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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보세력'에게 보냅니다.(1) - 폭력은 이제 그만

맑은샘77 2006. 6. 1. 22:28
저는 소위 조중동 보다는 한겨레를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한나라당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최소한 ‘수구꼴통’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년 반 APEC 시위부터 시작해 이번 대추리 사태까지 지켜보면서 소위 ‘진보단체’,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집단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제가 생각하는 진보단체의 투쟁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말해 보고자 합니다. 진보언론의 문제점은 후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내건 ‘반세계화’, ‘미군기지 대추리 이전 반대’같은 요구사항이 틀렸다고 반박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관철하려는 행위는 틀렸을 뿐만 아니라 실망스럽고, 실망을 넘어 화가 나기까지 합니다.

시위대는 전경들을 향해 아무 거리낌 없이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죽봉을 겨눕니다. 쇠파이프는 끝을 두드려 얇게 펴 놓는데, 이렇게 하면 정통으로 맞지 않고 스치더라도 살이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봉은 끝을 두드려 끝을 갈라지게 합니다. 전-의경의 방석모의 안면보호대(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습니다.)는 철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죽봉의 갈라진 부분은 그 철망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고, 때문에 여기에 눈을 찔려 실명당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긴 자루 끝에 낫을 달아서 내리찍는 일도 있으며, 울산 플랜트 노조 시위 때에는 수레에 쇠파이프를 여러 개 달아 놓고 밀어붙이는 일명 ‘수레전차’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정당한 의사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TV에서 한 시민단체 간부가 인터뷰를 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경찰이 진압을 하자 흥분한 분들이 공사장의 쇠파이프나 가로수 지지대로 쓰는 대나무를 들고 와서 맞서는 것 같다.’는 요지였는데, 그것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공사장에서 급히 들고 온 건데 APEC 시위 때는 녹색 테이프가 친친 감겨 있고, 지금까지 가로수를 많이 보아 왔지만 지지대가 3.5미터씩이나 하는 것은 본 일이 없습니다. 대추리에서는 논에서 대나무를 기르나요?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어 공론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들은 큰 실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지금은 1980년대가 아닌 2000년대이며, 폭력시위를 용인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폭력시위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대추리 사태를 5.18과 결부시키는 진보단체의 주장에 수긍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이를 말해 줍니다. 여론조사 방식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부상 전-의경들에게 인터넷에 댓글을 올리게 했다는 기사를 올렸지만, 우리나라의 인터넷 여론이 일부 전-의경의 힘만으로 좌지우지 될 만큼 규모가 작지 않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폭력시위에 찬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APEC 시위 때 약 3만이었던가요? 하여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반세계화, 쌀개방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고, 수영교 부근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습니다. 이 때 수영교로 집결하는 시위대에게 부산 시민들이 보낸 것은 격려가 아닌 항의와 욕설이었습니다. 왜냐고요? 시위 때문에 곳곳에서 교통이 통제되어 혼잡을 빚었고,(수영 근처에서는 지하철도 정차하지 않았습니다.) 시위대가 집결 과정에서 도로 곳곳을 무단횡단 하는 바람에 더 많은 불편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 이해하는 사람 별로 없었습니다. 그 보다 자신의 생계가 더 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솔직히 도시 사람들은 농민의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 자체가 사회적 담론에 무관심해진 편입니다. 한총련이 왜 대학가에서 힘을 못 쓸까요? 경찰의 탄압? 아닙니다. 학생들의 무관심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 같은 경우엔 한총련쪽 사람들은 거의 별개의 집단으로 취급합니다. 그만큼 운동권과 일반 학생들의 유리가 심합니다. 이 무관심한 사람들도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부산에서 사람들이 본 것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친구일 전경들이 컨테이너 위에 있는데도 줄로 잡아당겨 전경들이 아스팔트 도로에 내동댕이쳐지는 장면과, 무기를 잃고 고립된 전경을 방석모까지 벗겨 가며 무차별로 폭행하는 시위대, SBS 카메라에까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시위대였습니다. 이 때도 ‘진보언론’들은 시위대에게 방패를 휘두르는 전-의경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내보냈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시위대의 폭력적인 방식을 비난했습니다. 대추리에서도 시위대들은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기지 이전반대’라는 그들의 주장마저도 의심받고 있습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은 ‘미군철수’이고,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대추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2005년 초였습니다. 진보단체들이 맥아더 동상 철거를 요구하며 인천에 모여 경찰과 충돌을 벌였습니다. 1만여 명 정도 모인 대규모 시위였고, 진보단체에서는 그것을 통해 맥아더 동상 문제를 사회공론화 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그 한 번의 시위이후 이 문제는 사람들에게 잊혀졌습니다. 그 시위에서 전-의경 1명이 실명을 당했고, 경찰에게 계란과 돌을 투척하며 버스에 불을 지르는 장면을 본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격렬한 비난이었습니다. 그 비난 속에 그들이 원했던 공론화는 매장되어 버렸습니다. 요구가 정당한지, 아닌지를 떠나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80년대에도 시위대는 투석전을 벌이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화염병도 던졌습니다. 그런 시위대에게 시민들은 빵과 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당시의 정권은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국민들을 힘으로 억누르려 했기에, 그들이 행사하는 공권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의 투표에 의해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수립된 정부가 국가를 통치하고 있고, 아무도 이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경찰들을 보고 독재 권력의 하수인이라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공권력에 대해 시위대는 아직까지 80년대의 방식으로 거부하고 있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사회는 민주주의가 자리잡아가고 있고, 사람들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위대가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죽봉은 이제 사회를 불안케 하는 요소로 비쳐질 뿐입니다. 요즘 ‘뉴 라이트‘라는 세력이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들을 탐탁히 여기지 않습니다만, 그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난도, 지지도 보내지 않습니다. 우익도 별로지만 그렇다고 진보세력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보 단체‘라 불리는 세력이 이끄는 시위대의 폭력적인 모습에 마음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계속되는 폭력의 악순환이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정말로 진보세력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고 싶다면, 정말로 이 사회의 약자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면 무기를 들기 전에 사회적 담론에 무관심해져 버린, 그렇지만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바를 지지하며 스스로 지원세력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세력들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아직까지는 사회기득권층, 소위 ‘보수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길은 요원하다고 할 것입니다.

1980년의 일입니다. 공산정권이 들어서 있던 폴란드에서 8월 14일 부터 100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파업이 있었습니다. 그 지도자는 조선소의 전기기술자인 레흐 바웬사라는 사람이었죠. 즉시 군대가 출동하였고, 어떤 기미가 보이면 무력진압을 할 태세를 갖췄습니다. 1953년에 동독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폭동을 전차를 앞세워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적도 있었고, 그 상황이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7일 동안 단 한 건의 충돌도 빚어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은 군대에 대한 어떠한 적대행동도 하지 않았고, 군대는 무력으로 진압할 명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1980년 8월 31일, 파업권과 노조 결성권 등을 골자로 하는 ‘그다니스크 협정’이 조인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정권하에서 해낸 일이며, 이것이 진정한 ‘피플파워’가 아닐까 합니다. 사회가 성숙되는 만큼 시위현장에서 폭력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우리끼리 때리고 상처 입는 일은 어리석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 그만 합시다.

출처 : 사회방
글쓴이 : 바닷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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