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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목30년] 농촌에서 어떻게 목회할까?30주년 맞은 농목, 농촌선교-생명선교의 <선언문>발표하며 새30년 다짐

맑은샘77 2015. 10. 17. 13:27

 

[농목30년] 농촌에서 어떻게 목회할까?30주년 맞은 농목, 농촌선교-생명선교의 <선언문>발표하며 새30년 다짐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입력 : 2015년 10월 15일 (목) 23:03:10
최종편집 : 2015년 10월 17일 (토) 00:47:16 [조회수 : 605]
 
   
 

1980년대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의 시기에 농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창립된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회장 김형국 목사, 이하 농목)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15일 오후 3시 아현교회에서 심포지엄과 성찬식,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30년사> 출판 및 헌정 기념식, 만찬, 친교 등을 가지며 30주년을 자축했다.

농목회원 30명이 필자로 나서서 모은 <30년사>는 50여명의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리회에 헌정됐다. 김형국 목사(농목회장), 차흥도 목사(출판위원장, 농촌선교훈련원), 조언정 목사(30주년준비위원장, 팔당마실교회)가 감리회를 대표한 선교국의 강천희 총무에게 전달했다.

농목은 이날 농목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 ‘농촌선교 30주년 선언문’을 발표했다. 농목은 선언문에서 “농목 30년의 역사는 하느님 사랑, 농민사랑, 교회사랑, 생명사랑을 향한 믿음의 발걸음이었다”고 돌아보고 “우리는 하느님의 농촌선교-생명선교의 보석들을 만났다. 이제 하느님의 농촌선교-생명선교의 도구가 되어 ‘생명 영성 공동체’ 꽃을 피워 나갈 것”이라고 새로운 농목 30년을 맞는 각오를 담았다.

앞서 농목은 <하느님의 농촌선교 ‘생명목회’ 그 뜻을 찾아가다>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기조발제를 한 김명준 목사(받들교회)는 “초기 농목 목회자들의 사회의식과 신앙실천은 당시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어서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고 기독교농민운동이 어려움을 겪었던 때를 회고했다.

60-70년대의 농촌선교의 중심이 농촌계몽, 지역개발 등이었다면 80년대는 농촌문제를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까지, 내적으로는 교회개혁 요구에까지 이르렀다. 90년대에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농목회원들이 도시로 옮겨가면서 농촌선교가 위협을 받자 대안으로 ‘목회의 현장속으로’를 구호로 정주목회, 생명, 영성, 생명농업, 농도교류, 공동체, 대안학교, 건강학교 등 다양한 신앙실천으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명준 목사는 “이제는 어떻게 시대와 역사 안에서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과 자신에게 내려주신 개인적 자아를 조화롭게 통합한 삶과 실천을 이룰 것인가를 중요한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농목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론과 논리중심이 아닌 농촌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영성, 생명, 공동체를 자신에게 체화하고 ‘일상생활을 영적으로 만드는’ 생명선교, 생명목회로의 변화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어 “이 생명선교, 생명목회는 하느님 나라 운동이며 풍성하고 다양한 생명의 그믈망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적인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일이므로 농촌뿐 아니라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함께 한국교회전체와 지구생태계를 살리시려는 하느우리가 님의 선교에 동참하자”고 제안했다. 이 일을 위해 “△농촌목회자들이 자기정체성을 세우고, △체계적 교육과 훈련을 통해 역량있는 전문 사역자를 발굴하고 △분별과 지원, 영적 성장을 위한 영성수련공동체를 위해 지역모임을 활성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하느님의 농촌선교.‘생명목회’그 뜻을 찾아가다."

패널로 나선 이정배 교수(감신대)는 “목회자 80%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고 10%에 들기 위해 피터지는 경쟁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 농촌선교는 우리에게 큰 의미와 출구를 주는 블루오션”이라면서 “도시처럼 자기만을 위한 교회가 되선 안되고 지역과 함께 생태망을 살리고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는 돈으로 남의 능력과 시간을 사지만 시골은 손의 창조, 손의 힘을 키우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낸다 면서 이를 위해 도시교회가 농촌교회에 땅을 사주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장 농어촌부 총무인 백명기 목사는 “감리교의 농목에는 30년을 섬겨온 보배와 같은 소중한 자산이 많아서 부러움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히고 “감농목의 귀한 자산을 타 교단과 함께 연대하여 나눌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신학자와 농목이 공동으로 연구해 농촌선교론에 대한 신학적, 성경적 정립, 농도가 연대하는 모델의 개발, 귀농인구의 효과적인 정착을 돕는 방안 등을 연구하자.”며 귀농상담소를 같이 운영해자고 제안했다.

이어 조경열 목사(아현교회)와 한경호 목사(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회장)가 축사했고 농목 초대회장을 지낸 허원배 목사(성은교회)가 창립과정부터 정착까지의 회고담을, 농목에 막 발을 들여놓은 김영현 전도사(사천교회)가 농촌운동의 전망과 각오를 들려주는 시간을 가진후 축하만찬회로 농목30주년 기념행사를 마쳤다.

 

30주년 선언문❙

하느님의 생명선교의 도구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30주년 선언문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의 30년의 발걸음은 하느님의 발걸음이었습니다.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30년의 역사는 시대와 역사 속에서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의 발걸음이었습니다. 하느님 사랑, 농민사랑, 교회사랑, 생명사랑을 향한 믿음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내시고 품으시고 살리시고 풍성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발걸음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경제개발 이데올로기와 농촌인구의 도시로의 급격한 이농과 저곡가 정책, 그리고 수입개방에 따른 농민 생존권의 위협, 군사독재정권의 폭력과 억압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강한 자들과 지혜롭다 여기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를 부르셨습니다. 고난당하며 신음하는 농촌과 농민들을 보게 하셨고 울부짖음을 듣게 하셔서 위로와 연대, 희망의 거룩한 사제로 세워주셨습니다. 반신앙적 폭력과 물신주의에 침묵하며 시대의 풍조를 좇아가는 교회공동체를 보게 하셔서 교회공동체를 품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생명의 하느님은 창조세계의 놀라운 신비와 은총을 새롭게 보게 하셨고 인간의 무지와 욕심으로 인한 창조세계의 파괴를 보게 하셔서 삶과 신앙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이 하셨던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하느님만을 자랑합니다. 하느님만을 찬양합니다.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의 30년의 발걸음은 하느님의 생명선교의 빛나는 보석들을 발견하는 발걸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과 이끄심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걸어온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30년의 발걸음은 오늘 우리 시대와 교회공동체,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하느님의 생명선교의 빛나는 보석들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은총을 누렸음을 고백합니다.

천덕꾸러기로 업신여김을 받고 생존권의 위협을 받으며 피눈물을 흘리고 신음하면서도 하느님께서 맡기신 생명지기의 길을 가는 농부들의 굳은 못 박힌 손을 함께 잡고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몸으로 깨닫는 은총을 누렸습니다. 가난하고 힘없고 이름 없는 농촌교회와 농민을 섬기며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바람처럼 자유로우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함을 누리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의 숨결이 충만한 창조세계인 농촌에서 생명을 돌보며 가꾸는 농부 목사의 길을 걸으며 농부 하느님을 만나고 모든 것을 구별 없이 품으시고 받아주시는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맛보는 은총을 누렸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러한 은총 속에서 우리는 농촌교회 목회자의 자기 정체성, 시대 현실과 말씀의 하나됨, 정주목회, 생명의 농업, 생명밥상공동체를 통한 농도공동체의 회복, 시대와 역사 안에서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과 자신에게 내려주신 개인적 자아를 조화롭게 통합한 삶과 실천, 하느님과 창조세계와의 친밀함과 하나됨을 누리는 영성 등 하느님의 농촌선교-생명선교의 보석들을 만났습니다.

 

이제 은총의 30주년을 맞이한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는 하느님의 농촌선교-생명선교의 도구가 되어 “생명 영성 공동체” 꽃을 피워 나갈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세계(생명의 세계)에 깊이 뿌리내리며 하느님의 생명의 기운을 힙입어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사제로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는 생명의 터전인 농촌과 교회공동체, 창조세계 안에서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더욱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또한 그 속에서 함께 아파하고 신음하시고 생명살림을 위해 일하시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분별하고 증언할 것입니다. 나아가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이 하느님으로부터 말미암고 하느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림을 십자가로 증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우리 시대의 십자가를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지고 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영성수련 공동체로의 부르심에 순종할 것입니다. 개인의 신앙과 삶의 체험을 기반으로 이에 대한 분별과 지원을 위한 관계 중심의 신앙실천 속에서 하느님의 농촌선교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 과제들을 풀어갈 것입니다. ‘일상생활을 영적으로 만드는’ 변화의 토대를 마련해 갈 것입니다.

나아가 목회자 중심의 한계를 넘어 하느님의 농촌선교-생명선교의 동역자인 농촌교회공동체와 농민 신앙인들이 생명선교의 손과 발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주님부르심에 순종할 것입니다.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의 새로운 30년을 시작하는 오늘, 우리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따라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의 동역자,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교회와 세상의 소금,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2015년 10월 15일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일동

 

성찬식

   
▲ 성찬식 - 집 례 김형국 목사(농목회장)
   
 

 

기조발제 "‘생명목회’그 뜻을 찾아가다." (아래 발제문 참조)

 

   
▲ 기조발제 - 김명준 목사(받들교회)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30년 신앙실천 회고와 과제 

하느님의 농촌선교, ‘생명목회’ 그 뜻을 찾아가다.

 

들어가는 글

감리교 농촌선교목회자회(이하 감농목)의 30년은 시대와 역사 속에서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의 발걸음이었습니다. 하느님 사랑, 농민사랑, 교회사랑, 생명사랑을 향한 믿음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우리만의 발걸음이 아니라 우리를 통한 하느님의 발걸음이었기에 감농목 30년이라는 세월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농촌선교를 위한 발걸음’!!!

먼저 이글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분의 발걸음에 순종했던 감농목 30년의 발걸음속에서 드러났던 소중한 자산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나아가 30년 동안 함께 기도하며 고민하고 토론하고 실천했던 결과로서 - 우리시대에 하느님께서 보여주시고 이루시고자하는 농촌선교의 푯대가 무엇인지 더듬어 보려합니다.

이를 기초로 우리시대 하느님의 농촌선교의 내용을 살펴보고 우리 앞에 놓여진 풀어야할 문제와 감농목 신앙실천의 중심과제를 살펴보려 합니다.

 

 

배우고 간직해야 할 자산들

 

1. 한(恨)의 사제로서의 하느님의 농촌선교

감농목이 시작되었던 당시 1980년대 역사적 현실(정치, 경제, 사회)은 분단의 아픔과 모순, 경제개발 이데올로기와 농촌인구의 도시로의 급격한 이농과 노동자, 도시빈민으로의 전락, 저곡가 정책과 저임금에 의한 생존권의 위협, 군사독재정권의 폭력과 억압이 일상화된 형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이러한 반신앙적 현실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모르는 지도자들, 삶의 현실과 상관이 없는 관념론적 신학, 교회성장주의를 통한 교회확장, 사회적 불의를 알면서도 교회(조직)의 존속을 이유로 말못하는 교권 등 반신앙적 현실을 옹호, 유지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뒤로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고난의 현장, 십자가의 현장으로 나아간 이들이 바로 감농목이였습니다.

당시 감농목은 창립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힙니다. "본 회는 농촌의 진정한 복음화를 통하여 농민의 인간다운 존엄성 회복(인간화)과 농촌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농촌목회자들의 뜻과 지혜를 모아 ①농민신학의 정립 ②지역사회개발 ③목회 정보교환 ④목회자간 상호연대감 형성 등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농촌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자신의 정체성은 농촌현장에서 경험한 농민 생존권의 붕괴와 농촌사회의 반민주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며, 농민 농촌과의 하나됨에 이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감농목 목회자들의 사회의식과 신앙실천은 당시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떠나야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감농목 목회자들의 하나님 사랑, 농촌 농민사랑의 발걸음은 흐르는 강물처럼 중단이 없었습니다.

민중신학자 서남동 선생은 <현존>에 기고한 ‘한의 사제’라는 글에서(1979년 6월,103호) 교회와 하느님의 선교사역자들이 “땅에서부터 하늘에 호소하는 아벨의 피 소리(창세기 4장10절)를 대변하고, 여리고 길에서 강도 만나 빼앗기고 얻어맞는 이웃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 아픈 상처를 싸매주고(누가복음 10장25절), 일꾼들에게 지불되지 아니한 품삯이 만군의 주님의 귀에 들리도록 외치는 소리(야고보서 5장4절) - 이 ‘소리의 내력’을 밝히는 ‘한의 사제’”가 되어 “우리 현실에서 눌린 자, 잃어버린 자, 저주받고 추방당한 자, ‘죄인과 세리들’의 소리의 매체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농목 초기 목회자들의 신앙실천이 바로 ‘한의 사제’로서의 발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농촌선교에 참여하는 목회자들이 자기정체성을 세워가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발걸음의 밑바탕에는 80년대 기독교농민운동의 씨앗을 뿌려놓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고 최종진 장로의 성육신적 신앙실천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 영성 공동체 / 생명선교, 생명목회

1960-70년대 농촌 선교운동의 중심은 농촌계몽 운동, 지역개발 등이었고, 80년대 농촌선교 운동의 중심은 농촌의 근원적인 문제를 사회구조의 불평등과 불합리성으로 보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태동한 사회 운동과 맞물려서 농촌의 젊은 목회자들이 지역의 운동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고 농민회 등의 조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감농목은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과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고 이러한 활동은 교단의 비민주적 운영과 서클정치, 불법 부정선거에 대한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1990년 이후 동구권의 몰락과 문민정부 수립이후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과 사회운동, 시민운동의 성장은 당시 기독교운동진영에 정체성의 혼란과 조직적 축소를 감농목은 초기에 열정을 갖고 활동을 했던 이들이 하나 둘 도시로 옮겨가면서 농촌선교에 대한 그간의 평가를 좀 더 냉철하게 하기 시작했으며 그 대안과 초점을 마련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평가를 요약하면 "농목의 예언자적인 삶은 사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농목 구성원의 각자의 현장을 세우고 먼저 그 현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한 분명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내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농촌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겠는가?" 하는 평가와 더불어 "목회의 현장 속으로!" 라는 큰 틀에서의 주제를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94년 재편 감농목은 정책의 중심내용을 '농민 선교에 집중하는 조직' 그리고 '현장과제에 주력하는 실천'으로 정리하였습니다(94년 농목활동의 평가와 95년의 과제, 진광수 총무).

1994년 4월7일 원주 성도교회에서 열린 농목 총회에서는 '농촌선교목회자 협의회'에서 '농촌선교목회자회'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의 영역을 과감히 정리하여 '농촌'이라는 주제에 좀 더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고민하기 위해 조직 자체를 새롭게 재편하였습니다. 교회현장이 반농반도(半農半都)의 형태인 회원들 또는 좀 더 목회적 영역에 관심이 있는 회원들은 '목회개발위원회'로, 생명농업과 공동체 운동 농ㆍ도 간의 교류에 관심이 있는 회원은 '생명농업위원회'로 재편을 했습니다. 특히 생명농업위원회에서는 '생명, 영성, 공동체'라는 위원회의 주제를 합의했으며 모든 활동은 이 주제에 부합되는 것들을 계획하고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농도 공동체운동은 생협으로 발전을 했고, 충북 음성에 농촌선교훈련원이라는 연구 실천 기관을 만들어 정주목회 훈련 프로그램, 생명농업의 보급, 영성훈련, 몸 비우기 등의 실천들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명농업위원회는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가며 활발하게 활동한 반면 목회개발위원회는 과제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기에 어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해 결국 두 위원회를 해체하고 '생명 영성 공동체'라는 농촌선교의 방향이 우리시대 하느님의 농촌선교임을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고백에 뿌리를 두고 생명의 농업, 영성훈련(몸비우기, 관상기도, 수도회), 농도공동체(생협, 밥상공동체), 대안교육과 건강학교 등 다양한 신앙실천을 하며 하느님의 농촌선교에 참여해 왔습니다.

감농목 30년의 신앙실천의 과정은 우리시대 하느님의 농촌선교의 중심이 ‘생명선교 - 생명목회’임을 깨달아가는 여정이었다고 여겨집니다. 하느님의 농촌선교에 온전히 순종하고 한국교회에 생명선교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있지만 감농목 30년의 보석 같은 신앙실천은 새로운 감농목 30년을 내다보는 오늘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임이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 생명목회 신앙실천의 출발점과 과제

 

1. 출발점

1) 당위와 대의를 넘어 진정한 자신의 삶을 위한 삶의 기준에 기초한 신앙실천

그 동안 감농목의 신앙실천은 시대와 역사의 현실에서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들의 신앙실천의 모습에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개인의 내면적 이해와 요구, 갈망을 소홀히 여겨 왔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당연시하는 풍조를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주체성, 자립성, 창조성, 자아 실현을 가로막는 불행한 모습이었습니다(반대로 개인적인 자아만을 생각하고 사회적인 자아는 나몰라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이러한 한계는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적 정치현실과 하느님의 백성들의 가슴에 맺힌 한과 고난, 사회와 교회공동체의 무관심과 물질만능주의, 반공 의식 등 반 신앙적, 반 이성적 현실에 적지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는 하느님의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들이 다른 생명과 어울려 자신에게 주어진 독특한 생명의 기운을 온전히 드러내고 꽃피워내는 일입니다. 이제 어떻게 시대와 역사 안에서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과 자신에게 내려주신 개인적 자아를 조화롭게 통합한 삶과 실천을 이룰 것인가를 중요한 문제로 바라보아야 합니다(사회적인 자아와 개인적인 자아의 통합).

파커 J. 파머의 말에 귀기울여야합니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명은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되라고 ‘저쪽 바깥에서’ 들려오는 도덕적인 요구가 아니다. 소명은 본래 타고난 그 사람이 되어, 태어날 때 신이 주신 본연의 자아를 완성하라는 ‘여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것"이라 합니다. 소명의 시작은 세상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본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프레드릭 뷰크너는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 말합니다.

인디아 사진전 <디레 디레>展에서 말하는 박노해 시인의 말 역시 울림이 있습니다.

나란히 선 아름드리 두 그루 나무 사이로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어린 두 남매.

천 년을 기대어 살아온 저 나무들처럼

더디 가더라도 함께 손잡고 나아가기를.

함께 가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기를.

자유란 홀로 선 외로운 나무가 아니라

‘함께하는 혼자’로 숲을 이루는 푸른 나무인 것이니.

 

2) 이론과 논리 중심을 넘어 체험 - 내면화 중심, 관계 중심의 신앙실천

‘영성 생명 공동체’는 아름다우면서 너무나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쉬지 않고 되풀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 농목 목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현실의 구체적인 삶에서 ‘영성, 생명, 공동체’를 체화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넘어서지 않고는 하느님의 농촌선교의 힘 있는 전진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 또한 공허할 뿐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각자의 현실을 분명히 알고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신앙과 삶의 체험에 대한 분별과 지원을 위한 관계 중심의 신앙실천을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기초로 하여 하느님의 농촌선교를 위한 신앙 실천적 과제들을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영성수련 공동체로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 생명목회의 과제

 

1) 생명선교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시대적, 대안적 인식의 빈곤을 극복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뿌리로 하는 현대 산업문명은 대량생산과 소비를 제도화하고, 행복의 기준을 물건과 용역의 소비량에 두는 생활방식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의 급속하고 전면적인 확대는 하느님의 창조세계를 전적으로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밖에 보지 않고 도구화 대상화시킵니다. 그 결과 모든 생명의 토대인 생태계의 광범위한 파괴를 불러올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량생산과 소비의 체계 속에서 편리 위주의 물질생활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끝없는 것이 되고, 인간존재는 본질적으로 유한한 체계인 지구생태계의 한계를 무시하는 지극히 교만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생명의 터전인 하느님의 창조세계의 파괴도 위협적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창조세계의 파괴에 녹아있는 비인간화 현상입니다. 인간이란 어디까지나 창조세계의 일부이고, 생물학적인 존재인 한, 생태적 기반을 붕괴시키면서 살아갈 수 없음에도 그런 일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신앙보다 물질(돈)에 대한 신뢰가 더 커져버려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현실은 모든 생명의 살림살이를 위한 하느님의 농촌선교에 커다란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고삐 풀린 자본의 폭주 속에서 인간성의 황폐화와 정신의 빈곤화가 심화·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단편적이고 일회적인 성서적, 신학적, 시대적, 대안적 인식으로는 이 엄중하고 굳어 있는 상황을 뚫고 풀어나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이제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 생명목회의 길을 힘 있게 열어가기 위해서는 30년 감농목과 하느님의 선교 사역자들의 기도와 연구, 빛나는 신앙실천들, 나아가 여러 사회적 실천과 대안적 이론들을 생명선교의 구슬로 꿰고 체계화 하여 교육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현대문명과 인간중심적 세계관, 생명과 경이로운 세상, 생명의 영성, 대안적 신앙공동체, 생명의 먹을거리를 가꾸고 돌보는 사제로서의 농민다움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신앙실천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들).

이제는 농촌과 농업과 농촌교회의 어려움과 문제를 호소하고 제기하기보다는 농촌과 농업, 농촌교회가 우리시대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를 위한 거룩한 터전임을, 그루터기임을 선언하고 증언하는 것을 앞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느님의 창조세계인 농촌의 거룩함에 대한 깊이 있는 체험적 성찰과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또한 농민신앙인들의 생존권(경제적)과 더불어 생명권에 대한 인식을 높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일상생활을 영적으로 만드는’ 변화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 생명목회의 공동체적 기초와 방향을 정립해야 합니다(분권, 지역화, 자치와 자립, 지역순환사회).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 생명목회는 하느님 나라 운동이며 풍성하고 다양한 생명의 그물망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적인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일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삶은 개발, 경제성장, 세계화를 통한 물질적 번영과 편리를 누리겠다고 하는 논리에 의해 붙잡혀 있고 세계 곳곳에서 모든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경제성장, 세계화의 이면에는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 다수 민중의 희생 위에 극소수가 소위 물질적인 부를 누리겠다고 하는 반신앙적, 반생명적 논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경제체제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삶, 언어, 음식, 건축, 문화, 그리고 존엄성을 서구식 단일문화를 위해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자연세계의 파괴에 기초하고 있습니다(창조세계와의 분리).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등, 그들 사이의 거리를 점점 더 멀리 벌어지게 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사람과의 분리). 이러한 논리와 삶의 결과는 파괴와 폭력, 갈등, 불의, 나아가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불러올 수밖에 없기에 하느님의 선교 사역자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농촌선교는 모든 생명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기초로 하는 생명의 세계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원리를 실현시켜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은 분권, 지역화, 자치와 자립, 지역순환사회라는 새로운 인식과 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생명선교는 이에 대한 연구와 정립을 통해 농촌공동체, 생명신앙공동체 회복에 대한 분명한 길을 모색하고 제시해야 합니다.

 

3) 생명선교 생명목회를 위해 농촌교회와 도시교회가 함께하는 다양한 신앙실천을 모색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 생명목회는 단순히 농촌과 농촌교회만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농촌교회를 넘어(통한) 도시교회, 나아가 한국교회 전체와 지구생태계를 살리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와 운동입니다. 생명의 땅과 생명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떠나서 사람은 진정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생명의 터전이 파괴되는 생태적 위기와 하느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비인간화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현실에서 농촌교회와 농촌선교 사역자들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농촌교회와 선교 사역자들은 하느님이 열어 가시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내다보고 구체적이고 다양한 신앙실천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고 준비해야 합니다(생명교육, 안전한 먹을거리, 생명과 노동의 영성, 쉼과 치유 등).

이를 기초로 도시교회와 적극적인 연대와 협력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는 개인적인 신앙실천을 넘어 전교회적인 생명선교 신앙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제안되고 실천된 생협운동, 밥상공동체운동, 하루 100원 모으기운동, 생명의 망, 생명목회 네트워크 등을 총화하여 상생협력의 방향과 내용, 장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실천과제들을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4) 하느님의 농촌선교의 한 주체인 현장 교회와 농민 신앙인들이 생명선교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

80년대 농민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감당했던 기독교농민운동은 80년대 말 전농로의 통합 이후 목회자 개인 중심의 운동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리고 감농목 역시 목회자 중심의 농촌선교운동 - 생명 영성 공동체운동에 머물렀던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땅에 뿌리박고 생명의 먹을거리를 가꾸고 보살피는 농민신앙인의 신앙과 삶의 문제를 가슴으로 품는데 한계를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물질주의 한가운데서 고민하며 신음하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영성을 어떻게 회복시키며 생명과 평화의 영성, 자유와 사랑의 영성이 넘쳐흐르도록 도울 것인가, 하느님이 허락한 복된 삶을 마음껏 누리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가는 데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에 대한 관심 역시 소홀했던 점은 하느님의 농촌선교를 전교회운동으로 확대되는 일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며 하느님 농촌선교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체화되고 대안적인 신앙실천을 전개했던 감농목의 발걸음은 오늘 하느님의 농촌선교의 소중한 디딤돌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생명농업, 생명운동, 생협운동, 영성운동, 다양한 공동체 운동 등).

이제 그동안의 한계를 넘어 하느님의 농촌선교의 한 주체인 현장 교회와 농민 신앙인들이 생명선교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농촌목회 세미나, 농민신앙인 양육, 생명과 노동의 영성훈련 등)

 

3. 생명선교 생명목회를 위한 감리교농촌목회자회의 과제

하느님은 감농목 30년의 발걸음을 통해 하느님의 농촌선교의 분명한 방향과 열망을 이루어 오셨음을 연약할 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시고 교만할 때 우리를 낮추시어 주님의 선교역사를 이끌어 오셨던 것입니다. 30년을 뒤로하고 새로운 30년을 맞이하려는 우리 감농목은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 생명목회의 소중한 도구로 쓰임받기를 기도하며, 귀를 기울여 오늘 여기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온 삶으로 응답하는 생명선교 사역자들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감농목을 통해 이루시려는 뜻이 얼마나 깊고 크고 절절한지를 우리 감농목이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하느님 농촌선교사역에 응답하기 위해 오늘 우리 감농목이 풀어가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1) 농촌목회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세워가야 합니다.

구도자(영성가), 한의 사제, 생명과 하나되는 목회자,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목회자

2) 생명선교 생명목회에 대한 사상적 빈곤의 극복을 위해 공동의 연구 작업과 깊이 있고 체계적이고 체험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역량있는 전문 사역자들을 발굴해야 합니다.

3) 분별과 지원, 영적 성장을 위한 영성수련공동체를 위해 지역모임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정책과 교육역량의 강화, 영성수련공동체로의 농목의 새로운 전환이라 할 것입니다.

 

 

나가는 말

지나온 농목 30년의 발걸음을 돌아보면서 겹쳐지는 한 영화가 있습니다, 브라질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제네시스-세상의 소금>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세계(생명)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살가두의 인생여정을 통해 역사와 사람, 생명의 세계, 그리고 신앙실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1944년 아버지가 경영하는 브라질 산골농장에서 태어났고 가난했지만 자유로웠고 자연 속에서 대가족이 자급자족하며 살았습니다. 16세 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도시로 나옵니다. 대학진학 후 브라질 해방신학운동영향을 받아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였고 결국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하게 됩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갔던 29세의 살가두는 아프리카 르완다에 출장을 갔다가 그곳의 비참한 죽음의 현장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1973년, 그는 고통과 죽음의 현장을 고발하고 알리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카메라 장비를 마련한 후 세계의 전쟁, 분쟁, 기아, 학살현장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30여 년 동안 전 세계의 전쟁과 기아, 난민촌, 학살의 현장을 사진에 담았던 살가두는 ‘인간이라는 종족에게는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고 살아있을 자격조차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말할 수없는 깊은 절망감, 무기력함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와중에 브라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온 살가두는 아내의 제안에 따라 무분별한 벌채와 극심한 가뭄으로 황폐화된 고향에 나무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2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생명이 자라기 어려운 사막과 같은 땅이 숲으로 변화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에 이릅니다. 이 과정에서 살가두의 영혼은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그는 이제 다시 희망을 품고 사진기를 들고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의 풍경과 종족들, 동물들을 찍기 시작합니다. 살가두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은 자연을 되살리는 일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 창조세계임을 자신의 삶을 통해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 감농목의 역사를 엿보게 됩니다.

감농목은 하느님의 창조세계(생명의 세계)에 깊이 뿌리내리며 하느님의 생명의 기운을 힙입어 다른 생명과 공생하며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사제로 지금 여기에 서 있습니다. 감농목 새로운 30년의 미래를 준비하며 마음 깊이 외쳐 봅니다.

 

하느님의 농촌선교 - 생명선교 생명목회의 동역자,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세상의 소금,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 패널1 - 이정배 교수 (신학자, 감신대)

 

이정배 - 감리회의 농목은 조직과 역사에서 자랑할 만하다. 선교의 주제는 시대별로 달라져 왔다. 개화, 독립, 민주화, 성장, 통일, 생명, 농목의 관심이 바뀌어왔다. 어느날 우리는 JPIC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요즘 생명이라는 주제가 결국 자본주의의 삶의 양식을... 그러니까. 기독교가 로마를 기독교화 한게 아니라 로마가 기독교를 로마화 했다는 말처럼 기독교가 자본주의를 기독교화 한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기독교를 자본주의화 시켰다. 즉 교회의 존재양식 자체가 완전히 자본주의화 되어 있다는 말이다. 교회의 크기가 목사의 크기가 됐다는 말이다. 교회가 자본주의화된 문제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선교적 과제가 됐다. 교황이 ‘교회의 복음화 없이는 세상의 복음화 없다’고 했다.

이렇게 자본화된 교회를 어떻게 넘어설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됐는데 그런 의미에서 농목이 중요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이렇게 넘어갈 것인가? 목회자 80%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고 10%에 들기 위해 피터지는 경쟁을 해야 하고 목회자 이중직도 풀어진 이 현실에서 농촌선교는 오늘 우리 시대에 큰 의미와 출구를 주는 핵심이 된다.

농촌은 우리에게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예전엔 떠났지만 이제 돌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농촌이 우리에게 선교의 장이고 교회의 존재자체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있는 공간이 되었다. 도시 교회는 자기자신을 위한 자족적인 공간이었지만 농촌의 교회는 생태망을 살리고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농촌에 있으면서 교회가 여전히 자기만을 위한 공간으로 존재한다면 농촌교회라 말하기 어렵다. 농촌교회는 반드시 지역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얼마전 이어령씨가 말하길 ‘남아공이 백인의 지배를 당하고 있으면서도 백인을 적대시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흑인의 해방을 이끌어 났는가’를 살펴서는 ‘우분투’라는 개념을 말하더라. 영어표현은 ‘I am because we’이다. ‘우리이기 때문에 나다’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우분트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기독교 삼위일체론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예수가 신이어야 하는데 유대는 유일신론 밖에 없었고, 헬라 철학은 최고신 개념밖에 없었다. 그런 선상에서 예수가 신인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유대와 헬라의 개념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나온 우분투, ‘우리이기 때문에 나’라는 개념으로 기독교 삼위일체론의 근간을 이루었지 않았나. 터툴리안 같은이가 북아프리카 출신이었다.

지금까지 도시의 선교방식은 이런 개념이 아니었다. 그러나 농촌교회의 생태적 연결고리, 지역문제 등은 ‘우리이기 때문에 나’ 라는 복음의 본질을 드러 낼 수 있는 활동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라도 오늘의 자본화된 현실을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가하는 과제를 풀어가기에는 30년을 쌓아온 농목의 지성과 영성과 지혜는 높이 평가할만 하고 또 매우 중요하다.

이걸 성경적으로 말하면 카인의 문화에서 어떻게 노아의 문화로 바꾸어 갈 것인가하는 문제로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카인의 후예들이라는 말이 있는데  도시의 삶의 방식 자체가 카인의 후예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는 의미다. 효율성, 자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살아가고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 파는 문화 말이다. 반면 노아의 문화는 창세기9장에 나와있는 것처럼 사람의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게 말 것, 동물을 피채 먹지 말 것 등 인간과 인간사이의, 그리고 사람과 자연의 형평성 등 생태적 정의를 말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농촌선교는 어떻게 카인의 문화에서 생명의 노아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를 가능하게 한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겠다. 나는 박노해 시인과 같이 일하고 있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 다니면서 기후변화가 급변해서 물과 전기 등 문명의 이기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 세상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 지역의 전통적인 토속문명(적정기술)을 찾아 모으고 그들을 초대해 기술을 습득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 삶이 고통을 받지 않나? 시골에도 물 나오지 않는 곳이 많지 않나. 이런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어떤 기술이 우리를 살아남게 할 것인가를 준비하자는 거다.

그리고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내려오게 해 무엇이던 키우게 해 자기 손으로 먹거리를 만들어 내게 하는 일을 맣이 하지 않나? 예전에 최완택 목사님이 우릴 산으로 이끌어가서 목사가 산에 가야 깨끗해져서 목회 잘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던 것처럼 도시 사람들을 농촌으로 데려가 거기서 심게하고 자라게 하고 먹게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나는 예전부터 도시교회가 시골교회에 땅을 사주는 운동을 하자고 이야기 했었다. 농도간 먹거리만 나눌 것이 아니라 농촌에 오면 삶과 죽음의 공유되는 교회를 만드는 일이 앞으로도 엄청난 선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죽음의 문제를 농촌교회가 책임지자는 거다. 삶과 죽음이 공유되고 나눠지는 그런 공간, 그래서 도시교회가 5만원 10만원 주는 것으로 농촌선교했다는 말 하지 말고 땅을 사주라는 것이다. 그게 엄청난 미래의 선교다.

농업의 문제만으로 농촌선교가 되지 않고 교육의 문제도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교회에는 유치원이 거의 함께 있다. 사모님이 그 일을 거의 한다. 오늘 농목에 뜻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교육의 뜻도 함께 품었으면 한다. 그래서 마을에 봉사하여 함께 공존해 가야 한다.

하나더 말씀드리자면, 농촌교회의 예배는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이다. 난 24절기 문화를 신학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24절기 문화의 특징은 밥이 곧 약인 문화다. 도시는 밥과 약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지만 농촌은 밥이 약이다. 24절기 문화를 교회안에 접목한다면 영과 육을 통전적으로 아우르는 목회가 열리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도시는 돈으로 남의 재능을 사고, 남의 시간을 사고 남의 능력을 사지만 시골은 돈만 갖고 안된다. 손의 힘을 키워야 한다. 바로 손의 창조력이다. 신학교에서부터 손의 창조, 손의 힘을 키우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농촌선교는 한치앞도 나가기 어렵다. 두서없는 말을 마친다.

 

   
▲ 패널2 - 박경양 목사 (도시교회, 평화의 교회)

 

박경양 - 오늘에야 농목30주년에 와서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준비가 부족함을 이해해 달라. 30주년 축하한다. 앞으로 나갈 30년이 더 축복이 되길 바란다.
질문1은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함께해야할 본질적인 이유가 뭔지 얘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농촌교회는 한국사회에서 도시교회를 이루게 한 존재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처럼 농촌이 업었으면 오늘 도시교회의 성장이나 오늘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도시교회는 철저히 농촌교회의 희생위에 가 만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농촌교회는 농촌교회의 미래가 바로 도시교회의 미래와 직결됐다는 느낌을 갖는다. 한국교회의 타락의 맨 앞에 도시교회가 서있다. 도시교회는 스스로 재생의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한국교회의 미래, 재생의 가능성은 그나마 건강하고 공동체적인 일부 도시교회와 생명의 문제에 천착하는 농촌교회가 열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교회가 한국교회에서 어떤 위상을 갖느냐 그리고 그 운동이 한국에 얼마나 확한되느냐가 한국교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미션은 도시교회는 농촌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은 있는지 없다면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를 도시교회 입장에서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농촌교회를 생각하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가난하다고 배우지 못했다고 그리고  이름없는 존재라고 자식으로부터 괄시 받는 우리 어머니같은 느낌을 강하게 갖는다. 도시교회는 농촌교회 황페화된 이유가 농촌교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농촌교회가 쌓아왔던 힘들, 자원들을 홀딱 빨아들여서 자신들이 성장해 놓고 마치 늙으신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뼈만 앙상한 거친 손으로 서 있을 때 그 책임을 당신이 배우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다고 말하는 불효자의 모습을 도시교회가 가지고 있다. 도시교회는 농촌교회가 황폐화 된 이유가 자신들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때문에 농촌교회를 빚을 진 존재, 함께 가야할 존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의존하고 귀찮게 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달라고 조르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게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가 싶다.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함께 갈 수 있는지는 인식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식의 변화는 스스로 깨닫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각하여 인식은 변할 수 있다고 본다. 농촌을 제대로 인식하고 농촌의 황폐화가 무엇 때문인지 도시는 어떤 책임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교회는 또 도시교회에게 함께 가야할 이유를 말해줘야 한다. 그래서 서로 빚진 존재며 함께 가야할 존재라는 인식이 생긴다면 희망이 있을 것이다.

세 번 째, 농촌교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해달라고 했는데, 이 물음앞에서 나는 앞에서 말한 자식을 평생 희생한 늙은 어머니가 자신을 괄시하는 자식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찔끔했다. 고독하지만 농촌교회가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 새로운 씨앗을 심는 못자리임을 스스로 잊지 말아야 한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한국교회와 사회의 미래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어떤 씨앗을 심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 도시교회가 드러내는 물질주의, 성장주의, 개인주의, 반생명적 문화와 습성을 답습하지 않고 농촌만이 가지고 있는 협동과 공통체성, 그리고 생명문화를 더욱 확고히 하고 담아내는 공동체들이 농촌에서 굳건히 서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도시교회가 이 쪽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협동과 공통체성, 그리고 생명을 배울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길을 열어주기 바란다.


 

   
▲ 패널3 - 백명기 목사 (예장 농목, 예장 농어촌부 총무)

 

백명기 - 타교단 농목에서 감리교 농목에 바란다.

나는 예장 농어촌 선교부를 맡고 있다. 4년짜리 별정직이다. 돌아보니까 30년된 농목과 15년 정도 교분을 나눠왔다. 귀한 자리에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 발제문과 선언문에 언급한 그대로 ‘30주년은 시대와 역사속으로 부르신 부름에 응답한 여정이었다’라는 것에 100% 공감한다. 그리고 15년간 같이 일한 낯익은 농목의 얼굴을 보니 동지 의식을 더욱 가깝게 느낀다.

제게 다른 농목의 입장에서 감리교 농목에게 바라는 이야기를 해달라 했다. 발제문을 보니 제목이 참 마음에 와닿는다. 저희도 나름의 정리를 하면서 ‘농촌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라고 정리했는데 감리교는 역시 감리교스럽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여기는 ‘하나님의 농촌선교’라고하니 더 와닿는다. ‘농촌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농촌선교’라고 하니 더 맞다. 그렇다 하나님이 하시는 거다하는 마음이 들었다.

발제문에는 감목 30년을 통해 배우고 간직할 소중한 자산을 살펴보았고, 농촌선교의 목표, 당면 과제를 내부적으로 정리한 내용이라고 보았다. 1980년도 한국사회변혁과 함께 시작된 농목운동이 90년대를 지나면서 농민선교와 농촌선교 현장의 과제에 집중하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아까 교수님 말씀하셨듯이 JPIC의 영향도 있어서 현장속으로 들어가 생명과 공동체를 붙들어 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당연했다.

감농목의 생명, 그리고 영성공동체 운동으로 인한 귀한자산들을 발제문으로 살펴보면서, 몇가지 짚자면, 농도공동체 운동으로 인한 농도생협, ‘농도’라는 이름도 참 귀하다. 난 아직 ‘도농’이라 부른다. 농촌선교훈련원을 통한 여러 가지 훈련프로그램, 생명놉업 보금, 다양한 활동, 대안교육에 이르기까지 감농목에는 보배와 같은 소중한 자산들이 많구나 생각하고 부러움을 느꼈다. 이런 성과도 중요하지만 30년을 섬겨온 사람들이 가장 귀한 자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30년을 섬겨온 농촌선교 현장은 아직도 어려울 뿐 아니라 30년전 보다 더 어려워진게 사실이다. 우리시대의 하나님의 농촌선교는 생명선교와 생명목회라고 압축하여 정의한다. 생명선교와 생명목회를 농목회원들의 삶속에 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생명선교와 생명목회를 실행할 당면한 과제들을 정리하셨는데 그것은 아마 생명선교에 대한 주요한 얘기는 성저적, 신학적, 시대적 빈곤을 많이 극복해야 한다고 느낀 것 같다. 공감한다.

그래서 생명선교와 생명목회의 방향정립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도시교회와 농촌교회가 함께하는 다양한 형태의 신앙실천을 모색하며 교회와 기독교농민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프로그램을 마련하자는 제안에 깊이 공감한다. 또한, 농목회자들이 자기정체성을 세워가는 그 부분에 방점을 찍은것에도 200% 공감한다. 사상적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의 연구작업, 체계적 체험적 교육후련을 통해 역량이 강화된 전문시역자를 키워나가자는 말씀을 하고 영성훈련공동체로서의 지역모임을 활성화를 제시하는데 이역시 공감하고 부러운 주제다.

몇가지 제안하자면, 농촌선교론에 대한 신학론을 쌓아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학자와 농목이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농촌 선교론에 대해 신학적, 성경적 정립이 필요하다.

또 제안하기는, 농목이라는 훌륭한 조직을 함께 섬기고 있다. 농목연대를 통해서 농회신학을 세워가는 작업을 감리회뿐만 아니라 타 교단과 연대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감농목의 역할이 필요하다. 감농목의 귀한 자산을 함께 나눌 기회를 모색해 달라고 요청드린다. 영성이 농목을 든든히 세워갈 거라 생각한다. 농목의 영성은 농촌선교론과 함께 가야 한다. 농목이 옳음과 당위로간 살아가면 무거운 짐이 되고 부담이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삶의 현장을 살아가며 오히려 기쁘고 충만해지며 감사해지는 것은 거룩한 영으로 충만하며 감사와 자기 삶에서 넘칠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목의 영성을 강화해야 겠다. 그런 면에서는 감농목이 많이 앞서간다.

두 번째, 농촌과 도시가 연대하는 바람직한 모델들을 개발하고 매뉴얼화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 상생이라는 것은 서로를 살리고 이롭게 하는 거다. 그래서 농목에 제안하는 것은 농촌이 도시를 살리고 농촌교회가 도시교회에 줄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이 개발되어질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발제문에서처럼 어렵다 힘들다 그만 말하고 대안좀 찾아보자고 했는데...농촌이 도시교회에 줄 수 있는게 굉장히 많겠는데 구체적으로 제시를 못하고 있다. 공유하자

셋째, 해마다 귀농인구가 4만 가구다. 4만명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효과적으로 정착하지는 않는 것 같고 교회에 정착율은 더 낮다. 감리회에선 귀농교육도 이미 하고 있다. 제안하기는 귀농교육말고 농촌교회가 이들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돕고, 이들의 영성과 삶의 필요를 파악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연구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귀농상담소를 같이 운영해 보는게 어떨까 제안한다.

 

   
 

 

농촌선교에 대한 제안

부안에서 목회한다. 고령화 시대가 급속히 다가와서 농촌이 죽고 교회도 죽을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개발해 야 하지 않을까 한다. 농촌이 도시를 살리는 건데 귀농을 해야하지 않을까? 은퇴하고도 2-30년을 더 사는데 이들을 농촌으로 안내하고 농도간 교회의 자매결연을 맺으며 농촌을 살리는 일에 힘을 모았으면 한다.

이정배 - 도시가 농촌의 힘으로 성장했는데 정주목회를 목표로 땅을 사주는 일이었으면 한다. 농촌선교, 생명선교라는 이름으로 도시가 보다 구체화한 일을 했으면 한다.

 

 

   
▲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30년사> 출판 및 헌정 기념식 / 발행사 - 김형국 목사(농목회장)
   

▲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30년사>를 감리교회(강천희 선교국 총무)에 헌정하는 차흥도 목사

   
 
   
▲ 축 가 - 강민정 하늬바람

 

   
▲ 격려사 - 조경열 목사(아현교회)
   
▲ 축 사 - 한경호 목사(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회장)

 

격려사 - 조경열 목사, 축사 - 한경호 목사

80년대의 혼란한 시대에 민중속으로 들어가는 목회가 많았다. 기장이 89년에 예장이 87년에 기감이 85년에 출발했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했다. 생명살림의 영성을 가진 농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온유의 영성이 있다. 그것을 지탱해 나가는 실천적인 행동방식은 은근과 끈기다. 민족의 정서이기도하다. 농사짓다보니 알겠더라. 농목의 길은 은근과 끈기로 가야할 길이다. 감리교는 감감해서 감리교라 하는데 농목은 추진력이 있고 타교단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문학적 감수성에 실천력에 앞을 보는 혜안까지 있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우리 3개교단 농목이 감리교 농목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30년의 농목을 열어나가자.

 

   
▲ 회고 - 허원배 목사(초대회장, 성은교회)

 

회고 - 허원배 목사

30년전 전두환 정권에서 경제성장을 국가정책으로 삼다보니 이농현상이 심해져 농촌이 파괴되고 있었다. 농촌을 살리자는 마음으로 농목이 만들어 졌다. 농목이 이런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자 정치집단이라는 오해도 받았다. 광림총회에서 총회장을 점거를 주도했다가 교회에서 쫓겨나 배화교목으로 갔다. 선동해놓고 도망간 꼴이어서 이 자리를 빌어 사죄한다. 자리를 끝까지 지켜온 차흥도 조언정 목사님 등에 감사하다. 희망의 새로운 자리를 만들자. 짧은 시간이지만 즐겁고 행복했다.

 

   
▲ 전망 - 김영현 목사(사천교회)

 

전망 - 김영현 전도사

시골로간지 10개월 됐다. 농목은 청춘이다. 농목은 더 젊어질 것이다. 청년들 위해 기도해달라.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의 중심에 우리 젊은이가있다. 농목30년의 역사는 선배의 자리였지만 60년의 자리에선 내가 서서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생명살림의 길을 따라가 보겠다.

 

   
▲ 30주년 선언문 낭독 - 김형국 목사, 황은경 목사

 

선언문 낭독 - 김형국, 황은경 목사

 

 

   
 

 

   
   
 

 

 

   
▲ 축 도 - 엄상현 목사(수동교회)
   
 

 

   
▲ 함께 나누는 식사와 선물 ❙ 가족잔치 감사인사 ❙ 선물 나눔 ❙ 노래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