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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12000명 마음의 상처 어루만진..응급 심리치료사 정혜신 박사

맑은샘77 2019. 1. 4. 19:46

[Weekend Interview] 15년간 12000명 마음의 상처 어루만진..응급 심리치료사 정혜신 박사

허연 입력 2019.01.04. 17:33   

      
CEO도 연예인도 한명의 사람일뿐..지금 서로 '심리적 심폐소생술' 할때
잘되라고 하는 소리, 상처만 남겨..'충조평판' 금물입니다
혐오의 공기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생각 없이 내뱉은 분노의 파편들이 마음을 할퀴고, 여성과 남성, 노인과 청년, 부자와 빈자가 편을 나누어 경멸의 단어를 쏟아내는 풍경이 이젠 낯설지도 않다. 남성은 '한남충'으로, 기혼 여성은 '맘충'으로, 10대는 '급식충'으로, 노인은 '틀딱충'으로 불리는 이곳에 더 이상 개인이 설 자리는 없다. 서로에게 벌레(충·蟲) 같은 존재일 뿐이다.

집단적 광기 속에 이름 석자를 잃고 꺼져가는 개인들을 돌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심리 응급처치사' 정혜신 박사(55)를 만났다. 정신과 전문의로 있다가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는 그녀는 지난 15년간 '의사 대 환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재가 희미해져가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 국가폭력 피해자 등 소외된 약자부터 유력 기업인, 법조인,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거쳐간 사람들만 벌써 1만2000여 명에 이른다. 대뜸 "유명한 최고경영자(CEO)들은 어떤 고민을 하나요"라고 묻는 기자에게 그녀는 "기업인이라는 카테고리로 그들을 묶을 수 없다. 모두 개별적 존재들"이라고 나지막이 꾸짖었다.

집단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개별적 존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공감'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 정 박사가 말하는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의 핵심이다. 정 박사는 "많은 사람이 왜 주변의 멀쩡하던 이가 갑자기 삶을 접었는지 놀라곤 하지만, 나에게는 이들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며 "그걸 들었을 때, 아주 간단하지만 적정한 응급처치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소리 없이 스러져가는 사람들의 비명이 이제는 들린다는 그녀에게 곪을 대로 곪은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원래부터 꿈이 정신과 의사였나.

▷대학 다닐 때부터 사실 스스로도 이유를 모를 만큼 강렬하게 꿈꿔왔다. 열두 살 초등학생 때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병든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 될 테야'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의대에 진학했다. 그때는 막연하게 아이 같은 마음이었는데 모든 의학 분야를 두루 접하다보니 유독 '정신과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강렬히 원하고 몰두했던 것 같다.

―진료실 밖으로 나오게 된 계기는.

▷IMF 때 대규모 실업에 관한 보고서를 쓴 게 계기가 됐다. 직장을 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심리를 살피기 시작하면서 진료실 밖으로 나오게 됐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그렇고 하루아침에 재난과 같은 상황을 당해 마음이 힘든 거지 환자는 아니지 않나. 환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거다.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

▷트라우마 환자를 처음 접한 건 2004년이었다. 독재 정권 때 무고하게 빨갱이로 몰려 구속됐다가 19년 만에 출소한 국가폭력 피해자였다. 그때 사회적 피해자를 처음 만나게 됐는데 국가폭력의 실체를 똑똑히 본 뒤로 내 생업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만났다.

―수많은 사람에게 공감하는 일이 피곤하진 않은가.

▷사실 다른 사람들은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나처럼 업으로 하지 않으니 피곤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사람에게 공감하는 게 삶의 중심이 됐고, 이게 전공이라 몸에 배고 익숙하다. 초보 정신과 의사 시절에는 실수도 하고, 내 자신이 불안불안하고, 과연 올바르게 대처한 건지 실제 환자에게 도움이 되긴 한 건지 노심초사하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날 찾아오는 사람들이 나아졌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도 있고 해서 힘들다기보단 보람이 크다.

―정신의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특수한 의료 전문가가 치료해야 할 정신질환이나 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질병은 분명히 존재한다. 조현병 등에 대해서는 약물치료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일상적인 마음의 갈등과 스트레스 이런 건 좀 다르다. 지난 15년간 현장에서 트라우마 피해자부터 기업 오너, CEO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들은 환자로서 나를 찾은 게 아니었다. 나 역시 정신과 의사로서 그들을 만난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거다. 우리 정신의학의 문제는 특수 질환을 고칠 때 접근하는 방식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병이 아닌 걸 병처럼 취급한다는 건가.

▷가령 어떤 CEO는 은퇴를 했는데 은퇴 후에도 알람을 아침 5시에 맞춰놓고 자서 새벽 같이 일어나고,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중국어 학원에서 배우고, 골프 레슨도 받고 하더라. 출근할 필요도 없는데 기상시간을 똑같이 지킨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상이 흐트러질 것 같고, 한 번 흐트러지면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 엄습한다는 거다. 이분 아내는 이 불안감을 두고 '은퇴 후 우울증'이라고 표현하더라. 나는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은퇴 후 불안하고 무기력한 건 통제해야 할 병적인 상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건강한 리액션이자 스스로를 돌아볼 일생일대의 기회다.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수족이 돼 내 지시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준다. 그런데 회사를 안 나가고 집에 있으면 자식과도 부딪치고, 와이프에게도 내 말이 씨알도 안 먹히고 그런 걸 집중적으로, 양적으로 많이 느끼지 않겠나. 그러다보면 '내 삶에도 이런 일이 올 수 있구나' '나한테도 이렇게 안 되는 일이 있구나'를 알게 되면서 내가 가족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처음으로 직시하게 된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고, 화가 나고 괜히 서운하다. 하지만 이때 회사 다닐 때는 한 번도 못 느꼈던 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반쪽짜리 삶을 살다가 나머지 반쪽을 마주하는 중대 기로인 셈이다.

―어떤 감정이 들든 내버려둬야 한다는 뜻인가.

▷병리적, 의학적 시선에서 이런 증상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자꾸 병원에 가라고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 감정을 충분히 겪어야 새로운 반쪽을 찾는 과정이 시작되는 건데, 약으로 누르거나 은퇴 후 우울증으로 취급해버리면 되겠나. '불안하시군요' 하면서 항불안제로 제거할 병이 아니라 삶의 일부다. 불안하고 화가 나는 건 무조건 '나쁜 감정'이고 활기차고 긍정적이어야만 '좋은 감정'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하는 게 문제다.

―나쁜 감정이란 없다는 건가.

▷이런 감정들 역시 자기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나침반이다. '내 아이가 몇 학년인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저렇게 컸네' '애가 아빠한테 저런 말을 다하는데 내가 몰랐네' 하면서 사회에서는 고속도로로 쌩쌩 달리다가 이제 국도로 돌아왔음을 인지하게 되는 거다. 고속도로처럼 달리면 안 된다는 걸 받아들이고, 처음부터 운전법을 다시 배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직장인들에게 은퇴가 갖는 의미는.

▷오랫동안 회사에 다녔던 사람에게 은퇴라는 건 장기수가 갑자기 감옥문을 박차고 나오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성공'은 '자기 억압'의 결과로 주어지기 때문에 마치 감옥살이 같은 거다. 모든 게 틀로 정해져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24시간 마음껏 쓰라고 해버리면 주저앉아 버린다. 어디로 발걸음을 떼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쭉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앉아서 잠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다. 새로운 삶의 리듬, 흐름, 원리를 익혀야 하는 거니까.

―은퇴 후 멀쩡한 사람도 있나.

▷사실 은퇴 후에도 쌩쌩해 보이는 사람이 축 처지는 사람보다 더 큰 혼돈을 겪거나 예후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다. 햄버거에 방부제를 너무 많이 넣어 몇 달을 놔뒀는데도 썩지 않았다면 '괴이한 것' 아닌가. 은퇴라는 큰 변화를 겪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괴이한 거다. 한 번은 구순의 노모가 낙상을 해서 큰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연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며 걱정하던 딸이 찾아온 적이 있다. '어머니가 우울증인 것 같은데 정신과 의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냐'고 묻더라. 그런데 그게 어떻게 우울증인가. 90이 된 분이 큰 수술을 받았는데 삶의 의지를 불태우면 그게 이상한 것 아닌가.

―그럼 딸이 어떻게 대응했어야 하나.

▷불안을 강제로 잠재우려 할 게 아니라 그냥 곁에서 '엄마, 죽는 게 무서워? 죽을 것 같아? 마음이 어때? 뭐가 제일 생각나?'라고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미진했던 깊은 속이야기를 나눌 때다. 사실 노모에게 정신과 약물을 처방해 몽롱한 상태로 만들면 엄마의 여생에도, 딸의 삶에도 모두 좋지 않다. 죽음을 떠올린다고 해서 약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은퇴나 죽음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할 수는 있나.

▷그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심리적으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면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뭐든지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다 관념적 수준에 그친다. 막상 은퇴를 하면 사회적인 생명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준비에 한계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죽음을 미리 대비하고 마음을 비워도 실제 말기암 선고를 받으면 현실을 부정하게 되듯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아까도 얘기했듯 이런 마음의 혼돈을 나쁘게만 보는 '감정의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

―기업 오너나 CEO들은 주로 왜 찾아오는가.

▷그런 분들은 자타의 인정을 받지만 사실 고도의 정신노동에 시달린다. 사람을 움직여 성과를 내야 하지 않나. 그러다보니 자연히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의 마음에도 관심이 많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사람의 속성과 본질을 깊이 알 수 있다. 사람을 어떻게 움직일까 방법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나를 잘 알면 사람 마음의 근본을 잘 알게 되는 거다.

정혜신 박사는 충고하기보다는 물어봐주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공감의 힘`이 스스로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정 박사가 서울 경운동 개인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공통적인 고민들이 있나.

▷모든 사람은 개별적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깊이 들여다보면 한 명 한 명 다 다르다. 다만 우리네 삶이 주로 '일'에 에너지를 다 쏟다 보니 사적 영역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을 뿐. 결국 부부든 부모 자식이든 '사람 관계'가 가장 큰 고민의 원인이다. 외면할수록 악화되고, 외면하다가도 언뜻언뜻 마주하는 순간 고통이 올라온다.

―최근 한국 사회의 혐오 문제가 심각하다.

▷세월호 유가족 분들 말이 세월호에 대해 끔찍한 막말을 한 사람들을 찾아내 봤더니 그들이 생각했던 만큼 힘이 세고 괴물 같고 위압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냥 방에 처박힌 심약하고 여린 존재들이었다고 한다. 그걸 보고 더욱 허탈해졌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혐오가 난무하는데, 결국은 다 개인이 개별적 존재로 존중받지 못한 반작용이다.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부모마저도 자식이 공부를 잘하거나 좋은 대학에 가거나, 사회적으로 자랑할 만한 위치일 때만 칭찬하는 경우가 많다. 평가하고 판단하고 부추겨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시선 속에서 우리는 꼭 뭘 잘해야 받는 존중 말고 존재 자체로 집중받은 경험이 거의 없다.

―존중받지 못한 결과가 혐오로 표출된다는 건가.

▷그렇다. 존재 자체에 대한 시선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산소 같은 거다. 우리는 지금 집단적으로 산소가 결핍된 상태다. 산소가 부족하면 숨을 가쁘게 내쉬고 과호흡을 하지 않나. 배터리는 3%, 2%, 1%밖에 안 남으면 그냥 방전돼서 꺼져버린다. 그렇지만 인간은 존중받지 못해 산소가 모자라고 생명이 꺼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리면 반격을 시작한다. 인간은 결코 쉽게 꺼지거나 죽지 않는다. 이 마지막 반격이 바로 '분노'다. 우리는 왜 아픈가. 왜 서로를 비수로 찌르고, 상처를 내는가. 허약해 보이는 사람이 어마어마한 분노를 뿜어내는 건 그만큼 존재가 소멸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모두의 존재가 서서히 소멸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혐오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식에게 잘되라고 쓴소리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보통 자식이 잘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우가 많다. 따끔하게 이야기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 가만히 놔뒀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나중에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한다. 그런데 이건 매우 표면적이고 오만한 생각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떤 쪽으로 이끈다고 이끌어지는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대화가 단절되고, 상처만 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내가 목표하는 바를 그런 방식으로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하지 말라는 거다. 실제로 자식이 정신 차릴 필요가 있더라도 그걸 지적하기에 앞서, 먼저 자식의 마음 상태를 계속 물어봐 줘야 한다. 지금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상황인지 계속 묻다 보면 한심해 보이던 결정일지라도 그 원인이 된 감정의 맨바닥이 드러난다. 그때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구나' 하고 온전히 받아줘야 한다. 누군가 나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줄 때 인간은 오히려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상태가 된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할 때 반발심이 생기고 죽고 싶어지는 것이다.

―'충조평판'도 필요하지 않나.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에게 '나는 너만큼만 되면 바랄 것이 없겠는데' '너 정도면 진짜 좋은 상황이야'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게 전형적인 충조평판이다. 결국 '네 상황에서 힘들어 하면 안 돼'라고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한 거다. 충조평판을 한다는 건 그 사람이 왜 힘든지를 궁금해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에 집중하기보다는 내 결론을 먼저 쏟아내는 것이다. 존재에 주목하지 않고 내 이야기만 하니까 소통이 시작되지 않고, 속마음을 꺼냈던 사람 입장에서는 상처로 남는 것이다.

―그럼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으라는 건가.

▷그렇다.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온전히 감정을 받아주면 부모가 하고 싶었던 충조평판을 제 입으로 먼저 하게 된다.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내가 '적정 심리학'을 알리려는 이유가 이거다. 프로이트나 융을 공부하지 않고 간단한 원리만 알아도 훨씬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

―우울증 친구들을 보면 글쓰기, 사진 찍기 등 문화예술 활동을 하면서 많이 도움을 받더라.

▷글과 사진 모두 자기 표현이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자기와 가까워질 수 있지 않나. 우리는 '모름지기 ~해야 한다'는 부모의 요구와 기대, 세상의 요구와 기대에 끊임없이 나를 맞춰 나간다. 우리의 삶이 나로 살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나에게서 멀어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외부의 기준에 따라 나에게서 계속 멀어지는 삶을 살다 보면 사람은 병들게 된다. 멀어질수록 더 위험하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내 시선과 감각이 이끄는 곳, 내가 원하는 것에 계속 눈을 맞추다 보면 나와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술은 오롯이 자기에게 집중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치유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요즘 청년들이 'YOLO' '소확행'을 강조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나.

▷말하자면 강제적으로 자기한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타의에 의해 그렇게 된 거다. 사회구조적으로 그런 작은 행복, 그런 소소한 재미에 매달리지 않으면 달리 의미부여할 데가 없으니까. 매우 씁쓸하고 쓸쓸한 현상이긴 하나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타의에 의해 시작됐더라도 자기 욕구에 충실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

―반대로 노인들이 정치적으로 보수화되거나 집회에서 열심히 나가는 건 왜 그런가.

▷나이 드신 분들이 정치적으로 보수화되는 것도 결국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 때문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하면 외로워서고. 아까 배터리가 3%, 2%, 1% 꺼져갈 때 반격을 시도한다고 하지 않았나.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내가 공유하는 정서가 부정당하고. 내가 살아온 세월이 부정당하고 그렇게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다 보면 극도로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갑을 관계에서 을이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갑의 고민도 목격한 적이 있나.

▷사회적 역학 관계에서는 갑과 을로 나뉘지만 한 개인으로 보면 다 괴로움이 있다. 누구든 예외일 수 없다. 아랫사람만 윗사람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게 아니다. 윗사람이나 직급이 높은 최고경영자(CEO), 최고의사결정권자들도 아랫사람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다. 사람의 본능이다. 인정받고 싶고 남이 나를 좋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있다.

―남 신경 안 쓰고 갑의 횡포를 부리는 사람도 많지 않나.

▷산소가 없으면 견디기 힘들고, 결핍이 심할수록 과잉의 무리수를 둔다. 사람은 절대 결핍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존재다. 주변 상황을 악화시키고, 더 인정을 못 받고, 더 외면받는 한이 있더라도 뭐라도 하려고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몸부림친다.

―가족이 우울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미운 마음이 들어도 그걸 지나치게 부정하려고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죽이고 싶을 만큼 싫다고 해서 내가 괴물이라고 괴로워 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충조평판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 드는 걸 애써 막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쓴 책의 제목인 '당신이 옳다'의 요지는 어떤 마음이 들든 항상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자책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사람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어서 아무리 극단적인 감정을 가져도, 그 끝에 다다르면 또 다른 감정이 생긴다.

―참으면 더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많이들 스스로 괴물이라 자책하고 자기가 망가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 감정이 내 전부가 아니다. 어떤 마음이 들든, 설령 그 상대가 가족일지라도 이유는 있다. 충분히 공감해주면 다음 감정을 발견하게끔 도울 수 있다. 이전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해소도 된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다가도 용서하고 싶어지고,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고, 그렇게 흔들리는 스스로를 받아들여야 비로소 평안해질 수 있다.

―남의 마음을 돌보면서 본인이 힘든 순간은.

▷당연히 있다. 누군가에게 깊이 공감하다 보면 결국은 내 상처가 건드려진다. 뜻밖에 어떤 감정을 만나면 내 안에 있던 게 툭 튀어나오는 거다. 나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 30년간 끊임없이 혼란스러웠고, 흐트러졌고, 깊숙이 있었던 상처까지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치유와 정돈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사실 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도움을 받은 건 나다. 지금 내 삶은 단순하고, 가볍고, 홀가분하고. 복잡한 게 별로 없다.

―앞으로의 목표는.

▷사회적인 목표는 없고, 심리적 CPR(심폐소생술) 지침서인 '당신은 옳다'가 많이 읽혀서 주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말하는 적정 심리학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마음의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려서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뜻한다. 첨단과학이 필요한 게 아니라 CPR처럼 누구나 할 수 있다. 매번 전문가에게 안 가고 스스로를 환자 취급 안 해도 된다. 우리는 일상을 너무 많이 외주화·질병화하는 측면이 강하다. 존재 그대로를 주목해 주고 고통스러운 마음에 눈을 맞추고, 그 마음이 어떻든 피하지 않고 물어보고, 공감해주면 된다.

▶▶ 정혜신 박사는…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1만2000여 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다. 1998년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직장인들의 심리적 공황 상태를 연구한 'ADD 증후군' 문제를 국내 최초로 제기했고 정치인, 법조인, 기업 CEO와 임원 등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한 이들의 속마음을 나누는 일을 했다. 이와 동시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재단 '진실의 힘'에서 집단상담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당신이 옳다' '당신으로 충분하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등이 있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