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일반/처월드

겉보리 서말 있어도 당당한 처가살이-사위 사랑은 장모 옛말

맑은샘77 2014. 9. 6. 15:26

[S 스토리] 겉보리 서말 있어도 당당한 처가살이

사위 사랑은 장모 옛말… 부부싸움 때마다 딸 편
견디다 못해 갈라서기도
세계일보 | 입력 2014.09.06 06:02

 

지난 2월 종영한 TV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은 사업이 망해 처가살이를 하며 장모에게 구박받는 맏사위의 모습을 그렸다. 사회상을 반영해서인지 시청률이 50% 가까이 치솟았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프로그램 '자기야-백년손님'은 장인·장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위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처월드'(처가살이 또는 처가식구를 이르는 신조어)를 그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경제, 육아 등의 문제로 처가식구들과 함께 살거나 처갓집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남자의 무능력을 보여준다며 처가살이를 기피하던 과거의 세태와 달라진 모습이다.




◆아이는 친정부모에게…

전문가들은 처월드 증가 원인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부실한 정부 정책을 꼽는다. 맞벌이를 하는 여성은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의 양육 지원은 부족해 자녀를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자신에 편한 친정 부모에게 자녀를 맡기면서 처갓집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육아정책연구소의 '2012 전국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아이가 친조부모보다 외조부모의 양육 지원을 받는 사례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 0∼5세 자녀를 둔 2528가구 중 45%(1133가구)가 혈연으로부터 양육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 중 47.9%가 처가쪽의 지원을 받았다. 친가쪽이 양육을 돕는 경우는 43.7%였다.

성미애 방송통신대 교수(가정학)는 "여성의 사회 진출은 많아지고 있지만 자녀를 맡길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처가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처가살이에 대한 남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수원에 사는 민주원(29)씨는 지난해 5월부터 1년 넘게 처가살이를 하고 있다. 딸이 태어나면서 육아와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민씨는 "처가에 들어오라는 장인어른의 제안에 저와 아내 모두 '생큐'를 외쳤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처럼 장모에게 구박을 받는 일도 없다. 장인과 장모에게 드린 용돈은 민씨 딸의 적금으로 다시 돌아온다.

지난 2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미혼 직장인 13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남성의 38.5%는 '처가살이를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시집살이를 할 의향이 있다'는 여성은 19.1%에 불과했다. 여성들은 시집살이를 기피하려 하지만, 남성들은 처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받겠다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시집살이 못지않은 '처월드'

하지만 처가살이가 민씨의 경우처럼 모두 순탄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다. '시월드'보다 무서운 것이 '처월드'라는 말까지 나온다.

유모(34)씨는 최근 4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2년 전 육아 문제로 처갓집에 들어가면서부터 불화는 시작됐다. 장모는 야근과 회식이 잦았던 유씨를 탐탁지 않아 했다. 남들처럼 주말에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도 유씨에게는 꿈같은 일이었다. 유씨를 불러 앉혀놓고 훈계를 하는 날도 점점 잦아졌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해도 장모는 유씨를 '가정을 내팽개치는 못된 사위'로만 볼 뿐이었다. 그럴수록 유씨가 아내와 싸우는 횟수도 늘어갔다. 가장이 아닌 불청객이 된 유씨는 결국 소송 끝에 아내와 갈라섰다.

김모(35)씨도 처월드를 견디지 못해 이혼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 처가 근처로 집을 옮긴 것이 화근이었다. 부부싸움을 할 때면 아내는 장모에게 달려가 불만을 늘어놓았다. 결혼 전부터 무능력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던 장인·장모는 김씨의 얼굴만 보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결국 부부는 남남이 됐다.

한국 남성의 전화 이옥이 소장은 "자녀 양육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남성들의 처가살이가 늘고 있다"며 "처가살이로 아내와의 갈등이 많아지고, 아내의 '권력'이 더욱 커진다고 하소연을 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수입이 아내보다 적을 때 이 같은 현상이 더 뚜렷하다"며 "부부가 갈등을 해소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