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교와 여성차별 논쟁
서승화
1. 머리말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뿌리 박힌 여성 차별의 원인을 유교의 탓으로 돌린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호주제도와 남아선호 사상 그리고 이로 인한 성비 불균형의 문제는 확실히 그 책임이 유교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유교 내에서는 유교가 한국 사회에 유입된 이래로 여성을 억압하는, 즉 여성 차별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는가 하는 문제를 四端七情論이나 實學에 대한 논쟁처럼 핵심적 논의의 대상에 올려놓고 있지 않다. 즉 일반 대중의 유교에 대한 문제 의식과 한국 유교 자체의 유교에 대한 관심은 이처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숙인의 지적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페미니즘 동네 어디를 가 보아도 유교는 거센 비난과 사무친 원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 면에 유교는 페미니즘을 시끄럽고 성가신 옆집 개 짖는 소리쯤으로 여긴다. 페미니즘은 유교를 미워하지만 유교는 페미니즘에 침묵한다. 그래서 페미니즘과 유교는 영원히 껴안을 수 없는 것 처럼 보인다. 사상계의 이러한 지형도는 페미니즘이 선전 포고를 하는데 하품을 하고 있는 유 교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위의 인용문이 단적으로 말해주듯이 '유교와 여성차별의 논쟁'은 이제까지 한국 유교 내부에서 쟁점이 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유교 밖-여성학, 사회학, 문학 등의 분야에서 더 많은 논의들이 진행되어 온 것으로, 20세기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현대적, 혹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야기된 쟁점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일차적으로 이제까지 유교 밖에서 진행되어 왔던 논의들, 즉 이 주제에 대하여 가장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여성학계의 입장을 살펴본 후, 이차적으로 아직 미미하지만 유교 내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끝으로 가능하다면 유교 밖에서 떠돌고 있는 여성 차별의 논쟁을 어떻게 유교 내적 쟁점으로 흡수해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2. 유교에 대한 여성학계의 논의들
한국 여성학회는 성별 불평등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이중 처음 두 주제가 종교(1985)와 가부장제(1986)이다. 한편 이에 대한 논문은「한국 여성 연구 1-종교와 가부장제」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유교와 관련된 논문은 '유교적 여성관의 재조명(박용옥)'과 '가부장제에 관한 이론적 고찰(조옥라)', '가부장제의 변형과 극복(조혜정)'이다. 이제 각각의 논문들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여성학자들의 유교에 대한 입장을 종합해 보도록 하겠다.
(1) 박용옥, 〈유교적 여성관의 재조명〉
사학자인 박용옥은 유교의 여성관을 '원시유교에서부터 周易과 禮記가 형성되는 漢 시기'까지 통시적 고찰을 통해 살피고 있는데, 특히 유교적 여성관의 성립 배경과 그 정신이 본래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역사적 변천 속에서 유교적 婦道가 정치적, 사회적 목적에 적합하도록 어떻게 윤색되었는가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우선 머리말을 보면, 박용옥의 '유교의 여성관'에 대한 입장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유교적 여성관이란 유교적 사회체제를 성립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데 합당한 여성의 자세와 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남성을 지배, 강건, 존귀로, 여성을 복종, 유순, 비천의 대칭형으로 규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원시유교의 경전들은 여성을 治者의 君子化 과정에 공헌하는 남성의 보조자로서 인식하고 있으며, 주역의 陰陽觀은 남존여비의 질서를 天道의 섭리로 해석해 여성차별을 정당화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박용옥은 유교의 여성관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안에 동시에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긍정될 요소도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들면 주역의 음양은 결코 하나만으로 성립될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의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과, 또 禮記는 유가의 이상에 해당하는 것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秦漢시대의 정치, 사회 체계를 반영한 것이라 설명하여, 禮記에서 언급되는 여성 차별적 윤리를 유교 자체의 모순이라기 보다는 진한시대의 문화적 산물로 본 점이 그것이다. 또 대부분의 여성학자들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女訓書에 대해서도 오늘날의 안목으로 보면 분명히 여성 억압적인 책으로 보이나, 역사적 진전 상황에서 보면 부녀에게 인륜의 도리를 가르쳐 떳떳한 유교 사회의 구성인으로 승격시키려는, 즉 여성의 역사적 동참을 의도한 책으로 볼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
정리하면 박용옥은 유교의 여성관을 일차적으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여성차별이 유교 본래의 정신이라기 보다는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요소에서 기인한 면도 있다고 보아 유교의 여성차별 문제에 대하여 다소 온건한 입장을 보인다. 또 비록 과거의 유교는 비판했을지라도 유교가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내비친다는 점에서 유교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 입장을 보이는 듯 하다.
(2) 조옥라, 〈가부장제에 관한 이론적 고찰〉
사회학자인 조옥라는 앞서 살펴본 박용옥과 달리 유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그는 고려말부터 강화된 여성 규제는 주자학적 이념을 가진 신흥 사대부들의 진출과 연관되며, 여성에 대한 규제는 주자학적 이상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이루어졌다고 본다. 즉 신흥 사대부들은 지배구조를 이루며,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유교의 의례를 '공권력을 통한 강제'에 의해 실시했는데, 예를 들면 결혼 규제(재가 금지)는 당시 세력권의 역학관계, 즉 지배층의 수적 증가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강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그는 조선 사회의 여성에 대한 지배는 '정절'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즉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정절은 그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가문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조되었는데, 이는 '유교적 도덕 윤리의 철저성'과 여성의 性的 억압이 지배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비판한다. 또한 철저한 내외법의 실시로 여성이 집안 내에서 고유한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주장과 가정 경영을 맡고 있는 부인의 실권이 강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 역시 남성의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한 여성의 가정내 기여로 가부장제를 뒷받침하는 것이며, 母權 행사 역시 연장자에 대한 예우이지 여성 일반에 대한 사회적 평가라고는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결론적으로 조옥라는 조선 사회의 여성 억압은 농경사회에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가부장적 요소가 '통치 이념화된 유교적 위계질서'와 '가족관계'를 통하여 강화되어 이루어졌다고 보는데, 유교를 조선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여성 억압의 방편으로 본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회학자들과 관점을 같이한다. 앞서 살펴본 박용옥이 유교 이념 자체가 여성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즉 여성 억압적인가 아닌가를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살폈다면, 조옥라는 유교가 여성 억압적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서 이것이 조선조 현실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기능했는가를 고찰했다고 보여진다.
(3) 조혜정, 〈가부장제의 변형과 극복〉
사회학자 조혜정 역시 기본 전제, 즉 유교가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였다는 입장은 조옥라와 동일하다. 그러나 조혜정은 유교 이데올로기가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여성을 지배, 억압하는 데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비공식적 차원에서는 공식적 규제 이데올로기 주입에 의하여 결코 성공한 것만은 아님을 말하는데, 이것의 근거로 Wolf의 '자궁가족(uterine family)'의 이론을 제시한다.
공식적 차원에서 유교는 여성 억압(지배)의 기제로 작용했는데, '三從之道'와 '婦德'을 공식적 차원의 기제로 보고있다. 조선조 여성은 통치의 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고, 대표권이나 자격에서 처음부터 탈락된 이등시민이었다. 특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부계 혈통의 경직화와 가문 중시 현상에 따라 여성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고, 그 성격도 비인간적으로 흐르게 되는데, 열녀관과 재가 금지, 그리고 出嫁外人 등이 그것이다.
우선 조혜정은 조선조의 여성지배는 유교 원리와 내외관습으로 구체화되었다고 보았다. 특히 주역의 陰陽은 남존여비의 이념으로 굳어졌고, 이 원리는 '생물학적 성은 운명적이다'라는 숙명론과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역할 수행에 만족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조선 사회의 남녀관계를 지배했으며, '三從之道'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여성이 남성과 관계를 맺지 못하면 사회적 존재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한 것이라 비판한다. 한편 당시 최대의 가치였던 孝 역시 여성은 자신의 부모에게가 아니라 남편의 부모에게 요구 당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었다고 본다. 즉 조혜정은 당시의 통치 이념이 유교를 통한 교화이며, 후기로 가면서 유교 윤리가 민풍화 되었다는 현상에 주목해 볼 때, 주 통제 기제는 '규범적인 세뇌'에 있었다고 언급한다.
다음으로 비인간적 관습인 정절이데올로기는 신분제와의 결합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본다. 물론 여성의 정절을 따지는 문화적 요인도 잠재해 있었지만 실제로는 남성들의 기득권 투쟁의 와중에서 강조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조선은 덕치주의 사회였던 만큼 이를 지킨 여성에게는 보상이 주어졌고, 따라서 여성은 유교 이데올로기의 철저한 내면화를 통하여 자신의 이익을 시집의 이익과 동일시하며 시집에 충성하는 생활을 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는 조선조의 여성들이 자신을 철저하게 제외시킨 남편 가족에게 충실하게 만들었던 다른 차원의 기제를 자궁가족과 모권에서 찾고 있다. 그는 Wolf의 연구를 인용해 '여성의 노예적인 시집살이가 인생주기를 통하여 변화되어 가는데, 남편의 집에 편입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젊은 여성은 점차 자신이 낳은 핏줄(자궁가족)을 이 집안에 더해감으로써 자신의 세력권을 구축해 나간다'는 주장에 주목하여, 여성을 철저히 배제시킨 것으로 보이는 유교가 여성을 성공적으로 흡수할 수 있었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정리하면 조혜정의 글은 특히 여성이 유교 이데올로기를 자발적으로 따랐는가 아니면 규범적인 세뇌에 의해 주입 당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한다. 한마디로 여성 차별적인 유교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현실적인 기득권(모권)과 직결되어 있었고, 이에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조혜정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전통 유교 사회에서 여성의 가정 내적 권위, 모권을 인정하여, 유교에 대해 강한 비판으로 일관하던 그의 논지가 흐려졌다는 느낌을 주며, 또 여성은 남편의 부모에게만 효도할 수 있었다는 등 그의 몇 가지 주장은 좀더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4) 여성학계 입장에 대한 소결론
유교에 대한 여성학계의 논의는 학자들에 따라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비판적인 시각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여성학자들의 유교에 대한 비판은 유교와 상충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조옥라는 그의 글에서 '페미니즘에서는 성차별의 기원이 남녀간의 영역 구분에서부터 기원한다고 본다'라는 언급을 한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설령 '유교의 別이 차별이 아니라 구별의 의미를 가지며 그 자체로 억압적인 것만은 아니라' 할지라도, 여성학계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유교는 맹자의 '五倫'이나 주역의 '陰陽'처럼 근본적으로 모든 관계에서 구별을 전제로 하는데, 그러면 페미니즘과 유교는 과연 대화가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둘째로 조혜정은 '유교에서는 여성이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어머니로서만 인정되었다' 라고 비판하는데, 사실 유교에서 개인은 관계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지 이를 떠난 개인은 생각할 수 없다. 즉 유교는 비단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시 관계 속에서 가지는 특정한 역할(父,, 子, 臣) 안에서 파악하지 종속된 여성과는 달리 완전히 독립된 인격체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특히 이 두 문제는 여성학자들이 근본적으로 유교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유교와 여성학계가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할 과제라 생각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나오는 이숙인의 글을 다룰 때 좀더 구체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3. 한국유교의 쟁점으로서 '여성차별' 논쟁
일반 대중들의 높은 관심과 여성학계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국 유교 내부에서는-유림과 유교를 연구하는 학자를 막론하고 '여성'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다. 실제로 유교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유교를 주로 철학적, 종교학적, 혹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탐구해 보려는 시도는 해왔으나, 이를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조명해 보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주제에 관한 자료나 논문들도 방대한 한국 유교 연구 전체와 비교해 볼 때 지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 단락에서는 아직 유교 전체의 입장을 포괄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유교 연구자들 사이에서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유교의 여성관에 대한 연구를 몇 편의 논문들을 통해 살펴보고, 이 쟁점을 한국 유교 내에서 어떻게 수용, 발전시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금장태, 〈유교 전통의 여성상〉
유교의 여성관에 대한 금장태의 연구 역시 그의 방대한 유교 연구에 비교해 볼 때 지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실제로「한국유교의 이해」의 제 5장(74-84쪽)에서만 이 문제가 언급되고 있다. 한편 유교의 여성 문제에 대한 그의 인식 역시 상당히 보수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한계이다.
그는 현대에 와서 전통 유교 사회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특히 여성의 생활 환경이 가장 심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비난이 전혀 그릇된 것만은 아님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비난에는 '근원적인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상당한 오해가 깃들어 있다'라고 하여 전통 유교의 여성관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논의의 방향을 전환시킨다. 예를 들어 유교가 여성의 영역을 가정에 국한시킨 것은 여성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킨 것이 아니라, 전통 사회에서 가정은 신성하고 사회보다 더 본질적인 공동체로서 마치 사제가 세속을 밟지 않아 신성성을 확보하려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한편 유순함, 온화함을 남성의 성품에 상대되는 여성의 천성적인 특성으로 규정하고, 전통사회가 여성에게 이를 강조한 것은 여성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본성에 근거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또 여성을 겨울에 남성을 여름에 비유하여, 여성은 겨울 동안 생명을 저장, 보호하는 역할을 맡으며, 생명을 잘 간직하기 위한 '정절'이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한편 '축첩제도' 자체는 잘못된 것이지만 남편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인내한 여성들의 태도를 숭고한 사랑의 실천으로 해석하면서, 전통 유교 사회의 여성은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많은 억압을 받았으나 인내와 헌신을 통하여 이를 초극하였고,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고 결론 내린다.
금장태 교수는 이처럼 전통 유교 윤리를 긍정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되살릴 가치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통 유교 윤리에 대한 해석학적 반성 내지 고민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즉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일견에 여성학계로부터 저항을 살만한 가치들을 무비판적으로 긍정한다거나, 유순하고 온화함을 여성의 천성으로 보고, 남녀를 음양을 상징하는 계절에 비유하는 등 전통 유교의 상징을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조선조의 유교 윤리가 시대의 변화를 뛰어넘어 항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
한편 최근덕 교수도 이와 유사한 입장에서, '여성이 혼인하더라도 자신의 姓을 그대로 유지했고, 남편이 관직에 진출하면 부인은 이에 상응하는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가정 경제권이 여성이게 있고, 또 모권이 확립되어 있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전통 가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예들 역시 여성학계에서 이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전통 유교 안에서 긍정적 가치를 찾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나 중요한 것은 이 작업이 전통적 가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작업이 되어야지 전통의 언어를 구차하게 되풀이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2) 김승혜, 〈夫婦有別의 해석학적 역사와 현대적 전망〉
이 논문은 오륜의 한 조목이자 현대에 와서 남녀차별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夫婦有別'의 해석학사를 고찰하고 현대적 전망을 제시한 글인데, 유교 안에 담긴 긍정적 가치를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 논문은 이를 위하여 漢代의 절대군주 사회에서 시작되었으며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三綱은 버리고, 맹자의 상호 책임에 기초한 관계 윤리인 '五倫'은 三綱的 해석의 틀을 벗겨 본래의 의미를 현대적 입장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맹자의 오륜은 인간관계 전체를 망라한 것으로, 일방적인 三綱과는 달리 상호 책임을 중시한다. 이런 관점에서 夫婦有別의 본래 의미는 부부간에 신의와 존중이 있어야 하고, 禮에 맞게 상대의 여백을 보장한다 것이다. 한편 '禮記'의 부부유별은 '근친결혼에 대한 금기'와 '부부가 서로 신의를 지켜 금수와 구별되는 인간의 존귀함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셋째로 주역의 陰陽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차별 의식은 보이지 않음을 강조하고, 한편 이제까지는 인간관계의 척도가 '父子관계'였으나 '易傳'에 와서 '夫婦관계'가 중심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陰陽에 가치 평가가 적용되면 男尊女卑 사상으로 고정될 수 있으므로 이를 존속시킬 지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네 번째는 동중서(董仲舒)와 백호통(白虎通)의 陽尊陰卑 사상으로, 음양을 天道의 양면으로 보는 漢代의 양존음비 사상은 동중서를 통해 漢유학에 수용되었으며, 백호통의 三綱六紀 편에서는 '五倫'대신 '三綱'이 유교 윤리의 핵심으로 소개된다. 그런데 三綱은 임금과 아버지와 남편은 '綱'이 되기 때문에 항상 옳다고 보아 상호 책임성을 상실한 것으로 유교 본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여섯째로 신유학자들, 특히 朱子는 사회적 성격을 띤 가례의 의식에서는 남존여비의 사상을 드러내나 내면적인 도덕의 실천만큼은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또 여성 자신의 부인으로서 정체성을 살피기 위하여 班昭의 女誡와 소혜왕후의 內訓을 고찰하는데, 반소는 어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논어의 이상을 말하며, 소혜왕후는 '聖人의 경지'와 '聖賢의 지위'를 여성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 보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맹자의 夫婦有別 보다 사실 우리에게 더 유교적인 것이라 당연시되었던 덕목들, 예를 들면 三從之道, 女必從夫, 出嫁外人 등은 (현대적 적합성을 상실했다면) 폐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유교에서 여성 억압적인 요소들을 상당부분 제거시켰다는 점에서 현대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유교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 여성의 삶 안에서 실질적으로 五倫보다 더 강한 구속력을 가졌던 유교 윤리의 대부분을 버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까-유림과 여성 자신 모두 하는 점은 의문시된다. 그리고 이것은 孟子의 五倫은 될 수 있어도 과연 유교 윤리관 전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또 한편 이 시점에서 과거의 악습을 폐지한다고 할지라도 유교의 여성 차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등의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남녀의 역할 구별(別)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고 인정한 점이나 도덕 실천을 통한 평등을 긍정하는 점은 여전히 이 해석이 유교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남녀의 구별을 통한 조화적 평등, 그리고 도덕 실천을 통한 평등을 지향하는 유교의 소극적 평등 개념이,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남녀의 동권과 동등을 주장하는 여성학계의 입장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점이다.
(3) 이숙인, 「우리들의 동양철학」중 제 11장 '페미니즘과 유교'
이숙인의 글은 유교와 페미니즘의 만남, 즉 유교의 페미니즘적 해석이 가능한가를 논의한 글로 페미니즘에 무관심한 유교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즉 이 글은 주변에서 맴돌고 있던 여성 문제를 이제는 한국 유교의 쟁점으로 끌어올려야 함을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글의 내용과 구성은 유교의 여성관을 통시적으로 고찰했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박용옥의 글과 유사하며, 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숙인은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여성의 입장에서 '인간성의 실현에는 성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라는 명제아래 유교적 여성관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숙인은 우선 페미니즘은 유교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는데, 유교는 페미니즘에 무관심한 것을 문제로 지적하고, 이로(대화의 부재로) 인하여 페미니즘의 유교 이해 역시 피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철학이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바람직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유교가 이처럼 현실 문제에 계속 등을 돌린다면 인류의 반쪽만을 대변하는 과거의 사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유교는 시대의 변화에 새로운 정신으로 이론을 재무장하여 그 시대가 처한 문제를 해결한 '변화의 사상'이었음을 강조하며, 따라서 이 시대의 유교의 과제는 페미니즘을 수용하여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라 주장한다.
한편 이숙인은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의 진정한 상호 의존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각각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가'하는 딜레마를 해결할 실마리가 유교의 관계적 인간관 안에 있다고 보며, 또 유교는 '관계적 윤리가 내포하고 있는 불평등적 요소의 극복을 위하여 페미니즘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이숙인은 유교와 페미니즘의 대화는 각자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는 낙관적 입장을 보인다.
결론적으로 그는 페미니즘에서 비난하는 유교는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재해석된 유교로, 이는 그 시대의 한계로 다루어져야지 유교 자체를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보며,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동반자적 양성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과 사회의 모든 관계는 부부에서 출발한다'는 중용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시대의 요청은 이제 君子를 남녀에게 공동으로 사용하여 남성 도덕 실천의 목표가 군자이듯이 여성의 목표 역시 군자에 두어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유교와 페미니즘의 대화를 시도한 이숙인의 문제의식과 유교가 시대적 요청에 따라 재해석되었듯이, 우리 시대의 요청인 동반자적 양성관계의 모색을 위하여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참신하다. 한편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여성학계의 일원으로서 유교를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고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유교적 통찰 자체와 시대 상황에 따라 한계를 드러낸 유교의 모습을 분리시켜 이해한 것은 여성학계의 유교 이해의 진일보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동반자적 양성관계 모색을 위한 그의 시도, 즉 남성을 전칭하는 '君子'라는 용어를 남녀에 공동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은 도덕실천을 통한 평등을 주장하였던 유교 전통의 평등관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페미니즘과의 대화를 통한 발전된 해석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한편 현대 여성들에게 당신들도 이제 유교의 남성들처럼 聖人君子의 이상을 가지라는 말이 과연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점 역시 의문시된다. 오히려 이보다는 유교 안에서 인간 본성에 기초한 좀더 보편성을 가지는 평등의 개념을 부각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4) 유교적 논의들에 대한 소결론
이상에서 볼 때 유교 자체에서 진행된 논의는 남녀 학자간의 입장의 차이가 드러남을 알 수 있다. 금장태나 최근덕은 좀더 보수적인 입장에서 유교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강조되었던 덕목들 (온화, 유순, 인내, 정절 등)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 계승, 발전시킬 것을 주장한 반면, 김승혜, 이숙인은 역사 속에서 구체화된 유교의 모습(윤리) 자체를 긍정했다기 보다는 유교 윤리의 근원적 의미를 긍정한 것이라 볼 수 있고, 이에 병행하여 현대적 해석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문제는 과거의 유교 윤리를 해석학적 반성 없이 무비판적으로 긍정하는 경우 이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성학계의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며, 여성들에게 유교에 대한 반감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 실천을 통한 평등'의 강조 역시 비판의 여지는 있다. 즉 유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유교에서 가장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 聖人, 君子의 목표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추구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로 볼 수 있으나, 현실을 직시하는 여성학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여성은 정당한 권리는 박탈한 채, 모든 불평등을 감내하는 인격자가 될 의무만을 요구 당했다고 비난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문제는 여성 연구자들의 입장, 예를 들면 孔子의 'original insight'을 되살리려면 변질된 三綱은 버려야 한다는 주장(김승혜)과 페미니즘에서 비난하는 유교는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재해석된 유교(이숙인)라는 주장들은 원시유교의 통찰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역사적으로 전개하며 발전된 유교의 해석사를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일으킨다. 마치 기독교에서 성서와 성서의 해석사를 분리시켜 이해할 수 없듯이, 漢代부터 뚜렷해진 유교의 남녀 차별적 요소와 조선조의 여성 차별을 유교의 변질로 이해하기보다는 인류 역사 전개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여성 차별, 내지는 그 시대의 사회 문화적 산물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좀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4. 맺음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차별과 권위주의의 책임은 대부분 유교에 지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 기초 공동체인 가정의 붕괴와 도덕성이 상실된 현실을 개탄하며 孝, 信, 義 등의 전통 윤리를 되살려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한다. 한편으로는 유교를 막연히 비판하지만 한편으로는 심성 수양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을 위하여 학생들에게 四書와 명심보감 등을 읽을 것을 권장한다. 즉 20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이처럼 겉으로는 유교의 속박을 벗어난 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유교의 윤리를 강하게 요청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특히 이제까지 논의해 온 여성차별의 문제와 연관시켜 볼 때, 한국인들이 이처럼 유교를 부정하는 동시에 긍정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書經의 구절이라 하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에 대하여 이제는 '암탉이 울면 새벽이 온다'라는 담론이 등장하고 있다. 유교에서 남자는 하늘(天)로 여자는 땅(地)으로 상징된다. 과거의 하늘은 높고,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인 반면, 땅은 비천하고 만물을 산출하는 것 외의 가치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하늘은 무한한 도전의 대상이다. 반면 땅은 환경문제의 중요성과 더불어 이제 하늘보다 더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흔들리는 가장의 권위와 여권의 신장은 아마도 현대인들의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전혀 무관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과거 봉건 사회의 유교를 부정하는 이유 역시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세계에 대한 엄청난 인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유교 문화권 안에 있는 우리는 서양인들과 달리 유교 안에 긍정적 가치가 있으며, 三綱五倫이 본시 권위주의와 여성 차별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직감하기에 이를 동시에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던 논의들, 특히 사회학적 입장에서 유교를 평가한 여성학자들은 대체로 조선 사회 안에서 구체화 된 유교적 현실을 유교 그 자체라 보고 비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교와 전혀 무관한 서양 문화에도 가부장제와 여성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지적처럼, 이들의 연구는 조선조의, 그리고 넓게는 인류 역사 과정 안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여성 억압의 사례를 유교에 투사시킨 것이라고 비판될 수 있다.
반면에 이숙인의 지적처럼 유림들, 그리고 유교계는 이 문제에 대하여 너무 냉담하다. 물론 유교를 전공하는 극소수의 여성들은 나름대로 유교를 현대 여성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긍정적인 면을 살려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논의는 아직도 페미니즘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거나, 현대적인 해석 없이 과거의 가치가 그대로 현대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양측의 이러한 논의는 여성학과 유교의 깊은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따라서 한국 유교의 쟁점을 논하는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동어반복 같지만 '여성 문제를 한국유교의 쟁점으로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성 문제를 한국 유교의 쟁점으로 부각시킨다는 것이 과거 조선조의 여성 차별의 문제를 다시 쟁점화 시키자는 말은 아니다. 즉 과거 유교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으며, 여성이 얼마나 억압을 받았는가하는 문제는 유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여성관 확립을 위한 차원으로 다루어져야지 이 자체가 다시 쟁점화 된다면 이는 또한 여성학계에서 이제까지 해 온 작업을 반복하는 진부한 논의가 될 것이다.
끝으로 여성학과 유교의 대화를 위하여 제기된 문제들, 첫째로 관계성을 중시하는 유교에서 이를 떠나 완벽하게 독립된 개인을 인정할 수 있는가, 또 페미니즘의 주장처럼 관계를 떠나 여성의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와 둘째로 상호간의 다름(別)을 인정하고 조화를 추구하는 유교의 평등과 이제까지 주로 남녀의 진정한 동권과 동등을 주장했던 페미니즘의 평등이 앞으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하는 점은 페미니즘과 유교가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1) 유교의 여성관에 대한 논문
1. 박용옥, '유교적 여성관의 재조명'
『한국여성연구 1- 종교와 가부장제』, 청하, 1988, 11-50쪽.
2. 조옥라, '가부장제에 관한 이론적 고찰'
『한국여성연구 1- 종교와 가부장제』, 117-149쪽.
3. 조혜정, '한국의 가부장제에 관한 해석적 분석'
『한국의 여성과 남성』, 문학과 지성사, 1988, 58-108쪽.
4. 신영숙, '한국 가부장제의 사적 고찰'
여성한국사회 연구편, 『여성, 가족, 사회』, 열음사, 1991, 34-61쪽.
5. 정양완, '규범류를 통해서 본 한국여성의 전통상에 대하여'
『한국 여성의 전통상』, 민음사, 1991, 49-75쪽.
6. 하현강, '한국여성상의 형성'
Ibid, 11-29쪽.
7. 금장태, '유교전통의 여성상'
『한국유교의 이해』, 민족 문화사, 1991. 74-85쪽.
8. 김승혜, '夫婦有別의 해석학적 역사와 현대적 전망', 《공자학》 4호, 1988, 47-81쪽.
'儒敎, 道敎 문화 속에 형성된 여성의 그리스도교적 사회 영성',
《종교의 이해》1집, 1996, 27-50쪽.
9. 이숙인, '페미니즘과 유교'
한국 철학사상 연구회, 『우리들의 동양철학』, 동녘, 1997, 제 11장.
(2) 참고도서
1. 소혜왕후, 『內訓』,陸完貞 역주, 열화당, 1984.
2. 반소,『女四書』, 이계순 역, 문학세계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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