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사역/이혼-재혼문제

[스크랩] 오늘 집에 와보니 여섯살짜리 딸아이가 있었다

맑은샘77 2006. 10. 24. 12:06

시내에서 청소년마냥 배회를 한다...

연휴내내 친척들과 가족, 동생내외들과 마주치기가 싫어 시내 이곳저곳 문 열은곳을

찾아다녔다. 오늘 문득 소주한잔에 아는 형들과 저녁을 먹고 소일거리를 찾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30년넘게 살아온 집은 예나지금이나 설렁하다...

방문을 열자 알수없는 작은 수첩을 뒤적이며, 쪼그리고 앉아 TV만화삼매경에 빠진

6살박이 아이가 있었다.

아빠가 늦게오면 그 재미있는 만화가 지겨울정도로 치이고 치어서 할머니품에서

잠이 든다. 수십편의 만화주제가를 달달 외우고, 수백권에 달하는 책은 읽어주는 이가

없어서 먼지만 쌓인다.

 

38번채널 투니버스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밤에 잠들기까지 귀에 달고 사는

유일한 아이의 친구이다. 한때 뿡뿡이도 잠자리에 동행했으나 이제 아이에게는 그마저도

위안이 되지 않은것 같다.

 

예전에 개그프로에서 '놀아줘~' 가 유행인적이 있다.

가끔 집에라도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란 작자에게 맨 처음 하는말이다.

재미있게 즐겨보았던 개그프로의 유행어인데 가슴에 묻어나는 아픈 단어로 박히고 말았다.

 

아이에게는 눈물이 없다. 심한 투정도 없다.

눈물을 흘려야 닦아줄 이가 없고 투정을 피워야 받아줄 이가 없다.

얼마전에 장난감 피아노를 한개 사주었다.

방에서 몇분 치다가 거실에 가져다 놓으려고 들다가 놓쳐서 발등을 찍혔나 보다.

이내 눈물을 흘리고 울음이 터졌다.

아이 발등을 보고 이내 멍이 들고 피가 맺혔다.

예전에 나 클때만 해도 한시간도 넘게 짜고 운적이 많은듯 하다.

눈물 두방울에 생색만 내는 울음....

피멍이 들고 발이 찍혔는데도....

 

이 글을 쓰면서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미안하다... 딸아....

...................................눈물을 닦는다...

 

아이는 분홍색을 좋아한다.

잘 맞지는 않는 아이의 분홍색 신발이 있다.

내가 바쁘면 주말내내 집에서 한발짝도 못 움직이는 아이....

그런 아이가 안스러워 공설운동장에 가끔 데리고 간다.

다들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며 그네도 타고 세발자전거도 타건만....

문득 아이가 좋아하는 분홍색 신발이 눈에 띄었다.

앞코가 얼마나 닳았는지 발가락이 보인다.

기껏 몇천원 몇만원하는 아이 신발 하나 고를 수 없다니...

 

얼마나 집에서 박혀 있었던지 세발자전거를 구르는걸 두달전에 배웠다.

그나마 많이 못태워준다.

어디를 데리고 나가고 싶어도 끼니부터가 걱정이다.

아이에게는 친구도 없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원생이 아이의 친구이자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낙이고 배움이고 세상을 보는 눈의 한계이다.

내 여섯살적에는 부모를 따라 실로 수많은 곳을 다녀온걸 사진이 말해주지만...

아이에게는 독사진밖에 없다.

 

네살때 엄마가 가버렸다. 텅빈 아파트에서 할머니와 고모와 나 그리고 딸아이가

밥을 한끼 먹었다. 그게 엄마없이 들인 처음 밥상이었다.

항상 엄마손에 붙여 살았던 아이에게 할머니가 건네는 첫수저에 밥이 입에 들어갔다.

참아야 했지만...

참아야 했지만...

끝내 나는 눈물을 터뜨렸다.

부모앞에서 여동생앞에서 딸아이앞에서 보이지 말아야할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내가 없을때 할머니가 아이에게 말한듯 하다.

'너가 엄마 찾으면 아빠가 우니까 엄마라는 말은 하면 않된다고...'

그후 2년동안 아이 입에서는 엄마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곰세마리라는 동요에서 엄마곰은 날씬해라는 대목이 있다.

딸아이가 노래를 불렀다.

곰세마리가 있어 엄..아빠곰.. 아빠곰...아기곰...

아빠곰은 뚱뚱해...엄..아빠곰은 날씬해...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네살박이 여윈 아이가 만들어낸 노래이다.

 

다시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두달전쯤부터 가끔 엄마를 묻곤한다.

처음에는 병원에 있다고 했다. 지금은 아파서 죽었다고 한다.

아이는 다시 묻지 않는다.

 

 

 

아직도 살던 아파트를 기억하고 층수를 기억한다.

누구나 사연은 있고 아픔이 있으리라...

나 또한 그렇기에 지난 2년반이란 시간동안 나의 앞길과 뒤쳐지는 현실에

괴로워했다.

 

진정 내가 살아가면서 괴로워하고 고통받아야 하는것은...

 

화창한 봄날 가족나들이를 못가는 아쉬움이 아니요...

 

친구나 아는 사람과의 만남이나 남들이 시선이 아니요...

 

동네의 쑥덕거림이나 현실회피에서 오는 좌절이 아니요...

 

내 인생에 찍혀여할 지워지지 않는 낙오의 점이 아니었다.

 

난 한 인간을 모진 세상밖으로 내몰았고 그의 아버지였으며,

한 아이의 유년기를 송두리째 뺏어버린 죄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성인이었고 아이엄마 또한 성인이었다. 아무리 싫고 싫어도

이혼만은 않되는 것이었다.

나와의 헤어짐이 아이엄마에게는 자유였을지 아니면 또다른

새출발이었을지 모르나 당신이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기는 바란다.

내가 무릎까지 꿇어가면 빌었던 기억이 난다.

이혼만은 않된다고... 아이땜에 눈물 많이 흘렸을줄 안다.

 

아이엄마나 나나 이혼의 아픔은 클테고 여기 오는 분들 또한 다 똑같겠지만

진정 가장 피해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말한마디 못하고 옮겨다녀야

하는 바로 우리들의 아들딸이었음을...

 

오늘 집에 와보니 여섯살짜리 딸아이가 있었다.

출처 : 이혼[아띠클럽™]재혼
글쓴이 : 오토캐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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