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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테라피: 행복에서 의미로

맑은샘77 2015. 2. 24. 13:47

로고테라피: 행복에서 의미로 | 게시판

지고지선 리건 | 조회 522 |추천 0 | 2013.05.28. 22:47

로고테라피: 행복에서 의미로

 

김재현

 

1. 의미치료(logotherapy)는 빅터 프랭클 박사가 아우슈비츠의 수용소 경험을 토대로 창안한 심리이론이다. 프랭클 박사는 정신과 의사로 2차 세계 대전 중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참한 삶을 대략 3년간 살았다. 게다가 그의 부모, 형제, 부인은 강제 수용소에서 죽거나 독가스실로 보내졌다. 그는 수용소에서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절망한 사람들이 더 빨리 죽고 의미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강한 목적의식, 사명의식, 그리고 유머가 중요했다. 수용소에서 이러한 체험을 한 프랭클은 수용소를 나와 자신의 체험을 적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출판한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이었기에 실명으로 책을 내지 않고 익명으로 내려고 했으나 주위 사람들이 저자의 이름이 있어야 책 내용이 신빙성을 얻는다고 강력하게 권해서 그는 책 표지는 익명으로 하고 내지에 자신의 이름을 실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중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되고 지금도 세계 각 국에 번역되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2. 책의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인 극한의 상황에서 ‘의미’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프랭클은 ‘생존가’(survival value)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한다. ‘생존가’란 다른 조건들이 같다면 미래를 지향하는, 즉 미래에 충족될 의미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살아 남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절박한 상황에서 생을 유지시켜 줄 정도로 강력했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프랭클에게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내와의 재회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 성직자』라는 본인의 저술을 쓰는 것이었다. 아내와 다시 만나고 책을 쓰겠다는 삶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 그에게는 지옥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프랭클은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기억도 이야기한다. 그는 배고픔과 추위 속에서 하나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는 큰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자신을 떠올렸다. 그 강의실에서 강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강의하는 자신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프랭클은 실제로 이 때 생각했던 강의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의미를 삶의 연료로 사용했던 것이다.

 

3.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는 고통의 불가피성과 고통의 의미를 깨달음으로 고통을 극복한다.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삶에 의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고통에도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고통이란 운명과 죽음과 같이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고통과 죽음이 없이는 완결될 수 없다. 한 인간이 그의 운명과 그에 따르는 모든 고통을 받아들일 때, 즉 그가 그의 십자가를 질 때 그는 그의 삶의 보다 깊은 의미를 더하게 되는 충분한 기회를 얻게 된다.”

 

프랭클은 고통을 죽음과 같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를 고통의 불가피성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거부한다. 하지만 먼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단 받아들인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면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이 두 번 반복된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4. 하지만 죽음이 있고, 그 죽음이 우리의 모든 의미를 빼앗아가지 않을까? 이에 대해 프랭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음이 인생의 전 생애의 의미를 무의미하게 한다는 것, 즉, 죽음은 모든 것을 무로 돌리기 때문에 모든 삶은 무가치하다고 얼마나 자주 들어 왔던가. 과연 죽음이 실제로 생명의 의미성을 파괴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반대이다. 즉 죽음은 삶을 의미있게 한다.”

 

죽음의 의미가 참다운 삶을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죄책감도 마찬가지이다. 죄책감에 직면하기 때문에 인간의 향상은 의미가 있다.

 

5. 로고 테라피의 기본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 의지(free will)이다. 이는 결정론과 반대된다. 프랭클은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리며 살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will to meaning)이다. 프로이트는 쾌락을 추구했다. 그는 마음의 핵심을 성욕의 추구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억압된 성욕이 마음의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아들러는 권력의 추구를 중시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의 문제의 핵심이 열등감이라고 보았다. 프랭클은 의미의 추구를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실존적인 공허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세 번째는 삶의 의미(meaning of life)이다.  

 

1) 자유 의지

 

의지를 행사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차원이나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영적인 차원이다. 그것을 프랭클은 noological 차원이라고 부른다. = spiritual dimension이라고도 부른다. logos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영혼이다.

 

신경증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발생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신경증으로 어떤 경우에는 종교로 나타난다.

 

프랭클은 차원 존재론을 전개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차원적 존재론 = 더 높은 차원은 더 낮은 차원에서 보면 동일한 것이 다르게 보인다(그림1).

낮은 차원에 투영된 서로 다른 현상들은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그림2)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원인과 이유의 차이점이다.  

 

원인은 물리적인 것: 양파를 자를 때 눈물을 흘릴 이유는 없다. 원인이 있을 뿐

이유는 정신적인 것: 좌절에 빠지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있다. 이유는 언제나 noological한 것이다. 영적인 것이다.

 

2)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쾌락’과 ‘권력’이 아니라 의미이다!  

 

* 프로이트의 쾌락주의에 대한 반대: 쾌락은 인간이 기울이는 노력의 목표라기 보다는 실제로는 의미를 충족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결과이다.

 

* 아들러의 권력주의에 대한 반대: 권력 역시 목표라기 보다는 목료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프랭클은 조지아 대학의 학생 신문 편집장인 베키 리어의 글을 인용한다.

 

“우리는 피임약을 소유하고 있어서 성적 욕구의 결과물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 성적 욕구를 눌러야 할 의학적 이유는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권력 또한 가지고 있다. 젊은 세대들 앞에서 벌벌 떠는 미국 정치인들이나 아니면 중국의 홍위병들을 보라. 하지만 빅터 프랭클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존재적 진공 속에 살고 있고 이 허무는 권태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권태라...뭔가 다르게 들리지 않나? 섹스나 권력보다 이쪽이 더 익숙하게 들리지 않나? 손만 뻗으면 모든 것을, 프로이트의 섹스나 아들러의 권력까지도 가질 수 있는데도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익히 보지 않았는가?”

 

프랭클은 그래서 행복과 쾌락을 찾지 말고 의미를 찾으라고 권한다. 실제로 그는 『도덕 형이상학의 정초』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한다.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행복은 결과로 따라온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법을 준수해야 한다.”

 

프랭클은 칸트가 의무 수행이나 법에 관해 했던 말을 더 일반화해서 의미를 추구하라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공을 목표로 하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겨냥할수록 빗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행복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헌신할 때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뜻밖의 부산물로 따라오는 것이다. 행복은 저절로 오고 성공도 마찬가지다.

성공에 매달리지 말고 저절로 따라오게 해야 한다.

 - 빅터 E. 프랭클

 

그런데, 프랭클의 주장은 묘하게도 최근의 행복철학과 겹친다. 이미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던가? 이 단어가 없으면 더욱 평온하게 살련만”

 

이를 스퐁빌은 행복의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행복을 목표로 해서 살아가는데 삶은 더 불행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진정 행복해지려면 오히려 행복을 찾지 말아야 한다.

 

“행복을 희망하며 사는 것, 행복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사는 것은 분명 불행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철학자의 말에 따르면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행복을 찾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서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는 의미를 찾으려는 ‘충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의지(free will)는 프랭클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는 자아 실현에 목표를 두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적 특성과 모순을 이루게 된다. [= 자아실현하려 하지말라!] 자아를 초월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아 초월의 대표적인 예는 용서이다. 나는 환대와 증여도 자아 초월의 대표적인 예라고 본다. 의미란 무엇을 뜻하는가? 의미와 가치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일까? 프랭클은 의미가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보다는 의미의 ‘유일무이함’을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삶의 보편적인 의미는 없으며 유일한 의미만 있다. 그러나 ‘공유되는 의미’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의미의 문제는 사실상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의미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내면이나 정신 속에서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자족적인 체계와도 같다.

 

3) 삶의 의미

 

아래의 세 가지 문제 중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① 고통

② 죄

③ 죽음

 

그리고 삶의 의미는 책임 있게 찾아져야 한다.

 

몇 가지 프랭클이 강조하는 기법들

 

- 과잉의도의 문제: 어떤 일에 몰두해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경우.

- 역설의도: 환자가 두려움을 과장되게 표현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 유머: 자기이탈의 진수를 보여준다.

 

6. 더 읽어볼만한 책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빅터 프랭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빅터 프랭클, 『의미를 찾는 소리 없는 절규』, 오승훈 역, 청아출판사.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의 심리의 발견』, 강윤영 역, 청아출판사.

빅터 프랭클,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박현용 역, 책세상.

알렉스 파타코스, 『의미있게 산다는 것』, 노혜숙 역, 위즈덤하우스.

앙드레 콩트 스퐁빌 외,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것에 관하여』, 이소영 역, 생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