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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없는 성탄절 누가 정했을까? : 재조명 받는 고대 히폴리투스의 이론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 김명실 교수l

맑은샘77 2015. 12. 8. 12:25
<28>성경에는 없는 성탄절 누가 정했을까? : 재조명 받는 고대 히폴리투스의 이론이야기가 있는 예배와 목회김명실 교수l승인2015.07.21l3004호 l조회수 : 1111
   
▲ 사진은 베들레헴의 성탄전야. 성탄 축하를 위해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앞 광장에 인파들이 모였다.

초기 청교도인들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준수하기를 거부하였고, 아직까지도 일부는 여전히 이 날을 기념하지 않는다. 성경에 12월 25일이라는 말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아기 예수가 이 날에 태어났다는 성경적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 날이 성탄절이 되었는가?

기독교가 태동하던 초기에는 오직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날들만 기념하였으나, 4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땅에 오셨음도 기념해야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성탄절 기념의 최초증거는 354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교회력이 아닌 일반달력인데, 그 편찬자는 예수의 탄생을 "정복되지 않은 자(태양)의 생일"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교회 달력이 아닌 세속 달력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이미 성탄절 축제가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최초의 증거 외에도 4세기 히폴리투스의 증언에서도 12월 25일에 성탄절이 기념되었음이 나타나는데, 어떻게 12월 25일이 성탄절이 되는지를 밝힌 것이 흥미롭다.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정해진 것은 고대 유대인들의 임신의 날짜와 기간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던 유월절 니산월 14일(음력)은 그 해의 양력으로 3월 25일에 해당한다. 고대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죽은 날이 임신한 날(잉태된 날)과 동일하며 임신기간은 9개월이라고 믿었기에,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잉태하신지 정확히 9개월 뒤인 12월 25일이 탄생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법이 현대 예배학자들에 의해 '컴퓨테이션(computation) 이론'이라 불리며 다시 재조명 받고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던 이해, 즉 로마의 태양신 축제가 기독교적으로 변형된 것이 성탄절이라는 이해와 대조를 이룬다.

4세기 북아프리카의 어거스틴은 도나투스 분파들이 주현절을 지키지 않은 것을 비판했는데, 이 비판 속에서 성탄절은 잘 준수하고 있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편 성탄절을 준수했던 도나투스의 분열이 기독교 공인 이전이었기에(311년), 성탄절이 로마의 태양신 축제를 흡수했다는 이해는 설득력이 없다. 말라기 4장 2절의 "의의 태양"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 이전의 유대인들도 메시야에 대한 태양의 이미지를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당시 로마 태양신 축제는 기독교의 성탄절보다 크게 앞서지 않는다. 기원전 45년에 만들어졌으나 시들해졌다가 274년에 로마 황제 어릴리언(Aurelian)에 의해 구체적인 제의형태를 띠었는데, 그렇다면 성탄절이 완성되었던 시기보다 크게 앞서지 않는다. 물론 이 말이 성탄절이 결코 로마의 태양신 축제와 상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황제에 의해 제정된 태양신 축제가 당시 기독교인들에게도 피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 태양신 축제가 성탄절의 형성과 발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으나, 초기 기독교인들의 우수성은 황제가 제정한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의미와 의의를 발견하며 거대한 로마문화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지켜나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 날짜가 성경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교회의 역사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발전시킨 값진 기독교 예배문화 유산이기에 우리는 그 본래의 의미를 회복하면서 더욱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김명실 교수 / 영남신대ㆍ예배와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