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신앙

위기의 한국교회

맑은샘77 2006. 8. 1. 17:59
위기의 한국교회, 보수로 ‘우향우’
목회자 부도덕에 정치세력화 실패 경험
내면에 귀기울이지 않고 좌경화 탓 인식
급격히 보수화되며 교인들 감소 이어져
민주화운동 앞장선 기억 잊은 교회
나눔의 길이냐 독선의 길이냐 갈림길
한겨레
» 2004년 10월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우익단체들의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 도중 참석자들이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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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한국기독교는 군사독재정권이 반대목소리를 억압하던 침묵의 시절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매주 열린 ‘목요기도회’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회복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효순·미선양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확산되자 김홍도 길자연 목사 등은 ‘반미시위 규탄’과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내걸고 서울시청앞에서 잇따라 구국기도회를 개최하였다.

개정사립학교법 반대운동에 동력을 제공한 것도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기독교계는 종교사학의 자율성 침해를 내세우며 거센 반대운동에 돌입하였다. 기독교계의 반대가 야당과 사학재단등의 반발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20여년 사이 한국기독교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목요기도회’가 ‘시청앞 기도회’로 대체되고 보수우익세력의 구심점으로 변신한 것일까?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기독교인은 862만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의 같은 조사와 비교해볼 때, 불교 신자는 3.9%가 늘어나고 기독교 신자는 1.6% 감소하였다. 반면 천주교는 지난 10년동안 무려 74.4%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돼 국내 3대 종교 신자가운데 기독교인 숫자만 감소세를 보였다. 이같은 조사결과가 나오자 교계에서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박경조 회장은 “한국교회가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오덕교 총장은 이같은 교인감소가 잘 수긍이 되지않는다면서 “현 정부가 교회와 가깝지않기 때문에 기독교인 숫자가 적게 나온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10년 전 조사에 비해 줄어든 기독교인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선별된 사람들‘의 숫자와 똑같은 14만4천명이라는데 주목해 ’말세의 징조‘라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기독교인만 10년 전보다 감소

 

이처럼 다양한 반응을 신앙적 성향에 따라 분류해보면, 근본주의진영에서는 사회참여와 자유주의신학 때문에 전도와 영혼구원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공격하고 있으며, 진보-중도진영에서는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하며 세상의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전혀 상반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 대광고 교목 류상태씨는 “열성적인 전도자들이 타종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왜 개신교인이 점차 감소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개신교 보수 교회의 지도자들은 아직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원시적 신념에 함몰되어 여전히 낡은 교리만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은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말이다.

요즘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양적인 침체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의 쇠퇴와 반기독교적 분위기의 확산이 심각하다는 지적인데, 교회개혁 실천연대는 이같은 위기의 주된 원인을 목회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몇 대형교회에서 촉발된 담임목사직 세습논란과 교회재정의 사적 남용 논란, 또 K목사 S목사 Y목사 등등 끊이지 않고 튀어나오는 목회자들의 간통과 성추행 논란은 목회자를 성직자 즉 성스러운 직분자로 존경해온 사회적 분위기를 급격하게 실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한 내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기독교는 양적인 성장에 기반한 자신만만함에 도취해있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지난 2004년 총선 당시의 기독교정당 창당시도였다. 이는 팻 로버트슨 목사가 이끄는 ‘기독교도연합’ 등의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세력이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하면서 공화당과 결합해 낙태와 동성간 결혼 반대, 이슬람에 대한 강경입장 등 이른바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정책’의 실천에 나서자 이를 우리 땅에서도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교계내에서도 우려와 반발이 많았지만 김준곤 박영률 목사 등은 “1300만 기독인이 결집하면 안될 리가 없다”면서 기독당 창당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최소한 민주노동당을 앞설 것“이라고 자신만만하던 기독당은 불과 1.1%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이처럼 직접적 정치세력화가 실패한 뒤 보수기독교계는 자기반성보다는 외부요인, 즉 우리 사회의 이른바 ‘친북-반미-반기독교 분위기’를 탓하며 친미반북세력의 결집에 앞장서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편 종교사회학자들은 이런 보수우경화 움직임이 확산되는 바탕에는 교인감소현상으로 촉발된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87년 6월항쟁 이후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 등으로 변화된 우리 사회의 진보적 분위기가 보수신앙의 사회적 토대를 허물고 있다는 반발감이 더욱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신앙행태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임목사 세습·간통 ‘입길’

그러면 과거 민주화.인권운동에 앞장서온 교회의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문익환 함석헌 김재준 등 진보적인 기독교계 원로들이 87년 6월항쟁 이후 잇따라 소천하고 ‘군부독재’라는 골리앗이 무너지고 나자 교파와 교리의 차이를 넘어 민주화 인권을 위해 하나가 되었던 기독교 민주화운동세력의 연대는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민주화의 토대가 마련됐으므로 이제는 본연의 사명인 영혼구원에 전력해야 한다”고 교회로 복귀하는 이들도 나타났고, 반면 “민주화와 통일의 완성을 위해 정치권에 진출해야 한다”고 정권과 정당에 진출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또 기독교농민회와 기독노동자총연맹 등에서 활동하던 기독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종교를 뛰어넘는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며 기독교조직을 해산하고 민주노조와 농민회 건설에 투신하기도 하였다.

반면 “날로 과격해지는 학생.노동운동에 대항해 온건 시민운동을 조직해야 한다”며 경실련등의 시민운동에 뛰어드는 이들도 나왔다. 한편으로 김해성 박천응 목사 등 젊은 목회자들은 외국인노동자와 노숙자, 장애인 등 우리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목회에 대거 투신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민주화인권세력이 다양하게 분화되는 사이, 독재정권하에서 침묵하며 교회를 키워온 근본주의세력이 최근의 개혁적 사회분위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고, 과거 민주화인권운동에 몸담았던 김진홍 서경석 목사 등이 이들과 연대하면서 보수우익운동이 조직화되며 세를 불리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교회성장의 위기를 절감한 복음주의권은 교회갱신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좌경화’가 교회의 입지를 축소시킨다는 위기감에 이끌려 때로는 근본주의세력에게 동조하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미국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한국을 방문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목회자가운데 영향력 1, 2위를 다투는 릭 워렌 목사는 10만 가까운 교인이 몰려 한국교회로서는 모처럼 성공한 대형집회인 상암 월드컵경기장 집회에서 “한국교회가 축복을 받은 것은 지구촌 이웃을 섬기라는 뜻”이라면서 교회가 에이즈 퇴치같은 전지구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워런 목사 방문 “이웃 섬기라”

» 권혁률/기독교방송 보도국 교계뉴스팀장
1974년의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는 민족복음화와 영혼구원을 강조하면서 이후 한국기독교의 공격적 전도를 촉발하였고 이것이 급격한 산업화와 맞물리면서 한국교회의 경이적인 양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후유증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는 한국기독교에 또다시 미국의 지도적 목회자가 찾아와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인 성숙과 나눔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한국의 성도들에게 남기고 떠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지금 이 땅의 대다수 기독교인 민초들은 벽안의 설교가에게서 뭔가 비전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하며 몰려들 정도로 진리에 목말라 있다. 그 갈증을 정의와 평화, 나눔과 봉사의 아름다움으로 채울지, 아니면 자기방어와 배타적 독선으로 채울지 여하에 따라 한국기독교의 미래는 좌우될 것이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설파하였다.

이땅의 기독인들이여, 정말 한번 제대로 생각해보자. 어떻게 해야 한국기독교가 살 것인가?

권혁률/기독교방송 보도국 교계뉴스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