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상담/용서-화해

야드 바셈, 이 이름을 기억하자!

맑은샘77 2018. 3. 18. 00:21

 

 

 

 

야드 바셈,  이  이름을  기억하자!

​유태인 학살  기념관인  야드바셈은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육백만​ 유태인 학살의  자료가 있는 전시장(홀로코스트 Museum)이며

내용물과  기록사진들을 보면  참혹하고  잔혹하다.

야드바셈의  방문객은 나라와  민족을  초월, 분노가  이는  감정을

주체 못한다. 관람한 후 , 출구에  이르는  벽면에

<FORGIVE BUT  NOT FORGET>-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

는  문구를  새겨놓은 동판이  있다.

독일 수상  브란트가  이스라엘 방문때, 찾은 곳이 야드 바셈이었다.

수상은  입구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를  구했다.

동행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수상이  브란트를  진정시키며  일으켰지만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다음 날  이스라엘​ 상하의원들이 모두  출석한  국회의사당에서

브란트  수상은 "히틀러가  명령,  아이히만이  학살한 유태인  육백만명중

백 오십만명이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라고  흐느끼며

"용서를  구한다!"는  말만  되풀이  ,,말을  잇지를  못했다.

그러자  상하  양원의  이스라엘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눈물  흘리며  감사와  용서,  그리고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1950년  6월  25일 ...1953년  7월 27일(휴전협정)...,

비록  6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우리의  민족상잔의  상처를  결코  잊지 말고

내  조국, 내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기도 해야한다.​

저의  아버지도  육이오 전쟁때 북한에  모든  가족을 놔두고

열아홉 막내이셨던  아버지만 

피난민과  함께  발에  피가 나게 철길을 따라 걷고 또 걷고....

 남한으로  내려오셔서

오십년을  고향을  그리시며  외로이  가족들을  그리시다가

쓸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지금쯤  하늘 나라에서

그 때  헤어진  가족  모두를  만나셔서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1950년, 피난 어린이들]
돌아갈 곳도, 반겨줄 곳도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들
참혹한 전쟁이 가져다준 '슬픔의 잔상'





[1950년, 전쟁고아]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
두려움보다 배고픔으로 가득한 '절실한 눈빛'





[1950년, 서울 수복일]
폐허가 된 집 자리를 떠나지 않는 노파와 여인 그리고 아이
눈물도 말라버린 '참담한 현실'





[1950년, 집 잃은 닭]
폭격을 맞아 초토화된 서울시가지의 모습
희망도 뭣도 보이지 않는 '절망과의 조우'





[1950년, 피난민촌]
피난민촌으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네들의 뒷모습
가족들에게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1950년, 거리의 노동자]
기댈 곳 없이 온전히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삶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살아남은 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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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식 사진작가 [1912~2001, 부산출생]
'사진의 본질이 기록성과 사실성에 있다.'는
故 임응식 작가의 신념은 그의 사진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한국 사진의 자존심으로 우리 가슴에 영원히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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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66주년을 맞이하는 6.25.
젊은 세대들에게는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전쟁이지만,
교육을 통해서라도, 예술을 통해서라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우리네 슬픈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이 자리가
6.25를 겪은 기성세대의 피와 눈물, 노력으로 일궈진 것이라는 점과
그 땅을 우리가 이어받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
그것만은 잊지 않길 바라봅니다.


# 오늘의 명언
눈물을 흘리면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없다.
- 괴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