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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한계시록 개요

맑은샘77 2019. 1. 10. 20:13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개관

 

1. 서론

 

계시록은 인류에게 계시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마지막 책이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기록한 성경이 계시록으로 끝이 장식된 것은 매우 타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이 땅의 역사와는 달리 영원 무궁하기 때문이며 계시록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가 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롭게 시행될 것을 내다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당하는 성도들의 현 세계와 영광과 기쁨이 넘치는 영원한 천국의 가교 역할을 해주는 성도의 위로서요, 방향표요, 영혼의 보호자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배경과 명칭

 

1) 배경

계시록은 성경의 묵시 문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들어 있는 한 책인 동시에 묵시 문학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교회는 심한 무기력증과 의구심의 침체에 빠져 있던 때였다. 사도들은 거의 소천했으며 그들이 강조하던 주님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또 로마 제국의 박해도 점차 드세지기 시작하여 교회는 위기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성도들의 신앙도 회의감과 무력감 그리고 위기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배교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상황적 배경은 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의 밧모 섬 유배가 단적으로 대변해 준다.

그래서 요한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1:9)라고 서두에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여러 가지로 위기에 처한 교회에 힘과 비전 그리고 경계를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다.

 

2) 명칭

본 서는 계시록(The Revelation)또는 묵시록(The Apocalypse)으로 명명된다. 그 뜻은 '비밀을 드러내는 책' 또는 '가린 것을 드러내는 책'이라는 뜻이다. 헬라어로 기록된 사본에는 요한의 계시록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으며 NKJV(New King James Version)도 예수그리스도의 계시(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로 번역되어 있다. 이와 같은 명칭으로 계시록이 온 교회에 신약성경의 마지막 정경으로 인정된 때는 A.D.397년 제3차 카르타고 회의 때이다.

 

3. 저자와 기록 연대

 

1) 저자

연로한 장로요, 사도 요한이 그 저자이다.

 

2) 기록연대

이레니우스, 오리겐, 유세비우스와 같은 2,3세기경의 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밧모 섬에 유배되었다가 도미티안이 죽은 후 에베소 교회로 귀환되었을 때 쓴 것으로 인정한다. 주후1세기후반에 계시록이 쓰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4. 기록 목적과 특징

 

1) 기록 목적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 계시록이 기록된 시대적 배경'교회의 위기'시대였다. 재림의 지연, 로마 제국의 박해, 이단의 창궐, 유대교의 위협 그리고 세계적으로 강요되는 로마 황제 숭배 종교는 교회의 존립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성도들에게 위로와 경계를 주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언약과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패배할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분명히 주어질 것이므로 믿음과 인내로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께 충성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고 서두에 강조한다. 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인 셈이다.

 

2) 특징

계시록은 영적인 상징과 부호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칼빈 같은 신학자는 '난해한 미신적인 책'이라고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어떤 인물이나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었던 상황하나님의 영적인 섭리를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한계성 등을 생각해 볼 때 계시록의 특징이 상징적임은 당연하다. 다만 그와 같은 상징들 어간에 '회개하라, 성령의 말씀을 들으라, 내가 속히 임하리라'는 메시지는 계시록이 강조하는 궁극적인 교훈이다.

계시록은 분명히 해석하기가 난해한 책이다. 그래서 이단 사이비 종교의 경전처럼 악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계시록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예언서처럼 흥미거리로 읽어서는 온당치 않다. 불의와 사망 권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천국의 소망과 위로 가운데 의와 거룩함으로 악에게 승리하려는 성도들에게 계시록은 한없이 귀한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이 될 것이다.

 

5. 내용 개관

 

. 서론 및 일곱 교회에 대한 권면(1-3)

. 일곱 인과 인맞은 성도들(4-9)

. 재림 직전의 일곱 징조들(10-13)

. 재림 직전의 일곱 재앙들(14-16)

. 재림 직전의 멸망당할 일곱 것들(17-19)

. 영원한 멸망과 천년왕국(20)

. 영원한 천국의 내용(21,22)

 

[연구1] 일곱교회에 대한 교훈(1-3)

 

요한계시록 1-3장은 본 예언의 중심 대상인 일곱 교회에 대한 주 예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의 처지는 당시 교회의 고난 정황을 대변해 준다. 그와 같은 요한에게 주님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1:19) 기록하여 보내라고 명하셨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그리스도의 현현과 일곱 교회(1)

 

󰁾 그리스도는 영광과 권능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일곱 교회의 이름을 열거하며 계시하시는 것을 써 보내라고 하셨다. 과연 주님의 나타나심과 그 모습의 의미는 무엇이며, 일곱 교회란 어떤 상징을 지니고 있는가?

 

1) 그리스도의 현현과 그 의미

주님은 거룩하심과 절대 권위를 지니신 왕과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음이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그 모습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구원주로서 그리고 심판주로서의 주님의 주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땅에서의 예수는 초라한 목수의 아들로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으나,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28:18) 지니신 분으로 '교회의 머리'로 계심을 역설해 준다. 그 주님은 당시 교회가 밀집해 있는 소아시아의 일곱 지역을 지칭하사 권면과 경계의 말씀을 보내라고 하신다. 그 일곱 교회는 지상의 모든 교회를 상징한다. 일곱 이라는 숫자는 '신성, 완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교회의 영원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당시 교회는 안과 밖으로 위기 상황이었다. 과연 예수그리스도는 '살아 계시는가'라는 의문을 교회가 던질 때였다. 그와 같은 때에 주님이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18)라고 하면서 성도들이 지닌 주님에 대한 신앙과 소망이 결코 허구가 아님을 재확신시켜 주신 것이다. 현재 이 시대의 교회가 처한 상황도 초대교회 못지않다. 물질 숭배, 정보매체 숭배, ()의 숭배 풍조로 인해 교회는 세속화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위기의 때에도 주님은 절대 권세를 지니시고 교회를 당신의 귀한 ''처럼 지켜주고 인도해 주시고 계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다섯 교회에 대한 책망과 경고(2:1-7)

 

󰁾요한계시록 2,3장은 일곱 교회에 대한 격려와 칭찬과 책망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더불어 큰 지적과 책망을 들었다. 그와 같은 교회의 과오와 죄는 무엇일까?

󰁾그리고 현대 교회에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1)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는 다섯 교회

책망을 들은 교회는 에베소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들이다. 이 교회들은 칭찬과 함께 또는 칭찬 없이 주님께 준열한 책망과 경고를 듣게 되었다. 한결같이 어떤 과오를 회개치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을 경고받는다. 그런데 이 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과오의 공통점은 '처음 신앙의 변질'에 있다. 에베소 교회는 정통성을 강조하다가 십자가의 사랑을 잃어가는 폐단이 있고, 버가모 교회는 복음 진리를 떠나 이단에 빠져있고, 두아디라 교회는 주님대신 우상숭배를 하며, 사데 교회는 온전히 세속화되어 있다. 즉 신앙, 사랑, 순결성이 변질된 교회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앙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거룩성은 교회의 3대 본질이다. 이것들을 상실하는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질을 떠난 '단체'가 된다.

 

2) 큰 개혁이 요구되는 현대교회

그 옛날 다섯 교회에 대한 주님의 지적과 경고는 현대교회의 폐단을 지적해 주고 있다. 현대교회는 교권주의, 물량주의, 상업주의 그리고 각양 비성서적인 이단 사이비의 유혹에 물들어 잇다. 특히 한국 교회는 교권과 기복주의와 미신적 신비주의에 심히 오염되어 있다. 주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 대신 물질 축복의 조건이 신앙의 근거가 되고, 이웃에 대한 사랑 대신 차가운 냉소와 무관심이 교회를 지배하며, 주님은 외면한 체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인본, 세속화되고 있다. 만일 이와 같은 형태와 풍조에서 과감하게 자기 개혁을 행치 않는 교회가 있다면 주님께 큰 징계 내지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3. 두 교회에 대한 칭찬과 언약(2:8-3:22)

 

요한에게 현현하신 주님은 교회에 대해 책망만 하지 않으셨다.

위로와 칭찬과 축복의 언약을 주신 두 교회가 있다.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이다. 우리 교회들은 그 두 교회를 본받아야 한다. 그 두 교회의 실상과 받을 축복을 생각해 보자.

 

1) 신앙의 정절을 지킨 교회들임

서머나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즉 궁핍하고 적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정절과 사명에 대한 충성심을 지켰다는 점이다. 서머나 교회는 유다교인들에게 핍박을 당해 교회 형편이 매우 '궁핍'(2:9)했음에도 그들과 타협을 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빌라델비아 교회 역시 '적은 능력'(1:8)을 지닌 소교회였음에도 신앙의 정절과 의무를 지켰다. 이 두 교회는 다른 다섯 교회와는 달리 주님의 복음 진리와 가르침에 굳게 뿌리를 박고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극복하고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참된 교회의 유형인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교회들임

주님은 궁핍 가운데 정절을 지킨 서머나 교회에서 '생명의 면류관'(2:10)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1)고도 하셨다. 그 다음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대적자들을 정복하는 축복과 천국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는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3:9-11). 이와 같은 칭찬받은 교회는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에 굴복치 않으려면 십자가의 수모와 소외와 고난을 감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외적으로 평안하고, 풍성한 길을 축복의 길로 여기고 있다. 자연히 그리스도의 분신으로서의 자리를 이탈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교회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뜻과 교훈을 살펴보았다. 신앙의 본질, 교회의 의무를 저버린 교회와 그 무엇에도 현혹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지킨 교회가 있음을 보았다. 이내용은 그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지상교회의 영원한 현실이다. 이 두 가지 교회 중 우리는 어떤 교회에 속해있는가?

 

[연구2] 일곱인과 인맞는 성도(4-9)

 

요한계시록 1-3장에서 교회에 대한 주님의 종말적인 메시지를 대언한 사도 요한은 이제 그 초점을 하늘의 영계로 옮긴다. 요한계시록 4-9장은 바로 구원과 심판의 근원지인 천상 세계와 그 세계에서 시행되어질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섭리에 대한 메시지다. 존귀와 위엄과 영광이 충만한 하나님의 보좌와 일곱 인 으로 봉인된 섭리의 책과 구원의 인()을 맞는 이 땅의 성도들의 모습들이 어우러져서 주님 재림 직전의 상황들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1. 하늘보좌와 일곱 인()의 책(4-6)

 

요한계시록 4-6장은 하늘 보좌의 광경과 그 보좌로부터 시행되는 '일곱 인의 책'의 심판에 대한 기록이다. 그 보좌의 위엄 그리고 그 보좌앞에 서신 어린양 그리스도의 역할, 또 인이 개봉됨으로써 시작되는 심판 섭리에 대해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위엄과 심판의 시작

종교개혁자이자 개혁 신학의 거두인 칼빈(Calvin)은 그의 주석을 요한계시록 3장에서 끝을 맺었다. 4장부터 기록된 하늘 세계와 그 섭리를 주석하기에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함부로 계시록을 대해서는 온당치 않다.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또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내용만 우선 다뤄야 한다.

먼저 4장의 하나님 보좌의 광경은 여러 가지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성부 하나님과 '일곱 영'(4:5)으로 표현된 성령님이 계시다. 그 하나님은 천국 천사와 천지 만물과 성도들로부터 세세토록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분임을 본 서는 강조하고 있다.

5장에서는 일곱 인으로 봉한 '종말 섭리의 책'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인을 떼기에 합당한 사람이 없어 사도 요한이 슬퍼하는데 '다윗의 뿌리'(5:5), '어린양'(5:7)으로 불리우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인을 떼시므로써 드디어 종말 심판이 시작된다.

6장은 그 심판의 내용으로써 전쟁과 천재지변이 땅에 일어나며 땅의 권세자들이 두려움에 빠지는 광경이 등장한다.

 

2)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준비함

본문은 하나님은 절대 권세를 지니신 심판주로서 반드시 이 땅의 불의를 심판하신다는 진리를 보여 준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그 심판과 관계가 없는가? 아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14:10)고 성경은 증언한다. 다만 우리는 심판의 중심자이신 어린양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죄를 사함받았기에 멸망을 당하지 않는다.

 

2. 인침받은 큰 무리의 성도들(7)

 

하나님의 재앙 심판이 심화되는 도중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유대인과 온 이방인 성도들에게 인을 치는 광경이 나온다. 과연 그 인의 의미와 십사만 사천 명의 의미를 알아보자.

 

1) 십사만 사천명(144,000)과 인()의 의미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일만 이천명(12,000)씩 모두 십사만 사천 명이 구원의 인침을 받는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라는 칭호가 오직 유대인 성도들만을 지칭한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영적 이스라엘인 모든 성도들도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3:29 6:16). 이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한 쪽만 택할 수가 없다. 또 어느 한편의 해석만 택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배치되지는 않는다. 다만 십사만 사천 명이라는 숫자는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한 상징적 수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성경의 12수는 완전수인데 거기에 1,000을 곱한 것이 십사만 사천이니 그 수의 의미는 '완전한 충만'을 뜻한다.

성경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11:25)온 후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11:26)고 예견한 후에 대 심판이 시행될 것임을 교훈받을 수 있다.

 

2) 환난을 당하되 멸망당하지 않을 교회

그 십사만 사천 명과 헤아릴 수 없는 이방인 성도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7:14)이라고 요한은 부연한다. 땅에 큰 재앙과 환난의 심판이 시행될 때 성도들은 잠시 그 환난 속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신 세계인들처럼 멸망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장이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7:9)고 재앙내리는 자들에게 지시했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환난을 겪되 결코 멸망당하는 일은 없음을 확신해야 한다.

 

3. 일곱째 인과 나팔의 재앙(8,9)

󰁾 성도들에게 인침의 작업이 끝난 후 드디어 일곱째 인을 떼므로써 본격적인 심판이 시작된다. 그 심판은 일곱 나팔로 묘사된다. 그 심판의 교훈은 무엇인가?

 

1) 심판의 시작과 내용과 의미

일곱째 인을 떼고 금향로를 땅에 부으므로써 마지막 대 심판이 나팔 소리와 함께 시행된다. 그런데 금향로는 바로 이 땅위에서 드렸던 성도들의 기도를 담은 것이었다. 그 향로불을 쏟은 후 6번의 나팔 소리와 더불어 큰 천재지변이 일어나는데 하늘, 바다, 육지에 전무후무한 지변이 일어나게 된다. 이와 같은 심판 내용은 마치 해산하는 여인의 진통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종말적 징조인 것이다(24:29,30). 주님은 대 재난 이후 나팔 소리와 천사장의 호령 소리와 함께 영광 중에 강림하실 것이다.

 

2)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함

이와 같은 하나님의 종말 대 심판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①▝그 심판은 성도들의 감사와 인내와 고뇌가 담긴 '기도'의 양이 채워졌을 때 시행됐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18:7)고 주님은 약속하셨다. 이 세상의 불의한 권세는 성도들의 탄원대로 심판받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낙심치 말고 환난 중에도 감사와 인내로써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②▝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세상의 권세와 부와 영광은 하나님의 천사들로 인해 대심판을 받아 허망하게 될 것이다. 천지 만물도 모두 변하고 불타고 깨어지게 될 것이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고 했다. 성도들이 너무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하늘의 상급을 향해 정진해야 현명하다.

 

이 일곱 인()과 나팔의 재앙 내용은 우리 주님과 예언자와 사도들이 말한 종말의 예언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실시될 것이요, 그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이며 성도들을 완전한 구원으로 인도하는 시초가 될 것이다.

 

 

[연구3] 일곱 징조(10-13)

 

이제 점점 하나님의 종말 심판 섭리는 심화된다. 요한계시록 10-13에서는 하나님의 강력하신 진노에 대한 상징과 종말 때에 이 땅에서 교회가 겪을 적그리스도의 핍박이 여러 가지 상징적 표현들로 증언되어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섭리와 미래의 일들을 우리의 지식으로 온전히 알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본 장 역시 복음 진리와 성경전체의 내용 안에서 살펴봐야 하겠다.

 

 

1. 일곱 우뢰와 비밀스러운 섭리(10)

 

󰁾 일곱째 나팔을 불기 전 일곱 우뢰가 하늘로부터 발한다. 그리고 일곱째 징조에 관해서는 비밀로 할 것을 주님은 명하신다. 그 의미는 무엇이며 또 사도 요한이 먹은 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1) 감춰진 종말의 섭리

사도 요한이 힘센 천사의 외치는 소리와 일곱 우뢰 소리를 기록하려고 하자 하늘에서 기록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또 사도 요한은 '작은 책'을 받아 먹는다. '작은 책'은 사도 요한이 받은 '예언할 하나님의 말씀이다'(10:11)

 

2) 섭리에 대한 성도의 자세

성경에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직 믿음과 인내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야 한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10:7)고 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핵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 복음 진리 안에서 그 진리가 명령대로 행하는 성도만이 그 섭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그 계명과 진리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사람에게는 그 말씀이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10:10)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진리와 함께 고난받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경륜을 알 수 있고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자.

 

2.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11)

󰁾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요한의 초점은 땅의 세계로 잠시 옮겨진다. 성전 밖은 심판을 당하고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상징되는 예언자는 세상세력과 전쟁 후 순교당하나 부활하여 승천하게 된다. 과연 그 내용이 주는 신앙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1)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

대개의 신학자들은 거룩한 성전이 교회를 뜻한다고 해석한다(고전3:16 고전6:19 2:21). 또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봉사와 희생을 본연으로 하는 교회를 뜻한다고 해석한다. 또 이방인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 즉 형식적인 거짓 신앙인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러므로 성전 밖에 있는 거짓되고 형식적인 신앙인들은 세상 권세에 짓밟힘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되고 참된 교회의 몸된 성도들은 세상 권세와 영적인 싸움을 하게 됨을 교훈하는 것이다.

말세가 될 수록 참된 교회는 불의한 세상과 혼합되지 않고 대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야합한 '성전밖 마당'의 교회들은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2) 끝내는 승리하게 될 교회

중요한 것은 교회가 세상과의 전투로 인해 '순교'했다는 점이다(11:7,8). 그러나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11:12)라고 했듯이 다시 부활하여 승천하므로써 영원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교회가 세상과 선한 싸움을 하다보면 순교자도 많이 나오고 때로는 패배주의에 젖어 죽은 듯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11:11) 다시 활력을 얻고 후에는 부활 승천까지 하는 것이다. 교회도 실의 할 때가 있으나 결코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안에서 거듭난 성도들은 종국적으로 이 세상에 대해 승리하게 될 것이다.

 

3. 용과 짐승들의 출현(12,13)

 

󰁾 다시 요한의 초점은 영계로 돌아간다. 하늘에는 용과 여인과의 싸움, 선한 천사와 용의 사자와의 싸움이 벌어지고 패배한 용과 그 세력들을 땅의 사람들을 미혹하여 일시적인 권세를 부리게 된다는 그 교훈은 무엇인가?

 

 

1) 적그리스도의 정체와 횡포(12,13)

본 장의 용과 해산하는 여인에 대한 해석은 전통적으로 사단과 교회를 의미한다. 사도 요한은 교회와 세상 세력과의 영적 배경을 요한계시록11장에 이어 설명하려는 것이다. 사단의 공격으로 인해 상처받은 교회이지만 그 자녀와 함께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되고 양육된다. 교회 권세는 하늘에 있으며 그 하늘 권세에 패배당한 사단은 적그리스도인 짐승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유혹하며 하나님의 권세를 대적함을 본 장은 강조하고 있다. 그 짐승으로 표현된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해서는 어느 사상 집단, 또는 특정한 인물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를 세상이 '경배의 대상'(13:12)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즉 정치, 사회, 경제의 실권을 쥔 종교적 단체의 수뇌가 적그리스도의 특징이다.

 

2) 적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한 성도의 자세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13:8)고 요한은 강조한다 .참 성도(알곡신자) 외에는 적그리스도의 권세에 굴복, 야합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참된 성도와 거짓 성도를 구분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한 도구에 불과하다. 예수그리스도와 그 복음 진리로 거듭나지 못하고 그 진리를 사랑치 않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세속적인 종교 철학과 교훈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소유가 됐다는 의미로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한다(13:16). 성도들은 말세가 될 수록 더욱 성경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진리의 도에 굳게 뿌리를 박아야 한다.

 

[연구4] 일곱 재앙(14-16)

 

요한계시록 12,13에서 사도 요한은 종말 시대에 겪을 지상교회의 희생과 수난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14-16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존귀를 얻고 기쁜 찬양을 하는 생활을 하게 됨을 예언한다. 반면 사단에게 속한 세상에는 하나님의 극렬하신 일곱재앙의 심판이 임하게 됨과 그로 인해 온 우주 만물이 멸망당할 것을 예고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성도의 구원은 완성되고 세상은 심판받는다는 것이 본 장의 초점이다.

 

1. 구원받은 성도와 종말 심판의 도래(14)

 

󰁾 14장에서는 상반된 두 부류의 운명이 명암처럼 교체된다. 전장에서 환난중에 인침받은 십사만 사천 명의 성도들의 새 노래와 짐승에게 경배한 세상 사람들에게 임할 진노가 묘사되어 있다. 그 교훈은 무엇인가?

 

1) 성도의 영광과 세상의 비극

먼저 우리는 십사만 사천 명의 선택된 성도를 보게 된다. 그들은 이마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인침받은 후 장로들과 함께 천국에서 새 노래를 부리고 있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가? 먼저 그들은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들이다.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14:4)라고 했는데 그 뜻은 세상의 우상과 불의의 풍조에 물들지 않은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14:5)윤리적으로 깨끗하고 의로운 자들이며 그들은 성도의 특색을 지닌 자들인 것이다. 반면 하나님께 큰 심판을 당해 쉼을 얻지 못할 자들을 보라, 그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14:11)들이다. 하나님대신 사단과 그 사상과 그 종교를 따르는 자들이다.

 

2) 하나님의 계명에 충실해야 할 성도들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14:16)고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종말 추수 심판을 하심을 의미한다. 그분은 구원에 이르는 '영생의 열매''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가려내실 것이다. 의와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에게는 영광과 존귀를 주실 것이요, 나머지 사람들은 진노의 포도주들에서 큰 재앙을 당하게 된다(14:19). 그러므로 요한은 "성도들의 인재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4:12)고 교훈한다. 말세가 될 수록 혼탁해지는 교회와 사회에서 더욱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천국계명과 언약에 충실한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2. 예비된 마지막 일곱 재앙의 성격(15)

 

󰁾 15장에서는 드디어 일곱 대접에 담긴 일곱 재앙이 하나님의 지성소로부터 일곱 천사들에게 전달된다. 과연 이 일곱 재앙의 성격은 무엇인가?

 

1) 극렬하신 하나님의 진노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미치리로다"(15:1)고 했다. 크고, 신비하고, 무서운 이적과 환상을 사도 요한은 수없이 목격했는데 유독 마지막 일곱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발출되는 것을 크고 이상한 이적이라고 요한은 표현한다. 이는 종말에 실현될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것에도 비할 데가 없는 극렬하신 진노에서 기인됨을 뜻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15:8)고 했다. 그 진노가 얼마나 맹렬하면 하나님의 수종드는 천사들도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에 감히 접근치 못하는지 상상을 해봐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가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라고 사도 바울이 예고한 것과 같다.

 

2)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성도들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을 한없이 은혜로우신 분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있고, 불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즉시 불의를 심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와 불의를 종말 때에 심판키 위해 참고 보류하고 계시는 것이지 결코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종말 때 터뜨리는 진노가 극렬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없을 때에도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2:12,13)라고 말씀하신다.

 

3. 시행되는 멸망의 대재앙(16)

 

󰁾 급기야 하나님의 종말 대심판이 일곱 천사들을 통해 온 만물에 시행됨이 16장의 내용이다. 그 교훈은 무엇인가

 

1) 멸망당하는 현 세계

마지막 재앙의 내용은 전의 나팔소리와 함께 시작된 재앙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 성격이 틀리다. 그 재앙은 시작의 성격이요, 징계의 의미요, 부분적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진노의 대접 재앙은 종말적이며, 멸망시키기 위한 것으로 총체적이다. 그 대상은 온전히 사단의 수하가 된 인류가 그 삶의 근원부터 파괴당하는 재앙이다. 물의 근원이 파괴되고(16:4), 바다와 해가 파괴되며, 대지진으로 육지가 파괴된다(16:17,18). 이로써 현 세계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은 재복구할 길이 없이 파멸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재앙은 주 예수의 재림 직전의 징조라는 의미도 지닌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어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인자가 구름을 타고"(24:29,30) 오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2) 영구한 하늘의 집을 기다려야 할 성도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종말 심판 때에 이 땅의 사람들은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 과연 그 재앙의 의미를 깨닫고 회개하는 이들이 있을까? 그런데 성경은 슬프게도 회개 대신 완악하게 된 인류의 모습을 보여 준다. 불에 타서 죽을지언정 회개치 않고(16:8,9), 고통스러워도 이를 악물고 회개치 않으며(16:10,11), 종말이 와도 회개치 않음을 요한은 보여 준다(16:21). 오히려 하나님과 대적하기 위해 거짓 예언하는 자(16:12-14),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들 투성이다.

그러므로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이땅에는 의와 선이 증발되어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없어지게 되어 오직 사단의 불의와 거짓에 깊히 빠진 자들만 난무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천국의 영광과 존귀를 누리는 반면 이 땅은 큰 재앙 속에 멸망된다. 그럼에도 회개치 않는 것이 불신 세상의 속성임을 배웠다. 우리는 종말의 때와 시기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오늘 현재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연구5] 일곱 멸망(17-19)

 

일곱 대접의 진노로 인한 종말 심판 도중 사도 요한은 한 천사로부터 심판의 핵심적인 대상에 관한 설명과 상황을 듣고 보게 된다. 음녀 바벨론으로 상징된 죄악과 불의의 온상지에 관한 예언이 요한계시록 17-19장의 주요 내용이다. 음녀 바벨론은 사단 권세의 중심부다. 그 곳으로부터 온갖 죄악과 불의의 권세가 나와 온 세상을 미혹하고 오염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음녀 바벨론의 실상과 그가 당할 종말과 그 이후 참된 권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출현(재림)하실 것임을 본 장을 통해 강조한다.

 

1. 큰 음녀의 실상과 그 권세(17)

 

󰁾 사도 요한은 한 심판 천사로부터 음녀 바벨론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천사는 왜 특별히 그것을 거론하는가? 그리고 음녀의 실상은 무엇인가?

 

1) 사단의 중심 권세인 음녀 바벨론

음녀와 바벨론은 중복된 동일 존재에 대한 상징으로 그것의 인격성과 정치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사단의 중심 하수자는 인격을 지닌 동시에 큰 권세를 지녔다. 그는 '많은 물'(17:1), '일곱 산'(17:9), '붉은 빛 짐승'(17:3)을 타고 앉았는데 그 모양은 종교, 경제, 정치적인 큰 권세를 지닌 존재임을 상징한다. 그가 음녀로 상징된 것은 참교회를 정결한 규수로 상징하는 성경의 전체적인 의미와 대비된다. 거짓 진리, 악한 종교 단체임을 암시한다. 종교적인 단체이자 세상 권세까지 겸하고 있는 조직이 향후 적그리스도의 중심 권세가 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2) 음녀인가? 참된 처녀인가?

여기서 우리는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려야 한다. 그 음녀 바벨론의 정체가 어느 인물인지, 또는 종교 단체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도 나 자신이 하나님 보시이게 그 음녀와 같은 속성을 지닌 거짓 종교인인지 아니면 참교회인 정결한 처녀인지를 생각해야 지혜로운 처사인 것이다. 성경은 타락한 교회, 사단에게 미혹되어 세속에 물든 교인들을 음녀, 간음하는 여인으로 비유하신다(73:27 57:3 9:2 4:4). 반면 참된 교회, 참된 성도는 '그리스도의 신부', 또는 '정결한 처녀'로 비유한다. 어떤가? 우리 자신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진리만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가? 아니면 세상의 다른 것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가? 한번 쯤은 자신이 음녀편에, 혹은 정결한 처녀편, 어느 편에 속해 있는 자인지 살펴 볼 일이다.

 

2. 음녀의 권세에 대한 심판(18)

 

󰁾 드디어 큰 음녀 바벨론은 불에 타서 멸망하게 된다. 그 멸망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죄악과 의미는 무엇일까?

 

1) 음녀 바벨론의 죄악상

음녀 바벨론은 하늘에서 내려온 한 천사에 의해 멸망이 선포된 후 순식간에 불탄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18:8)그 음녀 바벨론의 죄악상은 실로 엄청나다. 우선 영적으로 '더럽고 가증'(18:2)한데 이는 우상과 각종 귀신과 이단 사이비의 진원지임을 뜻한다. 그 다음 그와 같은 적그리스도적인 종교 사상으로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케'(18:3) 만들었다. 땅의 정치 세력들을 하나님 대신 사단을 섬기도록 한 죄를 범했으며 그 권세를 통해 온갖 탐욕과 방탕을 누렸다. 그리고 선지자와 성도들을 박해하고 순교케 한 것이다(18:24).

 

2) 그 죄악상에 참여치 말아야 할 성도들

그 음녀 바벨론을 심판하기 전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18:4)고 권고하신다. 사단의 미혹을 받은 거짓 종교와 불의한 권세속에서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아마도 그것들을 참종교, 참하나님의 권세인 줄 오해하고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열매를 보면 된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18:5)고 했다. 내가 속한 교회 , 직장, 또는 단체와 사상의 열매를 보라.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인간을 사랑치 않거나 방탕, 탐욕, 교만스러운 열매가 있는가? 그렇다면 속히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그 열매를 보면 그 나무의 본질을 안다. 아무리 외모가 그럴 듯하고 온갖 것으로 치장했어도 열매가 '사단적'이면 음녀에 속한 단체다. 지혜롭게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3. 어린양의 잔치와 그 권세의 발현(19)

 

󰁾 세상의 사단 권세인 바벨론의 멸망 직후 승리의 상징인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사 사단의 앞잡이인 짐승(적그리스도)을 퇴치하신다. 이 내용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어린양의 혼인잔치

큰 성 음녀 바벨론의 불탄 연기는 '세세토록'(19:3) 올라간다. 이는 완전한 파멸을 의미한다. 그 직후 승리의 찬가와 함께 '어린양의 혼인기약'(19:7)이 이르렀음이 선포된다. 이는 주께서 재림하사 교회와 완전한 연합을 이루시며, 그로 인한 성도들의 완전한 구원 획득을 의미한다. 주님은 승리한 자의 상징인 백마를 탄 충성되고 진실한 장군 모습으로 재림하사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인 '짐승'(19:20)과 그 하수인들을 영원한 불못에 던져 버리신다. 이로써 사단으로 인해 타락한 지상 세계에 대한 섭리는 마무리가 되는 셈이다.

 

2) 어린양 혼인잔치에 참예할 자들

어린양 그리스도와의 혼인 잔치는 재림으로 인한 성도의 구원의 완성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성도들은 성령과 진리로 거듭났으나 아직 온전히 구속받은 존재는 아니다. 이 땅에서 불신앙의 죄와 불의와 싸우며 자신의 신앙 정절을 지킨 성도만이 주님 재림 때 그분을 떳떳하게 맞을 수 있다.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19:8)이라고 천사는 증언한다. 그분의 속죄 은총, 그분의 언약, 그분의 가르침, 그분의 인품(인격)을 따르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참신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연구6] 천년왕국(20)

 

사도 요한은 이제 묵시록을 끝맺으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들의 천국 입성, 사단과 그 하수인들의 멸망과 신천신지의 도래가 21,22장의 내용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종말 섭리는 마감된다. 20장은 그와 같은 신천신지의 세계 이전 이 땅에 '과도기적인 천국'이 이룩됨을 강조한다. 즉 천년 왕국설이 본 장에서 기인됐으며 계시록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 천년 왕국에 대한 내용은 해석상 견해가 가장 분분한 종말 시대의 한 사건인 것이다.

 

1. 천년왕국의 개념(20:1-4)

 

󰁾 20:4에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강림하사 천년 동안 성도들과 왕 노릇하신다고 증거되어 있다. 이 내용이 천년 왕국설의 핵심이요, 요지다. 과연 이 천년 왕국의 개념은 무엇일까?

 

천년 왕국설에 대한 개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전천년 왕국설무천년 왕국설이 그것이다. 전천년왕국설은 천년 왕국 전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사 실제로 천년 동안 왕권을 가지고 전세계를 다스릴 것이라는 개념이요, 무천년왕국설은 천년 왕국을 상징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 이 세상의 교회가 누리는 의와 은혜의 권세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 외에도 후천년설이 있으나 이는 정통 보수 신학 계열과는 달리 세계가 복음화되고 인간의 심성과 과학과 교육과 제도의 발전으로 지상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견해이기에 여기서 논의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에 대한 견해의 초점은 천년이라는 성경의 표현이 사실적인 것인지, 또는 다른 상징적인 용어처럼 상징적인 것인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갈리는 것이다.

 

2. 천년왕국 시대에 일어난 일들(20:5,6)

 

󰁾 본 서는 처음 부활과 천년 왕국 시대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년 왕국 동안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

 

1) 그리스도와 왕노릇할 성도들

먼저 죄악과 불의의 근원인 사단이 결박되는 일이 벌어진다(20:1-3). 죄악은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후 성도들이 '첫째 부활'(20:5)이라고 불리는 부활 은총으로 살아나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왕 노릇하게 된다. 핍박이나 시험이나 괴로움이 없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천국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2)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

'너희 성도들아 너희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지 너희는 왕 같은 족속이요 택하신 백성이므로 이 땅에서도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될 것임을 믿으라'는 것이 천년 왕국설이 메시지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애로와 괴로움과 희생으로 인해 실망해서는 온당치 못하다. 그 희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을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욱 헌신하고 희생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3. 천년왕국 후에 될 일들(20:7-15)

 

󰁾 천년 왕국은 영원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 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며 그 결과와 의미는 무엇일까?

1) 최후의 대심판이 시행됨

천년의 기간이 지나자 사단은 풀려나게 되며 그는 이 땅의 정치 권세를 모아 성도 공동체와 일대 격전을 벌인다. 그 결과 사단과 그 수하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대패하고 영원한 심판의 불못에 던지움을 받게 된다. 또 유사 이래 죽은 모든 자들이 부활하여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데 그 심판은 크고 흰 보좌에서 시행된다. 그리고 현재의 하늘과 땅은 사라지게 된다. 이로써 하나님의 지상에 대한 섭리는 마감하게 되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로 역사는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2) 천지의 대주재이신 성삼위 하나님

우리는 이와 같은 천년 왕국 전후와 관련된 내용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재삼 확신해야 한다. 즉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 역사와 모든 가치, 생명과 사망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통치자라는 진리가 그것이다. 사단의 권세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다. 하나님이 가두시고 싶으면 가두시고 풀어 놓고 싶으시면 풀어 놓는 종속적인 존재다. 또 하나님은 사망과 생명의 주관자이시기도 하다. 성도들에게는 영생, 불순종하는 불신자들에게는 형벌을 인도하신다. 그 판결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도 변혁시키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심을 본 장은 증언한다. 이와 같은 천지의 유일하신 주재이신 성삼위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게 된 축복을 성도들은 무한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연구7] 새 하늘과 새 땅(21-22)

 

시작은 끝의 첫걸음이며 종말은 시작의 결과다. 드디어 사도 요한은 예언을 완결짓는다. 요한계시록 21,22은 본 예언서의 완결편인 동시에 성경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 그 내용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실현과 그 세계에서 누릴 성도들의 축복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에필로그로 본 서의 예언 내용의 절대적 권위와 성도들의 믿음이 강조되고 있다. 함께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새 하늘과 새 땅의 실현(21:1-8)

 

󰁾 악인과 선인에 대한 종말적인 심판, 사단의 멸망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섭리는 일단락된다. 그러나 그 섭리는 끝이 없다. 이제 영원무궁한 신천신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과연 그 교훈은 무엇인가?

 

1) 하늘로서 주어지는 영원한 세계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으로 표현된 새로운 세계가 하늘로서 내려오는 웅장무비한 환상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은 결혼식을 앞둔 신부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 세계의 주인은 악마가 아닌 하나님이시며 한없는 위로의 은총을 성도들에게 내려주실 것이 강조된다. 그런데 그와 같은 영원하고 의와 화평의 신세계는 '하늘에서'(21:2) 주어진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강조한다. 그렇다. 구원도 진리도 우리 인간들의 세계에서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1:17)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 사실은 모든 세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인간들은 상대적인 존재, 수혜적인 존재임을 교훈해 주는 진리가 담겨 있다.

 

2) 하늘에 초점을 맞춘 성도의 삶

새 예루살렘, 영원한 세계는 하늘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진리로써 성도들의 삶의 의식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영원한 안식과 행복과 그리고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오직 '하늘'로서다. 그 이유는 성도 자신의 존재적 본질이 하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3:2-4)고 교훈한다. 성도의 꿈과 행복은 하늘 세계에 있다. 초점을 하늘에 맞추고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허망한 이 땅의 허영과 욕심과 어리석음을 피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2.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21:9-22:5)

 

21장 중반부터 22장 초반까지는 영원무궁한 새 예루살렘의 내용과 그 곳에서의 삶에 대한 환상이 펼쳐진다. 과연 그 내용과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영광과 존귀를 누리를 성도들

천국의 내용을 소개하는 자는 바로 마지막 대재앙을 내렸던 '일곱 천사 중 하나'(21:9)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묘한 의미를 나타내준다. 이 불신 세계에 화를 내린 천사는 반대로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축복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 의미를 교훈해 준다(살전1:5-8). 천사가 보여준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지극히 귀한 보석들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생명력이 넘친 세계다. 왜냐하면 모든 영광의 본체가 되시는 성삼위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성도들은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21:26) 누리며 영생수와 영생 과실을 먹고 살게 된다(22:1,2).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22:5)고 사도 요한은 강조한다. 이와 같은 새 예루살렘의 내용은 모든 성도의 꿈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아니 모든 인류의 꿈이 현실로 실현될 것을 보여 준다. 죽음, 모순, 죄와 불의가 없고 영원한 사랑, 화평, 자유, 삶에 구현되는 곳, 그곳이 나와 모든 성도들이 갈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이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섭리의 열매이기도 하다. 태초에 창조하신 '에덴 동산'이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된 것이다.

 

2) 영원한 기업이 예비된 성도들

몇 년 전 세계에서 온갖 '복권'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복권협회'를 만들고 총회를 연적이 있었다. 그 때 복권협회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파는 자들'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적이 있다. 사람들은 돈을 주고 복권을 산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잠시 며칠간만이라도 얻으려는 목적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대개 허망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결코 허망스러운 미래는 없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기업이 예비되어 있음을 알자.

성도들은 확실하게 보장된 '영원한 하늘 복권'을 지닌 존재들이다.

 

3. 종말 예언의 마지막 강화(22:6-21)

 

사도 요한은 마지막으로 본 서의 권위에 절대성, 그 말씀에 대한 신앙적 자세를 강조한다. 그 옛날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행한 신명기의 결론을 상기시켜 준다. 그 내용과 교훈을 살펴보자.

 

1) 영원한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사도 요한을 통해 주님은 본 서의 예언을 지키는 자가 얻을 축복과 본 서의 내용을 소홀하게 여기는 자들이 당할 영원한 저주를 선포하신다. 만일 본 서 예언을 경솔하게 여기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예치 못하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22:18,19). 하나님의 구체적인 자기 계시인 성경 말씀, 특히 계시록을 통해 보여 주신 종말과 그 후의 영원한 섭리를 불신하는 자들의 운명은 '영원한 멸망'일 수밖에 없다. 축복과 멸망의 길은 이제 온전히 인류와 교회 앞에 제시되어있다. 그 길의 선택은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다. 지금 당신은 어느 길로 가고 있는가?

 

2) 말씀을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할 성도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22:7). 이 말씀은 주님이 교회에 들려주시는 마지막 교훈이다. '지킨다'는 것은 진리를 믿고 사수한다는 뜻이다. '지킨다'는 뜻은 행하며 실천한다는 뜻이다. 듣고 본대로 끝나면 의미없다. 영원한 심판과 축복에 대한 사실을 성도들은 듣고 알고 깨달았다. 아제 그 진리를 지키고 사수하고 실천하는 길만 남았으며 그 길은 저 영원한 새 예루살렘 성문으로 연결된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성경은 대단원의 막을 기도로 끝마친다. 주 예수그리스도는 반드시 오실 것이며 그분을 통해 언약하신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본 서와 모든 성경은 강조하는 것이다.

출처 : 민주법률 Academy
글쓴이 : 민주광장2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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