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문화

거침없이 하이킥...

맑은샘77 2007. 1. 27. 09:47
잔혹한 하이킥에 중독되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주는 웃음 뒤에 남는 뜻밖의 교훈…알고보면 우리 모두 허술한 존재, 쪽팔림은 짧고 인생은 길도다

▣ 이영재 <컬티즌> 편집장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이 있어 다행이다. 덕분에 저녁 시간이 즐겁다. 일주일에 한두 회는 우리를 설득하지 못한다. 폭소를 기대했다가 찔끔찔끔 웃다가 마는 아쉬운 날도 있다. 그래도 시청자들의 충성도는 상당히 높다. 원망하지 않고 다음날도 홀린 듯 TV 앞에 앉는다. ‘옆구리만 찔러다오. 버튼만 눌러다오. 나는 이미 웃을 준비를 마쳤다.’ 언제나 그런 심정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시트콤에 중독되고 만 것일까. 웃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킥>은 뜻밖의 교훈도 준다. 그 교훈이란 달콤하거나 따뜻한 것이 아니다. 냉정하고 직설적이며 때로는 잔혹하다. 쓰라린 삶의 교훈이 웃음과 엉켜 있기에 이 시트콤의 중독성은 강한 것이다.


△ <거침없이 하이킥>은 인간관계의 ‘먹이사슬’을 철저하게 강조하지만, 잘난 놈도 못난 놈도 모두 다 자괴감에 시달리는 가련한 존재라는 낙관도 제시한다.

노골적으로 “덤비지 마라”

<하이킥>에 따르면 우리는 강자에게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 여지없이 당하기 때문이다. 야동 순재의 스위트 홈에는 견고하고 복잡한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준하는 순재의 갖은 멸시를 묵묵히 견딘다. 순재는 아내 문희에게도 절대 군림한다. 막강한 가부장 순재는 손아래 사람인 며느리 해미에게 짓눌려 있다. 무엇보다 의술이 하급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문희까지 압도하는 해미는 시동생 민용에게는 당한다. 작두 타는 무당도 눈빛 하나로 까무러치게 만들었던 이 당당한 여걸은 민용 앞에서만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뒤돌아서 홀로 분통을 터뜨릴 뿐이다. 캐릭터들 사이의 위계나 먹이사슬은 복잡할 뿐 아니라 단단하게 굳어져 있다. 핍박받는 자들은 가끔 역전을 꿈꾸고 저항을 해보지만 쿠데타는 번번이 실패한다. 슬프게도 우리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집에서도 그렇다. 동창회라고 10년 만에 친구들이 만나면 기세의 서열이 과거 학창 시절과 변함없다. 초등학교 때 나를 눌렀던 친구 앞에서는 마흔 살이 넘어도 기가 죽는다. 인간관계의 원리는 따뜻한 호혜평등보다는 거침없는 약육강식에 가까우며 그 서열 구조는 좀처럼 와해되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하이킥>은 대담하다.

<하이킥>은 또한 자신의 지적 능력을 과신하지 말라고 알려준다. 시트콤은 매회 인간 기획 능력의 한계를 단언한다. 우리의 기대와 계획과 결심은 현실 앞에서 대부분 좌초한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문희는 운전이 두려워 자동차 타이어에 구멍을 냈지만 결국은 손수 타이어를 갈아야 했다. 민용이 스킨십을 갈망한다고 봤던 민정의 판단은 오버였다. TV 출연을 하고 난 뒤 유명인이 되고 사업도 번창할 것이라 상상했던 순재는 긴장을 거듭하다 카메라 앞에서 큰대자로 뻗고 일생일대의 사고를 치고 말았다. 준하의 ‘나 홀로 방송’도 눈물겨웠다. 병원 내 환자들을 청취자 삼아 정성껏 마음속 이야기를 들려주고 음악도 띄웠지만 일찍 문을 닫은 병원은 텅 비어 있었다. 그렇다. 드라마 밖의 우리들 인생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기대는 배신을 당한다. 판단은 어긋난다. 우리의 뇌가 만들어내는 스토리 중 절대 다수는 환상이거나 착각이거나 기우인 것이며 그런 사실을 현실이 나중에 까발려놓는다. 인간 기획 능력을 부정하는 <하이킥>은 냉정하지만 지극히 리얼하다고 할 수 있다.


△ 문희와 준하는 관계의 사슬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하지만 굴욕은 짧고, 인생은 길다는 낙관적 인물이다.

매회 창피해 죽겠는 한계 상황들

<하이킥>은 우리들 주변 곳곳에 지뢰와 함정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지적 능력이 박약한 인간들이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캐릭터들은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너무나 쪽팔리는 사태를 맞게 된다. 시트콤의 이야기 속에 성공이 희귀하다.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무용담 대신 속 쓰린 실패담이 가득하다. 캐릭터 중 하나가 민망해 창피해 견딜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서 한 회가 끝을 맺는다. 캐릭터들을 원치 않는 파국 속으로 밀어넣은 뒤 시청자들에게 이제 실컷 웃어보라고 권하는 <하이킥>은 잔혹 시트콤이다.

결국 <하이킥>의 캐릭터 중에서 제목처럼 속 시원히 하이킥을 날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각자 고유한 한계에 갇혀 있고 먹이사슬 속에서 근심하며 엉뚱한 계획을 세우다 스타일을 구기고 만다. <하이킥>은 매회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개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편다. 그런 이유에서 이 시트콤의 세계관은 어둡고 절망적이며 나아가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을 개선하지 못하고 세상의 벽을 돌파하지 못하는 캐릭터들은 무력하고 측은한 존재들이다. 일확천금은 고사하고 취직자리 하나 얻기 어려운 이 괴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절망과 비관에 충분히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 시트콤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하이킥>이 들려주는 삶의 마지막 교훈은 진취적이다. 이 시트콤은 창피하고 민망한 일을 겪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쪽팔림은 짧고 인생은 길다. 굴욕은 인생의 한순간일 뿐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망가진 순재와 문희와 준하와 민정도 다들 잘 극복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어쩌면 굳이 속쓰린 과거를 극복하려 아등바등거릴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시간이 다 해결할 것이다. 또 <하이킥>의 캐릭터들이 그렇듯이 우리 주위의 잘난 인간들도 알고 보면 허술하고 자괴감에 시달리는 가련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우리들 동료 엉터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자빠질까봐 혹은 쪽팔리까봐 걱정 말고 마음껏 하이킥을 내질러보라고 시트콤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