지 않는 하나의 개별적인 덕목인 자비로움을 가리키게 되었다. 공자는 모든 개별적인 덕목을 포괄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완전한 덕성을 나타내는 말로 인의 의미를 변화시켰다.
    〈맹자〉·〈중용〉에서는 "인(仁)은 인(人)이다"라고 하여 인을 인간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았다. 한대(漢代)에 인은 일반적으로 '애'(愛)의 뜻으로 쓰였고 당대(唐代) 한유(韓愈:768~824)는 인을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만물에 대한 자비로움을 강조하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송·명대의 성리학은 '하늘·땅·만물을 하나로 만드는 것'으로 인의 뜻을 확대시켰다. 이러한 사상은 이성주의적(理性主義的)인 정주학파(程朱學派)와 이상주의적(理想主義的)인 육왕학파(陸王學派)에게 모두 공통된 것이었다. 그러나 송의 일부 성리학자들은 인을 의식의 상태로 여기기도 했다. 주희(朱熹)는 인을 '정신의 도덕적 품성과 애(愛)의 원리'라고 했고, 왕양명(王陽明)은 인을 양지(良知)의 '맑은 도덕적 품성'과 같다고 했다.
    17, 18세기의 성리학자들은 송·명대 유학자들의 인에 대한 해석이 너무 정적(靜的)·불교적이라고 보고 자신들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인을 정의한 전한(前漢) 때의 훈고적인 해석을 취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해석으로 인의 사회적·적극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 게다가 모든 성리학자들은 인, 즉 인간다움은 하늘[天]에 의해 주어진 도덕적 본성이라는 데 동의하고, 천지의 위대한 본성은 생산과 재생산이기 때문에 인 역시 생산과 재생산을 특징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즉 인은 생의 확신과 활력을 주며 활동적일 뿐만 아니라 창조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서유럽 과학의 영향으로 현대 유가에서는 인을 전기·역동력 또는 천지의 모든 물질들과 비교하게 되었다.
    2. 의(義)
     유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德目)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정치사회적 인간관계에서 주어진 지위에 따라 마땅히 행해야 하는 바의 도리를 가리키는 개념.
    공자에 의해 인(仁)이 유교의 기본 덕목으로 자리잡았으며, 맹자는 인과 함께 의를 강조하여 인의(仁義)라는 개념과 의사상(義思想)의 기본 내용을 정립했다. 그후 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의·예(禮)·지(智)·신(信)을 오상(五常)이라 하여 가장 기본적인 덕목으로 여겨왔다.
    맹자의 의사상은 의리지변(義利之辨)·군신유의(君臣有義)·사단설(四端說)의 측면에서 각각 나누어볼 수 있다. 의리지변의 의는 사적(私的)인 물질적 이익을 가리키는 이(利)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모든 사람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가리킨다. 맹자는 개개인이 서로 경쟁적으로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상하관계가 위태롭게 되고 사회적 불화가 조성된다고 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 특히 위정자들은 물질적 이익보다는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이상적인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가 구현되어야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간관계가 군신관계이기 때문에 군신유의를 강조했다. 유교에서 군신관계는 부자관계와 함께 대표적인 상하관계인데, 부자관계에서 요구되는 도덕규범이 친(親)이라면 군신관계에서 요구되는 것이 의이다. 양자 사이의 차이는 친이 혈연적인 성격의 규범이라면 의는 비혈연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맹자는 형에게 순종하는 것이 의의 구체적 내용이라 하여, 의라는 규범에서 혈연적인 성격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혁명론에서 보듯이 군신관계에서 신하는 역위(易位)하는 것도 가능하며 거(去)하는 것도 가능했다. 주희(朱熹)가 "군신은 의로 합한 관계이기 때문에 의가 합해지지 않는다면 떠난다"(君臣義合不合則去)고 한 것도 군신관계의 비혈연적인 성격을 지적한 것이며, 그러한 관계에서 적용되는 도덕규범이 의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단설은 인간이 의라는 도덕규범을 실현할 수 있는 근거를 설명해준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본성 가운데는 자기의 나쁜 짓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나쁜 짓을 미워하는 마음,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있는데, 이러한 마음씨를 키워가면 자연히 의라는 도덕규범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후 맹자의 이러한 의사상은 유교의 기본 내용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공의(公義)와 사리(私利)의 대립을 강조하는 것, 절의(節義)나 의리명분(義理名分)을 강조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3. 예 [禮]
    흔히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적절함'을 뜻하는 유교개념.
    본래는 사회·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주술적인 의식을 의미했으나, 유교학자들은 이것을 사회적인 관습이라는 뜻으로 다시 해석했다. 그들은 고대인들이 공동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우주를 본보기로 삼아 적절한 유형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했다. 예는 관습적인 유형이라는 뜻에서 전통적인 규범을 의미했고, 이것은 다시 인간의 적절한 행동을 규정하는 내면화된 예의범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낳았다. 유교의 고전인 〈예기 禮記〉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예는 자연의 질서에서 이끌어낸 규정으로 단순한 공손함이나 인습을 초월한 인간과 자연을 조화시키는 중대한 책임을 맡고 있다.
    4. 지(智)
    인간의 인식능력과 인식결과를 일컫는 개념.
    특히 유교에서는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도덕적 인식능력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유교적인 개념의 기본내용은 맹자(孟子)에 의해 갖추어졌는데, 그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을 지(智)라 하여 인(仁)·의(義)·예(禮)와 함께 사람에게 천부적으로 구비된 선한 본성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배우지 않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본성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 즉 양지(良知)·양능(良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한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맹자의 사상에서 지는 경험적 지식이나 그러한 지식을 획득하는 능력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도덕적 본성 또는 도덕적 인식능력을 의미했다. 그런데 순자(荀子)는 사람이 갖추고 있는 경험적 인식능력을 지(知)라 하고, 그러한 능력을 이용하여 획득한 인식결과를 지(智)라고 했다. 이 경우 지는 인식결과로서의 지식을 의미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경험적 지식이라는 점에서도 맹자가 말한 지와는 전혀 달랐다.
    지에 대한 이 2가지 서로 다른 관념 가운데서 맹자의 것이 후대의 유교에 더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 단적인 표현이 오상(五常)이라는 개념이다. 인·의·예·지·신(信)을 합쳐 오상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한대(漢代)부터인데, 이 오상은 인간이 갖추고 있는 천부적인 덕성(德性)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상 속에 포함된 지는 인식결과로서의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식능력을 의미하며, 더욱이 도덕적 인식능력이 그 주된 내용으로 되었다. 유교의 이러한 관념은 성리학에서 더욱 명료해졌다.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인식을 '견문지지'(見聞之知)와 '덕성지지'(德性之知)로 나누고, 덕성지지는 경험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견문지지에 비해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인식영역에서 도덕적 인식이 경험적 인식에 비해 우선적임을 명백히 한 것이다. 그리고 성리학에서 확립한 '성즉리'(性卽理)의 명제에 따라 오상은 사람에게 구비된 천리(天理), 즉 본연지성(本然之性)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인간의 도덕적 인식능력이 천부적인 것임을 철학적으로 논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인식은 결국 인간의 마음 속에 도덕적 본성이 천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확충하여 실현하는 것, 즉 '진성'(盡性)이 그 주된 내용이며, 지는 그 진성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오상 = 4단 + 信--- 인의예지신
     오ː상  [ 五常 ] [명사] [유교에서] 1.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 곧,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2.부·모·형·제·자식이 저마다 지켜야 할 도리. 아버지는 의리, 어머니는 자애, 형은 우애, 아우는 공경, 자식은 효도를 이름.
    오륜(五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