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주기/노인문제

2015 대한민국 아빠 리포트-下 아내는 밖에서 따로 놀고… 은퇴하니 ‘초라한 노년’뿐

맑은샘77 2015. 7. 14. 18:24
[사회] 2015 대한민국 아빠 리포트-下 게재 일자 : 2015년 07월 14일(火)
아내는 밖에서 따로 놀고… 은퇴하니 ‘초라한 노년’뿐
자식들은 슬슬 피하고…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홀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김문식(가명·67) 씨가 비가 오는 공원을 바라보며 쓸쓸히 앉아 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
할 말도, 이야기 할줄도 몰라
아내와 대화 하루 30분 안돼
함께 여가생활 하려니 ‘어색’

퇴근뒤 美 부부동반·韓 회식
가정을 자녀양육 수단 인식
가족생활 중심 문화 조성을


“나도 한때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었는데, 이렇게 ‘삼식이’(퇴직 후 집에서 세끼를 챙겨 먹는 남성을 비하해 이르는 말)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문식(가명·67) 씨는 자신의 30∼40대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김 씨는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약속이 있는 척 집을 나와 저녁 식사 때에 맞춰 집에 들어간다. 아내와 하루 평균 대화시간은 30분을 넘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씨는 “40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서로 할 이야기가 무엇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여기(탑골공원)에는 처자식이 없는 독거노인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나처럼 은퇴한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 아빠들의 자화상이란 생각이 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은퇴 후 부부 둘이 살아가는 고령 부부 가구가 늘면서 고독한 말년을 보내는 가장들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65세 이상 528만3620명 가운데 33.9%가 부부 가구로 구성돼 있다. 자녀와 같이 살거나(29.3%) 혼자 사는 경우(20.2%)보다 부부가 단둘이 사는 가구가 더 많은 것이다.

명예퇴직을 고민하고 있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한동오(가명·58) 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 씨는 “아직 시집 안 간 막내딸과 아내는 내가 집에 있는 날에는 눈치를 보더라”며 “젊었을 때부터 서로 야외활동을 같이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내와 여가생활을 함께한다는 게 서먹서먹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성격이 활발해서 친구도 많고 취미도 많다. 동네 복지관에 다니면서 탁구와 에어로빅을 배우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뒤부터 산악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한 씨는 “다들 교사는 시간이 많은 줄 알지만, 야간 자율학습 감독에 대학상담, 수업 준비로 아내와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다”며 “나는 성격도 내성적이라 퇴직 후 아내와 라이프스타일을 맞춰 갈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부부 친화적이지 않은 한국 사회 특성부터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현숙(가족복지학) 상명대 교수는 “대부분 선진국에서 결혼이란 부부 중심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의미인데 한국 사회에선 결혼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수단으로만 인식된다”며 “장시간 근로 관행을 없애는 한편,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낯설어 하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퇴근 후 파티나 각종 사교모임이 대부분 부부 동반으로 이뤄지지만, 한국은 직장동료나 친구 등과 술을 마신 뒤 잠잘 시간이 다 돼서야 귀가하는 식이란 것이다.

특히 자녀가 생기면 가뜩이나 적은 부부 공유 시간을 양육에도 할애해야 해 부부는 자연스럽게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은 시간제 베이비시터를 활용해 부부가 문화생활을 정기적으로 즐기는 일이 일상화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이가 크기 전까지 부부 공유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

정근식(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편은 직장에서 일하고 부인은 집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이 남아, 다른 나라에 비해 부부가 무언가를 같이 하는 문화가 충분히 뿌리내리지 않았다”며 “과잉노동도 좀 줄이고, 가족적인 생활을 중시하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영·김영주 기자 dayoung817@munhwa.com
e-mail 김다영 기자 /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