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주기/청년

청년 부랑자 느는 이유

맑은샘77 2007. 1. 27. 09:52

2007년 1월 26일 (금) 18:21   한국일보

실업…신용불량… 무기력 2030 "젊은 부랑자 는다"


복지시설行 증가…퇴소해도 'U턴' 일쑤… 재활 전문 프로그램 시급

#수도권의 한 부랑인 복지시설에 머물고 있는 A(28)씨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멀쩡해’ 시설 내에서 오히려 주목을 받고 있다.

복지시설 수용자는 대부분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알코올 중독자,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나이도 주로 50대 이상 고령자다.

A씨는 한창 사회활동을 할 나이에 왜 이 곳에서 허송세월을 하는 걸까. 고졸 학력인 A씨는 스무 살 때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장기간 실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음식점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돈벌이에 나선 본 적이 없다. 점점 무기력증에 빠진 A씨는 지난해 7월 제 발로 이 곳을 찾게 됐다.

통제된 생활이 답답했지만 감수했다.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되고 노숙인 시설에서처럼 낮에 일하러 나갈 필요도 없다. A씨는 시설 관계자에게 “장기간 머물 것”이라고 밝혀 둔 상태다.

#30대 초반의 B씨도 2005년 부랑인 복지시설을 찾았다. 대학을 졸업한 B씨는 대형 쇼핑몰에서 안전 요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였던 동생이 몰래 B씨의 신용카드를 사용해 졸지에 수천 만원의 빚을 졌고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B씨는 일자리도 잃고 차압 등으로 갈 곳이 없게 되자 복지시설로 들어왔다.

재기를 모색하며 사회로 돌아갔지만 번번히 적응에 실패하고 입ㆍ퇴소를 3번이나 반복했다. 일자리가 생겨도 월급이 채권자에게 그대로 흘러가는 바람에 빈털터리가 됐다. 점점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졌고 일할 의욕도 상실했다.

조그만 어려운 일이 닥쳐도 복지시설을 다시 찾게 됐다. 적어도 이 곳에서는 자신을 비난하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복지시설 관계자는 “B씨는 최근 일자리가 생겨 복지시설에서 나갔지만 언제 다시 찾아올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부랑인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젊은 나이에 사회 적응에 실패, 재활 프로그램 등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A씨가 머물고 있는 복지시설에는 20대 수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2005년까지만 해도 20대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난해에는 상반기에 3명이 입소한 데 이어 연말에는 10명까지 늘었다.

짧은 기간 머물다 간 사람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문제는 고령 입소자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질환자, 장애인이지만 20대 수용자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점이다. 가정 불화나 경제적 문제로 갈 곳을 잃은 경우가 많지만 실업이나 사회 부적응 등으로 복지시설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취업을 해도 시설을 떠날 생각이 없거나 퇴소한 뒤 금세 되돌아 올 정도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20대 중반의 C씨는 신용불량자는 아니지만 취업해서 스스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고 부모는 이혼한 상태다.

그는 복지시설에서 가스기능사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고 있지만 자격증을 따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고민이다. 의식주를 혼자 해결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생활을 해야 하지만 자신이 없다.

부랑인 시설은 입소자가 체류를 원할 경우 무조건 수용해야 하며 기물 파괴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내보낼 수 없다. 시설 관계자는 “퇴소해도 생활이 불편하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젊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고 되돌아 오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젊은 부랑인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이탈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심각한 청년실업도 한 몫하고 있다. 김성이(61)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실 감각이 부족하고 도피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긍정과 자활 의지인데 우리나라 복지 시스템은 단순히 식품 공급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부랑인 복지시설이 재활 장소로 활용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 은혜의 집 최경희 사회복지사는 “사지 멀쩡한 젊은 부랑자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신적 재활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라며 “부랑자 시설이 단순히 들어왔다 나가는 곳이 되지 않으려면 복지시설에 대한 예산을 늘리고 전문 상담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아이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기사제공 ]  한국일보   |   한국일보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