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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심정대화.^^

맑은샘77 2018. 7. 27. 12:26

인간관계의 문제, 심정대화로 풀어라.

심수명

커뮤니케이션
중세 시대 스페인을 배경으로 왕년의 명배우 찰톤 헤스톤과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엘 시드’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찰톤 헤스톤이 파문을 당해 약혼녀 소피아 로렌과 함께 고향에서 쫓겨난다. 거친 광야를 걷는 두 사람은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 마을에 도착해 우물가의 아가씨에게 물 한 잔을 청한다. 그러나 그가 파문당한 사람이라는 표식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마치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한 듯 그냥 자기 할 일만 계속한다. 파문 당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를 의식하는 것조차 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살아 있긴 하지만 아무도 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산송장’인 셈이다.
파문을 영어로는 엑스 커뮤니케이션(excommunication)이라고 쓴다. 모든 대화를 끊어 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고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끔찍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도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다름 아닌 ‘왕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철없는 아이들의 한때의 장난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왕따는 살인보다 더 무서운 범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관계를 끊어버리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대화(관계)가 없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에 가혹한 고통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중세의 기록을 보면, 사형보다 더 중한 벌이 ‘파문’이라고 적혀 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대화란
대화를 인체에 비유하면 혈액순환과 같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하면 건강을 지킬 수 없듯이, 원활한 대화 없이는 건강한 사회 건설의 꿈은 이루기 어렵다. 진정한 대화는 자신만의 밀실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를 그리워하고 만남을 갈망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의사들이 심상치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운데 전쟁 고아가 된 어린이들의 사망률이 다른 환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이었다. 이 문제로 고심하던 의사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생각 끝에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관심을 갖고 고아들을 보살펴주도록 한 결과 고아 환자들의 사망률이 평균치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이 자원봉사자들이 무슨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단지 관심을 갖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말이다. 전쟁통이라 병원은 언제나 북적댔지만 그동안 고아들에게 관심을 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의 가정은 어떠한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10~20분’(24.7%), ‘거의 없다’(22.6%), ‘20~30분’(18.4%) 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족이 모여 주로 하는 일도 ‘TV시청’(34.8%), ‘특별한 것이 없다’(17.6%), ‘뭘 사먹는다’(8.2%)는 응답이 상당 부분을 차지해 가족과의 대화 단절이 심각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대신 방과 후에는 과외와 학원으로 이어진 과도한 학습으로 지쳐가고 있다. 무리한 조기교육으로 신체적,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는 숫자도 상당하고, 심지어는 부모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어린이들도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가 이 정도라면 과연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한 지붕 밑에 사는 동거인일지언정 말이 통하고 뜻이 통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가족은 아닌 것이다.
삶의 질은 곧 대화의 질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대화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대화는 곧 우리의 삶이고, 제대로 된 대화는 사람을 살리는 만남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은 더 이상 시대 정신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잠 25:11)라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해야 맛이다.’ 혹은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대화의 신학
기독교적 신앙은 만남의 대화이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길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이 먼저 이니시어티브를 취하여 인간과 관계하는 사귐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것이 성육신이다. 여기에 구원과 소망, 비전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육신은 이렇게 단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성립시킨다. 성육신의 사건에 의해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통해서 이웃과 관계하며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관계하고 하나님에게 대답한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관계와 같은 관계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두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관계와 이웃에 대한 관계는 뗄 수 없는 것이며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랑에 대한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마 22:37-40).
이렇게 해서 성육신의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열어줌으로써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만든다.
이러한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 만남의 수단이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의 통로는 대화이다. 그리고 대화는 언어의 매개에 의해서 전개되는 것이다.

심정대화
이러한 일반적인 대화개념에서 한걸음 더 깊은 만남인 심정대화는 상대방의 심정을 알아주는 대화이다. 심정이란 단어는 마음을 뜻하는 심(心)과 정서를 뜻하는 정(情)의 합성어로서 정은 ‘마음 속에 있으며, 마음으로 느껴진 정서’를 말한다. 한국인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표현할 때 ‘심정이 통하는 친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한국인에게 있어 정(情)이 든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아하는 마음, 친밀감, 아껴주는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마음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는 기정사실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에게는 이것이 인간 관계의 이상적 수준으로 생각되고 있다. 따라서 심정대화란 심정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마음과 자세로 심정을 토로하는 자체만으로도 문제의 반은 해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하는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깊은 만남을 가질 때 모든 오해와 갈등이 풀어지고 관계의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때 인간관계의 능력이 극대화된다. 인간관계의 능력이란 결국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능력인 것이다. 이러한 대화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건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3 . 심정대화의 실제

 

1)요약하기(20%)

 

메시지 내용을 정확하게 압축해서 반사하는 것으로 화자의 말을 약간 사용해 가면서 자신이 이해한 말로 정리하여 재 진술 하는 것이다.(요약-당신의 말은 이러이러 저러저러 했다는 말씀 이신가요... 점검-제가 잘 이해하였습니까? 더 표현 유도- 그것에 대해 더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2)상대방의 심정 알아주기(70%)


상대방의 말을 요약한 후에 상대방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고 그것을 말로 표현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단순한 동의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의 메시지가 그 자체로서 논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사람과 내가 마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심정을 알아주기 위한 말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슬픈, 굉장히 염려되는, 두려운, 놀라운, 화가 나는, 흥분된...) 감정을 느낀 것 같습니다.󰡓� 또는 󰡒�당신이 느끼는 것은 이러저러한 느낌이라고 추측됩니다.󰡓�
- 적용을 위한 연습 :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당신에게 베푼 사랑과 관심은 당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사랑이기 때문에 너무 고맙고 행복하면서도 부끄럽고 쑥스러우셨군요. 그래서 감사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에 관계를 아예 단절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잘 이해했나요?”



3) 내 심정 전달하기(10%)


상대방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나의 진솔한 심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의 ________한 느낌이 전해지면서 내 마음은 이러했습니다.”라고 나의 심정을 전달한다.
- 적용을 위한 연습 :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사랑받는 것이 좋으면서도 그 사랑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상처 입은 마음으로 느껴져서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학교에서라도 받았던 것이 무척 다행스럽게 여겨지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출처 : 함께 나누는 기쁨
글쓴이 : 무궁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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