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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의 비명] <4> 범죄자 만드는 폭력의 악순환재소자 2명 중 1명은 어릴 때 가정폭력 경험… 당한 대로 되갚는다

맑은샘77 2013. 11. 29. 00:26
[안방의 비명] <4> 범죄자 만드는 폭력의 악순환
재소자 2명 중 1명은 어릴 때 가정폭력 경험… 당한 대로 되갚는다
부모의 폭언·폭행 노출된 청소년, 남의 고통에 공감 능력 떨어져
'약자 누르며 자존감 회복' 경향… 잠재적 범죄 예방차원 '개입' 필요
입력시간 : 2013.11.28 03: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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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장윤호(24ㆍ가명)씨에게 아버지(58)는 유일한 핏줄이다. 그러나 장씨에겐 '괴물'일 뿐이다. 늦은 밤 술에 잔뜩 취해 귀가한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놈도 나를 무시한다"며 초등학생이던 장씨를 마구 팼다. 아버지가 휘두른 허리띠로 얼굴을 맞아 볼이 벌겋게 부어 올랐고 중학교 때는 주먹으로 수십 차례 가슴팍을 맞아 호흡곤란이 오기도 했다.

그는 상처 난 얼굴이 창피해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둔 동네 형들과 자연스레 어울렸다. 형들을 따라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했다. 상대의 배와 가슴을 실컷 두들겨 팼다. 형들이 잘했다고 치켜세워주니 그 동안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바보같았던 자신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때 장씨는 집을 나왔다.

성인이 돼서도 술만 마시면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 유리에 벽돌을 집어 던졌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걸고 폭행해 파출소를 들락거린 것도 수 차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야 답답했던 속이 뻥 뚫렸다. "그래도 핏줄이라고 술만 먹으면 망나니 되는 것까지 그 사람을 닮은 건지…." 아버지와는 평생 안 보고 살 작정이라는 장씨가 말끝을 흐렸다.

부모에게서 폭력 배우는 아이들

장씨처럼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동욱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이 지난 8월 발표한 '아동ㆍ청소년기 가정폭력 경험이 성인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교도소 수형자 두 명 중 한 명이 가정폭력 유경험자다. 경기도 한 교도소 수형자 486명을 대상으로 한 이 설문조사에서는 249명(51.2%)이 "아동ㆍ청소년기에 가정폭력을 직접 겪거나 부모 간 가정폭력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특히 강간과 강제추행 같은 성범죄 사범의 가정폭력 경험 비율은 63.9%로 가장 높았고 살인(60%)이 뒤를 이어 강력범죄자일수록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경우가 많았다.

김재엽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이순호 서해대학 케어사회복지과 교수와 함께 2011년 '한국사회복지조사연구'에 게재한 '청소년의 부모 간 폭력 목격경험이 학교폭력 가해에 미치는 영향과 공격성의 매개효과'에서도 부모 간 폭력을 목격한 청소년이 학교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부모 사이의 폭력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청소년들의 불안감과 공격성이 높아져 자기 통제력을 잃고 또래집단에 대한 가해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어린 시절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로부터 일찌감치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는 '세상에 내 편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나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자존감의 손상을 경험한다. 이런 경험을 갖고 성장하면 나보다 약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해 이를 회복하려 한다. 상처 입은 자존감과 그로 인해 커진 분노는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에 들어가 흉기를 휘둘러 어린 학생들을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19)군도 당시 가정폭력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기간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언과 폭행을 들이붓는 것을 지켜본 김군은 세 차례의 자살 시도 후 결국 초등학생이라는 약자를 상대로 한 무차별 폭행으로 쌓인 분노를 표출했다.

전영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폭력경험으로 인한 분노조절 실패는 통제력 상실로 이어지고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며 "어린 시절부터 가장 친숙한 존재인 부모의 폭력에 익숙해지면 자녀에겐 폭력도 허용될 수 있다는 잘못된 학습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개입은 사회의 범죄를 막는 길

결국 가정폭력에 개입하는 것은 한 순간의 폭력에서 피해자를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명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고, 우리 사회의 잠재적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집안 일'로 치부해 공권력의 개입을 주저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년사건 전담 재판장을 지낸 주채광 서울 남부지법 판사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피해는 학교나 사회 부적응을 낳고 이는 각종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폭행에 대해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뿐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과 치료를 위한 법률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선임연구위원은 "지역사회에서 부모를 대상으로 한 훈육 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폭력의 대물림을 막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알코올 중독이나 경제 곤란 등 가정에서 폭력을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 사회가 폭력의 악순환을 조기에 끊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