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주기/노인문제

“죽음에 대한 이해와 준비로 삶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맑은샘77 2015. 9. 6. 09:01

“죽음에 대한 이해와 준비로 삶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기사승인 [1570호] 2015.09.02  14:47:13

- 죽음준비교육에 대한 책 <슬픔학개론> 펴낸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회장 윤득형 목사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죽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만일 이 질문이 당혹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성공지향의 사회에서 ‘죽음’과 ‘상실’이 그리 달갑지 않은 단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회장 윤득형 목사(44)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질문을 던진다. “죽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리고 불편지만 누구든지 꼭 알아야 할 진실을 말해준다. “당신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최근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목회상담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고 9년 만에 돌아와 죽음준비교육에 대한 책 <슬픔학개론>(샘솟는기쁨 펴냄)을 펴낸 윤 목사를 만났다. 그는 “삶은 죽음을 통해 성장하고 슬픔은 표현됨으로 치유된다”며 죽음과 상실을 먼 이야기로 미뤄두거나 외면할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준비할 때 ‘성숙’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즉, 죽음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면 삶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죽을준비가 되셨습니까?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신앙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부단히 ‘자기 부인’을 훈련해야 하지만 죽음에 대한 이해가 서툰 건 교회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그런 서툶은 목양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환자와 단 둘이 병원 중환자실에 남겨진 목사. 묻는 말에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인 환자를 붙들고 몇 차례 자녀들의 바람과 예수 믿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설명했지만 환자는 무반응이다. 순간 목사는 고민에 빠졌다. 가족들의 간절함 앞에 ‘아버지가 예수를 영접했다’고 살짝 거짓말한다면 가족은 기뻐할 것이고 장례식은 아버지의 천국환송예배로 치러질 텐데…. 가족도 평생 전도하지 못했는데 젊은 목사가 마지막 순간에 전도할 수 있으리라 믿고 부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혹시 가족들은 목사의 거짓말을 원한 것은 아닐까…. 어차피 의식 없는 환자, 나만 평생 함구하면 될 일 아닌가. 마음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중환자실을 나온 목사는 끝내 가족들의 바람이 이뤄지지 못한 것을 사실대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번은 수술 후 힘겨워하는 말기암 환자를 방문했다. 어떻게 기도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 치유적 희망이 담긴 성경구절을 읽어주고 치유와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때 치유와 회복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을 준비케 하는 말씀을 전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과거 윤 목사가 서울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를 지내던 시절의 경험이다. 사실 목회에서 병중에 있거나 죽음을 앞둔 이들과 그 가족을 위로하고 상담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로 일어나지만 그들에게 참된 위로를 전할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게 목회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윤 목사는 죽음을 앞둔 이들을 위한 방문에선 “가족의 마음을 위로하고, 가족 간에 화해를 이루도록 돕고,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길에 좋은 작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권면하는 일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의 시간이요, 가족이 죽어가는 환자에게 구원의 문제를 논하기보다 마지막 사랑과 정성을 쏟도록 돕는 일에 더 중점을 두는 게 목회적 돌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윤 목사는 “그 순간이 어쩌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는 거룩한 순간이고, 화해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면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단순한 논리를 넘어서는 사랑의 하나님과 초월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은혜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상실의 슬픔, 거기서 삶의 의미 재조명하도록 안내해야

 

 

 

# 죽음준비, 삶의 의미에 천착

윤 목사는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애도 상담’ 분야를 공부하면서 미국 병원과 호스피스에서 네 번(1600시간)의 목회 임상 훈련(CPE)을 받았고, 캘리포니아의 Methodist Hospital에서 사역했다. 미국의 호스피스 환자 관리는 주로 가정 방문 식으로 진행되는데 의료팀과 함께 성직자가 생의 마지막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영적인 돌봄을 갖는다. 윤 목사는 원목의 자격으로 하루 4명 정도, 환자 한 사람에 1~2시간 정도 방문하면서 그들과 삶을 나눴고 죽음을 앞둔 이들과 그 가족 그리고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에 대한 목회적 돌봄의 이해가 확연히 달라졌다.

“죽음에 대한 진리 중에 하나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우리들은 평생 죽지 않을 것처럼 일상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막상 죽음이 눈앞에 드리워졌을 때 크게 당황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죽음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얻을 뿐 아니라 오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금기시되어온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오늘’을 풍성하게 살아내기 위함이라고 윤 목사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잘 살기(Well-being)와 더불어 잘 죽기(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이 두 개의 주제는 결국 하나의 주제라는 것이다. 윤 목사는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면서 “우리가 죽음을 저 멀리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오늘을 사는 삶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이기도 했다. 윤 목사가 죽음을 준비토록 하는 일에 나서게 된 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돼 있다. 윤 목사가 고등학생 때 경찰이던 아버지는 몸에 힘이 없고 무력해지는 루게릭 병으로 휴직하고 몸을 돌봤지만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교회 다니지 않는 부모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그를 기특해하던 교회 어른들이 “너를 목사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말을 믿고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목사가 되어 아버지처럼 병들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심이었다. 하지만 신학대 1학기를 마쳤을 때 아버지는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하나님도, 교회 어른들도 모두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30대 초반, 지방에서의 담임목회를 거쳐 서울의 규모 있는 교회 부목사를 지내던 중 ‘앞으로 어떤 목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간구하는데 새벽기도 시간에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네가 신학대학에 갈 때 결심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순간 잊고 있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바닥에 꿇어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후 만난 것이 각당복지재단 산하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였다. 죽음준비교육 지도자 세미나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후에 죽음준비교육 연구실장으로 2년간 사역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있어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결단하고 나서야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윤 목사는 이처럼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세상이 위험하고, 예측불허하며, 정의롭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더욱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근간을 잃게 한다”면서 “그러나 이로 인해 인간의 유한함을 생각하게 되고, 신의 존재와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되며, 삶의 의미를 다시 찾고자 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슬픔을 감추는 한국 문화를 언급하면서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치유되는 것이 아니므로 제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 더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외로움, 공허, 우울함을 느끼게 된다”며 슬픔을 무조건 피하고 덮을 것이 아니라 목회적인 차원에서 가족이나 가까운 이를 상실한 경험을 표현하고 애도의 과정을 지나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재조명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질병과 고통, 상실과 슬픔을 경험 중인 이들에 대한 교회의 위로가 서툰 것을 지적했다. 특히 병원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대해 환자와 그 가족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터뷰한 결과 병원에서 드리는 예배 형식의 심방이 그리 많은 도움이 않는다는 응답이 높았던 것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목회자의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윤 목사는 평소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생각한다면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자명할 것”이라면서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유언장을 써보면서 내 삶을 정리해보고 연명치료에 대한 사전의료의향서 등을 미리 작성해 놓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찬양 기자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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